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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신화 建國神話 foundation Myth
한 국가의 성립 과정을 전하는 신화를 말한다.
왕권의 기원이나 왕실의 시조에 관한 신화라는 의미에서 왕권신화, 또는 왕실시조신화라고도 한다.
1. 신화와 식민사학
‘신화’라는 말은 영어의 myth, 프랑스어의 mythe, 독일어의 mythos의 번역어이며,
이들 서양어의 어원은 그리스어 mythos로서 이성적 언어인 logos의 반대말로 비이성적 언어라는
뜻이다.
Myth의 번역어로 신화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90년대 일본에서였다.
한자문화권에서도 일찍부터 신화가 전승되었던 만큼 신화와 비슷한 의미로 ‘구어(舊語)’,
즉 ‘옛 이야기’라는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신화로 대체되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신화라는 용어에 대해 몹시 과민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신
화란 비현실적 이야기이므로 곧 허구 또는 거짓말이란 뜻인데, 한국의 건국 전승을 굳이 신화라고
부르는 것은 한국의 역사를 부정하기 위한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책략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조선의 건국 전승을 단군신화라고 표현하면 식민사학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매도한다.
과거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한국사를 축소시키기 위해 단군의 존재를 부인한 것은 사실이다.
단군 전승에 환인(桓因) · 제석(帝釋)을 비롯한 불교적 용어가 등장하는 등, 일부 후대적인 화소(話素, 이야기를 구성하는 최고 단위)가 보인다는 사실을 근거로, 단군 전승은 고조선 당시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날조된 것이며, 따라서 고조선의 존재 자체도 믿을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신화의 속성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신화는 원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며, 핵심을 제외한 부분에 대해서는 구전 과정에서 얼마든지 첨삭이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몇몇 용어에 후대적 화소가 보인다고 해서 신화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데 사실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한국의 건국 전승에 대해 신화가 아니라 전설이란 표현을 썼다.
이를테면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檀君傳說について」 , 오다 쇼고(小田省吾)의 「謂ゆる檀君傳說について」각주2) ,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의 「高句麗の建國傳說と史上の事實」 이 그것이다.
반면 일본 자국의 건국 전승에 대해서는 신화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20세기 전반기 동아시아에서는 아무 국가나 신화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신화의 유무가 문명의
척도라는 생각이 있었다.
문명이 앞선 서양에는 그리스 · 로마 신화가 있다는 점이 근거이다.
따라서 당시 중국학자들은 자국에도 신화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학자들도 자국의 건국 전승에 대해서는 신화라는 표현을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건국 전승을 신화라 한 것은 최남선이 처음인 것 같으며, 최남선이 신화란 말을 사용한 것도 이런 의식 때문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한국의 건국 전승을 신화라고 하는 것이 식민사학의 영향으로 볼 수는 없다.
2. 신화를 보는 관점
기본적으로 신화는 ‘우주 만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는 기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중에서도 우주, 인간, 문화의 기원에 대한 것이 많다.
그런데 신화에서는 우주, 인간, 문화의 기원을 신이나 영웅들의 활동의 결과로 설명한다.
즉 주인공은 현실세계의 인물이 아닌 초현실적 존재이며, 배경도 현실적 시간과 공간의 좌표를 벗어난 초현실적 시공까지 포함한다.
나아가 사건의 전개 과정도 경험적 인과관계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한 마디로 신화에서는 어떤 주어도 용납되며, 모든 주어는 어떤 술어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비현실성 때문에 신화에 대한 오해가 비롯된다.
다시 말해서, 신화는 허구 내지 거짓말이며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가 신화는 인류가 무지몽매했던 시대의 산물이며, 오늘날에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사실이냐 거짓이냐는 신화에 대한 올바른 물음이 아니다.
그것은 신화의 목적이 사실을 설명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신화는 사실보다 진실을 말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을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면, 진실은 있었다고 여겨지는 일이다.
‘여겨진다는 것’은 일종의 해석이 가해진 것으로,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가령, 예수의 부활이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 있어서는 사실이 아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 그것은 사실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진실이며 신앙의 절대적
근거이다.
