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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부산일보 신춘문예 - 시조]
겨울, 새벽 일터 / 김진길
외투깃 절로 서는 대한절 이른 아침
밤새 지친 가로등이 어둠을 배웅하고
발갛게 얼음 든 귓불,목도리를 후빈다.
장작불 익어가는 공사장 한 모퉁이
곁불 쬐는 인부들의 웅숭그린 어깨위로
허어연 입김 오가며 안부를 건네고
아직 어스름한 언 땅위의 그림자들,
잉걸불 환한 온기로 가슴마저 녹여내며
묵직한 삶의 봇짐을 한 덩이씩 부린다.
알큰하게 몸 더워야 하루가 거뜬하다고
바람 숭숭 든 찌개에 소주 한 잔 곁들이는
한평생 노역의 훈장이 새벽달에 빛난다.
[2006 신춘문예 - 시조] 심사평
남성적 육성, 그 다양성의 발견
응모작의 양은 평년보다 약간 웃도는 정도였으나 근년 들어 두드러지게 눈에 뜨이는 현상 두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고른 질적 향상으로 응모 된 거의 전 작품들이 시조의 모양새로서 손색이 없다 보니 심사에 고심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응모자의 지역적 확장으로 영남 일대보다도 그 밖의 지역의 응모자가 더 많아졌다는 점이다.
예선에서 윤평수의 '저녁놀',김명희의 '어떤 귀가',송재선의 '가을 산행',송필국의 '안개 저편',김진길의 '겨울,새벽 일터' 등 다섯 편이 뽑혔다. 이 작품들은 특출한 가작이 없는 대신 고른 수준작으로서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세워도 좋을 만한 것이었다. 우리 시조는 대체로 가냘픈 여성적 서정,가야금 산조 같은 아기자기한 가락이 그 특징처럼 되어 왔는데,김진길의 '겨울,새벽 일터'는 다소 거친 흠이 없지 않은 반면,낮고 굵은 남성적 육성,거문고 같은 중후한 가락이 다른 작품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을 사서 시조의 다양성을 계도하는 뜻을 더해 당선작으로 낙점했다.
시조시인 최승범·장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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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주산지 물빛 / 조 성 문
청송땅 샛별 품은 갈맷빛 외진 못물 갓밝이 저뭇한 숲 휘감아
도는 골짝만 된비알 뼈마디 꺾는 물소리 가득하다.
호반새 울음 뒤에 퍼지는 새벽 물안개 실오리 감긴 어둠도 한
올씩 풀어내고 삭은 살 연기가 되고 재 되는 저 춤사위.
사는 일 짐 부려 놓고 제 거울 들여다보는 고요도 버거운 이
차갑게 돌아앉고 못 속에 누운 왕버들 퉁퉁 부은 발이 시리다.
숨 돌릴 겨를 없이 짙붉게 타는 수달래 먹울음 되재우고 저마
다 갈 길 여는가 내 앞에 툭툭 튄 물살 쌍무지개 지른다.
[2006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세밀한 묘사, 뛰어난 시적 에스프리
일차로 우선 가려진 작품을 놓고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정 수준에 오른 작품이 작년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다. ‘주산지 물빛’ ‘민둥산의 봄’ ‘삽자루’ ‘쌍화점’ ‘어떤 우산’ ‘수화’ ‘하늘 가마’ ‘엑스트라’ 등의 작품은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밀어도 좋을 만큼 특징적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가혹하게도 단 한 작품을 선택해야 하고, 그럴 경우 심사자는 보다 엄정하고 공정한 시각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몇 번의 정독을 거치면서 나는 다음의 세 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시적 대상에 대한 묘사력이 어느 정도 새로운가, 시조의 가락적 운용을 얼마만큼 자연스레 하고 있는가. 