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생전(生前)에 염원과 한
이 재 곤 (2026. 9. 14.)
나는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아버님의 지나온 시절을 잘 모르고 자랐습니다. 더구나 아버님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더욱 몰랐고 누가 상세히 이야기해 주지도 않아서 막연히 상상으로만 짐작하고 지냈으며 궁금할 때도 있었지만 저와 같이 20여 년 동안 돌아가실 때까지 그냥 살아오시다 아버님이 하세(下世)하신 지도 어언 57년이 되었습니다.
약 30여 년 전 할머님 본인의 일생을 쓰신 “고령박씨(高靈朴氏) 소회문(所懷文: 마음에 품고 있는 회포懷抱를 밝힌 글)”이 집안에 오랫동안 보관 해온 여러 문적(文籍) 속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가보(家寶)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으며 할머님의 소회문을 읽어보고 당시에 우리 집의 실제 사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참으로 가슴 두근거리고 기뻤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부터 할아버님 할머님 아버님 어머님 생애(生涯)에 대하여 더욱 궁금하여 우리 형제자매들이 보고 들어서 알고 있는 대로, 또 일가친척들이 알고 있는 대로 물어보고 듣고 기록해서 남기기로 마음먹고 적어 모으기를 시작한 지 약 2년이 지난 2012년 말에 책으로 완성 발간하여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할아버님과 할머님의 일생은 세월이 많이 지나서 생존하는 분 중에서 아는 분이 없어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여 집안에 전해오는 이야기와 저의들이 조사해서 알게 된 내력을 정리해서 기록하였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내외분의 일대기를 조사해서 기록하는 과정에 아버님 일생의 염원(念願)과 한(恨)을 대강 짐작하며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은 출생 후 5개월이 지났을 즈음 할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셔서 편모(偏母)슬하에서 외동아들로 성장하시면서 양친(兩親)이 계시고 형제자매가 많은 다른 집들이 부러웠으며 소년기부터 가사(家事)를 책임져야 했으므로 어려운 살림을 꾸려서 늘려가기 위해 일생을 근검절약(勤儉節約)하셨고 집안의 종형제(從兄弟)나 마을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제대로 서당을 다니며 공부를 못한 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은 것 같았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일대기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저의들과 함께 살았던 동안 알고 느낀 바를 간단히 집약(集約하면 첫째는 가족이 많기를 염원하셨고 둘째는 가정 형편이 넉넉해지기를 염원하셨고 셋째는 공부를 많이 못 하신 것이 한이 된 것 같았습니다.
아버님 유년에는 할머님 고모님 단 세 식구가 외롭게 살아오셨습니다. 그 이후 아버님이 장성해서 결혼하시고 슬하에 5남매를 두셨는데 모두 성장해서 출가시킴으로서 가족이 이십여 명으로 늘어나서 남부럽지 않게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생전에 묵묵히 염원 해오신 가문에 대를 이을 손자 다섯을 보았으니
한가지 염원을 이루셨습니다. 손자가 태어날 때마다 우리 집에서 삼십여 리의 거리에 있는 읍내까지 직접 가셔서 미역을 사서 손자를 낳으면 왼손으로 들고 온다는 풍습에 따라 왼손으로 들고 두루마기 자락을 휘저으시며 동구(洞口)를 오시든 모습이 아직도 뇌리(腦裏)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버님은 근검절약의 표상(表象)이셨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어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아버님 유년에 물려받은 재산이 논 약 500평, 밭 약 150평 정도이고 집이 없어 중부(仲父)님 댁에 셋방을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 남달리 수십 년을 피땀 흘리며 노력하시어 생전에 대지(垈地) 약 200여 평에 큰방 채 사랑채 헛간채(외양간, 디딜 방앗간) 뒤주 채를 두루 갖춘 주택을 지어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불편한 점이 없을 정도로 이루었으며 논밭 약 3,000여 평에 산도 4,000여 평을 마련하여 부자(富者)는 아니라도 가족이 먹고 생활하며 살아가는데 크게 부족한 점이 별로 없을 정도로 늘리시므로 또 한가지 염원을 이루셨다고 생각됩니다.
아버님은 제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저에게 천자문(千字文)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래 동무들은 삼삼오오 모여 딱지치기나 숨바꼭질 자치기 놀이를 하며 마음껏 뛰노는데 나만 붙잡혀 천자문을 배우는 것이 싫었습니다. 나중에 성장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버님은 소년기에 남과 같이 공부를 많이 못 하신 것을 평생 한으로 간직하신 지 몰랐습니다. 아버님으로부터 천자문을 조금 배우고 그 뒤에 재학 시절에는 방학 때 형님으로부터 한문을 배웠는데 그때는 싫었지만 성인이 되어 공무원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한자를 배운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으며 뒤늦게 한문 배우기를 잘했다고 깨달았습니다.
아버님은 어려운 환경과 여건에도 굴(屈)하지 않으시고 흐트러짐 없이 근엄(謹嚴)한 자세를 견지(堅持)하시고 살아오셨으며 저희에게 “사람은 경우(境遇: 사리事理나 도리道理)가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저의 평생 삶의 지표(指標)로 삼아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려고 변함없이 계속 노력하고 있으며 후손들에게 모범을 보이겠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불초자(不肖子) 재곤(在坤) 삼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