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0일 치앙마이
치앙마이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이 아마 새벽 5시 30분 즈음으로 기억 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반기는 건 시내 다운타운까지 움직이는 뚝뚝 기사들이다.
모두가 손에 “Down Town"이라는 글자판을 들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그 중 한명의 기사가 오더니 내게 흥정을 시도한다. 중심가까지 150B를 요구한다.
GH 하루 방값을 역산하니 150B는 조금 과한 듯하다. 그래서 깎자고 하니 깎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모든 장사는 어느 곳이든, 어느 나라이건 다 똑같은 모양이다. 그러나 태국의 물가를 아는 나에게는 네가 상대를 잘못 골랐다.
‘뒤돌아 가면 잡겠지’ 그런데 잡지를 않는다. ‘어쭈...쎈데?’
‘그래 어차피 뚝뚝이는 많다...나야 아쉬울 것이 없지’
다른 뚝뚝이 기사에게 접근한 나는 100B에 흥정을 하고는 중심가로 이동을 한다.
이젠 숙소를 잡고 시내 관광이다. 잠을 잘 못잔 하루지만 내게 시간이 많지는 않아 강행군을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나는 좀 더 일찍 떠났어야 했다. 24일에 비엔티안에서 소중한 약속이 있기에 나는 23일에는 비엔티안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빠듯하게 일정을 잡은 이유는 단지 역마살이다. 또한 그 동안 내게 남은 숙제를 구상하고 반성하기 위해 잡은 일정이니 떠난 것엔 후회가 없다.
시내에 도착하자 뚝뚝이 기사에게 1,000B을 내미니 거스름돈이 없는 모양이다. 아주 난감해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하는 수 없이 타패문 앞에 위치한 맥도날드에 들어가서 커피 한잔을 시키고 잔돈을 받아 뚝뚝이 요금을 지불하고는 커피한잔으로 여유를 찾는다.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지? 일단 와이파이를 이용해서 지도를 다운 받고, 숙소를 정하고, 걸어서 시내투어하고, 숙소는 어디로 정할까?......’
숙소는 6개월 전 내 딸이 묵었다는 다랜하우스로 정했다. 숙소의 상태는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내 딸이 머문 곳이라는 상징성이 나를 그리로 안내한다.
다랜하우스에 도착하니 무뚝뚝한 여자가 나를 맞이한다. 나는 방값을 물어보고 방을 볼 수 있냐고 하니 자신을 따라 오란다.
우리 딸의 말에 의하면 숙소 컨디션이 좋다고 했는데.... 가격도 착하다고 했는데....
화장실도, 샤워장도 공동 사용이란다. 가격은 250B. 약 7,500원.
뒤돌아 나오면서 딸을 생각한다.
내가 배낭여행을 보내면서 딸에게 교육시킨 것이 있다.
1. 절대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쇼핑하지 마라
2. 케리어 백 말고 배낭으로 여행하라.
3. 호텔보다는 GH를 이용하라.
4. 여행사 패키지를 이용하지 말고 버스를 이용하여 여행을 다녀라.
5. 쇼핑하지 말고 많이 보고, 많이 먹고, 많이 만나라.
내 교육대로 움직이긴 했지만 이런 GH를 말 한건 아닌데...ㅎㅎ
암튼 요즘 아이들처럼 편안하고, 쾌적함을 찾지 않은 딸에게 고마움이 든다.
젊었을 때의 여행이란 고생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정보도 얻을 겸 한국인이 운영하는 GH를 찾았다. 그러나 현재 방이 없다는 것이다.
오후 늦게 방이 빠질 것이라 한다. 난 배낭만 일단 맡겨 주시고 오후에 입실하겠다고 하고는 예약을 했다. 간단한 시내 정보를 입수하고는 카메라 백팩만 매고 출발한다.
어차피 라오스나 태국이나 도심 관광이란 것이 사찰 순례인 것을....
태국의 사찰은 내게 새소리부터 들려주었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유난히 새소리가 내 귀를 자극한다.
태국의 사찰은 라오스에 비해 화려함이 더 하다. 금장의 화려함과 기도하는 장소의 다양성 그리고 정리정돈 된 사원. 각 사원마다 그 특유함을 간직하고 있다.
