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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고 탄 택시는 어디론가 달리는데?
가만히 차창 밖을 보니 덕정리 병원 부근으로 가는 거 같습니다.
초 성리 인지? 너무나 오래라 기억이 없 내 요.
택시를 타고 가는 뒤 자석에 같이 앉아 가는데도?
몇 년을 교제 한 거 모양 내 손에 깍지를 끼고
어께는 저에게 기대면서 갔습니다.
잡은 손이 아주 참 따뜻합니다.
그리고 얼굴은 완전히 홍조를 띄고요.
병원에서 간호복장을 한 박 대위가 아닙니다.
얼마 후에 우린 택시에서 내렸습니다.
그때까지 우린 별 말은 없었지요.
저도 당시에는 한 인물 했으니까요?
냉정히 생각해 보면?
제가 잘나서 박 대위에게 엮인 게 아니라?
추측으로 보면 대부분이 군대가 좀 무식하잖아요?
그런데 저의 이미지는 부드러우면서도 비록 빈농의 아들이였으나?
외모가 젊었을 때는 가진 거는 없어도 좀 부티가 났어요.
여러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한 인물 했다는 건 제 이야기이고요.
차에서 내리니 이제야 추운 느낌을 받는 겁니다.
박 대위는 내려서 걸아가면서도 말이 없더니
골목길을 지나서 2층 양옥집 입구에 오더니?
"가영외 거주하는 곳이 여기야."합니다
들어가기 머뭇거리는 나를 말없이
손을 잡고는 이끌고 2층으로 올라갑니다.
찰카닥 문 여는 소리와 함께 전등 스위치를
누르니 방안에 불이 훤하게 들어옵니다.
방안은 아주 정갈 합니다.
침대가 하나 놓여 져 있고 물건들이 정리정돈이 잘 돼 있습니다.
머쓱해 하는 저를 위하여 텔레비전을 켜니
스포츠중계 송을 하다가 늦게 매일 연속극이 나옵니다.
당시에 흑백 레비전 시절 제일 이름을 날리던 연속극 뭔지 아세요?
바로 -여로-입니다.
기억나시지요?
태 현실이라는 배우도 나오고.
주인공이 누군가?
당시에 여로 연속극 본다고 부대에서 장교,
하사관들이 쏜 살같이 집으로 퇴근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지요.
박 대위는 이내 사복을 벗고는 홈웨어로 갈아입습니다.
갈아입는 모습을 안 보려고 해도 단칸방이라 보이니 어쩔 수 없지요.
아담한 키에 적당한 몸매는 죽여주는 몸매였습니다.
말그대로 지금 말하면 S라인입니다.
무언가? 느낌이 좀 이상 합니다.
침대위에는 베게가 둘이 있고?
방바닥에는 양주 한 병과 안주 잔 두개가
가지런히 조그만 상위에 놓여 있는 게 보입니다.
미리 저를 이리로 데리고 오려고 소위 작전계획을 짠 거 같은 느낌이 드나?
그래도 남자인 저는 모른 척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묻지도 않았지요.
때로는 남자는 알고도 모른 척 해야 여자들이 좋을 때도 있지요.
시시 콜콜 너무 잘난 체 하 거나 아는 체 하면 여자들이 싫어
한다는 정도는 당시에 아무리 여자에게 쑥 맥 이라도 알고는 있었지요.
내 신사복 상의를 걸고는 방석을 내놓고 앉으라고 하니?
그냥 시키는 대로 할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지요.
누추해도 편안하라고 하는데?
그게 뜻대로 되나요?
책상 서랍에서 양담배를 한 갑 과 군대 지포
라이터를 내놓으면서 필 줄 알면 담배도 한 대 태우라는데?
잔뜩 긴장한 제가 담배 피울 마음이 납니까?
머뭇대니까.
박 대위는 본인이 먼저 한 대 불을 붙여서 나에게 건네주는데?
건내준 담배에는 박대위의 빨간 루즈가 묻은걸 주더군요.
저는 이판저판 공사판이다 하는 마음으로 주는
담배를 물고는 깊게 한 대 피우니 머리가 핑 도는 것 을 느낍니다.
결국 순진무구한 저는 박 대위가 대주는 양담배로 담배를 결국 배웠지요.
긴장이 어느 정도 가시자.
박 대위가 술 할 줄 아느냐?
술이 라야?
철책선 근무하다가 지휘관의 통제아래 양식기에 막걸리와 피엑스에서 사온
꽁치통조림을 전령한테 시켜서 끊인 찌게와 마신게 전부이고 큰 부대로
와서는 가끔 남문 옥에 가면 마담과 같이 반주로 마시던 양주 몇 잔이 전부였지요.
