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몰기 / 김석수
올여름에는 무더위와 지루한 장마가 계속됐다. 그날도 비가 촉촉이 내리는 오후였다. 점심을 먹고 활터에 나갔다. 사두(射頭)를 지냈던 고문과 활을 쏘려고 준비하던 사원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로커에서 활과 화살을 꺼내서 준비대에 올리고 궁대(弓臺)를 허리에 맸다. 스트레칭하고 사대(射臺)에 선다. 굵은 빗줄기가 떨어졌다. 신중하게 시위를 당겨서 활을 놓는다. 일시천금(一矢千金)이다. 화살은 빗속으로 날아간다. 과녁에 화살을 맞히면 노란불이 켜진다. 처음으로 다섯 발을 쏴서 모두 맞혔다. 5시 5중(五矢五中)으로 초몰기한 것이다.
활을 배운 지 일 년이 지나서 한 것이다. 사대에 서자마자 3중을 한 것에 비하면 늦깎이다. 시작한 지 서너 달 지나면 초몰기한 사람도 있다. 사원이 처음으로 5시 5중하면 사두는 활터에서 고유제(활을 쏘는 전 회원에게 잔치를 베푸는 것)를 지내고 접장이란 칭호를 당사자에게 부여한다. 초보자 딱지를 떼고 다른 활터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선수로 나갈 자격을 준다. 편사(편을 나누어 시합하는 경기)에 참가하고 승단 시험에도 응시할 수 있다.
초몰기가 늦어진 가장 큰 이유는 활을 쏘면서 손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지난봄에 습사(習射)하던 중에 화살이 부러져서 엄지와 검지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원인은 불량 화살이거나 몰촉(활을 세게 당겨서 살촉이 줌통을 지나 들어오는 것)이다. 불량 화살보다 화살을 놓을 때 깍지를 세게 당겨서 몰촉이 났을 가능성이 크다. 사고가 나자 함께 활을 쏘던 사람이 나를 차에 태워서 인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피가 많이 나지 않아서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의사는 내 손은 보자마자 응급처치하고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병원에 갔더니 엑스레이와 초음파로 상처 부위를 검사했다. 피검사를 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뒤 수술대에 올랐다. 왼쪽 겨드랑이에 마취 주사를 맞으니 어깨가 떨어져 나간 느낌이다. 잠깐 한다던 수술은 30여 분이 넘어서 끝났다. 수술실에서 간호사와 의사 다섯 명이 수술에 참여했다. 주치의는 렌즈가 긴 수술용 돋보기를 끼고 있다. 화살이 카본으로 만들어져서 파편이 손바닥 깊숙이 들어가 찾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했다. 회복실에서 한 시간 있다가 옷을 갈아입고 병원에서 나와서 약국에서 처방 약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마취가 풀리자 왼쪽 어깨가 심하게 아팠다. 아내는 활쏘기를 그만해야 한다고 불평했다. 무엇보다 매일 아침 수영을 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당분간 자전거도 탈 수 없다. 운전도 걱정이다. 왼손을 못 쓰니 장애인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수술하고 이후부터 하루걸러 병원에 가서 의사 진료를 받았다. 3주쯤 지나자 실을 뺄 수 있다. 손에 붕대를 감지 않고 연고를 바른 뒤 반창고만 붙여도 된다. 하지만, 활쏘기와 수영은 하지 말라고 했다.
실을 빼고 나서 검지 밑이 딱딱하다고 했더니 의사는 다시 초음파 검사하자고 한다. 그는 컴퓨터 화면으로 영상을 내게 보여 주며 큰 파편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며 재차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또 다시, 3주를 고생하고 다른 운동도 할 수 없다니 난감했다. 다음날 다시 수술대에 올라갔다. 이번에는 어깨 마취는 안 하고 손목 마취만 하고 수술했다. 의사는 1센티쯤 되는 검은 파편을 찾아내서 내게 보여주었다. 그 후 계속해서 한 달 병원에 다녔다. 두 달 동안 수영과 활쏘기를 하지 못했다.
사소한 부주의로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매사에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초몰기하자 활터의 많은 사람이 축하해 주었다. 손을 다쳐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라고 격려했다. 활을 잘 쏘는 선배는 명궁이 되려면 조금 늦게 가더라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 잘 맞추는 것보다 활 쏘는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제부터 진정한 활쏘기를 시작하는 것이라며 어떻게 하면 자세가 잘 나올지 늘 생각하면서 연습하라고 충고해 주었다.
요즘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지만, 태양이 지구와 가장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면 아직도 등이 뜨겁다. 오늘 아내와 함께 장성호에 다녀왔다. 수상 제트 스키가 잔잔한 물살을 가로지르며 몹시 요란하게 소리를 내고 있다. 무덥고 지루한 여름이 끝나기를 재촉하는 것 같다. 호수가 조용해지면 시원한 계절이 시작될 것이다. 금년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넘실거린다. 출렁다리 휴게소에서 거리 공연을 하는 남녀는 애처롭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쾌청한 날 삽상한 바람이 불어와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휴게소 나무 의자에 앉아 호수에 울려 퍼지는 노래를 들으면서 내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있는 흉터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이제 지난봄 상처는 없어지고 자국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