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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 전 회장 김우중씨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라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세상은 넓고 가 볼 곳은 무진장이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돌발변수로 인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상상여행으로 내가 경험한 해외여행기를 공유합니다.
어떤 곳을 여행한 후에는,
‘예전에 이곳을 찾아온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누구와 어떤 연유로, 어느 코스로 와서 무슨 음식을 먹었지?’
세월이 흐른 후에는 모든 것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 곳을 다시 찾아갈 때는 새로운 정보가 항상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음에 다시 찾아올 때를 대비하여 어떤 곳을 찾은 후에는 가능하면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이 있다.
이글을 읽은 다른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할 때 혹시나 내가 여행한 곳과 같은 곳을 찾게 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내가 경험한 것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하모니카 까페에 탑재를 하였다.
이미 내가 경험한 곳을 여행 한 사람은 그 때의 추억을 되살리는 기회가, 찾을 계획이 있는 분들에게는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서 [코로나]가 종식되고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시작되면 혹시나 참고가 될까해서 공유를 합니다.
일본 규수지방 여행기
-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가
된 것은 1989년 1월 1일이다.
그러나 나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해외여행을 미루어 왔다.
그러던 차 2003년에 처음으로 실시한
해여여행의 방문지는 일본이다.
교대 복학생 동기부부 3가구가 함께 한
첫 해외여행기(일본 규수 아소산 : 1592m 일원) -
◆ 2003년 8월 16일(토) ~ 20일(수)
승혁부부, 진호부부, 우리부부의 첫해외나들이로 일본을 다녀오다.
아내는 문화원등산반에서 중국과 동남아 지방을 다녀오는 2번의 해외여행경험이 있다.
그러나 나는 승진을 하려고 마음먹은 후론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기에 처음 가는 해외여행이었다.
그래서 기대가 많이 되는 여행이다.
한국교총대행여행사인 [오케이투어 여행사]에서 주관하는 여행상품을 선택하였는데 4박5일 일정이다.
여행비는 40만원(비자신청비 1만원 별도)이고 가는 날과 돌아오는 날의 2일은 선박에서 숙박을 하다.
배편은 왕복 모두가 일본국적의 [하마유]호를 이용하다.
- 부관연락선 하마유호 -
오후1시에 출발하는 포항발 부산행시외버스를 이용하여 부산에 도착한 후 지하철로 이동하여 오후 4시경에 부산국제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6시경에 승선을 하였다.
저녁은 선내식인데 한국식이어서 먹을 만했다.
배위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처음 타본 국제여객선을 탐방하다가 11인실 방에서 일잔을 나누다.
10시 30분에 선상규칙에 따라 소등이 되었고 12시경에 취침을 하다.
우리들은 단잠에 빠져 들었지만, 배는 부지런히 일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 2일차 - 17일(일) : 새벽 6시경에 기상을 하다.
창밖에 비친 곳은 일본 땅 [시모노세키] 항구다.
- 배안에서 바라 본 시모노세키 항 -
밤새 달려온 배는 언제 정박을 했는지 항구의 먼 바깥에 정박을 하고 입항수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입국은 공무원들의 출근시간에 맞추어야 되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웠다.
7시경에 선내식으로 조식을 하다.
일본은 원래 쌀의 품질이 좋기 때문에 밥맛이 아주 좋았다.
양도 먹을 수 있을 만큼 더 먹을 수가 있기 때문에 괜찮은 편이다.
08시 30분경에 입국수속을 끝내고 혼슈와 규수지방을 이어주는 [관문대교]다리를 건너서 본격적인 일본관광을 시작하다.
- 관문대교 -
처음 들린 곳이 1900년대의 무역항인 ‘모이그 항’이다.
당시에 창고로 사용한 건물의 벽돌 벽이 아직도 잘 보존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부산항 영도다리와 같은 방법으로 다리를 들어서 배가 통행할 수 있도록 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때마침 우리가 도착하였을 때 그 모습을 보여주어서 좀처럼 보기 드문 행운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행운에 취하는 바람에 소중한 장면을 사진으로 촬영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운 순간이었다.