이 요건들이 비슷하다면 같이 응모한 작품의 수준이 동등한 수준을 이루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삽자루’ ‘어떤 우산’ ‘수화’ ‘하늘 가마’ ‘엑스트라’ 등은 소재나 표현기법 등에서 새로움은 있었으나 다소 어긋나는 가락의 운용이나 뒤를 받쳐주는 다른 작품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민둥산의 봄’과 ‘쌍화점’의 응모자는 각각 오랜 숙련을 거친 탄탄함이 돋보였으나 시적 상상력의 새로움이 다소 미흡하여 다음 기회를 보기로 하였다. ‘주산지 물빛’은 세밀한 묘사도 그렇지만 시적 에스프리가 뛰어나고 감각과 가락의 운용 또한 수준급이다. 보내온 작품 전체가 태작이 없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또한 시인될 단단한 자질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긴장을 늦추지 말고 시조단에 새로운 정신을 열어주는 좋은 시인이 되길 바란다. /이지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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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동아일보 신춘문예]시조 당선작
화첩기행 / 김종훈
오종종한 징검돌이 샛강 건너는 배경으로
미루나무 두엇 벗삼아 길나서는 물줄기와
기슭에 물수제비 뜨는 아이들도 그려 넣는다
여릴 대로 여리더니 어깨 맞댄 물길들이
한 줄 달빛에도 울렁이던 맑은 서정을 삼키고
여울은 화폭을 휘적시며 세차게 뒤척인다
구도마저 바꿀 기세로 홰를 치며 내달리다
분 냄새 이겨 바른 도회지 그 풍광에서
노을 빛 그리움에 젖어 물비늘 종일 눕는다
어느새 귓가 허연 강가 풀빛 아이 불러내며
캔버스를 수놓던 현란한 물빛 지운 채
꿈꾸던 역류를 접고 강은 고요 속으로 흐른다
[2006 신춘문예]시조부문 심사평
시조 100년의 새해가 밝아왔다. 오랜 역사를 끌어안고 소리치며 달려온 오직 하나 뿐인 겨레의 시가 새롭게 태어나는 아침을 맞고 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는 이호우 김상옥 선생 등 현대 시조의 선각들을 발굴한 것을 비롯해 겨레의 얼과 모국어의 속 깊은 울림을 가장 드높게 빚어 올려왔다. 올해도 그 기대에 도달하기 위해 치열하게 쌓아온 기량들이 번뜩이며 날을 세우고 모여들었다. 형식의 제약이 시를 구속한다고 생각하면 시조는 제 모습을 지니지 못한다.
오히려 시조는 모국어를 깊고 아름답게 숙성시키는 이상적인 그릇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당선작 ‘화첩기행’(김종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저 쉽게 눈에 띄는 강 하나를 아주 섬세한 붓끝으로 화폭에 옮겨놓고 있다.
시대의 아픔을 드러내거나 목청을 과장하지 않으면서 눈으로는 다 볼 수 없는 내면의 풍경들을 투명한 감성으로 한 올씩 건져 올리는 품이 한 경지를 이루고 있다. “오종종한 징검돌이 샛강 건너는 배경으로” “여릴 대로 여리더니 어깨 맞댄 물결들이”에서 새처럼 날개를 펴고 물고기처럼 꼬리치며 뛰노는 생동감이 넘친다.
여기까지 밀고 온 힘을 더욱 북돋아 시조의 내일을 밝혀주길 바란다.
‘고구려에서’(방승길) ‘겨울 탱자나무’(임채성) ‘화인(火印)’(석연정) ‘고로쇠나무’(설인) 등이 글감 뽑기와 그 깎고 다듬기에서 당선권에서 끝까지 머물렀음을 밝혀둔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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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국제신문 신춘문예-시조]
화첩 기행 / 김종훈
폭포 소리 휘몰아친다
강하고 화려하게
절창의 한 대목을 풀어놓은 가을 캔버스
제 노래 겨워 겨워서 산과 산이 자지러진다
굿판은 끝이 났다
주연은 이미 가고
추임새로 덧칠하던 꾼들마저 하나 둘 떠나
늦은 밤 불꺼진 무대, 시나브로 무너진다
뉘우침이 밀려온다
섣달 초입 그 한기처럼
버릴 거 다 버리고 구원하듯 팔 벌린 나무
나이테 또 하나 그리며 속절없이 여위어간다
이제 붓을 놓으려나
다독이는 침묵의 말들
화폭마다 다복다복 여백을 채워 넣고
순백의 적요 속으로 풍경들이 걸어간다
[2006 신춘문예-시조] 심사평
현실과 낭만 어우러진 어휘 돋보여
수많은 작품을 앞에 놓고 선자들은 잠시 환상에 젖었다. 미지의 시인들, 새로운 언어의 비밀을 아는 시인들이 신새벽의 문을 열고 다가오고 있었다.
