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 그리고 나♡
성경: 창세기 2장 18~24절
찬송: 78, 27
설교: 이 경준 목사님
24.07.21(일)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2: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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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창조를 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은 하나님과 똑같이 만들어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되어있는데 영문 성경을 보면 “So God created humans to be like himself; he made men and women.”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문장 중에 “be like himself”라고 표기된 것과 같이 하나님을 닮은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최초의 사람은 하나님과 같이 완전하고 영원한 존재로 만들어졌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이 불완전한 면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존재로 만들어졌다면 더는 하나님은 사람에게 필요한 분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의 모습을 묘사한 성경을 보면 여전히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필요하였었고, 또 하나님의 말씀(명령) 안에서 살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만드시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담은 불완전하고 부족함이 많은 창조물이라는 것이 확실합니다.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표현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담을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은 아담이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름답고, 모든 것이 풍성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담이 혼자서 그곳에서 살기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에덴동산에 부족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담에게서 부족한 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위하여 두 번째 사람인 여자를 아담의 갈비뼈에서 취하여 만드셨습니다. 본문 창세기 2장 18절에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은 지으리라”라고 하시며 아담의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 줄 두 번째 사람을 창조하신 과정이 나타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사람의 모습은 남자나 여자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한 가정을 이루고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면서 한 몸같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장 18절을 잘못 해석하면 여자는 남자에 부속(附屬)된 인격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게 되는데 이런 오해가 고대 유대교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인격 비하의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닮은 인간을 만들고자 하셨던 뜻은 여자 없이 남자만 있게 하는 것도 아니고, 또 남자 없이 여자만 살아가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돕는 배필이란 남녀 간에 어느 한쪽만을 뜻하는 말도 아닙니다. 남녀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이해하고 도와주며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완전하지 못한 피조물입니다. 남녀는 서로에게 돕는 배필이 되는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돕는 배필이 되고, 여자는 남자에게 돕는 배필이 되어 이 땅 위에서 번성하라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서로가 신체적인 조건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면에서는 남성이 우월할 수가 있고 또 다른 면에서는 여성이 우월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면만을 내세워서 상대방을 비하하고 멸시한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의 뜻을 어지럽히는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남자는 남자인 대로 또 여자는 여자인 대로를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하와는 아담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도 하나님의 뜻하신 바대로 돕고 채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아담도 하나님께서 함께하게 하신 하와가 자기의 갈비뼈와 살로 만들어진 연약한 인격체라는 것을 알고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하와를 보고 했던 말이 창세기 2장 2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取)하였은 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아담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돕는 배필이 내 뼈의 일부분이요, 내 살로 채워진 내 몸이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배우자를 자기의 취향에 맞게 뜯어고쳐 보려고도 합니다. 그런 발상이 도를 넘으면 가정에 불화를 일으키게 합니다. 그때부터는 돕는 배필이 아니라 멸시와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 가정의 불화가 빌미가 되어서 깨어지기까지 하는 이유는 부부가 서로 ‘돕는 배필’이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도움만을 구하는 부부의 연은 오래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혼기가 채 지나기도 전에 다투기도 하고, 서로 간에 비판과 멸시와 분노와 수치감을 주고받습니다. 원수가 한 지붕 밑에 같이 산다는 말이 이 같은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 남편들의 대부분은 아내는 남편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가정 파탄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부족한 면을 도와주며, 이해하고, 힘이 되어줄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도움받기만을 원하는 사람은 실망을 맛볼 수밖에 없지만, 스스로 상대의 도움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행복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돕는 배필이란 남편은 아내를 이해하여 돕는 자를 말하며, 아내는 남편의 부족한 면을 채우며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부부가 서로 부족한 면을 감싸주고 돕고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에덴의 모습이 우리 가정과 사회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숙한 사회도 그와 같은 생각의 사람들이 많아질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근래는 오랜 세월 동안 남성우월주의 속에서 성차별을 받으며 살아왔던 여성들이 여권신장 운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19세기경 서구에서는 페미니즘(feminism) 이라는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유입된 줄로 알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이란 남성우월주의(男性優越主義) 사회 속에서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했던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얻기 위해서 시작한 운동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이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개혁이란, 손바닥 뒤집듯이 단시간에 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회에서 공존하는 남녀는 서로 합의된 부분부터 점진적으로 양보하고 바꾸어 나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 세월 고착화(固着化)되어 있는 관념을 하루아침에 뒤엎어 보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반작용으로 분란이 가중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 일부 여성 운동단체들은 사회에서 쟁점이 되는 여러 가지 문제에 개입도 하면서 급진적인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동성결혼 문제와 성전환을 합법화해달라는 것괴 무분별한 낙태의 자유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왜? 갑자기 사회에서 공감되지 못할 문제를 들고나와서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겨우 여성들의 권리가 사회적 관심 속에서 발전되기 시작하였는데 자충수를 두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 모든 생명체에게는 암과 수의 성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원리이자 질서입니다. 이 질서를 인간이 마음대로 바꾸고 깨트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위적으로 여자의 몸을 입게 된 사람이 어떻게 후손을 생산할 수가 있으며, 또 인위적으로 남자의 몸을 입게 된 사람이 어떻게 생식 기능(生殖機能)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생물학인 여성이 여자이고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기능을 가진 사람이 남자인데 어떻게 남자가 여자가 되고 여자가 남자가 된다고 할 수 있으며 또 인정해 줄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이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섭리 속에서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하나님의 영역까지 넘보는 잘못을 범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살아가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뜻 안에서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사역을 마치신 후 인간에게 경고한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깊이 생각을 해 보길 바랍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참된 사람인지, 아니면 그 말씀에 역행하여 저주를 자초하는 사람인지를 말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가정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혹, 지금까지 잘못된 삶을 살아왔었다면 돌아서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이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길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길이며 그 길이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야 할 길입니다. 부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추구함으로 복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돕는 배필로 남편은 아내를 이해하여 도우며, 아내는 남편의 부족한 면을 채우며 돕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부부가 서로 부족한 면을 감싸주고 돕고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에덴의 모습이 우리 가정과 사회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성숙한 사회도 그와 같은 생각의 사람들이 많아질 때 이루어 진다고 하였습니다.
예전의 대가족 형태와 다르게 날이 갈수록 변화하고 발전하는 사회이지만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가족의 사랑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바쁘고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사랑으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여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는 부부사이가 되고 가족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가정을 있게 하신 창조질서가 세워지고 아름다운 가정들이 다시 회복되고 세워나갈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믿음의 가정들부터 먼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배려하여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가족이 사랑으로 하나되는 건강한 가정으로 회복되는 은혜가 있게 하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올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