술을 못 한다. 잘 한다.
말이 없으니 양주 코르크를 따서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서 두 잔에다 붓고는 한잔 마시자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 술이 들어가고 약간 취기가 오르자?
저에게 고백 합니다.
어느 야전병원에 군의관과 좋아 했는데?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여 헤 여진지?
얼마 안 됐는데?
무척 괴로운 생활을 보냈답니다.
병원에서 저를 처음 보는 순간에 눈이
하 두 커서 빨려 들어갈 거 같다고 합니다.
쫄딱 쫄딱 양주 한 병을 노닥거리면서
주거니 받거니하면서 다 마셔 버린 겁니다.
나도 취기가 올라서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생리현상이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려니?
술이 취해서 몸을 가늘 수가 없었습니다.
박 대위는 천사모양 술 취한 저를 부축해주는데?
누가먼저 그랬는지?
모르지만 얼굴과 얼굴이 맞다 아서 뽀뽀를 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제 한손이 박 대위의 유방을 만지게 된 겁니다.
몽클한 봉우리의 젖무덤이 손 감촉에 찌르르하게 느껴옵니다.
취해서도 이런걿 느끼는거 보면 저도 아주 흉한 남자 같습니다.
일을 보고 나온 저를 부축하여 침대에다가 눕힙니다.
옷도 다 벗기고요.
그리고는 저는 술에 취해서 그냥 긴 잠에 빠져듭니다.
얼마만큼 자다가 옆에 무엇이 내 몸에 닿아서 기겁을 하고
일어나 보니 박 대위는 팬티와 슈미즈 바람이고 저는 팬티만
입은 채 박 대위 옆에 누어있는 겁니다.
침대 옆에 전등갓에서 붉은 등이 희미하게
박 대위 얼굴과 저를 비치고 있습니다.
일어난 저를 의식한 박 대위는 일어나서
냉수에 얼음 을 넣어서 한잔 건 내는 겁니다.
저는 술도 깨고 한참 나이라 옆에 스미즈만 입고 있는
박대위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옆으로 쓰러 트려 허리를
안으니 기다렸다는듯이 자동으로 딸려 옵니다.
이미 충혈된 저의 심볼이 박대위의 삼각주앞에
문전을 얼신거리니 얼마후에 삼각주의 문은 서서히 열려서
저의심볼이 박대위의 삼각주의 가운데를 점령하고 우방주택도
아울러 함께 접수를 했습니다.
술이 깨여서 밤새도록 허기진 육체의 갈증을 박대위의 몸에서 풀은 겁니다.
지금 쓰는 시체 말로 하면 박 대위의 치밀한 작전에 순진무구한
저는 엮여서 이렇게 해서 무너져 버린 겁니다.
이튼 날 아침에 세수를 하고 나니?
아래층으로 가서 식사를 하자고 합니다.
노부부만 사는 집입니다.
뭐라고 그분들에게 이야기 했는지?
노부부는 우리를 아들 내외 대접하듯이 상에 푸짐하게
아침을 차려서 노부부와 우리는 아침까지 먹고 이층에
올라와서 커피를 한잔 하면서 내년에 소령진급을 하는데?
진급되면 춘천 병원으로 갈 거 같다고 하면서 저에게 부탁을 한 가지 합니다.
간호병과에 환자임상 실험 보고서를 쓰는데?
글재주가 없으니?
제가 대학교 동아리 여친 김중위에게 들으니 대학신문 편집국장을 했다니?
보고서를 만드는데?
글을 잘 다듬어 달라고 하면서 서류 봉투 한 개를 줍니다.
그 후로 부터는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박 대위와 데이트하는
재미로 제대 말년의 지루함을 보냈지요.
데이트경비는 100% 박 대위가 다 부담합니다.
저는 봉급을 고향에 동생들 학비에 조달하려고 거의 다 송금해 버립니다.
보름 후에 저는 보고서를 다 만들었다고 하니 저의 부대로 직접 가지러
오겠다고 하더니?
어느 날 정말로 제가 근무하는 부대를 온 겁니다.
제가 근무하던 부대는 별만 6개입니다.
군단장이 3개. 그다음 부군단장이 2개. 참모장이 1개. 엄청 높은 부대이지요.
얼마만큼 높은 무슨 부대인지?
군대 갔다 온 분들은 말 안 해도 아시겠지요
점심때가 임박 할 무렵 밖 이 소란합니다.
기간 병이 제가 근무하는 티오시(작전통제실)로 오더니?
