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1일(월) 광주일보

늙어간다는 것은 슬픈 일일까 행복한 일일까? F. 스콧 피츠제랄드의 소설을 영화화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80세의 노인으로 태어나 거꾸로 인생을 살며 결국은 아기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한 남자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항상 문제작만을 만들어 온 데이빗 핀처 감독의 취향과 딱 맞아 떨어지는 소재인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 인생에 있어서 시간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1918년 1차 세계 대전 말 뉴올리언즈. 80세의 외모를 가진 아기가 태어난다. 바로 벤자민 버튼(브래드 피트).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가 벤자민을 낳다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분노와 아이의 너무나 평범하지 않은 외모에 경악한 아버지는 양로원 현관 앞에 벤자민을 버린다.
물론 실제로는 일어날리 만무한 황당무계한 이야기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관객들은 인생과 시간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서 다시금 물음을 던지게 되고, 젊음과 늙음의 사잇길에서 늘 고민하며 살아가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늙어가든 어려가든 결국 인생에 있어서의 시간은 끊임없이 흐를 뿐 멈추지 않는다는 진실과 직면하는 순간 영화는 끝난다.
영화 속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의 <파반느>는 이 오묘한 분위기의 영화에 딱 맞는 사운드 트랙이다. 원래 파반느(Pavane)는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발생하여 스페인 왕실에서 자주 성행했던 무용이었으며, 무곡이기도 하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작곡양식에 의해 많은 작곡가들이 곡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것이 라벨의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 그리고 포레의 <파반느>다.
포레는 당초 이 곡을 가벼운 음악회 연주용으로 작곡하였다가 편곡을 하여 관현악 버전을 만들었고, 후원자의 요청으로 베를렌느의 싯구절을 가사로 인용하여 합창곡 버전까지 만들었다.
포레가 작곡한 선율 가운데서도 가장 대중적이며 유명한 선율이니만큼 오늘날에는 수많은 악기와 편성으로 변형되어 각종 음악회에서 연주되고 있으며, 수많은 영화나 CF에서 사용되고 있다.
카페에서 듣는 것처럼 가장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연주는 기타리스트 존 윌리엄스의 음반이다. 곡의 서정성과 우아함을 정말 영화음악처럼 사랑스럽게 표현해 주는 연주. 유명한 명인 토미 라일리가 하모니카로 연주한 버전은 클래식 악기가 갖지 못한 독특한 맛과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정통 관현악 버전으로는 지휘자 레너드 슬래트킨이 성 루이스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연주한 텔락 음반사의 연주가 좋다. 최근 이 음원은 SACD로도 재발매되어 고음질을 자랑한다.
하지만 포레 <파반느> 최고의 음반은 클래식 연주가 아니다. 바로 애니 해슬럼이 노래한 <스틸 라이프>라는 크로스오버 음반. 영국의 위대한 그룹 <르네상스>에서 노래했던 그녀가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로얄 코럴 소사이어티와 함께 다양한 클래식 소품을 노래한 앨범이다.
<The day you started>라는 제목으로 개사된 포레의 파반느는 5옥타브의 음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애니 해슬럼의 놀라운 목소리와 만나며 새로운 곡으로 재탄생한다. 1985년에 발매된 이 오래된 크로스오버 앨범은 몇 십 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인생의 시간에 지친 당신의 삶에 평온한 휴식을 선사해줄 것이다.
<독립영화감독/음악칼럼니스트>
첫댓글 오늘아침 광주일보에서 기사 읽고 괭장히 기분 좋았는데 다락카페에서 다시 읽어도 좋습니다
카페를 항상 넉넉하게 하여주신 래원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