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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핀란드의 교육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
안승문 / 스웨덴 웁살라대학 객원연구원
edu2010@hanmail.net
핀란드, 세계의 교육을 컨설팅하다
지난 4월 22일, 미국의 위스콘신에서는 핀란드 교육전문가를 초청하여 높은 교육적 성취를 보이는 핀란드의 교육개혁 사례를 위스콘신의 교육에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탐색하는 작은 컨퍼런스가 열렸다. NEA 지부인 위스콘신 주 교육연합회와 위스콘신-매디슨 교육대학의 초청으로 온 파시 살베리(Pasi Sahlberg)는 교육연합회와 교육대학, 입법부 및 전문기관 등에서 온 30여 명의 참석자들 앞에서 핀란드 학교의 높은 성취를 가능하게 했던 배경 등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했다. 한 때 핀란드 교사였던 파시는 핀란드 국가교육청과 세계은행을 거쳐 지금은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유럽연합 부설 유럽 훈련 재단(European Training Foundation)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핀란드의 국가 교육청 전직 교육청장을 역임했던 까리 핏까넨(Kari Pitkänen)은 유럽연합(EU)이 지원하는 프로젝트의 하나로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의 교육개혁을 지원하기 위해 사라예보에 파견되어 교육 훈련 팀을 이끌다가 지난 8월에 핀란드로 귀국하였다. 핀란드 지방자치단체연합회와 헬싱키 대학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핀란드 컨설팅 그룹(FCG)이라는 회사는 세계은행(World bank), 유럽 위원회(European Commission), 아시아 개발은행 또는 핀란드 정부 등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 터키, 베트남, 네팔, 타지키스탄 등 세계 여러 나라의 교육 개혁을 위한 컨설팅을 하고 있다.
인구 530만여 명에 불과한 북유럽의 작은 나라 핀란드가 지구촌 곳곳에서 교육개혁의 방향과 전략을 컨설팅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 등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외치면서 계량적인 수치에 초점을 맞추고 경제적 효율성 제고와 학업성취도 향상 등을 목표로 교육개혁을 밀어 붙여 온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게 핀란드 교육은 중대한 도전이면서 벤치마킹의 대상이기도 하다. 교육이란 어떤 가치와 목적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학교와 교사들은 어떤 자세와 입장으로 교육에 임해야 하는지, 정부는 어떤 관점과 철학으로 교육정책을 세워야 하는지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인간다운 사회라고 인정받는 북유럽형 복지국가 체제를 꾸준히 발전시켜 오면서, 2000년부터 시작된 PISA 연구 결과 계속해서 3회에 걸쳐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적 성취를 보이고 있는 핀란드, 정보통신 기술 개발을 비롯하여 지식 정보 사회로의 변화를 앞장서서 선도하면서 세계적인 수준의 경제력은 물론 각종 국제적인 지표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핀란드의 국력과 핀란드인의 저력 앞에서 세계는 놀라움과 감탄과 부러움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핀란드의 교육이 어떤 토양 속에서 지금까지 발전해 왔는지, 핀란드의 교육이 그 효과성이나 성취도 면에서 성공적인 교육으로 인정받게 된 정책적, 철학적, 교육학적 배경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기로 한다.
완벽에 가까운 사회보장과 무상교육 - 북유럽형 복지국가
핀란드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과 함께 스웨덴 모델 또는 스칸디나비아 모델이라 불리는 북유럽형 복지모델을 가진 나라이다. 땅은 넓지만 숲과 호수가 많고 극지방에 접해 있어 매우 열악한 자연 조건 위에서 핀란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를 꽃피웠다. 핀란드식 교육 모델은 북유럽형 복지이라는 사회적인 토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복지병 운운하면서 북유럽 복지 모델의 가치를 폄하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핀란드와 스웨덴 등 북유럽의 복지는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의 언론조차 부러워하는 시스템이다.