빤삥사원-우몽사원을 지나는데 내 눈을 사로잡는 레스토랑이 나온다. 아직 아침도 못 먹은 상태라 무조건 들어가 보니 호텔이었다. 넓은 정원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작은 연못과 정원에 자리 잡은 테이블이 내 눈에 들어온다. 소박한 운치가 있는 도심의 호텔이 너무 마음에 든다. 후에 아내와 같이 올 때 여기서 머무르리라.....
두앙디 사찰에 들어서니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었는데 지붕 기와에 쓸 작은 기와가 눈에 띈다. 태국도 한국처럼 기와에 소원을 비는 문자를 넣을까?
무작정 사찰에 들어가 물어 보기로 했다. 사찰에는 젊고 멋진 스님께서 한 여자에게 바시를 하고 있었다. 나는 바시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무릎을 꿇고 기다리기로 했다.
바시가 끝나자 스님은 내게 무어라 물어 보신다.
“싸바이디 깝.” 일단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는
“Can you speak English?"
"Little" 로 시작 된 우리의 대화는 곧 바디 랭귀지로 변한다.
나의 이야기는 ‘기와에 내 소원을 적고 싶다. 그리고 그 기와를 내 손으로 얹고 싶다’였다.
몇 번의 바디 랭귀지가 통했는지 그 스님께서는 내게 기와와 팬을 주시고는 사다리를 찾고 계셨다. 나는 보시함에 돈을 넣고 간절히 기도를 한 다음 기와에 글을 썼다.
그러나 스님께서 난처한 얼굴로 내게 다가오시더니 “버미”를 외치신다.
난 “버뺀냥” 하고 공사장에서 쓰는 받침대를 찾아 기를 쓰고 지붕에 얹는 것을 성공하고는 사진을 찍었다. 스님께서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시며 웃으신다. 그렇게 두앙디 사찰에서 기분 좋은 출발을 보였다. 너무 흐뭇하다.
아침부터 햇살이 너무 뜨겁다. 와이파이가 필요한 시기도 찾아 왔다. 삼왕상 옆 카페에 들어가 급한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고, 아메리카노 한잔을 놓고 내 친구에게 카톡을 보낸다. 사실 내 친구에게 난 사과 할 일이 있었다.
40년지기 절친인 그 친구에게 난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이젠 마음에 정리가 끝났어. 곧 내 마음을 너에게 전할 수 있을 것 같아’
날씨 탓에 계속 물 종류만 찾게 된다. 과일 쥬스 판매대에서 망고쥬스 한잔을 사서는 들고 다닌다.
사실 난 쇼핑을 모른다. 어떤 것을 사야할지, 무엇이 필요한지 잘 모른다. 모든 것은 내 아내가 사주는 그대로를 입고, 쓰고, 사용했다.
그러나 내 눈을 사로잡는 선글라스가 눈에 띄었다.
안경점에 들어가 처음 눈에 띈 선글라스를 들고 가격을 보니 무척 비싸다. 그런 내 모습을 눈치 챈 것일까? 종업원이 와서는 60% DC해 준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쇼핑이란 것을 했다.
왓 프라씽에 도착하니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화려함 보다는 아기자기함이 더 눈에 띈다.
정성껏 기도하는 사람들... 열심히 사진 찍는 관광객들... 모두가 조심스러우면서 진지한 표정들이다.
저들의 기도가, 저들의 바램이 모두 하늘에 전달되기를 난 기도했다.
시내투어 중 내 눈을 사로잡는 곳이 있었다.
바로 동전 박물관.
내 가장 좋아하는 선배가 각 국의 돈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데 그에게 줄 선물이 있을 것 같았다. 곧 그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난 망설임 없이 그 곳을 방문한다.
치앙마이 옛 동전들.
여러 재질과 여러 문양의 옛 동전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이다.
몇 개의 동전을 사고 조심히 백팩에 넣고는 그 곳을 나왔다.
이젠 배가 고프다. 아침도 못 먹고 벌써 점심때니 배가 고플 만도 하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퍼집에 들어가 퍼로 한 끼 식사를 때운다.
식사 후 치앙마이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삶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어느덧 첫 출발지인 타패문에 도착했다.
이젠 어디로 가지? 치앙마이 도심을 흐르는 강(?)(추후 설명하겠음) 벤치에 앉아 지도를 꺼내 들었다.
그래 결정했어.