눈을 뜨고 정성스레 한 편 한 편을 정독하면서 그 환상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 같은 믿음을 갖게 했다. 김종훈의 '화첩기행', 김종학의 '늦가을, 남천강에서', 우은진의 '서원 태양광 발전소'가 그 증거였다. 이 투고자들은 어느 곳에서라도 시인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단아하면서도 운문성을 잘 살린 작품, 모국어의 결을 티없이 풀어내는 작품, 건강하고 사실적인 눈으로 대상을 그려내는 작품이 제외된 세 작품의 매력이었다. 그러나 신춘문예가 지닌 특성을 곰곰 되새기면서 이 작품들이 지닌 실험의식, 참신성, 종장의 긴장감 등에서 당선작과는 조 금씩의 아쉬움을 드러내었다.
결국 올해의 영광은 '화첩기행'을 투고한 김종훈에게 닿았다. 적절한 비유, 활달한 구도, 현실성과 낭만성이 조화를 이룬 어휘 구사 능력 등에서 단연 돋보이는 시인이었다. 응모한 작품의 수준이 고를 뿐 아니라 시조라는 정형의 체득면에서도 적공의 연륜이 적지않아 보였다. 다만 최상의 기교는 그 기교를 독자가 알아차릴 수 없을 때라는 사실을 명기하면서 삶의 현장에서 채굴한 언어들을 정성껏 시조에 담아내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가인이 되길 기대한다. 이우걸·박옥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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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국립중앙박물관 / 한분옥
투명한 유리 집에 한 여인이 살고 있다
천년이 흘러간 뒤 다시 천년 반석에 놓여
꽃 같은 싱싱한 웃음,늘 그 자리에 바치고
세속 모든 언어들이 여기와 갈앉는다
풍경도 울지 않는 채,감도는 작은 고요
해묵은 청동의 녹이 봄빛 파랗게 물들이고
가까이 다가서면 이웃집 아낙도 같은
어쩌면 옷깃 한번 스치고 간,머언 인연 같은
아니야,나를 어루신 우리 어머니 손길 같은
실선 따라 흘러내린 빛나는 고운 눈썹
떨쳐낸 유혹하며 숨겨진 예감하며
살 에는 바람 소리도 춥지 만은 않구나
■ 심사평 “손길 닿는듯 감각적 시어 돋보여”
응모된 작품들은 예년에 비해 높은 수준을 보였다. 해가 거듭될수록 시조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그만큼 깊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번 작품들은 다양한 소재를 시조의 형식으로 형상화하는 역량들이 크게 눈에 띄었다. 시조가 갖는 형식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감각과 리듬으로 참신한 내용을 담아내어 현대적 기능으로서의 기법을 구사해 낸 점이 돋보였다.
당선작 한분옥의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문화의 중추적 사물을 대상으로 설득력 있게 파고 들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진술한 전개가 아니라 손길에 닿는 감각적 표현으로 시선을 끈 수작이다.
이밖에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김종학의 ‘늦가을, 남천강에서’, 조성문의 ‘다도해 무화과’, 한마루의 ‘자음과 모음(문자 메시지)’, 정행년의 ‘월포리 단상’ 등으로 이들 네 사람의 작품은 모두 시조의 기본 형식에 충실하면서도 각자 나름대로 개성있고 고른 수준을 보여준 작품들이다. 김종학의 ‘늦가을, 남천강에서’는 언어의 조탁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작품으로 당선작과 마지막까지 겨뤘으나 아깝게 밀려났다. 조성문의 ‘다도해 무화과’는 안정감을 주는 대신 평이한 표현으로 참신성이 결여돼 보였다. 한마루의 ‘자음과 모음(문자 메시지)’은 현대적 소재를 무리없이 전개한 작품이다. 다만, 생경한 시어로 작품을 가볍게 만든 점이 아쉬웠다. 정행년의 ‘월포리 단상’은 동일한 작품을 타사에도 응모한 것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근배 한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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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강원일보 신춘문예]시조부문 당선작
용대리 황태덕장 / 이우식
저들은 지금 한껏 목청 돋우고 있다
동해 푸른 목숨 비릿한 몸을 빌어
가슴 속 대못 지우며 뽑아내는 판소리
파도가 울어대고 폭풍이 내달리는 건
결코 환청(幻聽)이 아닌 누군가의 거친 숨결
본능의 아름다움이란 아, 바로 이것인가
벌떡 일어나서 성큼 성큼 다가온
산이 불을 토하듯 단숨에 휘갈겨버린
그것은 저 이중섭의 `흰 소'같지 않은가
서릿발 맺힌 매듭 한결 풀어 젖히고
언 몸 서로 부딪쳐 뜨겁게 비비다가
벼랑끝 붙잡은 손을 타악 놓은 그 장엄.