이어서 찾은 곳이 벳부온천지구에 위치한 에메랄드 [해지옥]이다.
지옥온천이란 이름이 주는 선입견을 갖고 조금은 긴장한 마음으로 들어갔다.
도착 하기 전에 멀리서도 보이는 하얀 수증기가 뿜어 나오는 엄청난 위력으로 해지옥의 실상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이 온천은 화산활동에 의해서 약 1천 2백 년 전부터 뜨거운 증기와 흙탕물이 분출되기 시작했는데 지하 300m에서 분출되고 있는 웅장한 모습은 실제 우리가 상상하는 지옥을 연상하게 하여 지옥온천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 웅장한 규모의 '해지옥' -
이곳은 모두 9개의 지옥이라고 불리는 온천으로 이루어져있다.
방문가능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일주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2시간 정도라고 한다.
9개의 지옥온천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이 아소활화산의 마그마 색과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의 깨끗한 색을 가지고 있는, 짙은 수증기에 감춰져 있어 더욱 궁금하고 신비스럽게 느껴졌던 해지옥이었다.
이어서 들린 곳이 [유노하나 유황재배지!]
- 유노하나 유황재배지-
요즘 우리나라는 천연제품을 많이 구매한다.
소비자들이 이제는 화학제품이 아닌 인체에 무해한 천연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전국 각 지역의 체험장에는 천연비누 만들기 등, 천연재료가 아니면 이제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좀 안다는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사용하여 왔던 천연 제품 중에 입욕제가 있다.
그것이 바로 유노하나 이다.
“유노하나?”
“그게 뭐야?”
“처음 듣는데?”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유노하나는 유황 온천수를 증발시켜 만든 것으로 ‘유황의 꽃’이라고 불린다.
이 유황은 천연 입욕제로 쓰인다.
피로 회복과 피부미용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곳 뱃부가 일본 최고의 온천이 모여 있으므로 유노하나를 재배한다는 사실은 틀리지 않았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 버스 차창 밖으로 온천가스의 수많은 분출 모습을 보았다.
마치 원시시대 영화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는데, 그에 걸맞게 벳부의 토양은 오염이 없는 원시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다시 이동을 한 우리들은 무려 80m의 높이를 자랑하는 [히가시야 폭포]를 관광하다.
- [히가시야 폭포] -
오늘의 숙박지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일본왕이 회담후에 묵었다는 [벳부 스기노이 호텔]이다.
이 호텔은 온천시설이 별도로 2개가 있는데 별도로 되어있는 호텔도 2개가 연결이 되어 있다.
호텔 건물과 건물사이로 이어지는 통로로 가면 오락실도 나오고 상점들도 눈에 띈다.
온천에서는 야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되어있고 나무통에 들어가거나 냉온천과 찜질사우나를 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다.
- 나무로 만든 목욕탕 -
호텔이라지만 우리나라의 장급여관 수준밖에 되지 않았고 방의 크기는 아주 작았다.
일본사람들의 축소지향적인 풍습과 허례허식을 배격하는 생활풍습이 잘 드러난 모습이었다.
낮에 먹은 중식은 일본 현지식이어서 양이 엄청 적었다.
그런데 저녁은 우리가 일본 여행 중에 유일하게 개인적으로 추가 부담한 1,000엔으로 생선회가 포함된 뷔페식 식사로 하다.
온천은 밤새 이용할 수가 있어서 저녁에 찾고 새벽에도 또 찾았다.
◆ 3일차 - 18일(월) : 조식 후에 [우사]로 이동하였다.
첫 방문지는 [우사신궁]이다.
일본에는 전국에 약 11만 개의 신사가 있는데, 우사신궁은 그 중 하치만(八幡)님이 가장 많은 4만 6백 곳의 총본부이다.