이 중위님 만나러 왠 호장교가 오셨습니다.
밖에 나가보세요. 한다.
나가보니까?
박 대위가 여군 장교 정복을 칙용하고 처부에 나타난 겁니다.
우리 부대에 대적선전을 업무를 담당하는 여군 병사는 몇 명 있는데?
미모의 여군 간호장교가 정복으로 나타 난건 부대안의 소문 거리가 된 거지요.
과묵하기로 유명한 참모장님(준장)이 간호장교가 누굴 만나러 온 거야?
본 부대장(소령)에게 물으니?
알.오티.시 00사단연락 장교 이 중위를 만나러 왔대요.
허어~~그래 그놈 매일 공부만하더니?
언제 외출해서 저렇게 잘생긴 간호장교를 하나 엮었어?
인물이내 그려~~~
박 대위 덕분에 부대에서 저를 보는 눈이 달랐습니다.
속된말로 하면 이 중위 그놈 재주가 뛰어 난 놈 이내 하고 요.
부대에 와서 저하고 점심을 먹고는 제 B. O. Q(독신 장교숙소)에 가자고 하더니?
가자마자. 장교 정복 윗도리를 벗어 놓고는 제 침대며 관물을 정리해주는 것입니다.
청소를 해주면서 내 책상위에 읽다가 놓아둔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 영어 원문
책을 본 박 대위는 다시 한 번 놀랍니다.
영어원서 책과 그걸 읽는다는 저를 쳐다보면서 아주 사랑스러운 모습 이였습니다.
그리고 옆에서 같이 거드는 저를 살며시 안아주는 겁니다.
숙소 문이 청소하느라고 열려 졌는데?
박 대위와 포옹하는 것을 쉬러 오신 참모(대령)님이 보셨어요.
그리고는 참모님은"이 중위는 나 보다 높다야~"
하고 웃으면서 지나가십니다.
대낮에 미모의 계급높은 여인과 독신장교 숙소에서 포옹을 하고있으니?
그렇게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지금말하면 간이 배밖으로 나온 거지요.
그리고 생각하면 군 풍기문란이지요.
나는 청소를 한 박 대위에게 가지고
싶으면 그 책을 선물로 주겠다고 했습니다.
나의 손때가 묻은 책을 들고는 아주 반가워합니다.
그 책은 동료장교가 서울로 저를 데리고 가서 이대 다니는 여동생을 소개 해주었는데?
가정신분이나? 제가 쳐다봐서는 안 될 환경에 있는 여대생이라서 솔직히 말하고
포기를 했을 때. 저에게 이별선물(?)로 서울 이대앞 원서 파는데 서점에서 사준 책입니다.
깊은 사연이 있는 책이지요. 흑흑~~~
여자에게 받은 책 다시 여자 앞으로 반납되는 겁니다.
한 달 후에 박 대위 한데 에서 전화가 온 겁니다.
제가 작성 해 준 보고서가 전국의 이동외과 병원에서 써 보낸 보고서중
제일 우수하여 국방부장관 표창을 국방부 간호국장(대령)에게서 받았다고 하면서
소령진급은 따 논 당상이라고 하면서 지난번에 만났던 의정부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이렇게 꿀 맛 같은 시간은 흘러서 박 대위는 소령으로 진급하면서
춘천 병원으로 전근을 가게 되고 저는 1972년 .6월30일 국 인 명(국방부인사명령)
000호로 소집해제(제대)를 하고 춘천으로 와서 사회복귀 준비를 합니다.
소위말해서 취직 시험공부를 하는 거지요
장교생활 하면서 받은 봉급은 제 여동생 5명 학비로 충당하고 근근이
책을 사서 공부를 하던 중에 어느 날 사복차림의 젊은이가 우리 동네에
와서 저를 찾는다는 겁니다.
반장 아저씨가 저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척보니? 군대 보안대요원입니다.
어디서 보냈느냐? 하니까?
춘천병원원장 모 중령이 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선 수를 쳤지요.
춘천병원 부원장 모 여자소령이 부탁한 거 아니냐? 했더니?
금방 꼬랑지를 내립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집 전화번호와 약도와 근황을 자세하게 적어 보냈습니다.
며칠 후에 박 대위 아니 소령이지요.
직접 저의 집으로 한번 오겠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부모님에게 군대에서 아플 때 치료 해주었던 간호장교가 방문 한다고?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했지요?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부모님은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하여서 우리 집에 와서 저녁을 같이했습니다.
아버님은 빈농으로 시골에서 고생을 하사다가?
시내에 나와 쌀장사로 성공하였으나?
