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가사를 외운 노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다.
노래를 한번 듣고 너무 좋아 수첩에 가사를 적어가며 외웠다.
그 당시 중학생인데도 나는 감성적이었는지 가사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이 노래를 흥얼거리면 기분이 좋아졌다.
마음 울적한 날엔 거리를 걸어보고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
한편의 시가 있는 전시회장도 가고
밤새도록 그리움에 편질 쓰고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이십일번
그 음악을 내 귓가에 속삭여주며
아침 햇살 눈부심에 나를 깨워줄 그럴 연인이 내게 있으면
나는 아직 순수함을 느끼고 싶어
어느 작은 우체국 앞 계단에 앉아
후리지아 꽃향기를 내게 안겨줄 그런 연인을 만나봤으면
정말 난 이 노래를 들으며 마음이 울적해지면 진월동 동네를 걸었고.
칵테일이 뭔지는 몰랐지만 한번 마셔봤으면 했으며.
전시회장이란 곳을 가서 그림을 보고 싶었으며.
좋아하는 여학생에게는 꼭 밤이 되어서야 편지를 썼으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이 무엇인지 음악 선생님께 물어보며 들어보았고.
동네 우체국 앞 계단에 앉아 햇살을 맞았으며.
꽃가게를 지나가면 노란 후리지아 꽃을 관찰하곤 했다.
24번 버스를 타고 중고등학교를 6년간 다니면서는 자자의 ‘버스 안에서’를 들으며 예쁜 여학생이 버스에서 내게 먼저 말 걸어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노래 가사처럼 난 너무 이상적이었나 보다.
내게 먼저 말 걸어 줄 그런 여자는 6년 동안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매일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그녈 보곤 해
하지만 부담스럽게 너무 도도해 보여
어떤 말도 붙일 자신이 없어
아니야 난 괜찮아 그런 부담 갖지 마
어차피 지금 나도 남자 친구 하나 없는데
하지만 너는 왜 아무 말도 없을까
너에게 내가 정말 필요하다는 걸 알아
넌 너무 이상적이야 네 눈빛만 보고
네게 먼저 말 걸어 줄 그런 여자는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이렇게
매년 크리스마스엔 OPPA의 ‘와요와요’와 노이즈의 ‘크리스마스 데이’를 들으며 여자 친구가 생기기를 기대했으나 그러질 못해 외로운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그 시절엔 왜 그렇게 여자 친구에 대한 욕구가 간절했는지.
남들 다 해보는 것은 나도 해봐야겠다는 욕심이었을까?
간절했지만 이루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짚신도 다 짝이 있다고.
혼자 살 줄 알았는데 친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해서 아주 잘살고 있다.
지금 예약 받아요 첫눈 내리는 날에
나의 하루를 전세 낼 한 사람만
어서 내게 와줘요 망설이면 늦어요
어디 그런 사람 없을까요
핸드폰을 장만하면 제일 먼저 걸게 되는 사람
하루 종일 생각 날 사람
보고플 때마다 삐삐를 치게 되는 사람
돈이 없어도 사람 앞에서 기죽이지 않을 사람
그런 사람 나도 갖고 싶어요
서러울 거야 애인없는
겨울은 더 추울 거야
배 아플 거야 지나가는
연인들 샘나서(어떻게 하면 돼?)
나의 사랑을 모두 줄까요 와요와요
우리 겨울에 사랑할까요 와요와요
혹시 지금 필요한가요 진짜 늑대 목도리
그대 내 곁에 다가올래요 와요와요
나와 이 겨울 함께할래요 와요와요
언제나 시리던 내 옆구리에 여우털 달아줘요
니가 없어 난 그랬었지 작년 크리스마스에도 난 혼자였어
친구들 모두 다 약속 있다며 그렇게 날 외면해 버렸었고
언제나 나는 외로웠었지 크리스마스가 오는 게 난 늘 두려웠어
거리에 다정한 연인을 보며 얼굴도 모르는 널 원망했는데
크리스마스가 되면 난 항상 똑같은 생각을 했어
혼자서 거리를 걸으며 난 누군가를 찾고 있었지
거리에 출렁이는 들뜬 분위기에 난 휩싸여 봐도
난 외로웠지 난 언제나 너무 초라했었어
그렇게 지난겨울이 가고 여름이 되서야 난 널 만났어
검게 그을린 하얀 미소로 사랑을 안고 너는 날 찾아온 거야
돌아오는 크리스마스에는 니가 있어 이젠 나는 외롭지 않아
친구들 모두가 약속 있다며 그렇게 나를 외면해 버려도
생각만 해도 난 기다려져 빨리 크리스마스가 왔으면 좋겠어
흰 눈이 내리는 창가에 앉아 너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파
Christmas oh happy new year 너와 단 둘이 사랑을 나누며
Christmas Day oh happy new year 너에겐 내 마음 모두 다 주고파
난 내가 못났다고 생각했다.
키도 작고 얼굴도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턱스클럽의 ‘못난이 콤플렉스’를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외모가 전부는 아니었다.
키 작고 못생겼어도 난 내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난 순수했고 착했다.
그렇게 스스로 생각했다.
이 노래 덕에 난 자존감을 회복했고 나의 가치를 알아봐 줄 사람은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난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 조개 속의 진주였다.