사실과 진실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신화는 사실보다 진실을 우선한다.
다시 말해서, 신화는 과거 사실의 객관적 전달보다 그것의 현재적 의미를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둔다.
여기서 현재적 의미란 현실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현재의 모든 질서는 신화시대 신들을 비롯한 초자연의 섭리에 의한 것이므로 정당하며,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이것을 한 마디로 영국의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Bronislaw Malinowski)는 신화의 ‘헌장적(憲章的)
기능’이라 했다. 또 신화는 그 사회가 가진 이상이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사실보다 의미 있는 진실을 갈구하는 인간의 심성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신화는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우리는 운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일들을 분명한 인과관계로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때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초경험적 논리로 관련지으며, 이것을 진실이라 여긴다.
이 경우 초경험적 논리를 신화적 사고라고 한다면, 신화는 무지몽매한 시대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 신화에 대한 오해는 은유적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데서 비롯되기도 한다.
예컨대 ‘왕은 사자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자가 왕 노릇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왕은 사자처럼 용맹하다는 의미이며, 일종의 은유이다.
이러한 은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자가 왕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진다면,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화에 대한 올바른 질문은 사실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신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이며, 무엇을 정당화하려는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이러한 신화의 성격은 건국신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건국신화(foundation myth)는 종말론적 신화(ecschatological myth)와 함께 정치신화(political myth)의 한 유형이다.
정치신화는 정치를 주제로 한 신화로 비교적 문명화된 사회에서 출현하며, 건국신화는 정치적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종말론적 신화는 현세가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신화의 목적 역시 정치적 사실을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건국신화는 건국의 정당성을, 종말론적 신화는 새로운 세상의 도래나 혁명의 당위성을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현실의 정당화라는 성격은 정치신화에서 다른 어떤 종류의 신화보다 두드러진다.
이처럼 신화는 과거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실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며,이러한 점은 정치신화의 경우 특히 두드러진다고 하겠다.
신화에는 비현실적 내용이 많아 신화를 허구나 거짓말의 동의어로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월드컵 4강의 신화’, ‘○○기업의 신화’라고 했을 때 신화는 위대한 업적이란 의미이기 때문이다.
3. 건국신화의 자료와 내용
건국신화가 전하는 국가로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후백제, 고려 등이 있다.
이들 국가의 건국신화는 일부 구전도 있지만, 주로 문헌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같은 국가의 건국신화라 하더라도 문헌이나 자료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를 국가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고조선의 단군 신화
① 『삼국유사(三國遺事)』 유형
천신 환인의 아들 환웅(桓熊)이 지상으로 내려와 곰에서 변신한 여인과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고,
단군은 기원전 2300년경에 평양성을 중심으로 고조선을 건국했다.
단군은 1500년을 통치하다가 구월산 아사달산의 산신으로 좌정했다.
② 『제왕운기(帝王韻紀)』 유형
환웅의 손녀와 단수신(檀樹神)이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고, 단군은 기원전 2353년 고조선을 건국하여
1038년 통치하다 신이 되었다.
③ 『제조대기(第朝代記)』 유형
환웅과 백호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든지, 환웅이 곰과 혼인하여 단군을, 여우와 혼인하여 기자를
낳았다는 것 등이다.
④ 권근(權近)의 「응제시(應制詩)」 유형
단군이 직접 하늘에서 내려와 고조선을 건국했으며, 그의 후손이 대대로 이어가면서 천 년 이상
고조선을 통치했다.
⑤ 『규원사화(揆園史話)』 유형
1대 환검(桓儉) 단군에서부터 47대 고열가(古列加) 단군까지 47대 단군이 고조선 통치을 했다는
전승이다.
2) 부여 신화
① 동명 신화
탁리국이란 나라의 왕의 시비(侍婢)가 하늘에서 내려온 달걀과 같은 기운과 접촉하여 동명을 낳았다.
