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당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 영화 <마더>를 보고 나서
가슴 찢어지는 자식의 진실을 마주한 순간, 당신이 엄마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작은 마을에 살인사건이 났다. 지적장애가 있는 한 청년이 지목되었다. 우리 아들은 아니야! 엄마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 영화 <마더>의 주인공 엄마는 새빨간 꽃무늬 옷을 입고 살해당한 열일곱 살 소녀의 화장장을 찾아가서 눈을 까뒤집고 소리친다. “내 아들이 안 그랬거든요?” 엄마는 아들이 그러지 않았다는 걸 확신했다. 아니다. 엄마는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걸 깨닫고 나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들 도준이가 사람 죽이는 걸 똑똑히 봤다는 말을 듣자마자 렌치를 들고 목격자의 머리를 냅다 내리쳐 죽여버린다. 뿐만 아니다. “젤로 만만한 게 우리 도준이야.” 하고 분을 내던 엄마가 도준이보다도 만만한 청년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는가 하면, 쌀 몇 되에 몸을 팔아 먹고살아야 했던 피해자의 원한 맺힌 사진까지 도준이를 위해 훔치고 만다.
사랑은 모든 악의 원천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모든 것의 원인이다.
경찰이 그룹홈으로 폭행 사건 조사를 나왔다. 누가 여덟 살 민수(가명)를 신고했단다. 신고자는 여섯 살짜리 피해자의 부모라 했다. 아무리 그래도 미성년 아동을 조사한다고 보호자에게 연락도 없이 경찰이 면담을 시도하는 건 과한 것 같아 폭행 당시 상황을 아는 민수 외할머니에게 전화하는 것으로 조사를 갈음해달라 부탁했다. 민수는 내가 일하는 아동복지시설인 그룹홈에서 살고 있지만, 엄마와 외할머니와 연락하며 지냈다. 민수의 친권자는 엄마니까 엄마가 원할 때 마음대로 데리고 가겠다 주장하곤 했는데 결국은 원가정에 있는 동안 아이를 방치해서 사건을 만들어버렸다.
“우리 민수를 폭행으로 경찰에 신고해? 참, 웃긴다! 남자애들이 놀다가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요새 엄마들은 별나도 너무 별나다니까. 뭐 그런 걸로 경찰에 신고를 하나?” 전화를 받은 할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 우리도 할 말 많다고! 애를 싹 다 벗겨서 사진 찍어놨다고. 증거 사진을 남겨 놓은 거지. 모기가 애를 물어뜯는 동안 그룹홈 거기 있는 사람들은 다 뭐 한 거예요?”
“예?”
어느새 끼어들었는지 민수 엄마가 수화기 너머로 모기 물린 자국 어떡할거냐 호통을 치며, 피해자 부모보다도 더 난리를 부렸다.
“온 전신이 다 물어 뜯겼어, 애가. 거기서 모기를 키우는 거예요? 애를 돌보기는 하는 거예요? 당신들 도대체 뭐하는 거야? 나도 가만 안 있을 거야.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민수 엄마예요. 친권자는 나란 말이에요. 민수, 다시는 거기 안 가요. 그렇게 아세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엄마에게 요청한 원가족복귀프로그램은 몇 번씩 미루어서 끝내 중단된 상태였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마더>를 통해 ‘엄마는 죄지은 아들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아들을 위해 조건 없이 헌신하는 엄마의 따뜻하고 헌신적인 모성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했다. ‘엄마’가 지닌 숭고한 모성의 이면을 들춰내다니. 이 영화가 상영된 2009년 사회에서는 분명, 문제적인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5년부터 ‘맘충(엄마+벌레의 합성어)’이란 신조어가 각종 언론과 SNS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맘충’은 '엄마'라는 입장을 특권처럼 내세워 상대방의 이권을 강탈하거나 주변 사람들과 사회 전반에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일삼는 유자녀 여성들을 벌레에 빗댄 멸칭이다. 어린 자녀가 소리를 지르거나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데도 "하나뿐이거나 둘뿐인 내 자녀를 내가 귀하게, 기 안 죽이고 키우겠다는 게 뭐가 잘못이냐?" 라고 반발하며 제지하지 않는 엄마에 대한 혐오와 멸시의 의미로 등장했다. 우리 사회에서 모성은 이미 순백의 숭고함이 아니었다.
2017년에는 조남주 작가가 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 속에서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와 공원에서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엄마 김지영씨가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 ‘맘충’이라 속닥거리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맘충이라는 단어는 '무개념 엄마(?)'를 넘어 그저 '애엄마', 그러니까 애 키우는 주부에 대한 편견과 혐오로까지 확산되었다. 애엄마들이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브런치 먹으며 수다나 떠는 집단이라는 거다. "젊어선 된장녀 안 되려고 기를 썼는데, 결혼해서도 맘충 안 되려고 기를 써야하나?" 같은 댓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23년에는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이초등학교의 23세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났다. 1학년 담임이던 고인은 학습의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이마를 연필로 긁은 사건과 관련해 학부모 민원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 사망 후 4개월이나 지난 후 경찰은 “학부모의 지속적 괴롭힘이나 폭언·폭행, 협박 등 정황은 발견하지 못했다”라며 ‘혐의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다만 지난해 2월 고인에 대한 순직(재직 중 공무로 사망)이 인정됐다.