일본은 매년 1월1일 신정에 지난 1년에 대한 감사와 신년의 무사, 평안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기 위해 신사를 찾는다.
우사신궁에는 이때 전국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오렌지색 문은 토리이(鳥居)라고 한다.
신사 등에서 신의 영역과 인간이 사는 속세를 구분하는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아마 일본 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이나 Tv, 여행 잡지 등에서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주차장에서 길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상점을 지나면 이렇게 신사에 들어가는 토리이가 나온다.
토리이를 지나 걷다보면 왼쪽에 기관차가 있다.
- 1894년에 독일에서 수입해 운행한 기관차 -
실제로 운행을 했던 오이타 지정유형문화제인 기관차를 전시해놓고 있다.
이 기관차는 1894년에 큐슈철도가 독일에서 수입해 운행하다가 (주)오이타교통에 양도하여 우사신궁선의 주역이 되었다고 한다.
우사신궁선은 1946년 3월에 개통 되어 71년간 운행이 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나고야 성, 오사카 성과 함께 일본의 3대성중의 한곳으로 유명한 [구마모토 성]으로 이동을 하였다.
- 구마모토 성 -
사진에서 보는 것 보다는 실제의 규모가 엄청 크다.
웅장한 규모가 일본의 무사도정신을 잘 나타내 주는 것 같았다.
1601년 [가토 기요마사]가 무로마치 시대에 세워진 치바성과 구마모토성이 있던 챠우스산(山) 일대에 성을 쌓아 1607년에 구마모토 성을 완공했다.
- 구마모토 성을 만든 [가토 기요마사]의 동상 -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혼마루(주성)에는 대천수각과 소천수각을 세우고 각 성곽에는 우토 성루를 비롯하여 3층 천수각에 필적할 5단 성루를 5기나 나란히 세웠다.
가토가 파면된 후에는 호소카와가 후임으로 오고 메이지유신을 맞았다.
1877년 세난 전쟁 때 신 정부군을 물리쳐 성의 견고함은 증명되었지만 혼마루의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토 성루를 비롯하여 12기의 성루가 남아 있고, 세쇼류로 불리는 높은 석벽도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1960년에 대천수와 소천수가 재건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원숭이 쇼]를 관람하였는데 이 상품은 내게는 별로 감동을 주지 못한 상품이었다.
왜냐하면 TV에서 이미 많이 보아온 내용이고 동물을 가지고 장난치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별로이다.
그러나 옆에 있는 아내는 연신 박수를 치며 깔깔대는 것이 무척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
하긴 사람마다 성격의 유형이 다른데 아내는 저런 것에서도 무척 흥미를 느끼나 보다.
저녁에는 목축업을 하는 일본의 농부 몇 명이 협동으로 투자를 하여 운영 중이라는 호텔급인 [아소 팜 빌리지]에 투숙을 하다.
- 아소팜 빌리지 -
지붕이 돔형으로 되어 있는 집의 형태가 무척 특이하다.
별개로 지어진 각동에는 방이 2개인데 안에는 2인용 침대가 놓여있었다.
부부들만 사용하도록 각 1동씩 배정을 해주니 신혼분위기를 느낄 정도로 좋은 대우였다.
온천을 밤새도록 운영하는 것도 역시나 마찬가지여서 저녁에 온천을 찾고 아침에 또 찾았다.
그런데 일행 중 한팀은 어제 저녁에 부부사이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나 보다.
오늘 아침부터는 부부끼리 사진도 같이 찍지를 않고 식사도 별도로 한다.
부부가 모든 행동을 각자가 따로 한다.
'뭣 때문에 그러느냐?'
고 물어보기도 뭣하고…….
일본까지 와서 좀 참지…….
◆ 4일차 - 19일(화) : 조식 후에 세계최대의 칼데라 복식활화산인 [아소산] 관광길에 나서다.
이동거리가 꽤나 멀었다.
수십년은 족히 되는 편백나무 군락지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동중에 곳곳에 산재한 화산활동의 흔적인 쿠사센리를 관광하면서 정상 아랫부분에 도착하였다.
