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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언약은 세겜 언약으로 성취되고 계승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창 15:13,16)
그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세우고(수 24:25,26) 백성을 보내어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라(수 24:28)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수 24:3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4대가 400년 후에 주실 땅, 곧 횃불언약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분배함으로써 성취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세겜 땅에 요셉의 뼈를 장사지냄으로 요셉의 유언도 이루어졌습니다. 여호수아 24장 28절에서 “백성들이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다”라는 표현은 레위기 25장 10절에서 “희년이 되면 각각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가족에게 돌아가라”라는 말과 의미가 같습니다. 물론 이때가 희년은 아니겠지만, 주전 1445년 제정된 희년 제도가 백성들이 기업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 것이므로, 부족하지만 희년 제도가 실제로 시행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후손이 4대 만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애굽에서 살아온 4대의 구속사가 중단된 상태이며, 그 중단된 400여 년의 기간은 하나님의 구속사에서는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애굽 종살이 400년 기간은 기업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400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도 이름을 제외하십니다. 족보에는 애굽 종살이 초기에는 헤스론과 람, 출애굽 이후는 아미나답과 나손 등 각 2대씩만 남겼습니다. 기업이 없는 기간은 초기 2대, 말기 2대만 기록하여 족보와 기업을 이어가는 최소한의 대수만을 선택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희년과 하나님의 구속사가 그 흐름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가나안 땅을 분배하여 횃불언약이 성취되었지만, 아직은 미흡합니다. 아직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은 정복해야 할 지역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1회 희년인 주전 1396년은 아직 일곱 지파에게 토지를 분배하지도 못하고(수 18:2) 맞이하는 “부족한 희년”이었습니다.
註) <부족한 희년> 1회 희년인 주전 1396년까지 땅을 분배받은 지파는 다섯 지파이다. 토지를 분배받은 지파는 육적인 장자 르우벤(요단 동편 지역)을 비롯하여 유다, 요셉의 후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서편 반지파이다. 그리고 요단 동편 지역을 정복할 때 르우벤과 협력한 므낫세 동편 반지파와 갓 지파도 토지가 분배되었다(수 12:8). 이렇게 보면 르우벤, 유다, 요셉은 형제들 중에서도 장자의 서열에 들고 있어서 땅을 먼저 분배받거나 큰 면적을 분배받게 된다. 물론 그만큼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데 이들 지파는 더 크게 이바지했다.
註) 1회 희년에도 땅을 분배받지 못한 지파는 베냐민, 시므온, 스불론, 납달리, 잇사갈, 아셀, 단 지파 등 일곱 지파이다. 벤냐민 지파는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 사이에 땅을,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의 영토가 너무 넓어서 그 지역 안에서 재분배 형식으로 기업을 분배받았다. 뒤에 가면 므낫세 지파는 에브라임 지파로,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로 사실상 합쳐진다. 스불론, 납달리, 잇사갈 지파는 뒤에 갈릴리 지역을 형성하여 “갈릴리 사람들”로 불린다. 아셀 지파는 북서쪽 해변가 지역을, 단 지파는 남쪽 해변가 지역을 분배받았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분배까지 마친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세겜으로 부릅니다(수 24:1). 여호수아는 모인 백성들과 지도자들(장로, 수령, 재판장, 관리)에게 이런 당부를 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이 땅을 주셨으니 ... 너희들은 강 저쪽 신들과 여호와를 구분하여 섬길 자를 찾아라, 나는 여호와만 섬기겠노라"라고 했습니다(수 24:13~15). 이에 백성들은 모두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다“라고 약속을 합니다(수 24:16~18).
그날에 여호수아가 백성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했습니다. 이를 율법책에 기록하고, 돌을 취해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웠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백성들이 하나님만은 섬기겠다는 약손한 증거의 표식입니다. 이것이 ”세겜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횃불언약이 충성스러운 여호수아를 통해서 일부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미흡합니다. 정복하지 못하여 땅을 분배하지 못한 지파들에게 분배를 해야할 땅이 남아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염려는 앞으로 백성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지 신앙에 대한 문제도 염려입니다. 횃불언약이 400년만에 이루어진 것도 백성들의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광야에서의 반역도 불신앙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자기가 죽은 뒤에도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켜갈지가 의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두고 백성들을 세겜으로 불렀고, 그동안은 이스라엘 역사와 가나안 땅 정복의 사례를 보이며, 여호만 섬기고 그의 율례와 법도만을 따르라고 당부를 합니다. 말로만 해서는 잊어버릴 수 있으니 율법책으로 남기고, 돌로 증거석을 세워서 증거로 삼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렇게 세겜 언약을 세우고, 110세로 숨을 거둡니다.