왕은 불길하다고 여겨 아이를 버렸으나, 여러 동물들이 아이를 보호했다.
이에 왕은 하늘의 아들이 아닌가 하여 아이를 기르도록 했고, 아이는 자라면서 명사수가 되었다.
그래서 왕은 또 동명을 위험 인물로 간주하여 죽이고자 했으나, 동명은 물고기와 자라의 도움으로
강을 건너 달아나 부여를 건국했다.
② 해모수 신화
천제(天帝) 해모수가 지상에 내려와 부여를 건국했고, 부루(夫婁)에서 금와(金蛙)로 왕위가 이어졌다.
3) 고구려 주몽 신화
① 천자(天子)형
하백(河伯, 水神)의 딸 유화는 부여 왕의 궁중에 있으면서 햇빛을 받아 알을 낳았다.
부여 왕은 불길하다고 여겨 알을 버렸으나, 여러 동물들이 알을 보호했다.
이에 왕은 알을 유화에게 돌려주었고, 알에서 주몽이 태어났다. 주몽은 명사수였고, 그래서 부여 왕의
아들은 주몽을 질투하여 죽이고자 했다.
이에 주몽은 물고기와 자라의 도움으로 부여를 탈출하여 고구려를 건국했다.
일정 기간 재위 후 주몽은 황룡을 타고 승천했다.
② 천손(天孫)형
유화는 천자인 해모수와 혼인했지만, 버림을 받고 부여 왕에게 구출된다.
이후 건국까지의 전개는 천자형과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건국 이후 비류국의 송양왕과 투쟁하여 결국 승리를 얻는다는 내용이다.
③ 고양씨(高陽氏) 후예설
고구려 왕실은 고양씨, 즉 중국사상 오제(五帝)의 하나인 전욱(顓頊)의 자손이란 전승이다.
3) 백제 신화
백제의 시조에 대해서는 여러 갈래의 설이 있다.
즉
① 온조(溫祚)설,
② 비류(沸流)설 ,
③ 구태(仇台)설 ,
④ 도모왕(都慕王)설이 그것이다.
그러나 온조, 비류, 구태 관련 전승에는 신화적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비해 도모왕설은 도모왕이 하백의 딸이 태양의 정기를 받아 낳은 아들이라고 하여 그나마
신화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도모왕은 부여의 동명왕, 고구려의 주몽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지며, 따라서 도모왕 관련
전승을 백제의 독자적인 신화로 보기는 어렵다.
4) 신라 혁거세 신화
6촌의 촌장이 말이 하늘에서 운반해 온 알을 발견했고, 알에서 태어난 아이를 왕으로 추대했다.
같은 시기에 계룡(鷄龍)이 알영이란 여자 아이를 낳았고, 이 아이가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부인이 된다. 박혁거세는 하늘로 올라갔다가 시신이 다섯 조각이 되어 지상에 떨어졌으며, 이를 각각 5릉에 나누어
묻었다.
한편, 중국의 공주인 사소(沙蘇)가 경주의 선도산(仙桃山)으로 와서 혁거세와 알영을 낳았다는 신화도 있다.
5) 신라 석탈해 신화
알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버림받은 석탈해(昔脫解)가 가야를 거쳐 신라에 도착한다.
그는 대장장이의 후손이라 하여 호공이란 세력가의 집을 빼앗았으며, 남해왕의 사위가 된다.
6) 신라 김씨 시조신화
① 알지(閼智)설
시림이라는 수풀에 빛을 내뿜는 황금 상자가 있었고, 그 옆에 흰 닭이 있었는데, 상자에서 알지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알지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 금궤에 넣어져 왔다는 전승과 금수레[金車]를 타고 왔다는
전승도 있다.
② 성한(星漢)설
문무왕릉비에 보이는 것으로, 성한이 하늘에서 선악(仙嶽)으로 내려왔다는 전승이다(降質圓穹 誕靈仙嶽).
③ 방이(旁㐌)설
김씨의 시조 방이가 귀신에게서 도깨비 방망이 같은 금추(金錐)를 얻어 발복했다는 전승이다.
