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에 들어가자(안식과 쉼)
2023. 7. 16(주일낮예배) 시편 95:1-6
여러분을 가장 어렵고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몸이 아픈 것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그런데 우리를 힘들게 하는 또 다른 것은 관계이다.
여러분은 대인관계가 어렵지 않는가? 저의 MBTI는 INTJ이다. 그림을 보면서 설명을 드리면 저는 에너지의 방향(E/I)이 내성적이다. 그래서 저는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저는 여행을 가면 숙소에서 먹고, 자고, 수영하고 돌아오면 좋은 여행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의 인식기능(S/N)은 오감보다는 직감을 따른다. 이러한 저는 무슨 일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 배경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한다. 그리고 판단기능(T/F)은 원리와 원칙이다. 사람들의 마음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기 보다는 원칙대로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리고 저의 행동방식(J/P)은 목적을 두고, 그 목적대로 행동한다.
이것이 저의 성격이다. 그런데 지구촌에 모든 사람이 다 저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또 오감에 따라 인식을 한다. 그리고 무엇을 판단할 때 원리와 원칙보다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여서 판단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행동방식은 목적보다는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즉흥적인 결정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과 제가 함께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저와 성격이 전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면 천하의 콤비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은 성격이 달라서 힘들고 어려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 우리는 육체적 연약함 때문에 힘들어하고, 또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우리에게 좋은 친구가 있어서 서로 돕고 위로하고 살면 좋겠는데, 성격이 너무 달라서 오히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가 간절히 찾는 것이 있는데, 오래 전에 유해진은 이렇게 표현한다.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 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그런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모든 어려움이 다 사라지겠는가? 성경의 시작은 천지창조이다. 우리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창세기 2장을 보면 그 하나님이 안식하였다고 성경을 기록한다.
(창 2: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마쳤다는 말은 완성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완전하게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왜 하나님은 안식하였겠는가?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안식하였겠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신 후에 너무 힘들어서 안식하신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은 유해진의 광고처럼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하는 모습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안식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한번 보시기 바란다. 출애굽기 20장에서 하나님은 너와 네 자녀와 네 남종과 여종 뿐 아니라, 네 집에 거하는 객이라도 모두 아무 일을 하지 말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고 명령하였다. 이 말은 안식일에 아무 것도 안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너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였겠는가? 출애굽기 20장 11절을 함께 읽기 바란다.
(출 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었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셨다. 아니 신명기 5장에도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이유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였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6일동안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이시고, 또 나를 사랑하여서 구원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면 안식일을 지키는 그 모습이 어떠하겠는가? 2022년 통계에 의하면 전세계 기독교 인구가 25억 5천 9백 8십 7명이다. 그런데 주일이 되면 이 많은 모든 사람이 자신이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하나님 한 분만을 생각하면서 그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드리고, 평상시 하지 못했던 기도도 열심히 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그 능력과 은혜를 기억하여서 그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모습이다. 우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주일 오전, 오후예배를 드리고, 또 주일학교 교사로 성가대로, 식당봉사로 하다보면 너무 힘들고 피곤한 날이 안식일이다. 그런데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26억의 기독교인이 하나님께 찬송을 드릴 때 하나님은 그 찬양을 받아야 하고, 또 기도를 하면 그 기도에 응답하기 위하여 그 기도를 다 기록해야 하는 날이 하나님의 안식이다.
무슨 말인가? 우리 입장에서, 또 하나님의 입장에서 전혀 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안식인가? 무디 선생님이 어린 딸과 함께 시카고의 겨울 길을 걷고 있었다. 눈이 많이 와서 빙판이 된 그 길을 걸을 때 무디 선생님은 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런데 딸은 빙판 길에서 마음껏 놀고 싶어서 막무가내로 손을 놓으려 하였다. 그래서 무디 선생님은 딸의 손을 놓아 주었다. 그 순간 딸은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그래도 용감하게 일어난 딸은 다시 빙판길을 걸으려 하였지만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 번을 넘어진 딸은 결국 울고 말았다. 그때 무디 선생님은 그 딸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때 딸은 이제 아빠의 손을 잡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아빠 손을 잡고 뛰기도 하고, 또 미끄럼을 타기도 하였다. 그렇게 아빠 손을 잡고 장난을 치는 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였다.
그러면 그 딸을 보는 아빠는 어떤 표정이었겠는가? 이것이 안식이다. 안식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비록 내가 서 있는 길이 빙판길이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그 분의 손을 꽉 잡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손을 꽉 거머쥐는 내가 너무 예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그 상태가 안식인 것이다.
여러분은 이 안식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은 제사장과 레위인이 성전으로 나아오는 자들에게 예배에로 초대하는 찬양이다. 우리교회로 말씀드리면 제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찌니라 라고 예배에로 초대하면 할렐루야 찬양대에서 멋진 찬양을 한다. 마찬가지로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온 자들을 예배의 자라로 초대하는 것이다.
성전에 올라온 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 시편 95;1-3을 읽기 바란다.
(시 95:1-3)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2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3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제사장은 성전에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하나님께 즐거이 외치자고 제안한다. 아니 제사장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와 즐겁게 노래하자고 고함치고 있다. 그래서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는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고 있는가? 아빠와 어린 딸이 복날에 삼계탕 전문점에 갔다. 식사를 하기 위하여 테이블에 앉았을 때 사장님은 와서 그냥닭은 10,000원이고, 인삼닭은 15,000원이라고 어느 것을 주문할 것인가?를 물었다. 그 말에 딸은 고개를 갸웃하며 인삼닭은 인삼처럼 생긴 닭이냐?고 물었다. 그때 아빠는 인삼닭은 인삼을 먹여서 키운 닭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때 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묻는다.
아빠 왜 닭이 먹은 인삼값을 우리가 내?
제 생각에는 이렇게 따지고 계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따지는 사람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겠는가?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시편 95편 8절을 보면 므리바라는 지명이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이 신광야를 지나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이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마실 물이 없어서 모세에게 돌을 던질 기세로 물을 달라고 하였다. 그 말에 모세는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하고 말한다. 그리고 모세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내었다.
이것이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므리바(다툼) 사건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하지 않고, 자신의 불편한 것만 해결하려 하였다. 그래서 다툼을 하였기에 므리바라고 한다. 또 그 므리바를 맛사(시험)라고도 부르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정말 물을 줄 수 있을까? 하면서 시험하였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은혜는 기억하지 않고 자기의 필요만 생각하여 불평하고 원망하여 다투는 사람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지 못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그 안식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고 있는가? 참된 안식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할 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함께 예배하고, 주의 이름으로 봉사와 교제를 할 때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 안식에 들어가는 복된 신앙생활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8월 3일(목)-5일(토) 전교인 수양회는 이 안식을 체험하는 은혜가 있음을 기억하고 기대하는 자여교회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