횃불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고, 큰 나라를 이루어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아직 정복하고 분배해야 할 땅이 남아있고,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족속들도 요소요소에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업이 없었기 때문에 400년간 애굽 종살이로 혹독한 고통을 당해서도 광야에서 약속의 땅을 거부하는 신앙상태를 볼 때 아직은 횃불언약이 절반 성취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임종 직전에 이렇게 세겜 언약을 다시 세우고, 백성들과 지도자들에게 미래를 맡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횃불언약은 여호수아가 백성들과 세운 세겜 언약으로 대치되고, 내용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사시대의 족보, 살몬의 후손은 왜 끊어져 버렸나요?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룻 4:20~22)
그 위는 멜레아요 그 위는 멘나요 그 위는 맛다다요 그 위는 나단이요 그 위는 다윗이요 그 위는 이새요 그 위는 오벳이요 그 위는 보아스요 그 위는 살몬이요 그 위는 나손이요 그 위는 아미나답이요...(눅 31~33)
엘르아살은 비느하스를 낳고 비느하스는 아비수아를 낳고 아비수아는 북기를 낳고 북기는 웃시를 낳고 웃시는 스라히야를 낳고 스라히야는 므라욧을 낳고 므라욧은 아마랴를 낳고 아마랴는 아히둡을 낳고 아히둡은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히마아스를 낳고(대상 6:4~8)
앞에서 애굽 종살이 430년과 광야시대 40년, 전체 470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이 오른 대수는 애굽 초기 2대, 말기 2대로, 총 4대뿐입니다. 애굽 종살이 초기 두 대의 이름은 헤스론과 람이고, 광야시대 두 대의 이름은 아미나답과 나손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진입 당시에는 나손의 후계자 살몬이 광야 2세대로 광야 1세대인 나손의 계보를 잇습니다. 살몬은 여호수아가 보낸 여리고성 정탐꾼입이었습니다. 여리고성 정탐에서 살몬은 라합이라는 기생집에 숨어들어 하룻밤을 유숙하게 됩니다(수 2:1). 이때 여리고 왕의 군병들은 정탐꾼들을 잡으려고 왔으나 라합의 지혜로 군병들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라합은 이때부터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고백을 합니다(수 2:8~14). 그로부터 라합과 가족들은 붉은 줄로 신호를 하며, 여호수아의 군대가 보호를 받습니다. 이로써 라합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며(약 2:25),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도 살몬과 라합의 이름이 오르게 됩니다(마 1:5).
그러므로 살몬은 가나안 진입 초기에 여호수아와 같은 시대의 인물입니다. 살몬은 여리고성 정탐시 두 명의 정탐꾼 중 한 명이었고, 가나안 땅 정복에도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꾸 끊어져가는 유다 지파의 계보는 그를 통해 이어지며, 사시시대를 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유다 지파에게 베푸신 은혜는 여기까지입니다. 하나님은 끊어지는 유다 지파의 족보를 살몬을 세워서 이어주고, 사사시대를 시작하기는 했으나 그다음 다시 족보의 씨(대)를 끊어버립니다. 여기서 족보의 씨는 살몬의 혈통이 끊어진 것이 아니고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는 뜻입니다(그 이유는 뒤에 다시 살펴봅니다). 그러다가 사사시대 후기에 가서 비로소 모압 여성 룻과 기생 라합의 후손 보아스가 이 끊어져버린 유다 지파의 계보를 잇습니다. 이것이 사사시대를 이어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입니다.