7) 가야 신화
① 『가락국기(駕洛國記)』형
6개의 황금 알이 든 상자가 하늘에서 내려왔고, 여기서 6명의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이 중 한 아이가 김수로이며, 그는 금관가야를 세웠다. 김수로는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와 혼인했다.
② 「석리정전(釋利貞傳)」형
천신 이비가와 가야산 신 정견모주 부부가 대가야 왕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가야 왕 뇌질청예(惱窒靑裔)를 낳았다.
8) 후백제 견훤 신화
『삼국유사』 2 후백제 견훤조에 보이는 것으로, 광주 북촌 부잣집 딸이 밤마다 찾아오는 지렁이와
관계하여 견훤(甄萱)을 낳았다는 전승이다.
밤마다 어떤 존재가 여성을 찾아오는 설화를 한국에서는 야래자(夜來者) 설화, 일본에서는 삼륜산(三輪山) 설화라고 하는데, 지룡(池龍)과 관계하여 무왕을 낳았다는 백제의 무왕 설화도 이 유형에 속한다.
따라서 이 유형을 백제 계통의 신화로 보는 견해가 있다.
9) 고려 왕건 신화
태조의 먼 조상인 호경(虎景)은 평나산 여산신과 혼인하였다.
또한 작제건(作帝建)은 서해 용왕의 딸과 혼인하여 태조 왕건(王建)의 아버지를 낳았다.
10) 제주도 삼성 신화
땅에서 출현한 고을나, 부을나, 양을나란 세 신인(神人)이 바다 저편에서 온 세 여인과 혼인하여
제주도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이전(異傳)이 있다고 할 때, 이러한 이전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
첫째는 여러 이전 중 하나를 정본으로 보고 다른 것들은 후대의 산물로 보는 입장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모든 이전들을 당시의 전승으로 보는 입장이다.
즉 신화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당화의 필요성에 따라 강조되는 신화가 바뀌기도 한다는 것이다.
로마의 경우 건국신화가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트로이 유민인 아이네이스(Aeneis)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군신 마르스(Mars)와 베스타(Vesta) 신전(神殿)의 무녀 사이에서 태어난 로물루스(Romulus)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신화이다.
그런데 로마가 헬레니즘 문화의 계승자를 자처하면서 그리스 문제에 개입할 때는 전자의 전승이 강조되었고, 로마의 독자성을 지킬 필요가 있을 때는 후자의 전승이 강조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하겠지만, 이 문제는 우선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신화가 기록으로 정착된 시기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단군신화의 경우 각각의 전승은 시대적 상황과 여기서 비롯된 해당 시기의 단군 인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 유학자들이 집권한 조선시대에는 단군의 부모가 박달나무 신 또는 곰 여인이란 전승이
수용될 수 없었기 때문에, 단군이 직접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신화가 바뀌는 따위이다.
따라서 신화의 이전들을 이해하려고 할 때는 신화를 수록한 문헌의 편찬 시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고대국가의 건국신화 중에는 『고기(古記)』에 근거한 것들이 있다.
예컨대, 『삼국유사』에 인용된 단군신화와 해모수 신화가 그것이다.
그런데 『삼국유사』는 『고기』를 인용하여 해모수 신화를 전하면서, 해모수가 강림한 흘승골성(紇升骨城)을 “요나라 의주의 경계(大遼醫州界)”라 주석했다.
이처럼 흘승골성을 요나라 의주 지역이라 한 주석은 일연(一然)의 자주(自註)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연 시대에는 요가 멸망한 지 상당한 기간이 흘렀으므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요의 지명을 끌어다 주석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고기』의 원주(原註)라 하겠으며, 나아가 『고기』는 요나라가 건재하던 고려 초의 문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선도성모(仙桃聖母) 신화는 13세기 이상으로 소급되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선도성모가 신라의 혁거세 부부를 낳았다는 전승은 김부식(金富軾)이 1117년 송나라 우신관(佑神館)이란 도관(道觀)에서 왕보(王黼)란 인물에게서 처음 듣고 『삼국사기』 12 「신라본기」 사론에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락국기』의 수로신화는 후한시대에 기초가 갖추어져 있었다는 견해도 흥미롭다.
