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17, 송18 삼계유심 만법유식(三界唯心 萬法唯識)
시제식전변(是諸識轉變) 모든 식(識)이 전변해서
분별소분별(分別所分別) 분별하는 주체와 분별되는 대상으로 드러난다.
유차피개무(由此彼皆無) 이들 주관과 객관은 모두 존재하지 않으니
고일체유식(故一切唯識) 그러므로 일체는 오직 식일 뿐이다.
<8식, 7식, 6의식이 전변해서 분별하는 주체나 분별되는 대상으로 드러난다.
이들 주관과 객관은 실다운 것이 아니니 일체가 유식(唯識) 뿐이다(송1 참고)>
-. 2송에서 16송까지 3가지 식의 작용과 변화를 설명했다.
일상의 모든 현상들은 식의 변화와 작용이다.
1) 시제식전변(是諸識轉變) 모든 식(識)이 전변해서
-. 모든 식(識)은 8식, 7, 6, 5식을 말한다.
전5식=지각(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 의식(인지) + 자아의식 + 저장식
-. 12처에서 견문각지(見聞覺知)가 발생한다.
2) 분별소분별(分別所分別) 분별하는 주체와 분별되는 대상으로 드러난다.
-. 전5식이 지각(知覺)하면 제6의식이 5감각을 범주화(분류)한다.
똑같은 경험의 내용일지라도 내 안의 탐진치(욕구, 결핍)에 따라
4번뇌의 영향을 받아서 제6,의식이 다르게 분류한다.
그래서 7식은 끊임없이 경험을 자아라고 착각하여
경험하는 모든 것이 ‘나’와 ‘나의 것’ 과 ‘아닌 것’으로 구별하고
8식은 모든 인식을 저장한다.
3) 유차피개무(由此彼皆無) 이들 주관과 객관은 모두 존재하지 않으니
4) 고일체유식(故一切唯識) 그러므로 일체는 오직 식일 뿐이다.
“저를 보세요!!” 그냥 바라볼 때는 ‘보는 나’와 ‘보여지는 대상’은 없는데,
보는데 그치지 않고 ‘저 사람은 옷이 어떻고,
저사람 머리스타일이 마음에 안들어, 저사람 오늘 목소리가 이상해’ 등
분별의 마음을 일으키면 ‘주’와 ‘객’으로 분리된다.
즉 눈과 대상과 접촉해서 그냥 보기만 하면 되는데
경험(7식, 자아의식)이 작동하여 ‘좋다, 싫다, 또는 어떻다’를 판단하고
거기에 언어작용을 만들고 ‘보는 자’와 ‘보는 대상’으로
이원적으로 분리를 하게 된다.
-. 촉의 찰나에 식이 발생하므로 알아차림(sati)은 문지기다.
어떤 사람을 만나는데 그 사람을 보니 ’기분이 나쁘다’ 라고 한다면
대상과 나를 함께 보는 것이 아니라
‘나’는 없고, 대상인 ‘그 사람’만 보게 되어 집착하는 것이다(법집)
또한 대상을 보고 ‘나’에게 집착하게 되면 아집(我執/자책포함)이 된다.
-. 처음 사랑할 때 사랑하는 내가 있고 사랑하는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경험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자아의식의 발동으로
소유권을 투사하여 상대를 보게 되고 나를 보게 되어 갈등과 번뇌가 된다.
눈에 덮힌 콩깍지 벗겨내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 세 종류의 식이 변하여 주객으로 사현되었다.
따라서 인식 주체인 나라는 것도 인식 객체인 대상이라는 것도
거울 속에 비친 영상일 뿐 실체가 아니다(제행무상, 제법무아 참고)
그러므로 일체는 모두 식만 있을 뿐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내 마음으로 비추어준 것일 뿐,
그 사람의 실체를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주객 이원적으로 보면 편을 가르고 싸우게 되고
이고득락, 요익중생이 되지 못해서 팔고(八苦)와 육도를 윤회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되면 주객이 나누어지지 않은 불이(不二)가 된다.
-. 대중에게 동전을 던져서 두 그룹을 만들면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같은 그룹에 속하는 사람끼리는 더 친밀해지고
상대 그룹에 대해서는 경계심 내지 경쟁심을 가지게 된다. .
모든 관계에서 구분을 짓는 순간 상대방을 경계하고 경쟁 또는 불신하게 된다.
그래서 지연, 혈연, 학연 등이 생기게 되고 이것은 소속의 욕구에 해당한다.
-. 끊임없이 ‘보는 나’와 ‘보이는 대상’으로 구분한다.
‘보는 나’와 보이는 대상‘이 접촉하여 하나로 될 때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이것을 세친은 “불성이란 주관과 객관의 공성이 드러난 진여다” 라고 했다.
주객이 갈라지기 전에 촉의 지점을 정확히 알아차리면
(주의) 수, 상, 사의 작용을 자각하게 될 수 있다.
7식의 작용 없이 ‘지금-여기’를 온전하게 경험하게 되면
존재에게 감사하고 감동이 된다 (교향곡 작곡자 칼리니코프 )
유차피개무(由此彼皆無) 이들 주관과 객관은 모두 존재하지 않으니
고일체유식(故一切唯識) 그러므로 일체는 오직 식일 뿐이다.
접촉 : 아는 것(자각)일 뿐인데 <-판단, 느낌을 넣어
-> 주체와 객체로 만든다 -> 번뇌, 망상일 뿐.
-. 산을 찾거나 자연 속에서 나를 잊고, 너를 잊고서(不二)
연결하는 절대체험은 내면을 건강하게 한다.
송18
유일체종식(由一切種識) 일체 종자식(훈습, 습기종자)이
여시여시변(如是如是變) 여러 형태로 변한 것이다
이전전력고(以展轉力故) 그렇게 변하는 작용에 의해
피피분별생(彼彼分別生) 가지가지 분별이 생긴다.
<8식에 저장된 수많은 종자식이 여러 가지 변화를 일으키고,
그 작용의 세력이 증가함에 따라 분별심도 증가하게 된다.>
1) 유일체종식(由一切種識) 일체 종자식(훈습, 습기종자)이
2) 여시여시변(如是如是變) 여러 형태로 변한 것이다
<멋대로 해석하고 이해해서 행동한다>
3) 이전전력고(以展轉力故) 그렇게 변하는 작용에 의해
4) 피피분별생(彼彼分別生) 가지가지 분별이 생긴다.
<반복된 경험의 종자들이 조건에 따라 변화한하고
다양한 모양, 다양한 해석과 이해가 생겨난다.>
-. 일수사견(一水四見)
아귀는 고름의 강, 물고기는 집, 천인은 보배로 장엄한 땅,
사람은 마시는 물로 보듯 자신의 조건과 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본다.
(핵심정리)
1. 내 안에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삼계유심 만법유식(三界唯心 萬法唯識)
2. 인식하는 모든 대상은 내면의 식이 투영된 영상이다.
3. 불성은 주관과 객관의 공성이 드러난 진여(眞如)이다.
(원효의 오도송)
심생즉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 마음이 일어나니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심멸즉감분불이(心滅則龕墳不二) 마음이 멸하니 토굴과 분묘가 둘이 아니네,
삼계유심 만법유식(三界唯心 萬法唯識)
삼계는 오직 마음이요, 모든 현상은 오직 식이니
심외무법 호용별구(心外無法 胡用別求)
마음 밖에 일체법이 없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랴?
별을 본다는 것은
내 마음을 별에다 붙이고,
별에 붙인 내 마음을 눈으로 가져와서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