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서는 없다>
일단 제목이 강렬했다. ‘용서’하니까 영화 <밀양>이 우선 떠올랐다. ‘용서’라는 테제를 가지고 이 영화는 또 어떤 변주를 해냈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수많은 ‘용서의 기술’들도 떠올랐다. 어떤 이는 용서를 하기 위해선 정의보다 행복을 선택하라고 충고했다. 그런데 용서는 없다, 라니. 행복보다는 아무래도 정의를 선택한 것일까. 정말 궁금하다. 꼭 10년 전에 ‘박하사탕’으로 난리가 났던 설경구와 바로 그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역시 난리가 났던 류승범이 두 주인공이라는 점도 흥미를 자극했다.
제목대로 용서는 없었다. 싸이코 환경 운동가로 설정된 류승범(이성호 역)은 고통스러운 과거의 기억에 생을 저당 잡힌 채 행복보다는 정의를 택했다. 그래서 한국 최고의 과학수사대 부검의인 설경구(강민호 역)는 용서받지 못했고, 그 자신도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영화의 전개는 몹시 빨라서 처참하게 토막 난 사체가 발견되고, 경찰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설경구가 나오면서 그에 대한 정보를 줌과 동시에 나중에 나올 한혜진(민서영 역)과의 관계를 암시해준다. 고참 형사 성지루(윤종광 역)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열혈 기질을 발휘하는 신참 형사 한혜진은 재빨리 사건을 풀어나간다. 그래서 순식간에 범인이 잡힌다. 범인은 바로 장애를 가진 환경 운동가 류승범. 환경 운동가를 살인범으로 각본을 쓰다니 결말이 자못 기대되었다.
영화는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이성호가 잡히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성호는 강민호의 하나뿐인 딸을 납치했고, 자기를 사흘 안에 풀어주지 않으면 그녀를 죽이겠다고 강민호를 협박한다. 강민호가 범인임이 거의 확실한 이성호를 풀어주려고 애쓰면서 자신의 딸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다. 이 대목에선 김윤진이 뛰어난 변호사로 분해서 자신의 납치된 딸을 위해 살인범을 석방시키는 영화 <세븐 데이즈>가 생각났다. 공권력을 믿지 못하고 개인의 복수를 개인이 진행하는 것도 비슷했다. 물론 그 영화에선 김윤진은 그저 복수에 이용될 뿐이고, 이 영화에선 설경구가 복수의 대상이라는 점이 완전히 달랐지만 말이다.
공권력이란 단어가 나왔으니 얘기를 좀 더 진전시켜 보자. <세븐 데이즈>에서 김미숙은 공권력을 믿지 못해 자신이 직접 범인을 처단한다. 이때 범인은 정말 악역이었다. 그러나 <용서는 없다>에서 이성호가 처단하고자 하는 강민호는 죄는 있지만, 인간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강민호는 대사에서 “이유 없는 범죄는 없다”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본의 아니게 자신의 죄를 변호하는 발언이 된다. 그 자신 죽어가는 딸을 살리기 위해서 불의와 타협했던 것이다. 그래서 양심을 저버리고 자신에게 맡겨진 본연의 임무를 해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 일은 한 가족을 파멸로 내몰았다.