즉 『가락국기』에서 수로왕을 “堯眉八寨 舜重瞳子”라 했는데, 이것은 위서(緯書)의 표현이며, 위서는 후한대 성행했다는 옛날 기록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셋째, 글자 한 자 한 자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예컨대, 『삼국유사』 소재 단군신화에서 아사달을 “경에서 말하기를 무엽산이라 했다(經云 無葉山).”고 주석했는데, 현재로서는 이 경(經)이 어떤 문헌인지 알 수 없다.
이처럼 모르는 부분이 많으면 신화 해석이 완전할 수 없으므로, 자료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4. 신화의 화소(이야기 소재)와 분류
우리나라 건국신화 각각은 여러 화소(話素)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천강, 수조, 난생이란 3화소가 두드러진다.
• 천강(天降) 화소 : 시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거나 하늘과 연결되는 존재라는 신화 화소
• 수조(獸祖) 화소 : 시조의 조상이 동물이라는 신화 화소
• 난생(卵生) 화소 : 시조가 알이나 알과 유사한 용기에서 태어났다는 신화 화소
천강 화소는 단군의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라는 등, 우리나라 대부분의 건국신화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화소이다.
수조 화소는 단군의 어머니가 곰 여인[熊女]이라는 전승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수조 화소는 후대로 갈수록 희미해진다.
고조선과 삼국시대 사이에 있던 부여만 하더라도, 금와왕(金蛙王)이 개구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수조신화의 잔존 형태를 보이지만, 삼국시대가 되면 동물은 시조의 출생을 알리는 보조 역할만 하게 된다. 고구려 신화에서 개 · 돼지 · 소 · 말이, 신라 신화에서는 말 · 까치 · 닭이 각각 혁거세 · 탈해 · 알지의 출현을 알렸다는 정도이다.
대신 삼국시대에는 난생이란 새로운 신화 화소가 등장한다.
주몽이 알에서 태어났다거나, 혁거세가 박 안에서, 알지가 상자 안에서 발견되었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천강 화소는 시조가 하늘과 연결된다는 신성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한국 건국신화의 바탕이 된다.
수조 화소는 삼국시대로 오면서 후퇴하는데, 동물을 신성시하던 관념의 쇠퇴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한편, 난생 화소는 삼국시대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새로운 화소로서, 알이라면 새가 연상되며 새는 하늘과 관련된다. 따라서 난생 화소는 시조의 근원이 하늘임을 밝히는 새로운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또 한국의 건국신화를 천부지모(天父地母)형과 천남지녀(天男地女)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천부지모형은 시조의 부모를 강조하는 것으로, 단군신화와 주몽신화가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천남지녀형은 시조의 부부를 강조하는 것으로, 혁거세 신화나 수로신화가 여기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북방 국가의 신화는 천부지모형, 남방 국가의 신화는 천남지녀형이 되는데, 이것은 북방과
남방의 국가들의 남녀관계를 비롯한 사회구조의 차이를 시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5. 신화와 역사
앞서 신화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라기보다 과거를 통해 현실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즉 신화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화는 사실과 전혀 무관한 것인가? 신화는 역사적 사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것일까?
신화적 진실이 역사적 사실과 배치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는 사실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예컨대, 건국신화에서는 고구려의 기원이 부여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고고학적으로 부여와 고구려의 연결은 그렇게 확실한 것은 아니다.
또 백제는 고구려에서 나왔다고 했지만, 양자의 연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한편, 비교신화학의 연구가 진전되면서, 신화가 사실을 반영한다는 입장에 대한 회의가 더욱 증폭되었다. 즉 고대국가의 건국신화에 나타나는 화소가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확인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고구려의 건국신화에는 유리(類利)가 기둥 밑에 감추어 둔 검을 찾아서 아버지 주몽을 찾아가는 내용이 있다. 그
런데 이와 흡사한 내용이 중국의 『수신기(搜神記)』 등에 보이는 간장 · 막사(干將 · 莫邪) 설화이다.