연대기로 살펴보는 사사시대의 족보 단절
이제 사시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른 이름과 끊어진 대수가 얼마나 될지 성경적 근거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룻기·누가복음·역대기 족보에서 같은 시대에 족보에서 오른 이름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다 후손의 족보>
룻기 4:20~22 : ①살몬 ··· (누락 대수 약 5대) ··· ②보아스 - ③오벳 - ④이새 - ⑤다윗
누가복음 3:31: ①살몬 ··· (누락 대수 약 5대) ··· ②보아스 – ③오벳 - ④이새 - ⑤다윗
<레위 후손의 족보>
역대상 6:4~8 : ①엘르아살-②비느하스-③아비수아-④북기-⑤웃시-⑥스라히야-⑦므라욧-⑧아마랴-⑨아히둡-⑩사독(다윗 시대 제사장, 삼하 8:17)
사사시대를 가나안 땅에 첫발을 디딘 1406년부터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된 주전 1010년까지로 잡으면, 사사시대는 396년 기간입니다. 이 396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유다 지파의 계보는 5대뿐입니다. 그러나 역대기 족보에서 계보의 단절이 없는 레위 지파는 10대의 자손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같은 기간이 이렇게 대수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으므로, 유다 지파의 계보가 중간에 상당한 세대수가 단절되어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룻기·누가복음 족보에서 보아스가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다윗 왕의 직계 할아버지입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된 해에 나이가 30세이므로(삼하 2:4,11, 5:4,5), 다윗이 태어난 해는 주전 1040년경입니다. 이 시기에 평균 세대수 간격을 30년으로 잡으면, 오벳은 다윗보다 60년 전에 태어납니다. 평균 세대수 간격을 40년으로 잡으면, 오벳은 80년 전에 태어납니다. 그러면 오벳은 주전 1120년에서 주전 1100년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오벳은 룻기의 주역인 룻과 보아스가 낳은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룻과 보아스는 주전 1120년경 계대결혼과 기업 무르기를 준행하여 유다 지파의 계보를 이은 자들입니다. 사사시대에 유다 지파의 시조인 살몬은 주전 1406년 가나안 여리고성 정탐기 인물로 사사시대 초기 사람이고, 보아스는 주전 1120년 인물로 사사시대 후기(또는 말기) 사람입니다. 족보에서 살몬과 보아스의 대수 사이에는 286년 또는 306년이라는 공백 기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사시대에 나손과 보아스 사이는 약 300년의 공백 기간이 있고, 대수로는 약 5대 정도, 또는 5대 이상 족보가 단절되어 있습니다.
족보 연구가 박윤식 목사는 보아스가 사사인 입다와 같은 시기인 주전 1104년~1099년 인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가 기업 무르기를 할 때의 시기를 감안하면, 대략의 기간을 추정할 수가 있습니다. 룻과 보아스가 기업 무르기를 할 때는 7회 희년, 곧 주전 1102년이 되어야 돌아올 기업을 미리 값을 치루어 되찾은 시기입니다. 무르기의 우선권자인 아무개는 재산에 손해가 있다고 무르기에 대한 권리를 포기합니다(룻 4:6). 여기서 아무개가 나의 기업에 손해가 있다는 말은 무를 기한이 길게 남아서 그 기간에 상당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하니까 재산에 손해가 있다고 무르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또한 엘리멜렉과 아들 둘이 모압 땅에서 죽고 나오미가 기업이 있는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때는 기업을 팔은지(저당 잡힌지) 10년이 지났습니다(룻 1:4, 4:3). 희년은 49년(또는 50년) 만에 돌아오므로 주전 1104년~1099년의 기간은 7회 희년인 주전 1102년과 기간에서 간격이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룻과 보아스는 7회 희년을 20년~30년 정도 남겨둔 해에 기업 무르기를 하였다고 보면, 주전 1120년 전후 시기의 인물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아무튼 어느 견해를 따르든 나손과 보아스 사이의 공백 기간은 약 300년으로 일치합니다. 또 족보에서 같은 시간에 유다 지파는 5대손만 기록하고, 레위 지파는 10대손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사사시대 300년 동안 유다 지파의 계보는 적어도 5대 이상이 단절(생략)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유다 지파에서 후손이 끊어지는 이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 그들은 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 된 사람이라 ...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 ...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호세아요(민 13:1~8)
주전 1446년 정월 보름날,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듬해 포도가 처음 익으려고 할 때 가나안 진격을 앞두고 가나안 토지 정탐을 먼저 했습니다(민 13:2, 신 1:22). 이때가 포도가 처음 익을 때이므로 주전 1445년 6월경입니다. 그런데 이때 토지 정탐을 나선 유다 지파의 두령이 갈렙입니다. 여기서 “갈렙”은 그나스(그니스 지역) 사람 여분네의 아들입니다. 요셉 지파의 후손인 “호세아”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입니다(민 13:16).