언제나 나는 혼자였었지 키 작고 이쁘지도 않아서
애들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언제나 혼자였어~
그 애는 아주 특별했었지 얼굴도 잘 생겼고 멋있어
그래서 주위에는 여자 친구 항상 많았었지
하지만 그앤 나랑은 전혀 어울릴 수 없었어
이런 못생긴 나 관심조차 있겠어
차라리 모든 게 꿈이면 그 많은 얘기를 할 텐데
그토록 해보고 싶던 얘기 나도 널 사랑한다고~
그래 넌 말이 없는 키 작은 아이 이쁘지도 않아
눈에 띄지도 않아 하지만 넌 누구보다 귀여우면서
작지만 투명하고 맑고 큰 눈이 있지
난 항상 너를 느꼈고 또 나를 보는 너의 눈빛 보았지
내가 갈 수 있게 조금 용기를 줘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
당시 화이트의 ‘사랑 그대로의 사랑’은 그 노래의 형식과 가사가 가히 충격적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 읊조렸기에.
마치 난 음유시인이라도 되는 듯, 이 긴 가사를 외워 따라 읊조리곤 했다.
사랑에 관한 한 편의 시를 외운 것처럼.
나에겐 교과서에 나온 그 어떤 사랑에 대한 시보다 더 사랑시였다.
이 가사를 외우면 사랑이 이루어질 것 같았다.
이는 마치 주술이자 기도이자 마법문이 되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반 남학생들은 다들 그 노래 가사를 읊조렸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사랑이 뭔지 알지도 못하는 나이에 그런 예쁜 사랑을 꿈꿨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이른 아침, 감은 눈을 억지스레 떠야 하는
피곤한 마음속에도
나른함 속에 파묻힌 채 허덕이는 오후의 앳된 심정 속에도
당신의 그 사랑스러운 모습은 담겨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층층계단을 오르내리며 느껴지는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의 물결 속에도
십년이 넘은, 그래서 이제는
삐걱대기까지 하는 낡은 피아노
그 앞에서 지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내 눈 속에도
당신의 그 사랑스러운 마음은 담겨 있습니다.
언타이틀의 ‘책임져’노래를 들으며 짝사랑의 아픔을 위로했다.
이 노래는 어찌 이리 내 마음을 잘 표현했을까?
노래에 한동안 미쳐 있었다.
가사는 슬프지만, 멜로디는 아주 신나는 노래였다.
신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르곤 했다.
내 사랑이 이렇게 떠나가다니...
노래 가사처럼 잠시 사랑의 폐인이 되었었다.
책임져 전부다 책임져 정말 말도 안 되게 됐어
이렇게 될 줄은 누구도 몰랐어 폐인이 돼버린 날 책책책책 책임져
너 혼자 행복하면 슬퍼져 아무것도 난 할 수가 없어
제발 내 인생을 책임져
우연히 널 만났고 너를 사랑 하게 됐지
하루하루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었지
하지만 싫증이 났니 아니면 내가 잘못을 했니
갑자기 날 떠나갔고 난 폐인이 돼 버렸어
이렇게 망친 내 인생 책임져 날 떠난 후 너는 행복하니 난
그렇지 않아 내 인생 책임져
너 하나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어 난
고등학교 시절은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었다.
학업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때마다 언타이틀의 ‘날개’라는 노래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공부하느라 힘든 시기에 난 왜 이리도 날고 싶어 했는지.
나에겐 날개가 있다고 믿었다.
내 꿈을 이루고 비상할 수 있는 그 날개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힘이 되었다.
우리 반 친구들은(다 남자) 이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다들 날개가 있다고 두 팔을 벌려 날갯짓을 하며 떼창을 하곤 했다.
“나에겐 날개가 있으니 하늘을 날 수 있어!”
어렵게 살아온 내 어린 시절이
아직도 나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해
이런 내 힘든 생활 이젠 지쳤지 부숴 버리고 싶어
오랫동안을 그렇게 늘 갇혀서 지내왔네
지금 이렇게 된 자신을 바라 봤었네
나의 앞을 가로막던 수많은 벽돌을
넘도록 간절히도 원하던 내 마음을
하지만 나 이제는 컸어요
나에게도 자그마한 날개가 있어요
날개는 바로 나의 꿈이었어 난 지쳐있지 않겠어
이제는 정말 구속받기 싫은데 천만 다행이야
나에겐 날개가 있으니 하늘을 날 수 있어
비 오는 날에는 김건모의 ‘빨간 우산’을 들었다.
이 노래 가사처럼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다니면 어쩌다 우산이 없는 예쁜 소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아주 친절하게 우산을 씌워줄 수 있는데...
한번은 비가 많이 내리던 날 어떤 여학생이 우산이 없어 쩔쩔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난 아무 생각 없이 내 우산을 누군지도 모르는 그 여학생에게 쥐어주곤 “이 우산 쓰세요.”이 한마디만 남긴 채 빗속을 뛰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 같지만.
아마 그 여학생이 예뻤나 보다.
다 이 ‘빨간 우산’노래 때문이다.
비 오는 날 아침은 언제나 내 맘을 설레게 해
우연히 내 우산과 똑같은 빨간 우산을 쓴 소녈 봤어
한참을 망설이다가 건넨 말 “저 어디까지 가세요?
때마침 저와 같은 쪽이네요 우산 하나로 걸어갈까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파란 보랏빛 꿈결 같은 기분야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까 아름다운 그녀
오! 세상은 너무 아름다워 그래 그래서 다들 살아가나봐
저 하늘이 날 도운거야 예 꿈이 아니길 바래
노래는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예전에 듣던 노래를 들으면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내 학창 시절로 돌아가 있다.
그때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친구들이 생각난다.
그 시절이 생각나면 난 youtube에서 예전 노래를 찾아 듣는다.
#나의진월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