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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항목명 | 도학 |
한자항목명 | 道學 |
유형 | 개념 |
한국 시대 | 고려 |
중국 시대 | 송원 시기/남송 |
출전 | 『송사(宋史)』 「도학전(道學傳)」, 『중용장구(中庸章句)』「서(序)」 |
<요약>
중국의 북송(北宋) 중엽에서 발생하여 남송(南宋)시대에 정립되었던 유교이념의 새로운 체계를 가리키는 말.
<설명문>
도학이라는 용어가 처음 발견되는 것은 『대학(大學)』으로, 그곳에서는 『시경(詩經)』 「기욱(淇澳)」의 시를 인용하면서 ‘도학’[如切如磋者 道學也]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도학’은 단지 ‘학문을 말한다’는 뜻으로 쓴 것이다. 이에 비해 새로운 학풍으로서의 도학의 성격을 선명하게 확인시켜 주는 문헌은 『송사(宋史)』 「도학전(道學傳)」이다. 『송사』에는 「유림전(儒林傳)」 8권 이외에 별도로 「도학전」 4권을 수록하여 유학자들을 일반적인 유림(儒林)과 구별하여 도학자로 따로 제시하면서 유교사상 속에서 도학의 형성 과정과 성격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것에 따르면 ‘도학’이라는 명칭은 고전에 없었다고 한다. 도학의 발생은 유학의 ‘도’에 대한 계승이나 궁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그에 대해 「도학전」은 선진(先秦)시대에는 공자의 도(道)가 증자(曾子), 자사(子思), 그리고 맹자(孟子)에게 전해졌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대(漢代) 이래로는 유학자들의 대도(大道)에 관한 논의가 정밀하지 못하고 이단사설(異端邪說)이 횡행하여 천년 동안이나 도가 은폐되었다.
북송 중엽에 들어와서 주돈이(周敦頤)가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통서(通書)』를 저술하여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이치와 천명(天命)과 인성(人性)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성현의 끊어진 학문을 이었으며, 장재(張載)는 『서명(西銘)』을 저술하여 이일분수(理一分殊)의 이치를 밝힘으로써 도의 근원이 하늘에서 나온 것임을 밝혔다.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형제는 주돈이에게서 배우고, 『대학』 『중용(中庸)』의 두 편을 『논어(論語)』‧『맹자』와 더불어 흥창하였는데, 그로써 그들은 성왕(聖王)이 전해준 깊은 심법(心法)과 초학자가 입덕(入德)하는 문을 남김없이 밝혔다.
남송시대에 주희(朱熹)는 정씨 형제의 학풍을 계승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앞세우고 명선성신(明善誠身)을 요령으로 삼아서, 공자의 경전이 진(秦)나라에서 불타고 혼착되며, 한대의 훈고학(訓詁學)에서 지리하게 되고,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의 현학(玄學)에서 아득하게 되었던 것을 밝게 드러내어 제자리 잡게 하였다. 「도학전」에서는 여기서 송대 유학자들의 학통이 맹자를 이을 수 있게 되었으며, 도학이 송대에 융성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도학적 유교사상의 인식은 도학의 독특한 도통(道統) 의식과 도의 근원을 밝히려는 학풍의 성격을 보여준다.
『송사』 「도학전」 4권에 수록하고 있는 도학자의 인물들을 보면, 제1권에서는 주돈이‧정호‧정이‧장재‧소옹(邵雍), 제2권에서는 정씨의 문인들이다. 제3권에서는 주희와 장식(張栻), 제4권에서는 주희의 문인이 수록되어 있다. 당시의 석학이었던 여조겸(呂祖謙)‧육구연(陸九淵)‧채원정(蔡元定)‧섭적(葉適)‧호안국(胡安國)‧진량(陳亮)‧진덕수(眞德秀) 등은 「도학전」에 실지 않고 「유림전」에 실고 있다. 이들 중에는 주돈이에서 주희에 이르는 도학자들과 학풍이 다른 육구연‧섭적‧진량 등도 있지만, 주희와 깊은 친교가 있고 도학의 학풍이 일치하여 후기의 도학자들로부터 존숭을 받던 여조겸, 채원정, 호안국, 진덕수 등의 경우도 「도학전」에 들어 있지 않은 사실은 도학이 엄격한 도통을 기준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정씨 형제와 주희의 경우에 그들의 문인들을 수록하여 도통의 계승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도학에서 정씨 형제와 주희의 비중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같은 학문적 경향을 가리키면서도 도학이라는 명칭 이외에 동일하거나 유사한 의미를 지닌 다양한 명칭들이 사용되어 왔다. 이에 따라 도학에 관한 명칭의 혼동이 지금까지도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즉 도학사상을 형성하는 데 대표적인 역할을 하였던 송대의 인물로서 정(程)씨 형제와 주희(朱熹)의 이름을 따서 도학을 정주학(程朱學)이라 하기도 하고, 도학의 집대성자로서 주희의 이름을 따서 주자학(朱子學)이라 일컫기도 한다.