[신춘문예]시조부문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 심사위원 손에 넘어온 원고 66편 가운데 1차로 걸러낸 작품은 `콩나물을 다듬으며(정영화)' `강아지풀(김수진)' ‘아버지의 내(서정택)' `용대리 황태덕장(이우식)'이었다. 이 네 작품은 어느 쪽 손을 들어주어도 좋을 만큼 모두가 당선 반열에 오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작품은 개성이 두드러진 글이긴 하지만, 한결같이 그만그만한 결점을 안고 있었다. `아버지의 내'와 `강아지풀'은 주제가 구체적으로 소화되지 못한 채 생경하게 겉돌고 있다. 소화불량의 주제는 결국 백화점식 언어의 나열, 우편엽서 같은 풍광(風光) 묘사에 치우치는 결과를 낳고 만다. 시는 현실을 끌어안되 그 현실을 날것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것을 발효시켜 새로운 그 무엇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콩나물을 다듬으며'는 우리가 너무나 많이 보아온 익숙한 세상 현실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데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시의 알레고리가 무엇인가. 현실 자체를 드러내기보다는 현실을 해체하여 시적 공간 속에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 시 문맥 바깥 - 즉 일상의 공간 속에서와는 다른 체험이나 정서적 울림을 안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콩나물…'은 글쓰기의 기본 덕목인 띄어쓰기, 맞춤법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주제의식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거기에 압도된 나머지 서술구조를 포기하는 실수를 저지르기 십상인데 당선작 `용대리 황태덕장'은 그 함정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끈기를 잃지 않고 있다. 황태덕장이라는 강원도 정서를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담아냈다는 점도 후한 가산점을 받은 것이다. <심사위원:김영기·윤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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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휴대폰 / 서정택
기약에서 멀어질까 시시로 하늘창 열고
소슬한 목청 걸어 임에게 보냅니다
목련꽃 도드라지며 향 올리는 사월이면
생전에 못 다한 말씀 무슨 생각 그리 깊어
매냥 어루던 항아리에 젖은 꽃잎 띄웁니까
김장파 실뿌리보다 짜고 매운 눈물 꽃
당신의 등 뒤에는 다 큰 눈이 있습니다
진동처럼 흔들일 때 함께 움찔하면서
긴 세월 종지에 담긴 겨자 찍던 눈입니다
아버지 내 아버지 버들잎 같은 내 아버지
여린 가지 죄다 꺾어 이 몸에게 내리소서
깍지 낀 손가락 풀어 사다리 엮어 드릴게요
<심사평>
“문명·전통정신 연결능력 돋보여”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일곱사람, 35편이었다. 일차적으로 세사람의 15편을 추려내고 네사람, 20편을 두고 깊이 있는 검토를 했다. ‘휴대폰’ 외 4편, ‘동검은이오름에서’ 외 4편, ‘모슬포 해넘이’ 외 4편, ‘255㎜의 세상’ 외 4편의 작품이 최종심 대상이 된 것이다.
이 작품들은 우열을 가리기가 만만치 않았다. 모두 시조의 형식을 잘 소화해내고 있었으며, 시상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능력도 있었다.
따라서 이 작품들 중에서 수사적 능력보다 깊이 있는 사유 쪽의 작품, 현대시조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부합되는 작품을 뽑자는 합의를 하게 되었다.
심사 기준으로 정한 두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고 여러 번 검토한 끝에 작품 ‘휴대폰’이 사유의 깊이가 있고, 시대 변화 속에서 문명의 이기와 우리 고유의 전통적 정신을 연결하는 능력이 있으며, 내일에 대한 기대치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나머지 세사람의 작품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고, 아쉽게 탈락한 분들께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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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대구매일 신춘문예] 당선작
주남저수지 / 이화우
한기가 엄습하는 주남지의 겨울은
보냄이 두려운지 제 몸까지 얼어붙어
조그만 흔들림에도 파열음을 내보인다.
