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후려치는 표현만이 명문장이라 불리리니,
루카누스의 묘비명 - 본문317
"나는 말보다 말하려는 요지가 뚜렷해서 말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요지 자체가 듣는 이의 생각을 가득 채워 주길 바란다."는 작가의 변이 무색하다. 오늘날의 교육과 비교해도 전혀 낯설지 않는 통찰을 담아내고 있는 좋은 글이지만 요지가 뚜렷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500년 전 몽테뉴에게도 교육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26장 아이들의 교육에 관하여>는 첫 아이를 기다리는 절친한 집안의 신부에게 쓴 편지이다. 공감되는 문장들을 옮겨 적으며 그의 교육에 관한 생각을 짚어본다.
*아이의 자질 이해
마치 농사에서 씨앗을 심기 전과 심을 때의 일은 일정하고 쉽지만, 심은 것이 생명을 갖게 된 뒤에는 그것을 키우는 데 천차만별의 방식과 어려움이 있는 것과 꼭 같이, 사람도 심는 데는 별로 힘이 들지 않지만 태어난 뒤에 기르고 가르치는 데는, 노고와 걱정으로 가득한 갖가지 심려를 짊어지게 됩니다. p. 277
* 교사의 역활
학생을 앞세워 종종걸음 치게 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학생의 걸음걸이를 평가하고 학생의 기운에 맞추려면 자기 자세를 어느 정도까지 낮춰야 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 비율을 맞추지 않아 우리는 모든 것을 망칩니다. 그 비율을 찾아 아주 적절하게 조정하는 것, 그것은 내가 아는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입니다. p. 279-280
* 비판적 사고
선생은 학생이 무엇이든 체에 받쳐 보게 해야 합니다. 그 무엇도 단순히 권위에 복종해서, 또는 남의 말을 믿고서 받아들이게 하지 말야햐 합니다. p281
* 경험을 통한 배움
벌은 이 꽃 저꽃에서 꿀을 따 오지만, 그것으로 순전히 제 것인 꿀을 만듭니다. 그 꿀은 이제 백리향도 꽃박하도 아니죠. 그와 마찬가지로 학생은 다른이에게서 빌려온 조각들을 변형시키고 섞어서 완전히 자기 것인 작품, 즉 자신의 판단력을 만드는 것입니다. 가르침, 숙제, 공부의 목표는 오직 자신의 판단력을 형성하는 데 있습니다. p282
* 대화
카르타고가 망한 날짜보다는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성격을 파악하고, 마르켈루스가 어디서 죽었는가가 아니라 그가 거기서 죽은 것이 어째서 그의 소임에 합당치 않은 일이었는지를 납득하게 해야 합니다. 역사의 이야기들을 가르쳐 주기보다 역사를 판단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p290
***** 몽테뉴의 생각
어린아이의 교육에선 욕구와 열의를 북돋워 주는 것 만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책을 잔뜩 짊어진 당나귀밖에 만들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매질을 해서 학문을 잔뜩 우겨 넣은 주머니를 아이들에게 주고 잘 간수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학문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는, 그것을 담아 두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것과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p327
***** 나의 생각
교육 현장을 돌아보게 되는 글이었다. 학생으로 교사로, 50년 이상을 학교를 오가며 살았기에 어느 한구절 가볍지 않았다. 명문장들 속에서 홀로 빛을 내며 나를 아프게 하는 한문장이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 버린 후에야 사는 법을 가르칩니다." 교육에서 한 발 물러선 지금에 와서야 이 책을 만나다니. 그래도 다시 새겨 담는다.
가르치는 자의 권위는 배우려는 자에게 해롭다.
그를 야외에서, 불안 속에 살게 하라.
첫댓글 대여 독서로 이 책무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기간이 길어지다보니 쉽지가 않더군요. 하여 큰 맘 먹고 책을 구매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으로 인하여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책제독서를 편안히 즐길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느긋합니다.
그동안 어려운 가운데 독서하시고 글을 올리셨군요. 보통 2주 간격으로 대여를 하던데요. 큰 맘 먹고 책을 구매하셨는데, 3권을 통째로 구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길 바랍니다. 남은 기간도 화이팅하세요~
25장과 26장이 교육에 관한 주제로 어떻게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거리를 많이 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교육을 통해 주어야 할 것을 보고는 답답함과 부끄러움이 들었습니다. 나도 알지 못하는데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것들을 말해줘야 합니다. 안다는 것은 무엇이요, 모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공부의 목적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용기-절제-정의란 무엇인가, 야심과 탐욕, 봉사와 복종, 자율과 방종의 차이는 무엇인가, 참되고 견실한 만족은 어떤 특징으로 알 수 있는가, 어느 정도까지 죽음, 고통, 수치를 두려워해야 하는가. ----- 어떤 동기가 우리를 움직이는지, 우리 안에 있는 그처럼 다양한 충동의 원인이 무엇인지 말해줘야 합니다."
"아버지는 다른 무엇보다 강요받지 않은 의욕으로 스스로 원해서 학문과 공부를 맛보게 하고, 엄격함이나 강요 없이 아주 온화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내 영혼을 키워 주라는 충고를 받아들였다"
아이들에게 말해주어야 할 것들은 저도 두고두고 생각해보아야 할 주제 같아요. 몽테뉴 아버지의 "강요받지 않은 의욕"을 통한 교육도 기억에 남네요
부모가 되고자 해서 엄마 아빠가 되기보다는 아이가 생기니 부모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무리 대비를 하고 있어도 막상 살아 숨쉬는 존재가 내 품 안에 있으면 완벽한 이성적 보살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타고난 본성을 어느 정도 거슬러서 교육을 한다는 것은, 특히나 괄목할만한 성취를 이루게 한다는 것은, 각고의 노력과 무자비함이 필요하기에 부모로서 쉽지 않다고 봅니다. 어느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제자들은 OO대학도 보내고 했는데도, 내 자식은 한량에 백수라네~. 문제 안 일으키고 살아있기만 바랄뿐이네..."
그렇군요. 몽테뉴가 대머리였군요. 자신도 밝혔듯이....가인늘샘이 올리신 사진을 보고야 다시금 깨달았네요. / 인간인 이상 교육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문제인가 봅니다. 몽테뉴 의견이 지금도 신선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속성이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