이 설화는 간장과 막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적비(赤比)란 인물이 아버지가 돌 위에 솟은 나무[실은
주춧돌 위의 소나무] 밑에 감추어 둔 검을 찾아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는 내용이다.
그런가 하면 유사한 전승이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도 보인다.
그리스 아테네의 건설자 테세우스(Theseus) 신화가 그것으로, 그는 돌 밑에 숨겨진 칼과 샌들을
찾아내어 아버지 아이게우스(Aegeus)를 만났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난생신화나 기아신화(棄兒神話)도 세계적인 분포를 가지고 있다.
참고로 한국 설화에 흔히 등장하는 선류익국(旋流溺國) 설화는 페르시아 제국의 창시자 키루스의 출생담에 이미 보이고 있다.
이처럼 동일한 신화소가 좁게는 동아시아, 넓게는 세계적 분포를 보인다면, 신화를 사실의 반영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신화가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경우도 확인된다.
엘리스(Ellis) 제도의 주민들은 사모아에서 이주했다는 전승을 가지고 있으며, 그 증거로 벌레 먹은 나무막대를 제시했다.
그런데 그 막대의 재료는 엘리스 제도에는 자라지 않는 것이며, 최근 사모아 섬이 원산지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로투마(Rotuma) 섬에는 유명한 추장의 돌 의자가 나무 밑에 숨겨져 있다는 신화가 전해졌는데, 최근 태풍으로 나무가 뽑히면서 돌 의자가 발견되었다.
따라서 기억과 전승의 힘은 무시할 수 없으며, 신화 이해는 한국 고대사의 재구성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할 때 신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첫째, 한국 고대의 정치철학이나 문화풍습으로, 고구려 신화에서 해모수는 처가인 하백의 궁전에서
유화와 혼인하는데, 이것은 남귀여가(男歸女家)의 풍속의 반영이다.
둘째, 문화의 전파와 영향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천강 화소 같은 것은 범세계적인 것이지만, 수조 화소와 난생 화소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한반도를 기준으로 볼 때, 수조 화소는 한반도 북방인 시베리아 · 몽골 · 만주 지역에서 활약했던 민족들의 시조신화에 많이 보인다.
물론 조상이 되는 동물은 다양하다.
예컨대, 6세기에 등장하여 한때 북아시아를 석권했던 돌궐족(突厥族)의 신화에서는 이리가 시조로 등장하고, 바이칼 호 지역에 거주하는 부랴트(Buryat)족의 신화에서는 소가 등장한다.
그리고 곰도 퉁구스(Tungus) 여러 종족에서 시조로 여겨지고 있다. 반면 난생 화소는 인도네시아의
여러 종족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 중국 남부 등 남방에서 흔히 나타난다.
셋째, 방법론이 마련된다면 고대사의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의 건국신화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남자 주인공이 지상의 여인과 혼인하는 부분이 흔히 등장하는데, 이것은 이주집단과 토착집단의 결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7. 신화와 민족 정체성
건국신화는 해당 국가의 근원에 대한 설명이며, 모든 것은 근원으로 귀결된다.
이런 의미에서 건국신화는 해당 국가나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근거가 된다.
이 점을 단군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조선왕조는 대내외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한다.
즉 내적으로는 봉건질서의 해체에 따른 사회적 위기, 외적으로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 말미암은
민족적 위기를 경험한다.
여기서 더욱 심각한 것은 민족적 위기이다.
민족적 위기는 민족 자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앞장서서 극복해야 할 국왕이나 봉건 지배세력들은 타개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실망감만 증폭시켰다.
게다가 중국 · 일본과의 연대를 통해 서양세력을 막아보자던 소위 동양주의도 러일전쟁 이후 일제가
국권침탈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에 따라 무너지고 만다.