지상에 매인 시간, 속절없이 풀리고
붙박인 삶을 거듭 강요하는 갈대들
시린 손 하얗게 닳아도 거둘 줄을 모른다.
묵묵히 떠날 때를 기다리는 새들은
습관처럼 부리로 물속을 더듬지만
채우면 채운만큼의 헛배도 불러온다.
묻어나는 그리움, 별빛에 길을 두고
귀향을 서두르는 부산한 마음 있어
어둠에 눈은 더 커져 그 빛까지 삼킨다.
[심사평]
김종학,임채성,정행년,임정윤,이서원,배다랑,이화우 등의 작품이 종심에 올랐다. 숙고를 거듭한 끝에 이서원의 ‘매듭’, 배다랑의 ‘봄, 바지랑대’, 이화우의‘주남저수지’로 압축했다.
‘매듭’은 제목부터 무언가를 기대하게 했고, 시종일관 사유의 깊이를 보였다. ‘봄, 바지랑대’는‘어둠살 헹궈내자 실눈 뜨는 무늬들’과 같은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두 편 모두 당선작에 비해 다소 미흡했다.
‘주남저수지’는 4수 한 편이 유기적인 체계를 직조해 보인다. 자연스러운 호흡, 안정된 전개와 마무리, 끝까지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절제력에 믿음이 갔다. 철새 도래지인 주남지의 겨울 풍광이라는 비근한 일상을 눈여겨보고 이렇듯 밀도 높게 언어로 육화해 삶의 의미에 깊이를 더한 점이 주목된다. 또한 비교적 긴 연시조를 무리 없이 소화해낸 기량과 형상능력도 신뢰를 더했다.
다만 ‘그리움’,‘삶’과 같은 말이 적절한 것인지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이 점은 응모자들의 전반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형식을 부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데 비해, 부적절한 시어 선택과 얕은 물밑을 들여다보는 듯한 평범한 묘사와 진술이 때로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런 점의 극복에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당선의 영예를 안은 이와 종심에 오른 이들 모두 시조만이 가진 ‘3장 6구 12음보’라는 창의적인 공간을 어떻게 ‘내 것’으로 육화할 것인지에 대해 부단한 고심과 천착이 있길 바란다. 이정환(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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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내소사 설화 - 이은정
내소사엔 아직도 꽃봉오리 맺혀있다
꽃살문 사이 사이 천여 일이 맺혀있다
바래고 지워진 세월 결 따라 맺혀있다.
사미승 두고 간 마음 한쪽 들여다보면
아득하고 아득하여 목탁소리 처연하다
몇 번의 업을 닦아야 꽃봉오리 피어날까.
내소천 가로질러 살아나는 시간들
물이 되고 흙이 된 사람들을 잊지 못해
천년의 대웅보전 곁에 꿈결처럼 맺혀있다.
2006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시조는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루어야 성공할 수 있는 시다. 물론 내용은 현대성에. 형식은 가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서정시의 품격을 가진 시이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품들을 읽었다. 작품 수는 많지 않았지만 수준은 고른 편이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작품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나치게 현대성에 무게를 둔 나머지 응집의 묘를 체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남았던 작품은 <내소사 설화>. <남천강에서>. <해수욕장>. <어떤 귀소> 등이었다.
< 남천강에서>는 모국어 구사 능력이 돋보인 대신 참신성이 부족했다. <해수욕장>은 시조의 형식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대신 시적 긴장감을 가지지 못했다. <어떤 귀소>는 평시조로는 비교적 긴 호흡의 다섯 수 연시조였다. 그러나 그 긴 사연들 속에서 시적 묘미로 독자를 감동시킬 만한 어떤 장치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결국 선자들은 숙의 끝에 <내소사 설화>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현실과의 거리감으로 울림이 다소 적다고는 할 수 있지만 형식미. 연가의 전통적 품격. 운문성의 확보 등에서 모범적인 서정시라고 보았다.