유다 지파와 요셉 지파 자손들의 미래는 이 토지 정탐꾼의 대표들 이름에서 이미 예견되고 있습니다. 가나안 토지 정탐 당시 유다 지파의 두령은 살몬의 선임자 나손입니다(민 2:3, 7:1~3, 10:14). 그런데 토지 정탐꾼 대표가 나손이 아니고 왜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인 갈렙이 나서야 했을까요. 나손이 유다 지파를 대표하는 두령인데 왜 그니스 족속에서 귀화한 갈렙을 대표자로 세워야 했을까 말입니다.
첫째, 나손은 일찍 죽었을 수 있습니다. 나손의 앞 대인 아미나답도 여호수와 동시대 인물이므로 홍해를 건너서 광야로 나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아미나답은 유다 지파의 두령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불과 1,2년, 아미나답이 애굽에서 죽었다고 해도 길어야 10년 이내의 기간인데 나손이 유다 지파의 두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토지 정탐을 나설 때 나손이 이미 죽었다면, 아마나답과 나손은 두 사람 모두 단명한 사람입니다.
창세기 아담 후손의 족보를 보더라도 이렇게 수명이 짧은 자들은 족보에 이름이 오르기 어렵습니다. 각 대에서 수 백년 동안 수명을 누린 자가 있는데, 30년도 살지 못한 아들을 장남이라고 족보에 올리면 그다음부터는 수명이 긴 자를 두고 짧은 자의 대수를 찾아 기록하게 되어 대수가 많아지고, 족보는 복잡하게 얽혀버립니다. 예를 들어 므두셀라가 969세를 살면서 자녀를 낳았는데 이들 후손들의 세대수 총계와 인구의 총수는 아마도 족장시대에 아브라함 4대손 숫자보다 훨씬 더 많으며, 어쩌면 사사시대의 전체 인구 수보다 많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당시 므두셀라는 적어도 900년 동안 그 시대와 사회에서 최고 어른이고, 지도자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므두셀라가 그 시대의 최고령자이고, 지도자의 지위에 있으므로 가계와 사회의 대표자로 족보에 이름이 오릅니다.
지금 나손이 살은 광야시대는 므두셀라처럼 오래 살지는 못하는 시대이지만, 그래도 1년, 2년, 길어야 10년 미만에 나손까지 죽어서 아버지와 아들 두 대가 끝을 맺는 것은 분명히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둘째, 나손이 살아 있었고, 두령이었는데 토지 정탐꾼 대표로 선발되지 못했다면, 아마 모세로부터 두령 자격을 잃었을 수 있습니다. 광야살이에서 흔히 있었던 우상숭배나 공동체의 질서를 해치는 행위가 있었을 것입니다.
셋째, 나손이 죽지도 않고, 결격사유도 없이 살아 있었다고 해도 토지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보고를 할 때는 가나안 땅을 혹평하고, 진입을 거부하는 무리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살다가 약속의 땅은 발도 디뎌보지도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나손은 어떤 경우의 수로 보아도 유다 지파의 두령으로서는 부끄러운 지도자에 속합니다. 그래서 나손의 후계자가 된 살몬도 직계 자손이 귀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내리실 때 계명을 지키면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고, 계명을 어기면 그 죄가 3, 4대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출 20:5,6).
