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이 담긴 대마도
송 차 식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는 이른 아침, 중앙동 세관 앞을 지나니 근무했던 지난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부산 국제 여객터미널에서 6시 30분까지 집합. 일행들은 숨 가쁜 마라톤 선수 같다. 하늘은 흐리지만 상기된 모습은 즐거운 표정들이다. 시끌벅적한 터미널 안에는 형형색색 관광객의 옷차림들이다. 어떤 곳이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곳일까 궁금하지 아닐 수 없다.
8시 정각 오션 플라워 호는 대마도 이즈라 항구를 향해 떠난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메운 배는 여러모로 불편한 점도 있었다. 뱃길을 따라 물살을 가르는 배, 밖에는 비가 내리고 조금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망망대해의 한 많은 우리 조상들의 얼이 담겨 있는 곳이라고는 까마득히 몰랐다. 큰 바다 한복판 한 조각의 배가 넓은 곳에 덩그러니 떠 있다는 것을 상상해 본다. 사방 천지가 보이는 것이라곤 출렁이는 물살, 갈매기들의 뽐내는 비행만이 교차할 뿐이다.
2시간여가 걸려 대마도 이즈라 항구에 도착했다. 환경이나 향토색은 분명 우리의 모습인데 이국땅이라 하여 세관원들의 검사가 철저했다. 조금은 오지라고 할까 일의 처리가 느리고 답답함을 느낀다.
때 이른 비가 맨땅이 다 젖도록 흠뻑 내린다. 대마도의 번화가인 이즈라 시내를 도보로 걸어서 대마 역사자료관을 관람, 좁은 골목길을 통하여 지난날 숭고하게 조선을 지키려고 애썼던 수선사修繕寺의 최익현 순국비를 찾았다. 작지만 우리의 얼이 담긴 수선사는 한국인의 향이 묻어나는 비석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어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결혼 봉축비가 세워졌다는 하치만 궁 신사에 들리다. 덕혜옹주는 대마도주의 아들 백작과 혼인하여 처음으로 시집에 다니러 왔던 곳이다. 축화의 봉축비로 세웠는데 후에 옹주가 많은 시련을 겪고서는 봉축비를 없애라는 간곡 때문에 깊은 절에 비를 숨겨 두었다. 지금은 한적한 곳에 봉축비가 세워져 있고 조선국통신사지비朝鮮國通信使之碑와 더불어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보고 있다.
황녀의 기립이 아닌 평범한 사가의 축하 봉축 碑에는 “李 王家 宗伯 (작)爵家 御 結婚 奉祝 記念碑”라는 초라하기 여지없고 우리나라를 얼마나 속박했는지는 이것만 보더라도 한눈에 알 수가 있었다.
대마도는 멀리 바라보이는 산의 모습이 두 마리의 말馬 이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대마도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유례도 있다. 여권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이지의 땅 대마도는 우리가 지키고 우리가 다스려야 할 곳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우리의 산세, 우리의 향기, 우리의 문화가 많이 풍기고 있는 곳이기에 정말 애끓도록 아까운 땅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대마도는 울릉도의 반쯤의 크기라지만 89%가 산림지형으로 가파르고 울창한 숲이 산림 해안까지 이어져 있다. 자그마한 온천도 있고 조림이 많으며 제충제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소나무와 편백나무가 많다고 한다. 봄에는 꽃가루가 날리는 단점도 있다. 항상 푸름이 많은 것은 대나무와 녹나무들이 많아서이다. 가을에는 단풍을 별로 볼 수가 없는 곳이기에 가을 산은 조금 둔탁해 보이기도 한다.
바다나 호수의 물은 아주 맑아서 속이 흔히 다 들어다 보이고 주위의 아름답게 지워진 일본식 집들은 안온하고 매우 평화로운 것을 느꼈으며 집집이 소형의 배 한 척씩은 지니고 어획을 해서 살아간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카미자카, 오후 나에를 지나 만관 교는 일본 함대의 통로로써 인공적으로 땅을 판 해협에 다리를 세운 것이다. 현재는 둘로 나누어진 상 대마, 하 대마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가 되어 있다. 이어서 천신, 해신 여러 가지의 신들을 모시고 사는 그 나라의 풍습 오타즈미 신사를 관람했다.
점심에 일본식 우동과 몇 개의 초밥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에보시다케 전망대를 올랐다. 전망대는 360도 동서남북 사면을 모두 조망할 수 있고 몇 겹의 산과 바다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로 이어져 있으며, 리아스식 해안 등 웅대한 모습을 자랑하는 곳이다.
일본의 풍습으로 에워싼 곳 시골의 풍경이지만 질서 정연하게 흐트러짐 없이 어느 곳이나 깔끔하다는 것을 느꼈다. 현지 가이드는 그 사람들은 자신의 속을 드러내는 것과 게으름을 남에게 보이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들에는 농기구 하나 흐트러져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곳에는 산림도로가 많아 도로비가 없으며 차들은 대부분이 경차들이 많다. 젊은 층의 사람들보다는 노인층이 많다고 한다. 이색적인 풍물이 없고 비슷한 향토색이 짙은 곳, 대마도를 먼 꿈나라의 미지로 남기고 마음만은 가까운 나라로 가슴에 품고, 내가 사는 곳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언제 가는 여권 없이 오고 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기대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