중식을 먹고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로 올라가다.
- 세계최대의 칼데라 복식화산인 [아소활화산] -
[유독가스 주의!!!!]
"아소 활화산 분화구는 미인들이 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는 가이드의 농담에
“휴!
우리 팀엔 미인들이 없어서 다행이다!”
라고 실없는 농담을 한 일행 중 한명은 마누라에게 구박을 엄청나게 받았다.
이 분화구는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활화산이다.
따라서 엄청난 열기와 함께 화산가스가 뿜어져 나와 순간적으로 분화구 바닥의 색깔이 Emerald 빛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 때를 기다려서 사진을 찍으려면 부단한 인내가 필요하다.
잘못 하다가는 가스에 중독되어 질식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분화구는 세계 최대의 칼데라 복식화산으로 현재도 화산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해발 1,216M에 위치하고 있다.
칼데라(caldera)는 화산성 분출에 따라 일어나는 붕락에 의해 형성된 화산 지형이다.
화산 화구와 혼동되기도 하는데 서로 다른 것이다.
'칼데라'는 가마솥을 의미하는 라틴어 'calabria'에서 유래된 스페인어이다.
영어로는 'cauldron'이라 표기되기도 한다.
우리들은 운이 좋아 칼데라를 직접 볼 수가 있어서 다행 이었다.
바람이 관광객이 있는 방향으로 불어올 경우는 유독성이 강해서 등반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은 지진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유사시 지진 대피를 위해서 각 건물에는 긴급히 대피 할 수 있는 대피용 유리 창문에 붉은색으로 역삼각형 모양의 표시를 하여 두었다.
웬만한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건물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건축비 또한 많이 든다고 한다.
지금도 연기를 뿜어내는 활화산의 웅장한 규모에 감탄사가 연발이다.
올라갈 때는 캐이블카를 타고 갔지만 내려올 때는 걸어서 내려오다.
다음 코스는 학문의 신을 모셨다는 [천신궁]이다.
여유롭게 관광을 마치고 지나는 길에 [후쿠오카 야구 돔]을 스쳐 지나다.
한국총영사관도 역시 차내에서 스쳐지나갔다.
이어서 관문대교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4시 30분에 귀국을 위하여 시모노세키 항에 도착하였다.
면세점에서 일본산 참깨를 구입하였다.
일행들은 중국산에 비하여 참깨는 일본산이 좋다고 하면서 가져갈 수 있을 만큼 구입을 하였다.
5시 30분경에 출국 수속을 마친 후 승선을 하였다.
6시에 석식을 마치고 7시에 시모노세키 항을 출항하니 언제 또다시 일본 땅에 올지 모르는 기약 없는 귀국길에 오르다.
◆ 5일차 - 20일(수) : 배는 밤새 달려서 아침에 기상을 하니 부산항 앞바다에 정박해 있었다.
갑판에서 바라보니 바로 앞에 오륙도가 보인다.
세관원들의 출근을 기다려서 8시 30분에 입국수속을 하였다.
그런데 아내와 진호네는 입국심사에서 제동이 걸리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일본으로 들어갈 때 간식용으로 과일류를 사가지고 들어갔다.
그 과일류는 귀국 할 때는 농산물검사규정상 폐기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 내용을 모르고 남은 과일을 가지고 나오다가 압수를 당하고 나서 통과가 되었다.
포항에 도착하니 11시 30분경이었다.
[강산면옥]에서 냉면으로 중식을 해결하고 12시 30분경에 집에 도착하니 기대에 부풀었고 우여곡절 끝에 다녀온 4박 5일간의 나의 첫 해외여행도 막을 내리다.
☞ 보너스 스토리 – 해외여행 자유화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가 된것은 1989년 1월 1일이다.
이전에는 시간적 여유가 있고 금전적으로 부유하다고 해서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여권을 관광 목적으로는 발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확실한 사유 즉, 공무 등을 입증해야 해외여행이 가능한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복수여권 형식이 아니라 단수여권이었다.