북유럽 복지국가는, 저소득층이나 소외 계층들만을 위한 시혜적인 복지 또는 소극적인 복지가 아니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든 국민들에게 똑같은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를 기본 원칙으로 한다. 북유럽 복지국가를 지탱하는 정신의 핵심은 연대의 정신이다.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돕고 의지할 때 더욱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갑작스런 사고나 자연재해 앞에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 연대하고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 아래 핀란드에는 최소한의 생계보장ㆍ아동과 모성 보호ㆍ건강 보호ㆍ무상 교육ㆍ실업보호ㆍ노후 보장 등 복지의 그물망이 잘 완비되어 있다. 산전 산후 휴가ㆍ육아 휴직ㆍ병가와 연가 등은 물론 18세 이하 아동의 무상 외래진료ㆍ의료비 상한제ㆍ실업 수당ㆍ노령 연금 등은 모든 국민들을 질병과 사고 및 재해로부터 보호해 준다. 무엇보다도 복지국가 핀란드에서는, 직종에 따른 임금 격차가 크지 않고 누진 세제로 소득의 격차가 완화되며, 아동 수당ㆍ주택 수당 등 각종 수당을 통해 소득을 보전해주기 때문에 학력이나 학벌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물론, 위와 같은 모든 국민을 위한 보편적 복지에 필요한 예산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거두는 세금으로 충당된다. 2007년에 핀란드 국민들 1인당 세금 부담률은 43%(스웨덴 51.1%, 독일 34.7%, 캐나다 33.5%, 2006년 한국 26.8%, OECD 평균 36.2)로 상대적으로 부담이 크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완전 무상교육 등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로서의 핀란드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현재, 핀란드 국회의 의석 분포에서 사회민주당이 45석, 2개의 거대한 중도 우파 정당 의석이 101석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주의적인 북유럽형 복지제도는 안정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핀란드’ 라는 나라 - 지리적, 역사적, 정치 경제적 배경2)
■ 지리적 배경 : 핀란드((Finland, 핀란드어로는 Suomi)는 북유럽 발트해 연안에 있는 공화국이다. 핀란드는 북위 60도에서 70도 사이에 위치하며, 국토 면적은 33만 8145㎢로 유럽에서 6번째로 넓다. 이 가운데 3/4이 숲이고 1/4은 북극권에 속하며, 190000여개의 호수가 국토의 10% 정도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180000개 정도의 섬이 있다. 핀란드는 4계절이 뚜렷하며 춥고 긴 겨울과 따뜻한 여름이 특징이다. 핀란드 북단 북극권에 속하는 지역에서는 연간 73일 동안 해가 지지 않는 백야 현상이 계속되고 , 겨울에는 51일 동안 지평선 위로 해가 뜨지 않는 날이 계속되기도 한다.
■ 식민지 피지배, 국제기구 가입 : 핀란드는 13세기부터 1809년 까지 600년 가까이 스웨덴 왕국의 일부분으로 지배당했으며, 1809년부터는 러시아의 자치 대공국으로 지배를 받다가 러시아 혁명이라는 격동의 와중인 1917년 12월 6일에 독립을 선언하였다. 스웨덴이나 러시아는 핀란드를 억압하거나 수탈하지 않았으며 자치권을 광범위하게 인정하였다. 1919년에는 현재와 같은 헌법을 제정하였고 핀란드 공화국으로 독립된 나라가 되었다. 1955년에 국제연합에 가입하고 1995년에 유럽연합에 가입하였다.
■ 인구와 언어 : 핀란드의 인구는 530만 명으로 인종적으로 상대적으로 매우 단일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수도 헬싱키에는 56만여 명이 거주하며 전체 인구의 2/3는 도시에 살고, 나머지는 농촌에 산다. 82.4%가 루터교를 믿는다. 외국인들은 전체 인구의 2%에 달하며, 러시아, 에스토니아, 스웨덴에서 온 이민자가 가장 많다. 핀란드에서는 핀란드어와 스웨덴어 2개의 언어가 공식 언어로 사용되는데 스웨덴어 사용 인구는 약 6 %정도이다. 1700명 정도의 라프족들은 모국어로 사미어를 사용한다.