살몬은 자기 당대나 선대의 이런 연유로 해서 자손이 번성하지를 못합니다. 다만, 살몬은 여리고성 정탐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였기에 하나님이 그가 정탐 현장에서 만난 기생 라합에게 후사를 주어서 사사시대에 유다 지파의 족보를 잇게 하십니다. 살몬은 기생 라합이 아닌 본처가 있었을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 본처의 적자 혈통은 족보와 기업을 잇지를 못하게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유다 지파는 이렇게 부끄러운 족보를 이어오며 살몬을 시조로 하여 사사시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족보로 본 유다 지파와 갈렙의 행적 비교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삿 1:3)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수 14:14)
유다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믿음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는 야곱의 직계 후손입니다.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서 장자권자이며, 족보의 계승자입니다. 그리고 유다의 이름을 따서 민족을 상징할 때는 “유대인”, 나라를 대표할 때는 야곱의 이름에서 “이스라엘” 또는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부릅니다.
본문이 말하는 유다란 사사시대에도 살고 있는 유다 지파 전체를 뜻합니다. 유다는 애굽 종살이 초기 사람이므로, 이때는 여호수아도 죽었으므로 유다는 죽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나안 족속들과 싸운 사람들은 유다의 직계 후손들이 아닙니다. 여호수아 때에 미리 제비를 뽑아서 땅을 분배받기는 했으나 아직 정복하지 못한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서 유다 지파 전체가 그의 형제인 시므온 지파와 함께 정복에 나섰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지파에게 먼저 정복에 나서라고 하셨습니다(삿 1:1,2). 유다 지파가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장자권을 가졌으므로 제일 먼저 보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 정복에 나선 유다 지파는 족보에 오른 유다의 직계 자손들이기보다 족보에 들지 못하는 방계혈족의 자손들이 주축입니다. 여기에 나선 유다 지파는 유다가 수아의 딸과 동침하여 나은 아들이자 베레스와 나이 차도 많은 이복형 셀라의 자손들, 다말의 몸에서 난 베레스의 동생 세라의 자손, 그리고 유다의 직계 손자이지만, 헤스론의 형제인 하몰의 자손들이 주축입니다(대상 2:5).
그 이유는 유다 지파의 직계 자손은 애굽 종살이 400년 기간 동안 4대손 람에서 혈통이 끊어져서 오래 되었고, 출애굽 당시 또는 광야시대에 살은 아미나답과 나손도 광야에서 아들도 없이 단명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뒤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유다의 3대손인 헤스론과 그 가족들 대부분은 일찍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 베들레헴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아버지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이주하지 않고 남은 아들이 람인데, 람은 유다 지파의 계보를 잇기는 하지만, 자손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다 지파는 유다의 직계 아들 아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선봉장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갈렙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의 이름 앞에는 “그니스(또는 그나스)의 사람 여분네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습니다. 창세기 15장 19절을 보면 그니스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살아야 할 가나안 땅에서 이미 살고 있었던 열 족속 중에 한 족속입니다. 여분네는 그니스 사람이었고, 갈렙은 그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갈렙은 이방인 출신입니다.
유다가 동침하여 아들 셋을 낳은 수아의 딸(창 38:2,3)과 계대결혼으로 베레스를 낳아 족보를 이어준 다말처럼 갈렙은 가나안 땅 사람입니다. 가나안 땅 진입 당시 여리고성 정탐꾼들을 숨겨준 기생 라합도 가나안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이 쫓아내어야 할 대상인 가나안 족속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유다 지파에 들어와서 족보를 잇거나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들을 모두 진멸하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여호와를 섬기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구속사에 동참하고 협력하는 자는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서 유용하게 쓰임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갈렙은 어떻게 유다 지파의 족속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귀화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방인이 귀화를 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거나 공동체에서 공을 세워서 인정을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여분네와 그의 아들 갈렙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귀화했을 것으로 봅니다.