치앙마이 대학교. 태국 3대 대학교라는데
그 곳 지도를 보니 공연장이 있었다. 그러면 아마 연극반이 있을 거야.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재수가 좋으면 연극반의 공연 연습을 볼 수 있겠지.
그렇게 결정하고 일어서는데 옆 벤치 청년들의 움직임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너희들 도둑 낚시하고 있지?’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낚시대 없이 낚시줄로만 낚시를 하고 있었다. 아마 낚시 금지 구역이기에 안하는 척 줄만 잡고는 입질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슬그머니 그 옆에 앉아서 살며시 그 줄을 빼앗았다.
‘낚시하면 그래도 너보단 선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낚시줄에서 입질을 느낄 수 있었다. 힘차게 줄을 당기니 제법 앙칼지게 저항을 하는 물고기의 힘이 느낀다. 그리고는 얼른 줄을 그 청년에게 넘긴다.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서(낚시 금지구역이라면 난 불법 낚시를 한 것이니 아마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청년이 끌어 올린 고기는 약 30cm되는 이름 모를 물고기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니 그 청년들은 엄지를 들어 올린다.
뚝뚝이 기사와 100B에 치앙마이 대학교까지 가기로 했다.
뚝뚝이를 타고 가다 보니 치앙마이를 흐르는 강은 강이 아니라 치앙마이를 지키기 위한 해자였음을 직감한다. 평지에 위치한 치앙마이 도심에 성을 쌓고 그 사각 형태의 해자를 만들어 적의 침입을 방해하기 위한 해자.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남아있는 성을 보니 적벽돌 즉, 구운 벽돌이다. 산악으로 둘러 싸여있는 이곳에 성을 석성이나 토석혼축성이 아닌 구운 벽돌이라니?
아마 무너진 성을 재건하면서 고증에 바탕을 두지 않고 세운 성이라 생각이 든다.
도착하자 바로 발길을 돌린 것은 공연장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공연장의 규모가 아니다. 소극장이라 해도 위치나 구조가 좀 다르다. 한 외국인이 있어 난 여기가 무엇을 하는 곳이냐고 물으니 불교 전용 공연장이라는 것이다.
‘좋아. 그럼 학생회관으로 가자’
지도를 켜고 방향을 잡고는 학생회관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제대로 된 안내판이 없어 금방 맨붕에 빠진다.
벤치에 앉은 여학생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들도 모른다. 그들이 다른 학생을 잡고 다시 물어 본다. 난 스마트 폰에 저장된 내 옛날 연극사진을 보여주며 연극반 동아리를 찾는다고 하니 그러 공연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단다. 연극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단다.
‘에효....내 예상이 빗나간 것인가’
수목이 어우러진 캠퍼스 잔디에 앉아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고해성사를 하듯 내 마음을 솔직히 쓰기로 했다.
그가 이해를 하던, 하지 못하던
40년의 우정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그냥 넘기기에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낸 결론이 내 솔직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내 실수를 용서 구하고, 관계 개선을 위해선 그저 솔직할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친구야. 내 너를 감싸지는 못하고 아픈 곳을 더 후벼 팠으니.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어둑해져서 난 GH로 돌아 왔다.
어제 밤 슬리핑 버스에서 밤을 샌 탓에 몸이 이만저만 아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GH 아주머니께 내 계획을 말하니 일일 패키지를 소개한다. 그리고는 난 돌아오지 않고 치앙라이에 내려 준다는 것이다. 사실 난 이 여행의 또 다른 목적인 골든 트라이앵글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시사에 눈을 뜬 직후 TV에서 본 골든 트라이앵글의 시사 프로그램은 국제적 규제에 동참하는 정부군과 조직과 부를 내려놓지 못하는 갱들과의 전투 지역이 바로 골든 트라이앵글이었다. 내일 그곳을 난 방문할 것이다.
샤워를 한 후 알람을 맞추고는 난 침대에 누웠다.
첫댓글 치앙마이의 모습은 또다른 색으로 다가오네용^^
혼자만의 여행이 주는 교훈을 잔뜩 받아오신 님.. 부럽습니다.
사모님께는 한번도 하지않은 생일선물을 그분께....
예상대로 두분은 연인이셨군요.
3편에서 뵙지여~~~^^
연인사이 들켰다
도망가자 ㅎㅎ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