“자는 애를 깨울 수도 없어요. (기자: 왜요?) (손으로 살짝 건드리며) 이렇게 해도 안 돼요. 이거 성희롱으로 신고당한 사례가 있어요.”
“교직에 있다는 건 지뢰밭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20~30대 교사들은 언제 이곳을 탈출해야 하는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실정입니다.”
서울 유·초·중·고등학교와 특수학교 교사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잇따른 교사 사망의 원인’으로 가장 많이 지목된 건 ‘학부모의 지나친 갑질 문화와 악성 민원(53.9%)’이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자식이 아닌 누군가를(혹은 자식을) 죽이기도 한다는 사실은 이미 사회적 이슈가 되어 버렸다.
맞잖아. 엄마가 나 죽여서 없애려고 했던 거.
수사도 제대로 못 하는 형사들이 만만한 아들을 잡아다가 허위 자백을 받은 거라고 생각한 엄마는 아들을 채근했다. 그날 사람을 죽이지 않은 걸 생각해 내라고. 그런데 아들은 엉뚱하게도 다섯 살 때 일이 기억났다며 눈을 부릅뜬다. “그때 나 죽이려고 박카스에 농약 타서 먹였잖아.” 그랬다. 남편도 없이 세상천지 어린 아들과 둘이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동반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며칠간 구토만 하고 뜻대로 안 됐다. 말이 동반자살이지 다섯 살배기 아들 도준이 입장에서는 살인미수 사건이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도준이를 혼자 버려두지 않고 저 알록달록한 하늘나라에서도 둘이 함께 행복하게 살 길을 마련한다고 한 행동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도준이는 스물여덟 살이 되도록 다섯 살짜리 아이 모습 그대로 남게 되어버렸다. 엄마가 한시라도 한눈을 팔면 뭘 엎지르거나 다치는 아이처럼 늘 사고를 치면서.
엄마가 시도한 두 번째 살인은 성공했다. 아들이 사람 죽이는 걸 봤다고 이야기하는 고물상 할아버지를 향해 렌치를 휘둘렀다. 백발이 성성한 그이의 뒤통수에서 피가 튀는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렌치를 휘둘렀다. “아냐, 아냐, 이 새끼야. 우리 아들 발톱에 때만도 못한 새끼가.” 어떻게든 아들을 구한다고 한 행동이 어쩌다가 아들을 자꾸만 가두게 되었다. 첫 번째는 엄마 눈에 제일로 예뻤다던 그 다섯 살배기 아이의 삶으로, 두 번째는 엄마 덕에 벌을 받지 못해 영원히 죄인인 것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삶으로. 엄마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아들 도준이는 ‘다양한 위기, 실패, 결단, 방황을 통해서 주체성을 형성할 기회를 모두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모두가 다 도준이를 위한 엄마의 헌신이 만든 칸막이였다.
엄마와 춤, 끝나지 않는 먹이사슬
아들 도준이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처럼 엄마 옆에서 사는 삶으로 돌아왔다. 이게 엄마가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쌀 몇 되에 동네 남자들에게 몸을 팔아 치매 걸린 할머니를 돌보던 고등학교 2학년 아정이가 남자가 싫다고 하다가 아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었는데. 고물을 주워 팔아 근근이 살던 노인네는 엄마가 휘두른 렌치에 맞아 영문도 모르고 죽었는데. 부모 없이 도계산 기도원에 지내던 다운증후군 종팔이는 억울하게 아정이를 죽인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서 징역을 살게 되었는데. 엄마는 나쁜 일, 끔찍한 일, 속병 나기 좋게 가슴에 꾹 맺힌 거 깨끗하게 풀어주는, 엄마만 아는 그 침 자리를 찌르고 나서, 옷 속으로 손을 숨겼다가 손으로 눈을 가렸다가 훠이훠이 팔을 휘둘렀다가 하면서 춤을 춘다. 혼자만 잊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바보” 소리를 들으면 발작 단추가 눌려서 또 어디서 누구를 죽일지도 모르는 상태로, 여자와 한번 하고 싶어도 같이 할 여자를 만날 수 없는 마을 속으로, 도준이 엄마보다 힘센 누군가가 윽박지르면 아무 소리도 못하고 당하고 마는 세상 속으로 도준이가 돌아왔는데. 이 세상 수많은 여성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족쇄 채운 채 희생과 무임금 노동과 금욕을 강요해 온 사회의 억압기제는 날마다 모양을 바꿔가며 엄마를 더욱 옥죄여 올 텐데.
첫댓글 정성스럽게 발제문을 작성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더, 엄마는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와 "자식은 어떤 존재였던 걸까?"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민수, 민수 엄마, 할머니, 맘충, 초등학교 선생님 등 각기 다른 인물들이 각자의 욕망을 가지고 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감기로 아픈 와중에도 써 주신 발제문 잘 읽었습니다. 수업 시간 많은 이야기들이 기대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갈대밭에서 춤추는 김혜자의 모습은 아름답고 감성적입니다.
발제문과 함께 한발짝 나아가 고민해주신 댓글 읽고 넘넘 기뻤습니다. 엄마나 자식에 대한 화구는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중심을 갖고 다루기가 외려 힘든 주제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