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한
최근에 ‘멍뭉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강아지들이, 이쁘고 귀여운 강아지들이 잔뜩 나오는 영화일 거라는 기대감에 극장에서 볼까 했는데, 딸들이 호응하지 않았다. 요즘 영화 티켓비가 턱없이 비싼데 극장까지 가서 볼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 반대 근거였다. (전국의 반려동물 주인들이 다 본다면 흥행 실적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는지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고 한다. 견주인 우리 식구도 보지 않았으니 그랬을 것도 같다.)
그럼 TV를 통해 보자고 했다. 큰딸은 싫다고 했고, 막내는 좋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어느 기운 없는 날에 나는 막내하고 TV로 ‘멍뭉이’를 봤다. 생각보다 강아지들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사람 주인공은 차태현과 유연석이었다. 결혼을 앞둔 유연석은 여자 친구가 ‘강아지 침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자 친구는 그동안 그 사실을 속이고 약을 먹으면서 유연석과 유연석의 반려견 루니와 지냈던 것이다.
나는 이 착한 여자가 나중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영화를 지켜봤다. 계속 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 뭔가 반전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내가 유해한 사람이라는 증거?) 하지만 특별한 극적 갈등도, 반전도 없었다. 그러니 내가 영화를 다 본 소감은 이것이다. 참 무해하구나. 이것도 영화냐는 댓글, 온 가족이 행복하게 보았다는 댓글을 보면서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는데 댓글이 더 해로운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감독은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반려동물을 통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가족’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가족끼리 본 사람들, 특히 어린 아이들이 있는 가족은 좋다고 느꼈던 것 같다. 어린애들이 보기에 무리 없는 작품, 참 무해한 작품이라서 말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보는 컨텐츠도 자극적인 것이 많은데 ‘멍뭉이’는 그렇지 않았다. 주짓수를 하는 소년에게 맞아 차태현이 나가떨어지는 장면을 문제 삼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영화의 맥락상 코미디적 장면 아니었을까?
감독이 김주환이라는 사람이다. 그의 영화는 ‘청년 경찰’만 보았다. ‘청년 경찰’에서는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여성 캐릭터들이 좀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이 추구하는 여성 배우상, 혹은 이번 영화에서 특별히 요구한 캐릭터상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에 자분자분한 말씨, 그래서 약간 지루할 수도 있는 대사 톤과 전반적으로 착한 인물? 그러니까 무해한 인물 말이다. 겹치는 시기에 이 영화 말고도 ‘무해한’ 느낌을 주는 컨텐츠를 두어 개 더 보았는데 생각이 안 난다. 이건 나에게 해로운데 말이다. 생각날 때까지 나를 닦달할 수 있으니까. 하이고~!
첫댓글 포스터도 글도 무해하네요.
저처럼 개를 좋아하지만 키울 수 없는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대리만족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네^^
아마도 무해한 내용은 나중에 기억이 잘 나지 않을 것 같군요. ^^
누가 준 이런 것도 무해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