도학의 발생 시기가 송나라시대라는 점에서 송학(宋學)이라 하며, 그 학문적 성격이 근본의 원리를 탐구하는 철학적 특징을 지녔다는 점에서 이학(理學)이라고도 한다. 도학이 특히 천명과 인성의 이치를 해명하는 문제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성리학(性理學)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나아가 송대에서 명대 사이에 융성하였던 이학이라는 점에서 송명이학(宋明理學)이라고도 한다. 또한 도학이 한대의 훈고학적 학풍이나 당대의 사장학(詞章學)적 학풍을 쇄신하여 혁신적인 새로운 학풍으로 등장하였던 유학이라는 점에서 신유학(新儒學)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정주학, 주자학, 송학, 이학, 성리학, 송명이학, 신유학 등 여러 명칭들 사이에는 도학과 범위는 같으나 시각이 다르기도 하고, 범위도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주학과 주자학은 도학의 대표적 인물을 중심으로 붙인 호칭이다. 이러한 인물 중심의 호칭은 학설의 다양성과 사상의 발전에 따라 적합성이 점점 약해지는 한계가 있다. 송학의 경우는 발생시대를 가리키는 명칭으로서 송학 안에는 도학 이외의 학풍도 있을 수 있고, 한국의 도학은 송학이라는 중국 학풍과 구별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호칭의 한계가 있다. 이학에는 도학뿐만 아니라 육구연(陸九淵), 왕수인(王守仁)의 학풍인 심학(心學)도 포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학보다 외연이 넓은 호칭이라 할 수 있다. 송명이학이라는 호칭은 송명이라는 시대의 호칭과 이학이라는 학문 주제의 호칭에 모두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리학은 도학의 핵심적인 영역이기는 하지만 도학의 전체를 가리키기에는 너무 좁은 범주라 할 수 있다. 신유학은 송대 이후의 신학풍이라는 점에서 가장 광범한 명칭으로서 도학과 심학의 이학파뿐만 아니라 사공파(事功派)의 학풍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데 문제가 있다.
도학의 기본 정신으로서 정통론(正統論)은 엄격한 도통론과 이단 배척의 벽이단론(闢異端論)을 포함하고 있다. 주희는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의 첫머리에서 「중용」을 저술한 동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중용」은 어찌하여 짓게 되었는가? 자사가 도학이 전해지지 못할까 근심하여 지은 것이다. 무릇 상고시대로부터 성신(聖神)이 천명을 이어서 인극(人極)을 세우니 도통의 전승이 이로부터 시작하여 내려왔다.” 여기서 주희는 도학과 도통을 연관시켜서 제시하며, ‘도통’은 『중용』 서문의 강령이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도학의 정통론은 한 줄기의 계열로 계승되어 내려가는 엄격한 도통체계를 확립하면서 도통에 어긋난 사상에 대한 비판 의식을 발휘하여 왔다.
불교나 도가사상 등은 도통론적 의식에서는 이단(異端)으로 규정되어 배척을 받았다. 벽이단론의 관철은 사실상 도학이 당시의 불교와 도가사상을 비롯한 여러 사상적 유파와 구별하여 자신을 확인하는 데 있어 기본 방법을 이루고 있다. 심지어 유학사상 가운데서도 도학의 정통성에 어긋나는 입장들을 무통(無統) 또는 잡통(雜統)으로 규정하거나 이단으로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정통론의 기초적 관심은 도학체계 속에서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어 나가고 있다. 도학의 사상체계에서는 도통을 비롯하여 경학(經學), 출처(出處), 도체(道體), 위학(爲學), 예악(禮樂), 치도(治道) 등의 기본문제들을 논의해 왔다.