갈렙은 이방인이었지만, 유다 지파에서,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제일 큰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갈렙은 광야시대에 가나안 땅을 정탐하면서 유다 지파를 대표하는 두령이었습니다. 이때 40세입니다(수 14:7). 가나안 땅 정탐 후 보고에서 모두가 가나안 진입을 반대하고 있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 진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여 모두가 죽어야 할 광야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 그 땅에 들어갈 자는 광야 1세대 중에 갈렙과 여호수아라고 하면서 광야 2세대 백성들을 격려합니다(신 1:35,38).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토지분배를 할 때 85세의 고령입니다. 85세의 고령에도 건장한 아낙 자손들이 버티고 있는 헤브론 땅을 자기가 정복하겠다고 여호수아에게 요청합니다(수 14:10,13~15). 실제로 아낙 자손들을 쫓아내었습니다(수 15:14). 갈렙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도 활동을 했었고, 헤브론 땅을 정복할 때, 정복에 성공하면 자기의 딸을 주어 사위로 삼겠다면서 정복을 독려합니다. 그런데 갈렙의 조카(아우가 아니고 조카) 옷니엘이 헤브론 땅(기럇 세벨)을 점령했으므로 딸을 주어 사위가 되었고, 아랫샘이 있는 밭과 평지는 그들의 기업이 되었습니다(삿 1:13).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이자, 사위로 사사시대에 최초의 사사가 됩니다(삿 3:9~11).
해발 750m인 헤브론 산지는 뒷날 성지가 되고 도피처거 되어 그곳에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살았습니니다(수 20:7). 헤브론은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가 장례된 곳입니다(창 23:2,9, 35:27~29). 다윗이 유다 지파 왕이 된 곳입니다.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받고 달려가서 엘리사벳을 찾아간 곳도 이 헤브론 산지입니다(눅 1:39,40).
그러므로 유다 지파가 차지한 가나안 땅 남부지역의 정복에는 갈렙의 역할이 가장 큽니다. 그래서 성경은 갈렙에 대해서 수식어를 길게 붙여서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 불러줍니다. 이것은 장자권을 가진 유다의 직계손들과는 대비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유다 지파의 직계손은 광야시대에 토지 정탐꾼 대표를 내지 못했고, 사사시대에는 사사도 한 명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유다 지파 직계손은 애굽에서부터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시기까지도 족보에 들어갈 인물도 없을 만큼 자손들이 적었거나 있었어도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쓰임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가나인 진입 직전 유다의 자손들이 76,500명이나 되지만, 유다 지파의 족보를 이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주된 원인은 출애굽을 하였어도 희년은 거부하는 광야 공동체의 백성들처럼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땅과 기업에 대한 경제적 인식과 현실적 순종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난제, 사사시대 족보의 시조는 어디 사는 누구일까요?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은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 (마 1:4:5) ...그 위는 보아스요 그 위는 살몬이요 그 위는 나손이요 그 위는 아미나답이요 그 위는 람이요(눅 32:33)
헤스론이 낳은 아들은 여라므엘과 람과 글루배라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으니 나손은 유다 자손의 방백이며 나손은 살마를 낳고 살마는 보아스를 낳고(대상 2:9~11)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살몬은 사사시대의 시조입니다. 그런데 살몬은 누구의 아들일까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다윗의 가문과 요셉의 아내 마리아에게 속해 있었던 상속지, 베들레헴 기업은 누가 분배를 받았을까요? 필자가 보기로는 이 부분이 성경 해석에서 큰 난제로 보입니다. 아마도 이 부분은 외부 자료가 없었고, 성경의 내적 증거로서도 확실한 근거를 찾지 못했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살몬의 신분과 베들레헴 기업을 분배받은 인물이 누구인지를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살몬은 이름부터 혼선이 생깁니다. 룻기·마태· 누가복음 족보는 “살몬”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역대기 족보는 “살마”라고 합니다(대상 2:11). 그런데 헤스론의 셋째 아들 갈렙의 손자로 훌의 아들도 “살마”입니다(대상 2:51).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살몬과 살마, 그리고 헤스론의 4대손 살마가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가 먼저 밝혀져야 합니다. 이것은 포로기 초기에 마태복음 족보의 스룹바벨과 누가복음 족보의 스룹바벨이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와 같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니 나손의 후계자인 살몬과 헤스론의 4대손 살마가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를 가려내는 것은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2) 그다음 애굽 종살이 초기 인물 헤스론은 일찍이 애굽을 나와서 베들레헴에서 살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기 전에 베들레헴(에브라다)에서 죽었습니다(대상 2:24). 헤스론은 애굽에서 족보를 이을 아들은 둘째인 람 한 사람뿐이었으며, 여기에 람이 족보를 이었지만, 후사가 없어서 400년 동안 족보가 거의 끊겨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으로 이주한 헤스론은 그곳에서 새 아내를 얻어서 살았고, 자손들이 번성하여 역대상 2장과 4장을 보듯이 방대한 숫자가 그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혈통이 끊어지는 애굽 종살이 동안 람의 후손 400년(실제는 약 350년) 역사와 사사시대에 혈통이 끊어진 살몬의 후손 300년 역사는 헤스론의 베들레헴 이주로 인하여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헤스론의 후손들 족보를 기록한 역대상 2장과 4장은 기록된 이름은 많고, 체계적 정리가 되지 않아서 계보 파악이 매우 어렵고, 해석에서 혼선이 생깁니다. 이를 톰슨 성경의 주석은 헤스론의 족보를 소개하고 있는 역대상 2장(2:1~3:24)과 4장(4:1~23)을 두고 “서로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 보이는 12 지파에 대한 추가”라고 각주를 달아놓고 있습니다.
