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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구하기 삼 만 리
저는 요즘 집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미얀마에는 전세 개념이 없어서 월세로 살아야 하니 돈을 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집을 구하려면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 있어 마땅한 집을 찾기도 어려워요. 첫 번째 조건은 성당에서 멀지 않을 것입니다. 매일 미사를 다녀야 하니까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여야 해요. 두 번째, 아직은 차가 없으니 대중교통 수단이 좋은 곳이어야 하죠. 세 번째, 저희가 수도자이면서 여학생 몇 명을 데리고 살 계획을 하고 있다 보니 저희의 사생활이 보호되는 집 구조여야 합니다. 시장도 가까웠으면 좋겠구요. 한국처럼 성당이 많은 나라가 아니다보니 성당을 중심으로 집구하기는 쉽지 않아요.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서 집을 알아보면 보통은 1개월 치의 월세비를 중개인에게 줘야 합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을 통해 알아보고 있어요. 노력해 보고 안 되면 중개인을 끼어 집을 찾아야 해요. 며칠 전에는 정말로 마음에 드는 집을 안내 받았어요. 집 구조도, 가격도 마음에 들어서 당장이라도 계약을 하고 싶은 집이었어요. 오래된 집인데 관리를 잘해서 깨끗하고, NGO에서 빌렸던 집이라 어느 정도 개조가 되어 있어 좋았어요. 그런데 성당에서 멀고 버스타고 가려 해도 직접 가는 버스도 없는 곳이었어요. 자가용이 있다면야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집이라서 ‘차가 있으면 좋겠다, 중고차라도 있으면 좋겠다’라는 욕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호기심으로 중고차 가격을 알아보았더니 800만KS(약 700만원)는 줘야 한다고 합니다. 결론은 깨끗하게 포기했어요.
다음 주에도 집을 보러 다니고 마땅한 집을 못 찾으면 2월에도 계속 돌아다녀야 해요. 여기서 제가 느끼는 심리적인 부담감은 함께 지내는 수녀님이 한국으로 휴가를 가게 되어 저 혼자 집보러 돌아다녀야 한다는 거예요.‘ 하느님께 기도하라. 찾아 주시리라’ 이 믿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2. 보좌 신부님 본가 방문
지난 주 16일과 17일 우리의 친절한 보좌 신부가 생일을 맞아 시골집에 간다면서 저희를 초대했어요. 보좌 신부님의 사촌 동생이 1주일 동안 양곤에서 머물 곳이 없어 2주 전 쯤에 저희와 함께 지냈었는데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그런 초대를 하는 것 같았어요.
신부님이 성장한 마을은 거의 모두 가톨릭 신자여서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한국 수녀들이 온다고 소문이 나 있었어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어요. 학교의 아이들도 우리를 보려고 마을 길로 쏟아져 나왔어요. 그 아이들도 모두 가톨릭 신자라서 더욱 정겹더라구요. 그런데 이 지역은 ‘케인족’들이 사는 곳이라 동네에서 모두 케인말을 사용하고 있어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학교를 다니거나 외부인들과 만난 사람들은 버마족어(미얀마 공용어)를 하는데 어머니들은 말을 못하세요. 이제 집 나가면 전기도 안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신부님의 부모님이 저희를 위해 잠자리와 화장실을 굉장히 신경 쓰셔서 미안할 정도였어요. 신부님 생일 아침에는 가정 미사를 드렸는데 사람들이 많이 와서 굉장히 기뻤어요. 신부님의 천척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미사를 함께 했어요. 생동감이 넘치는 아이들의 얼굴과 신앙심이 깊은 어른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어요. 미사를 드리고 나서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수돗물이 없으니 큰 수조에 물을 받아 놓고 설거지를 하고 계세요. 세수도 음식도 모두 저 물로 합니다. 무려 반찬을 16가지나 하셨고, 우리를 위해 채소 반찬도 3개나 해 주셨더라고요. 다음 날 동네 큰 행사가 있다고 돼지와 소를 잡고 있었어요. 남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땅을 파서 만든 아궁이예요. 야외 아궁이를 몽골에서도 보았었는데 이용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지만 원리는 똑같은 것이 재미있어서 찍어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