이러한 문제들은 곧 주석과 문답을 통한 경전 해석체계로서의 경학, 정당성을 요구하는 행위의 근본 원리로서 의리론(義理論), 의리의 근거가 되는 우주론적 근원과 인간의 심성적 내면을 파악하려는 성리학, 인격의 연마와 배양을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수양론(修養論), 정당성의 원리에 따라 구체적인 행위의 절차와 형식을 확인하여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예학(禮學), 그리고 사회 제도와 정치를 통하여 도학 이념의 실현을 추구하는 경세론(經世論) 등을 포함한다. 여기서 보면 성리학도 도학의 여러 문제 영역 가운데 하나임을 확인할 수 있다. 도학의 학문적 기초는 경학에 두고 있다.
경학은 정씨 형제와 주희를 통하여 확립된 사서(四書 : 『大學』, 『論語』, 『孟子』, 『中庸』)의 주석을 통하여 사서 중심의 경학으로 제시되었다. 『대학』의 해석에 있어서는 주희의 도학과 왕수인의 심학이 기초하는 경학적 입장이 선명하게 구별되고 있다. 여기에 주희가 편찬한 『소학(小學)』이 사서의 기초로 중시되고 있다. 또한 도학의 전통에서는 의리론이 중추를 이루고 있다. 도학자로서의 선비가 살아가는 구체적 행동의 원리는 강상론(綱常論)의 규범에 따르는 의리가 존중되고 국제적인 질서는 화이론(華夷論)의 춘추대의가 존숭되는 것이다. 도학이 발생하던 송대에는 거란족의 금나라에 압박을 받았을 때 의리 정신에 따른 저항 의식이 강하게 일어났으며, 조선 말기에도 도학자들은 민족적 위기에 강인한 저항 정신을 발휘하면서 의리 정신과 절의를 내세웠다.
성리학에서는 태극론(太極論)을 비롯한 이기론(理氣論)과 심성정론(心性情論) 등의 철학적 문제가 논의되어 왔지만 주리론(主理論)이 정통으로 인정되어 왔다. 수양론은 격물치지론 등 지식론과 성경론(誠敬論), 지행론(知行論)의 문제들을 포함하며, 특히 지식과 강학을 중심으로 하는 수용방법이 강조되고 있다. 예학은 이익(李瀷)이 “유교는 예학이 반이요, 이학이 반이다.”라고 할만큼 큰 비중을 지닌 영역이다. 특히 조선 후기의 도학에서는 예학파가 형성되고 예송(禮訟)의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중요한 과제였으며, 『가례(家禮)』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 경세론은 도학의 발생 당시 당나라 말기와 오대(五代)시대의 혼란에서 귀족들이 몰락하고 중앙 집권체제가 성립하였을 때 사대부가 정치를 담당하면서 탐색되었다.
도학의 경세론은 왕권을 강화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려는 관심에서 출발하여 의리의 정치적 구현을 도모하는 도덕적 경세론인 데 비하여, 실학의 경세론은 제도의 효율성과 민생의 향상을 도모하는 실용적 경세론으로서, 조선 후기에서는 실학파에 의해 도학적 경세론이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고려 말엽에 주희의 경전 주석이 전래하면서 도학이 형성하게 되자, 이색(李穡)으로부터 ‘동방이학의 시조’라 일컬어질 만큼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던 정몽주(鄭夢周)는 친명 정책의 선택으로 화이론적 의리론을 확립하고 고려 왕조에 충절을 지켜 순절의 의리를 밝혔으며, 가묘(家廟) 제도를 도입하여 『주자가례』를 시행하여 예학을 실천함으로써 도학적 성격을 선명하게 드러내었다.
조선사회에 들어서면서 정도전(鄭道傳) 등에 의해 불교 비판의 벽이단론이 강력하게 제시되었고, 도학적 의리론에서는 절의를 존중하고 선비 정신을 실현하여 엄격한 출처의 의리를 지키게 되었다. 조광조(趙光祖)는 도학적 경세론의 이상으로서 지치(至治)의 실현을 추구하여 ‘동방 도학의 시조’라는 호칭을 받기도 하였다. 이황(李滉)과 이이(李珥)를 중심으로 활발한 성리학적 논변이 일어났으며, 17세기에는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 등의 예설과 윤휴(尹鑴)와 송시열(宋時烈) 등의 예송에서 보는 예학의 융성기를 맞게 된다.