여기에서 이성호가 복수하고자 했던 대상에서 강민호가 맨 마지막 인물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강민호가 타협해야만 했던 그 권력의 세력들은 무사한데 그저 강민호와 매춘 여성 한 명만이 처단당한 거라면 관객들은 보고 나서도 뭔가 이건 아니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이성호의 누나 수진을 강간했던 고위층의 자제들은 이미 소리소문없이 죽은 지 오래다. 그들은 아무 생각 없는 그들의 행동에 응분한 복수를 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정말 간단히 죽어갔다. 하지만 위증을 했던 오은아(수진의 친구)와 딸을 위해 양심을 버렸던 강민호는 끔찍한 처벌을 받는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성호가 복수를 결심하게 된 잘못된 재판에 직접 연관되었던 인물들 대부분이 죽었다는 사실에 허탈감마저 느껴진다. 너무나 깨끗한 복수여서 말이다. 복수의 대상자들도 죽고 복수를 진행했던 자들도 다 죽었다. 강민호와 오은아만 죽으면 이건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고 위에서 얘기했지만 이렇게 너무나 깨끗하게 다 가 버려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남는다. 그래도 뭔가 선한 감정이 우위에 서기를 바라는 약한 마음이 있는 걸까. 용서라는 고귀한 감정이 세상에 존재하기를, 아니 용서라는 감정 자체가 고귀하다는 생각이 옳은 것이기를 바라는 얄팍한 심정이 너무나 깨끗하고 잔인한 복수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멍하니 있게 된다.
누군가는 누군가를 용서하고 그래서 누군가 한 명은 살아남아 구차한 삶이나마 이어나가고 그래서 그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전해주고 뭐 이런 익숙한 느낌이어야 하는데 다 죽어버리다니 말이다. 아무도 용서받지 못하고 아무도 용서하지 않고 말이다. 용서가 없는 상태를 보여주어서 오히려 용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싶었을까, 감독은? 거기까진 내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들었다.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하는 자들아, 보아라, 용서는 없다'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공권력(강민호가 대변하는)과 사회 고위층에게 전해졌다는 것 말이다.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한 공권력과 사회 고위층이 간담 서늘하게 당하는 영화였다는 것 말이다. 감독은 정의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일지 모른다.
애초에 이 영화에 반전이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데 도대체 반전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반전이 있을 수가 없다. 짜증이 날 정도로 호기심이 인다. 아, 도대체 감독은 어떤 반전을 숨겨놓은 것일까? 왜 나는 그게 예측이 안 되는 것일까? 나도 영화 꽤나 본다는 사람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감독의 반전을 보았다. 솔직히 예상 못 했던 그 반전을 인정한다. 그 반전도 충격적이었지만 끝까지 예상 못 한 나 자신도 내겐 충격이었다.^^ 반전을 눈치챌만한 포인트가 한 군데 있었고 그 장면 그 대사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난 그것을 그런 식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순간 아, 하는 느낌이 왔다. 그리고 그야말로 미친듯이 몸부림치는 설경구를 보면서 안타까운 눈물을 흘렸다. 스포를 피하려고 그 반전에 대해선 한마디도 못 하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설경구의 연기가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런지 어쩐지 잘 몰라도 어쨌든 훌륭한 연기였음을 알리고 싶다. 특히 마지막 자괴의 몸부림은 정말로 처절했다. 언제나 배역 속의 바로 그 인물이 되어 버리는 그의 연기 스타일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류승범의 절제된 살인마 연기를 어눌하고 어색하고 설경구와 화음이 맞지 않는 연기였다고 하는 모양이다. 내 생각은 반대다. 어린 시절부터 가슴속에 억눌러 온 증오의 감정, 치밀한 살인 계획과 실행으로 어두워진 그의 내면을 그보다 더 확실하게 보여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대단한 배우다. 솔직히 한혜진이라는 여배우에 대해선 기대하지 않았고 설경구와 류승범을 망치지나 않을까 우려했었다. 생각보다는 선전해서 볼만했다. 성지루나 남경읍 같은 조연 배우들의 하모니도 썩 뛰어났다. 특히 성지루의 웃음을 주는 감초 연기가 툭 튀어나지 않고 잘 어울린 것에 대해 무엇보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첫댓글 소설창작 시간에는 반전에 연연하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일반 독자나 관객에게는 반전의 쾌미가 크지요.^^ 저 역시 반전을 좋아하고요. ^^
아, 그렇군요. 희곡은 반전을 꼭 넣으라고 합니다.^^
@muse 반전이 없는 드라마나 운동경기나 인생은 앙꼬없는 찐빵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