노름으로 다시 탕진 한 당시였습니다
저녁을 먹고 타고 온 차는 보내고 춘천 공지 천 제방을 같이 걷는 겁니다.
공지천변을 와보신 분은 잘 아실 테지만 경치가 죽여줍니다.
특히 저녁노을이 질 때는 정말 환상입니다.
사복을 입었으니?
남들이 보면 우리의 사연은 전혀 모르고 그냥 선남선녀 인 줄 알겠지요.
제방을 걷다가 제방 아래로 손을 잡고 내려가 풀밭위에 나란히 앉았지요.
앉자마자 박 소령의 입술이 저의 입술을 덮칩니다.
" 중위 보고 싶었어."하는 말과 동시에
저도 이때는 겁을 먹지 않고 진심으로 안아주었습니다.
한손으로 박 대위의 허리를 끌어안고 또 한손은 박 대위머리를 제 가슴에 묻었지요.
때는 바야흐로 8월 중순 더위가 기승을 부리다가 한풀 꺾였으나?
저녁인데도 열대야로 그래도 덥습니다.
얇은 치마에다가 부라 자에 투피스를 걸친 박 소령의 몸매는 환상적 이였습니다.
박 소령은 짓 굳게 거시기는 괜찮 느냐고 묻습니다.
오래 동안 포옹과 애무를 한 다음에 소양제2교 까지지 손을 잡고 걸었지요.
늦여름의 열기를 식히는 미풍이 우리들의 열기도 동시에 식히고 지나갑니다.
호수가의 제방을 거리로 보면 4-5킬로를 같이 걸었습니다.
여기서 택시 타고 가면 병원까지 좀 가깝지요.
뭐 도와줄게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우리가게에서 하인처럼 열심히 일하신 분(결핵에 걸려서 힘들음)의
사연을 이야기하니 대민지원 명분으로 입원시켜서 자기가 병원부원장으로 있을 때 까지
치료해주겠다는 확답과 취직 공부하는데.
책을 사보라고 당시에 중위봉급이 3-4만원인데?
저에게 책값으로 5만원을 봉투에게다가 건네주고 갔지요.
병든 아저씨는 제가 입원을 시켜서 완치가 되고 저는
그 이듬해 중등 수학교사로평창 대관령 중학교에 발령을 받았지요.
저는 첫 봉급을 타서 부모님 빨간 내복을 사드리고
박 소령에게도 브라자. 팬티. 슈미즈를 명동 비비안 가게에 가서 사주었지요.
이때 브라자에 A컵. B컵. C컵. 이 있는 걸 비로서 알았습니다. ㅋㅋㅋㅋㅋ
이런 거 보면 저는 바보도 상 바보입니다.
그 후에 박 소령은 원주 군사령부 부근에 원주병원으로 가서 다시 부산으로 갔는데?
몇 번 연락이 오고 가다가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에 연수하러 간다고 간 다음에 연락이 끊겼습니다.
춤이란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측면도 많 치만?
때로는 우리인간생활에 따뜻하고도 감동적인 일도 많은 거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모임에 나가면 춤 잘 추는
멋지고 예쁜 여님들이 들이 저를 많이 잡아 주신답니다.
항상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 한답니다.
여님들은 제가 시아버지 같다고 잡아주시고?
친정아버지 같다고 잡아주시고?
소설가 선생님이라고 잡아주시고?
친정오라버니 같다고 잡아주시고?
친구 같다고 잡아주시고?
헤 여진 애인 같다고 잡아 주시고?
호반법사님이 편안하다고 잡아주시고?(자랑같아 죄송^^~)
재미있게 추신다고 잡아주시고?
글 춤 읽어본 값으로 잡아주시고?
옛날 학교 다닐 때 좋아하는 선생님 비슷하다고 잡아주시고?
잡아주는 사연도 구구절절 많기도 합니다. ㅋㅋㅋㅋㅋㅋ
우린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과 감정을 교류하면서
하루하루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이제는 춤이 도시 지방 문화센터에서 노인들에게 운동으로 가르치고 하지요.
특정한 소수를 빼고는 우리인간들은
참으로 푸근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가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우리 화목한 카페 회원여러분!!!!!
금년에 유난이 경제가 어렵다고 하나?
벌서 반이상이 지나 갔습니다.
해방 됐을 때나? 6.25때나?
60년대 보리 고개 만큼 어렵겠습니까?
다 마음이 풍족하면 이런 어려움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에 행운이 깃들고 하시는 일 만사형통을 기원 합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명랑하게 살다보면 운도 상승하고 하시는 일도 잘 되실겁니다.
첫댓글 감사함니다 잘보았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