이후 정통주의적 벽론과 서학(西學)에 대한 배척의 척사론(斥邪論), 서양과 일본의 침략 세력에 대한 저항 정신의 척사위정론(斥邪衛正論)과 의병(義兵) 운동 등이 전개되었다. 도학은 확고한 이념적 체계와 강한 신념을 통해 송대 이후와 조선 사회에서 사회 이념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한 사회를 굳게 결속시켜 주며 안정의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외세의 침략 앞에서는 강인한 수호 의지를 발현하였다. 그러나 도학의 정통주의적 신념은 포용성을 잃고 역사의 변화에 적응력이 약하여 보수적 성격을 띠게 되는 데서 한계가 드러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에 와서 도학적 신념은 조선시대의 정통 이념으로서 풍부한 사상적 문화적 유산을 남겨주고 있음이 주목되어야 한다. 비록 도학 전통의 제도와 형식에서는 오늘날 타당성을 잃은 부분이 크다 하더라도, 그 근원의 이념과 원리에서는 관심 깊은 이해가 요구되고 있다.
도학사서(道學四書)
한글항목명 | 도학사서 |
한자항목명 | 道學四書 |
유형 | 개념/문헌 |
중국 시대 | 송원 시기 |
<요약>
송학(宋學)의 대표적인 네 가지 저술을 이름.
<설명문>
즉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 정이(程頤)의 「역전서(易傳序)」‧「춘추좌전서(春秋左傳序)」,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을 말한다.
도학오선생(道學五先生)
한글항목명 | 도학오선생 |
한자항목명 | 道學五先生 |
유형 | 개념/인물 |
중국 시대 | 송원 시기 |
<요약>
송대(宋代)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장재(張載)‧정호(程顥)‧정이(程頤)‧주희(朱熹) 등에 대한 병칭.
<설명문>
도학(道學)은 성리학(性理學)을 가리키며 주장이정(周張二程)을 이은 주희에 의해 집대성되었기 때문에 위의 다섯 사람을 도학오선생이라 부른다.
<참조항목>
도학
동인괘(同人卦)
한글항목명 | 동인괘 |
한자항목명 | 同人卦 |
유형 | 개념 |
<요약>
『주역』의 13번째 괘.
<설명문>
내괘(內卦)는 건(乾 : 天)이고 외괘(外卦)는 이(離 : 火)이기 때문에 천화동인(天火同人)이라고 하며, 불의 광명이 합하는 것을 상징한다. 이 괘에는 세계가 대동(大同)을 이루고 문명이 발달하는 뜻이 있기 때문에 동인이라고 한다. 서괘(序卦)에는 ‘사물은 비괘의 의미로 끝날 수 없기 때문에 동인으로 이어졌다.’라고 하였다. 착괘(錯卦)는 사(師 : )이고 종괘(綜卦)는 대유(大有 : )이다. 이 괘의 괘사는 “형통하다. 큰 냇물을 건너면 이로울 것이다. 군자처럼 곧으면 이롭다.(亨 利涉大川 利君子貞)”이다.
이것은 이 괘에 태양의 빛이 지평선 위로 올라와 넓은 천하의 광야를 비추는 상이 있으므로 당연히 형통하며, 그것의 상징이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괘는 전체적으로 육이의 곤유(坤柔)가 적당하면서도 중정한 곳에 처해 있으며, 또 외괘의 건괘(乾卦)와 서로 상응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을 찾는 의미를 가진다. 내괘(內卦)의 이화(離火)는 지성의 밝음을 의미하고, 외괘(外卦)는 건이어서 실행력이 강하다. 많은 사람이 아무런 거칠 것 없는 광야에서 화목하게 거처하므로 당연히 형통하다. 따라서 동시에 광장에서 널리 동지를 천하에서 구하여 크게 문명을 발양(發揚)하는 상이다.
<참조항목>
육십사괘, 주역
동자(童子)
한글항목명 | 동자 |
한자항목명 | 童子 |
유형 | 개념 |
<요약>
어린 사내아이.
<설명문>
아직 관례를 치르지 않은 어린 사내아이를 뜻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