註) 톰슨 성경, 기독지혜사, 1986, 614쪽, 역대상 4장 1절 “유다 아들들”, 각주 참조
(3) 헤스론의 후손들을 기록한 역대상 2장과 4장에서 이름들이 같거나 다르거나 비슷하여 혼선이 생깁니다. 앞에서 이미 밝힌 대로 살몬을 역대기는 살마라고 합니다. 헤스론의 첫째 아내가 낳은 아들 중 셋째 아들인 글루배(대상 2:9), 갈렙(대상 2:18), 그리고 갈마(대상 4:1)는 같은 사람으로 볼 수 있지만, 다르게 볼 수도 있습니다. 족보 연구가 박윤식 목사는 글루배(대상 2:9)와 갈렙(대상 2:18)을 같은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필자도 박윤식 목사와 같이 같은 사람으로 보려고 합니다.
아마도 헤스론의 본처에서 난 셋째 아들 글루배는 아버지를 따라서 베들레헴에 이주한 후 이름이 갈렙으로 바꾸어 불려진 것 같습니다. 헤스론은 출애굽 이전부터 애굽에서 나와 베들레헴으로 들어가서 그 땅을 개척한 사람인데, 뒷날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개척한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러준 것으로 보입니다. 글루배와 갈렙은 발음도 비슷합니다.
여기에서 헤스론의 아들 갈렙(대상 2:18)과 여분네의 아들 갈렙(대상 4:15)은 혼선이 생길 여지를 남깁니다. 이에 더하여 헤스론의 아들인 갈렙의 딸 이름이 “악사(대상 2:49)”인데, 여분네의 아들인 갈렙의 딸 이름마저 “악사(수 15:16)”이기 때문에 혼선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베들레헴에 이주한 헤스론은 그 자손들까지 후처들이 많고, 자손들도 많아서 이름들이 소속된 족속별로 묶어서 일괄 소개하기 때문에 신분과 서열, 대수별 구분과 파악이 어렵습니다.
(4) 베들레헴이라는 지명과 에브랏(에브라다)이라는 인명에 대한 의문입니다.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의 옛 지명은 에브랏 또는 에브라다입니다. 미가서 5장 2절은 베들레헴 에브라다라고 했고, 에브랏(룻 4:11)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지명이 사람의 이름으로도 나와서 혼용되고 있습니다. 헤스론의 셋째 아들 갈렙(글루배)의 아내가 에브랏(대상 2:19)이며, 베들레헴의 아비를 에브라다(대상 4:4)라고 하여서 에브랏, 베들레헴, 에브라다가 혼용되고 있는 것이 그 예입니다.
또한 베들레헴 아비 살마(대상 2:51), 살마의 자손 베들레헴과 느도바 족속에서 베들레헴(대상 2:54)에서 베들레헴은 인명인 것 같지만, 사전에서 베들레헴은 지명으로만 나오고 인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갈렙(글루배)과 에브랏(대상 2:19), 그리고 갈렙과 에브라다(대상 4:4)는 훌을 아들로 둔 부부이므로 갈렙의 아내는 같은 사람일 것이며, 베들레헴은 부부가 사는 지역, 곧 지명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룻 1:2)”, “베들레헴의 아비 살마(대상 2:51)”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입니다(창 48:7).