출국을 위해서는 매번 여권을 새로 발급받아야만 했다.
신원조회 절차도 까다로웠다.
이처럼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외국에 나가는 대상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업무상 외국에 나가야 하는 공무원, 무역회사원, 해외파견 근로자, 스포츠 국가대표단, 문화예술인 그리고 유학생과 교수, 연구원 등만이 특별한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1981년 9월 30일에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었다.
올림픽 개최국으로 결정된 이상 대외적으로 개방정책을 펴야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리하여 1983년 1월 1일부터 정부는 ‘50세 이상 국민’, ‘200만 원 1년간 은행 예치’의 요건을 충족할 경우에만 유효한 관광여권을 연 1회 발급하기 시작했다.
1987년 9월부터는 관광여권 발급 최저연령이 45세로 낮춰졌다.
올림픽이 있던 1988년에는 40세 이상으로 관광허가연령이 또 한 번 확대되었다.
이와 함께 상용여권의 복수여권 발급원칙이 마련됐고, 부부 동시 여행 제한이 완화되기도 했다.
마침내 1989년,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가 시행되었다.
단, 병역미필자 등 ‘해외여행 제한자’는 예외였다.
같은 해 여권 유효기간이 5년으로 상향조정되었으며 여행 목적 기재가 폐지되었다.
단수여권 발급만 이뤄졌다가 복수여권 제도가 실행된 것도 이 시기부터다.
첫댓글 송이골님
전 여행갔다와서 며칠지나면 다 잊어버리는데
이렇게 글로 남겨놓으니까
생생하게 한번더 여행갔다온 기분입니다🎵
지금 읽어보니, 타임머신을 타고 16년전 그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새로운 여행을 하는 생생한 느낌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참으로 대단 하십니다.
이렇게 세심하게 정리 해놓으시니 그때의 생생한 추억이 오래도록 삶의 활력소가 될듯 합니다.
누리님의 말씀이 사실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송이골님 오늘도 일본여행 후기를 재밋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1997년도에 ㅣ주일 대만 여행 가서 양명산 국립공원에 갔는데 정상에는 활화산으로 끓고 있는데 계곡에 유황냄새가 진동하고 언제 폭발할지 겁이 났어요? 눈을 감으면 야류해상박물관이나 중정박물관. 야시장등의 관광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살아 납니다.옛추억을 더듬기 위해 나이를 더먹기전에 11월중순에 다시 가족들과 대만여행가기로 결정하고 준비하는 중입니다. 역시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가 봅니다? 감시합니다♡
저는 아직 대만은 못 가봤는데, 다녀 오신후 여행기 올려주세요!
재미있게 읽어드릴께요^^^
장개석 총통이 본토에서 철수할때 보물 60만점을 갖고 와서 중정박물관에 보관및 전시를 하는데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유명하며 매월 보물을 바꾸어 전시를 한답니다.충열사 위병도 인간마네킹이라할 정도로 건드려도 꼼짝안하고 흐르는 땀도 닦아주는 사람이 따로 있으며 근무자교대 행사도 볼만합니다.중소기업이 발달되었고 대리석이나 진주조개 양식도 발달되었고 언양 자수정을 대만이 수입,가공후 역수출하여 군인들을 먹어살릴정도로 보석가공기술도 뛰어니답니다. 이야기로는 하겠는데 글솜씨가 없어서 후기를 올리려면 송이골님께 개인교습을 좀 받아야 될것 같아요?
아이구!
부회장님 글솜씨가 상당하십니다.
나는 가보지 않았지만 간접경험을 통한 여행의 재미도 상당한 매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만여행을 기대해도 될 것 같습니다ㅎㅎㅎ
그렇지만 너무 부담은 갖지 마세요.
여행기에 부담을 가지면 여흥이 반감됩니다.
그저 지나가는 얘기로 흘려버리시고 잘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