■ 조세, 경제, 사회 : 핀란드의 통화는 유로이다. 2006년 현재 핀란드의 1인당 GDP는 40196.8달러이다. 핀란드는 조세 부담율이 44.3%로 스웨덴(50.5%), 덴마크(48.8%) 다음으로 높다. 핀란드 경제는 선진 산업경제로, 철강, 엔지니어링, 전자산업들이 총 수출액의 60%를 차지하며, 임산업에 20%를 차지함. 핀란드는 인터넷 사용에서 선도적인 나라이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07-2008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핀란드는 종합 6위에 올랐으며, 특히 기초교육 및 고등교육 경쟁력 및 연구기관 경쟁력에서 세계 1위로 평가되었다. 국제 투명성 기구가 평가하는 부패 지수에서 핀란드는 2007년에도 덴마크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 1위의 반부패 국가로평가되었다.3)
■ 정치 구조 : 핀란드는 중앙 정부와 415개의 지방자치단체를 가진 다당제 의회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만 18세 이상의 핀란드 국민은 선거권을 가지며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핀란드의 국가 수반은 공화국 대통령이며 6년마다 치러지는 보통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핀란드의 총리는 정부의 수반으로 실질적인 행정 집행 권한을 가지며, 최다 득표를 한 정당에서 총리를 추천한다. 입법 권한은 핀란드 의회가 가지며, 정부는 법률을 수정하거나 연장하는데 있어 제한된 권한만을 갖는다. 핀란드에는 헌법재판소가 없으며 헌법에 위배 여부는 국회에서 다수결로 결정하는 데, 이는 국회로 대표되는 국민의 의지에 법과 질서가 종속된다는 것을 뜻한다.
■ 대통령 : 대통령은 총리와 협의하여 외교와 국방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고 군 통수권을 갖는다. 대통령은 의회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나 의회는 재의결을 통해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다. 사회민주당 출신인 현직 대통령인 Tarja Halonen은 여성으로, 2000년에 당선되어 6년 임기를 마친 후 2006년 선거에서 재선되었다.(2006년 선거에서 1차투표에서 46.3%, 결선투표에서 51.8%를 얻어 당선됨).
■ 의회 : 핀란드 의회는 단원제이며 4년마다 보통선거와 비례대표제를 통해서 선출되는 200명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된다. 2007년 4월 18일의 의회 선거 결과 정당별 의석과 득표율은, 중도당 51석(23.1%), 국민연합당 50석(22.3%), 사회민주당 45석(21.4%), 좌파동맹(17석(8.8%), 녹색동맹 15석(8.5%), 스웨덴 인민당 9석(4.6%), 기독민주당 7석(4.9%), 참핀란드인 5석(4.1%), 기타(올랜드 지방 대표), 1석(2.3%) 등이었다.
■ 내각 : 핀란드는 비례대표제를 실시해왔기 때문에 의회에서 1개 정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 역사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정부는 대부분 연립 내각이나 소수파 내각이다. Tarja Halonen 대통령은 2007년 4월 19일에 중도당의 Tarja Halonen를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핀란드 제70대 내각을 임명했다. 현재의 핀란드 내각 각료는 중도당과 국민연합당에서 각각 8명씩, 녹색동맹과 스웨덴 인민당에서 각 2명씩 총 2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 여성 참정권 : 핀란드는 1906년부터 보통선거의 비례대표제 형태를 취하는 국회개혁을 실시하고, 유럽 최초로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다. 여성인 현직 대통령 Tarja Halonen은 2000년에 이어 2006년에 재선되었으며, 2003년에 유럽에서 최초로 여성 총리가 임명되기도 했다. 지난 2007년 총선에서는 국회의 전체 200석 중 42%인 84석이 여성 의원들로 채워졌다. 뿐만 아니라, 2007년 총선 이후 구성된 현재의 내각에서는 20명의 각료 가운데 여성이 12명으로 최초로 여성 장관이 다수로 임명되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도 남성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 공공 부문 : 핀란드에는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 즉, 공무원이 매우 많다. 국가 공무원 12만 4천여 명, 지방자치단체에 고용된 사람이 43만여 명으로 공공부문에 고용된 사람 수가 전 국민의 10%를 넘는 55만 4천여 명이다. 이 가운데 13만 명 가까이 되는 가장 많은 수가 건강 보건 분야 공무원이며, 교육공무원이 12만 3천여 명, 다음으로 사회복지 부문 공무원이 11만 여명으로 많다. 핀란드에서는 지금 중도 우파 연합이 의회를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공공부문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은 별로 없다. 공공부문이야말로 거대한 북유럽형 복지를 지탱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 노동조합 : 핀란드는 노동조합과 사회단체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4) 핀란드는 전체 노동자의 74%인 210만 명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고, 단체협약 적용률은 90%에 달한다. 노조 가입 여부에 상관없이 노동자 대부분이 노동조합과 사용자 간에 체결하는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고 있음을 뜻한다. 핀란드 노동조합은 기업별 노조가 아니라 산별노조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현직 노동자가 아닌 학생이나 실업자, 은퇴자들도 노조원이 될 수 있다.