(5) 헤스론이 애굽 종살이 초기에 이스라엘 공동체를 떠나서 베들레헴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이유가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추정컨대 헤스론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았고, 애굽 종살이나 이방에서 객이 되는 것을 미리 예견하고 애굽을 떠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으로 들어가서 둘째 아내와 새 가정을 이루고 산 것으로 보겠습니다. 이때 애굽에 남은 가족이 헤스론의 첫째 아내와 둘째 아들 람이었고, 그가 유다 지파의 족보를 잇고 있습니다.
(6) 애굽 종살이 시대와 사사시대에 유다 지파의 직계 후손은 족보도 이어내지 못할 만큼 쇠락하지만, 베들레헴으로 이주한 유다의 손자 헤스론의 후손들은 역대기 족보에서 자손이 크게 번성한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의 후손들을 그렇게 인도해 오셨습니다.
(7) 여호수아의 토지분배에서 베들레헴이란 지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서 19:15에서 말하는 베들레헴은 북쪽 갈릴리 지역, 스불론 지파의 땅으로 나사렛 인근 지역을 말합니다. 지금 관심 대상인 지역은 남쪽 지역으로 유다 지파의 땅 베들레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베들레헴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벧엘에서 헤브론으로 이주하던 중에 아끼는 라헬이 죽어서 장사된 곳입니다(창 35:19,20). 장차 다윗 왕가가 일어나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날 곳입니다. 그러함에도 여호수아가 토지를 분배할 때, 베들레헴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베들레헴이 여호수아의 토지분배에서 제비를 뽑아 유다 지파에 분배된 지역이긴 하지만, 유다 지파가 독자적으로 하게 되는 가족별 분배에서는 헤스론이 이미 살고 있는 베들레헴 지역을 분배 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족보에서 사사시대의 시조는 “베들레헴의 아비 살마” (추정)입니다.
나손은 살마를 낳고 살마는 보아스를 낳고(대상 2:11)
베들레헴의 아비 살마와 벧가델의 아비 하벨이라 ... 살마의 자손들은 베들레헴과 느도바 족속과...(대상 2:51,54)
룻기·마태·누가복음 족보에서 사사시대의 시조는 살몬입니다(룻 4:20). 사사시대의 3대 족보의 공동 시조인 살몬은 가나안 진입 초기 여리고성의 정탐꾼으로 갔다가 라합과 인연을 맺습니다(수 2:1, 마 1:5). 살몬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데 참여하고 토지를 분배받습니다. 여기서 살몬이 기업으로 분배된 토지가 베들레헴 땅입니다.
그러면 가나안 땅 진입에서 여호수아와 함께 참여하고, 기생 라합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베들레헴 기업을 분배받은 살몬은 역대기 족보에서 누구의 아들인가 하는 것입니다. 필자가 이 물음에 대한 잠정적인 답은 역대기 2:51,54와 4:4에서 나오는 베들레헴의 아비로 불리는 "살마"로 보겠습니다.
그런데 살몬은 역대기 족보에서 헤스론의 둘째 아들 람의 4대 후계자인 살마이며(대상 2:11), 이 살마는 역시 역대기 족보에서 헤스론의 셋째 아들인 글루배(갈렙)와 그의 아내인 에브라다의 손자요, 훌의 아들인 살마입니다. 역대기 족보는 이 살마를 “베들레헴의 아비”라고 하고, 살마의 자손들은 “베들레헴 족속”이라고 부릅니다(대상 2:51,54). 역대상 4:1~4에서 소개하는 유다의 후손들은 모두 “베들레헴의 아비 에브라다”의 맏아들, 훌의 후손(소생)으로 소개합니다(대상 4:4).
이것은 기업과 상속권을 초점에 두고 기록한 누가복음 족보와 위의 (1)에서 (7)까지의 의문점에 대한 정황과 근거로 추정한 잠정적 결론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사사시대의 계보를 기록한 룻기의 족보와 기업 상속권을 중시한 누가복음 족보를 중심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사사시대의 시조 "살몬(마 1:5, 룻 4:20)"은 역대기 족보에서 소개하는 "베들레헴의 아비 살마(대상 1:51,54)"라고 하는 추정 의견에 대하여 독자들이 고견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