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_67p/243p_2021년_8월 16일(월)
I always regarded the discussions about food as dangerous. Is it not wrong to provoke the organism with such detailed and affective pictures of delicacies when it has somehow managed to adapt itself to extremely small rations and low calories? Though it may afford momentary psychological relief, it is an illusion which psychologically, surely, must not be without danger. 하지만 나는 이렇게 먹는 것에 대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번역판_67p, 이제 간신히 우리 몸이 적은 양의 음식과 낮은 칼로리에 적응하게 되었는데, 맛있는 음식에 대해 그렇게 자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해서 내장기관에 자극을 주면 나쁜 결과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했던 것이다. 먹는 이야기가 당장은 마음의 위안을 줄지 몰라도 생리적으로는 위험을 수반한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During the latter part of our imprisonment, the daily ration consisted of very watery soup given out once daily, and the usual small bread ration. 수용소 생활이 후반부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하루에 한 번 아주 묽은 수프와 전처럼 적은 양의 빵을 배급받았다.
In addition to that, there was the so-called ‘extra-allowance’, consisting of three-fourths of an ounce of margarine, or of a slice of poor quality sausage, or of a little piece of cheese, or a bit of synthetic honey, or a spoonful of watery jam, varying daily. In calories, this diet was absolutely inadequate, especially taking into consideration our heavy manual work and our constant exposure to the cold inadequate clothing. The sick who were ‘under special care’ - that is, those were allowed to lie in the huts instead of leaving the camp for work - were even worse off. 그러다가 가끔 특별배급이라는 것을 받을 때도 있었다. 마가린 0.75온 보잘것없는 크기의 소시지, 적은 치즈 조각, 가공 벌꿀 조금, 묽은 잼 한 숟가락 등 그때마다 달랐다. 이런 식단은 열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었다. 허름한 옷을 입고 추위에 떨면서 맨손으로 중노동을 하는 우리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말이다. ‘특별간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작업장으로 가지 않고 임시 막사에 남아 있는 환자에게 주는 음식은 더 형편없었다.
When the last layers of subcutaneous fat had vanished, and we looked like skeletons disguised with skin and rags, we could watch our bodies beginning to devour themselves. The organism digested its own protein, and the muscles disappeared. The the body had no powers of resistance left. One after another the members of the little community in our hut died. Each of us could calculate with fair accuracy whose turn would be next, and when his own would come. 마지막 남은 피하지방층이 사라지고, 몸이 해골로 가죽과 넝마로 씌워 놓은 것 같이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몸이 자기 자신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장기관이 자체의 단백질을 소화시키고, 몸에서 근육이 사라졌다. 그러자 저항력이 없어졌다. 같은 막사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갔다. 우리는 모두 다음에는 누가 죽을 것인지, 그리고 자기 자신은 [번역판_68p, 언제 죽을지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