외세의 침략은 타자와 구별되는 자아를 확실하게 인식하도록 했다.
한편, 봉건적 신분질서의 붕괴는 자아 내부의 구별을 약화시켰다.
내부의 간격이 줄어들고 타자와 자기를 구별하는 인식이 확실해질 때, 근대적 개념으로서의 민족의
발견이 이루어진다.
한국에서 민족이란 용어는 1900년 무렵부터 사용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사용 초기에는 한국 · 중국 · 일본을 묶어 ‘동방민족’이라고 한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오늘날의 민족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이후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한반도의 주민집단을 지칭하는 의미로 민족이란 개념이 확립되고, 이와 함께 민족이란 용어의 사용이 급격히 확산된다.
이때 민족은 외세에 항거하는 투쟁의 단위이며, 따라서 저항을 위해 민족의 단결을 호소한다.
민족의 단결을 위해서는 민족이란 공동체에 자신을 귀속시키는 주관적 의지를 끊임없이 환기시켜야 한다.
그런데 민족이란 상당히 추상적 집단으로, 베네딕트 앤더슨(Bendict Anderson)의 말처럼 ‘상상(想像)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이다.
따라서 귀속감(歸屬感)이란 상상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구심력을 가진 무언가 구체적인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의식의 표상으로 재조명된 것이 단군이며, 구체적으로는 우선 단기(檀紀)의 사용을 들 수 있다.
단기란 단군의 고조선 개국연도를 기점으로 연대를 계산하는 기년법(紀年法)으로,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1905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단군이 역사의 시조라는 점이 재확인되고, 나아가 단군에서부터 이어지는 역사의 유구성과
일관성이 부각된다.
둘째, 매년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開天節)이라 하여 기념하기 시작한다.
개천절에 대해서는 단군이 하늘에서 내려온 날이란 설과,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날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개국일(開國日)이든 천강일(天降日)이든 단군과 관련이 있는 경축일이다.
이것이 처음 시작된 것은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기 직전인 1909년이다.
그렇다고 할 때 개천절은 단군의 건국을 매년 정기적으로 기림으로써 한국이 독립국이란 사실을 재확인하고 민족의식을 새롭게 각인시키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개천절은 일제 강점기에도 계속되었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국경일로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셋째, 단군을 신앙 대상으로 삼는 민족종교가 탄생한다.
단군을 신으로서 섬기는 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찍부터 존재했으며, 19세기 후반에는 김렴백(金廉白)이란 사람에 의해 처음으로 조직화 · 교단화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러한 움직임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나 민족적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1909년에 단군신앙이 하나의 종교집단으로 정식 출범했으니,
나철(羅喆) 등에 의한 대종교(大倧敎)가 그것이다.
대종교는 단군 이래의 고유 종교인 신교(神敎) 전통의 부활을 표방했으며, 한국이 일제에 강점된
이후에도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유명한 청산리 전투에서도 대종교도의 역할이 컸다.
넷째, 단군은 민족의 시조이며, 한민족은 단군의 자손 또는 혈손(血孫)이란 의식이 출현했다.
국가의 구성원 모두가 같은 혈통이란 인식은 봉건적 신분제 사회에서는 존재하기 어렵다.
국왕과 노비가 같은 조상의 자손이란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분제 사회하에서는 국가의 시조에서 더 나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지만, 신분적 질서가 무너지고 민족공동체 내부의 차별이 완화되면서 단군 자손 의식이 나올 수 있게 된다.
단군의 자손이란 인식이 처음 확인되는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1908년부터이다.
이후 이러한 인식은 급속히 확산되었으며,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는 민족의 대동단결에 큰 힘을
발휘했다. 이러한 인식은 남북한을 막론하고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단군의 존재가 부각되면서, 단군과 기자(箕子)의 역사적 평가도 역전된다.
이전에는 기자가 중국의 높은 문명을 가져다주었다고 단군보다 높이 평가했지만, 이때부터 단군의
위상이 기자보다 높아진다.
이로써 단군은 국가의 시조로서, 또 민족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