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24ㅡ 거짓말 같은 이야기 ( 지호이야기 3 ) (사소)
엄마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지호는 피아노를 중단하면서 입시학원에 가서는 일주일 이상 공부를 한 적이 없다 했다. 어떤 때는 상담받자마자 안 가겠다고 버틴다든지, 상담받은 그 자리에서 원장한테 비아냥거려 싸운 적도 있고, 원비를 내놓고도 결석하기 일쑤여서 이제는 아예 어디 가자고 하기 무서웠고, 그래서 물어물어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훗날 들으니 그날도 밖에서 엄마는 무적이나 가슴 졸였다 했다.
2 주일을 기한으로 국어 공부를 시작하니, 생각보다 지호는 성실했다. 숙제도 꼬박꼬박 해오고 테스트도 틀리는 문제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었다.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는 기회를 잃지 않는 것. 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중간고사 전이었고 시험은 3년 동안, 10번의 기회 중에서 4번이 남은 셈이었다. 내신은 이미 죽을 써놔서 입시 카드가 될 수 없었지만, 단기 목표로 집중력과 실력 둘 다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지호에게 태도가 좋으니 2 주일 기한을 이제 한 달로 늘리자고 제안 했다. 다행히 시험 범위는 연계성이 적은 문법 영역이었다. 그리고 수능실력을 단기에 업그레이드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학교샘 수업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 돈이 들지 않고도 가장 양질인 학교샘 수업에 전력 질주해 시험을 치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현명한 수능준비임을 거듭 강조했다. 점수를 올리면 더 오래 같이 공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희망을 꼭 싸매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느 날 오전 , 잠에서 깨지 않은 시간. 다급히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그녀는 누운 채로 받게되는 전화는 나중에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 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이 몇 번 있었기에, 오전에 웬만하면 받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본능적으로 휴대폰에 손을 뻗쳤다. 지호였다. 쉬는 시간이고 교내 공중전화라 했다.
'시험보다가 무슨 일이지? 무슨 사고가 났나? '
몽롱한 중에도 걱정이 스멀거렸다. 그런데,
" 선생님 ! "
" 헉! 헉! 선생님 ! "
지호가 헐떡거리다 숨을 몰아쉬었다.
" 저 시험 잘 봤어요. 우리 반에서 저보다 잘 본 사람이 거의 없어요"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리고있었다.
" 뭐라구? 그게 정말이야? "
전화기를 붙들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지호는 답을 맞춰보자마자 공중전화로 뛰었고, 다음 시험에 들어가야 한다며 그만 끊겠다 했다. 그녀는 어찌나 짧은 순간인지 전화를 끊고도 어리둥절했다. 커피 한 잔을 타 식탁에 앉았다. 달콤했던 잠이 싹 달아나 버렸지만 놀랍고도 가슴이 기분좋게 뛰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지호 엄마께 전화를 걸어보니 놀랍게도 지호는 과외를 시작하는 날부터 매일 네 시간 정도만 자고 새벽까지 공부를 해왔다는 것이었다. 국어샘한테 절대 짤리면 안 된다고, 깨우지 않는 날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고도 했다. 엄마는 애가 어쩜 이렇게 백팔십도 변할 수도 있는 거냐며 샘한테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맙다는 말씀을 연신하셨다. 그녀는 그제서야 그동안 테스트도 나쁘지 않았고, 실력이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는 시점으로 지호의 얘기가 진짜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너무 단기에 이뤄진 일이라 꿈인지 생시인지 여전히 흥분과 멍함이 교차했다.
비평준화 지역 명문이라 불리는 학교에서 국어 내신 9등급이 갑자기 2등급을 받은 사건은 큰 파장을 불러왔다. 난이도가 꽤 있는 학교 시험에서 단번에 수직 상승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호가 교무실에 불려 갔고 커닝을 한 게 아니냐며 담임선생님과 몇 선생님은 대놓고 의심을 한 것이다. 지호는 과외 시간에 와서 씩씩 거리며 학교 선생님들을 ㅆ 자와 ㄲ 자를 써가며 욕을 했다. 믹서기에 돌려 갈아 마셔 버리겠다는 충격적인 표현을 그녀는 그때 지호에게 처음 들었다. 반드시 복수할 거란 말을 했다. 지호 마음에 적개심이 가득했다. 하긴 그녀도 처음엔 지호의 결과를 믿기 어려웠으니 어른들의 속단과 근시안이 매우 미안했다.
그녀는 지호에게 진짜 복수를 하기 위해 11월 전국 모의고사에 다시 깜짝 놀랄 성적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녀가 공식처럼 만든 국어 분석 원리와 문제 풀이를 가르칠 때 지호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과제 집착력도 대단했다. 이제 학교 수업시간에 자지도 않고 샘의 질문에 가장 빨리, 많이 대답한다고도 했다. 지호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녀가 전수해 주는 거의 모든 것을 다 받아먹었다. 11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거짓말처럼 다시 기적이 일어났다. 지호는 국어 1등급을 쟁취하면서 그 뛰어남을 전교에 떳떳하게 증명할 수 있었다. 담임샘 등 몇 선생님은 다시 지호를 교무실로 불렀다. 샘들은 비법이 뭐냐며 신기하다며 긴가민가 미소를 지으며 사과인지 농담인지 실실거리셨다 했다. 지호는 아직 용서할 수 없지만, 샘들을 향한 복수가 정말로 통쾌했다고 했다. 이제 지호는 국어만은 상위권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러나 얘기가 여기서 끝났으면 그냥 그녀의 성공담일 것이다. 그 후 더 많은 믿기 힘든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는 일들이 일어났다. 우선, 지호의 기적에는 다소 인위가 포함돼 있다는 것을 그녀는 어느날 알게됐다. 유난히 지호의 집중력이 흐려진 날, 승전의 나태함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했다. 숙제는 다 해왔는데 여느 때와 다르게 몇 번이나 본문을 읽어도 문맥을 관통해 정리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다소 피곤하고 멍한 표정으로 덥지도 않은데 땀을 뻘뻘 흘리며 죄송하게도 오늘 수업을 빨리 끝내줬으면 했다. 그녀는 지호에게 오늘따라 왜 그런지,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ㅡㅡㅡ 이후 계속됨 ㅡㅡㅡ
첫댓글 오, 흥미진진하군요. ^^
믹서기에 돌려 갈아 마셔버리겠다니, ㅎㅎㅎ, 국어 성적 오를만 하네요,^^. 다음 편 몹시 궁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