좋은 시는 그 시인의 생의 파편들을 거짓없이 담아내는 시들이다. 공소하지 않고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누구나 발견할 수 있는 소재 그러나 쉽게 노래할 수 없는 첨예한 감성의 언어들을 자연스레 구사하는 시들이다. 이 과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이 시인에게 축하와 더불어 애정으로 전해주고 싶은 과제다. 대성을 빈다. 심사위원= 이우걸(시조시인). 장성진(창원대 교수.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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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중앙신인문학상
먼 길
문수영
먼지를 닦아내고 허전함 걷어내고 그림을 걸기 위해 벽에다 못을 칩니다
아무나 가 닿지 못할 허공인 줄 모르고
버티는 벽 속엔 무엇이 숨어 있기에 번번이 내 마음 튕겨져 나오나요?
액자 속 망초꽃들은 우수수 지는데……
어쩌면 나 모르는 박쥐의 집이 있어 햇살에 눈이 부셔 창문을 닫은 걸까요
오늘도 몸 웅크리고 밤이 오길 기다리며
어둠 하나 보지 못한 그런 눈을 갖고서 날마다 겉모습만 꾸미고 살았으니
한 뼘도 안 되는 거리가 참 아득한 강입니다
비지땀 흘리면서 내일은 산에 올라 내 안에 흐린 안개 죄다 풀어내고 싶습니다
발 뻗고 누웠던 집이 상처위에 핀 꽃이라니!
*** 당선자 문수영씨 소감
늦깎이지만 지금부터 시작
정말 먼길이었다. 진창길을 지나기도 했고, 가시덤불도 있었다. 그 길에서 피었다 지는 수많은 꽃을 보면서 나는 날마다 애달픈 마음을 달래고 추슬렀다. 코흘리개 아이들은 훌쩍 자라 성인이 되었고, 내 머리카락은 한 올 한 올 내 곁을 떠나갔다. 그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무심했다. 외길을 걸어오면서 누군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는지도 모른다.
지금 솔직히 행복하다. 비록 늦깎이지만,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원 고전문학 수업에서 '청구영언'에 대해 고찰을 할 기회가 있었다. 막연하던 시조가 내 몸을 흔들었다. 그것은 그동안 내가 무심히 지나쳤던 꽃이었다. 이제 그 꽃이 제 향기와 빛을 탐스럽게 피워내도록 가꾸는 일이 남았다. 오랜 세월 묵묵히 지켜봐 준 가족에게 기쁨을 돌리고 싶다. 중앙일보와 심사위원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 약력=▶1957년 경북 김천 출생 ▶80년 동덕여대 국문과 졸업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시 추천 ▶고려대 인문정보대학원 재학 중
*** 심사평
일상서 퍼올린 시상, 물 흐르듯이
오랜 논의 끝에 문수영의 '먼 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끝까지 검토한 임채성.윤경희.고춘옥.정행년.김대룡.한서정.이영숙 등의 작품은 당선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새로움이 덜하고, 음보의 파탄이 잦거나 이미지 중복 등을 보였다. 그에 비해 '먼 길'은 참신한 발상, 활달한 호흡이 돋보였다. 또한 전편이 서로 유기적인 길항 체계를 유지하면서 독백체의 적절한 진술과 비유에 힘입어 삶의 의미를 심화시켜 보여 주었다.
예컨대 그림을 걸기 위해 벽에 못을 치는 비근한 일상사를 밀도 높게 천착한 점과 시조 고유의 가락에 의도한 바를 처음부터 끝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담아낸 형상 능력이 돋보인다. 또 신인으로서 완결의 미학에 근접한 기량과 안목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신뢰가 갔다. 그리고 다섯 수 모두 초.중장을 각각 한 행이자 한 연으로 배열한 것과 끝수 종장의 결구는 인상적이다. 다만'내 안에 흐린 안개 죄다 풀어내고 싶습니다'에서 '죄다 풀어내고'와 같은 구절은 한 음보로서 가락이 순탄치 못하다는 점을 당선자나 그 밖의 모든 응모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형식과 내용의 절묘한 균형과 조화를 동시에 요구하는 시조 창작의 길은 지고지난한'먼 길'이다. 그런 만큼 '완벽'이라는 정상을 향해 당선자와 종심에 오른 이들 모두 가일층 분발하길 빈다.
< 심사위원 : 박시교.이우걸.유재영.김영재.이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