■ 단체협약, 포괄적 임금 정책 협약 : 핀란드의 노동자들과 고용주들은 고도로 조직되어 있다. 모든 노동조합들은 해당 산업의 고용주를 대표하는 협상 파트너가 있다. 핀란드 노동시장의 이해 당사자 그룹의 조직과 그들 사이의 단체 협상은 핀란드 사회의 기본적인 특징이다. 핀란드에서 노동관련 단체협약은 중요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다. 노사 협상은 고도로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처럼 높은 수준의 조직들을 바탕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개 2년에 한 번(의무적인 것은 아님) 노동조합과 고용주들과 정부 3자가 협상을 하여 ‘포괄적 임금 정책 협약’을 체결하게 되며 그 협약은 개별 산업의 노동조합과 고용주 연맹들 간의 단체교섭에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 정부와 노동조합 고용주의 협력 : 핀란드 정부는 종종 사회정책이나 세금 정책을 조정함으로써 이러한 중앙의 교섭 과정을 지원한다. 정부는 또한, 노동자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의 수정이 제안된 경우에는 항상 노동조합과 고용주들로부터 의견을 듣고 조언을 구한다. 예컨대, 근무 시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기 위한 어떤 제안이 제출된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노동조합과 고용주 대표들이 포함된 작업 그룹에서 심도 있는 협의를 하게 된다. 대개의 경우, 이런 종류의 작업 그룹들은 공동의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협상을 계속한다.5)
복지국가 핀란드의 학교 제도
핀란드 헌법 제16조에는, 모든 사람들은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지며, 공공 권력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능력과 특별한 필요에 따라서 교육 서비스를 받을 동등한 기회와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방해 받지 않고 자신들을 발달시킬 기회를 갖도록 보장해야 한다며 국민의 교육권과 교육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이런 헌법 정신에 따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든 학생들에게 동등하게 질 높은 공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핀란드에서 전반적인 의무교육 제도의 도입은 1921년에 법으로 제정되었으며, 1970년대 이전까지는 6년제 의무교육으로 초등 5학년 단계에서부터 취업과 진학을 조기에 구분하는 학교제도가 유지되었다. 그 후, 1970년대 들어 9년제 의무교육과 함께 초등 6년과 하급 중학교 3년을 합친 9년제 종합학교 제도가 시행되었다.
핀란드의 학교 제도는, 종합학교에 입학 전 1년 동안 다니는 취학전 교육, 만 7세 이후의 학생들이 1학년부터 10학년까지 다니는 종합학교에서의 기초교육(9학년까지는 의무 10학년은 선택), 직업교육과 일반 인문 교육으로 나눠지는 3년간의 고등학교 교육, 대학과 기술 전문학교에 의해서 제공되는 고등교육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필요로 하는 람은 누구나 모든 학교 수준에 해당되는 성인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종합학교의 경우, 법정 수업일수는 연간 190일이며, 8월 중순에 학기를 시작하여 다음해 6월초에 끝난다. 학기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1년에 4~5학기제로 운영된다. 주5일제 수업을 기초로, 주당 19~30시간까지의 수업시간을 갖는데, 학생 개개인의 주당 수업시간은 연령과 선택과목 수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지자체의 판단에 따라 추가로 공휴일을 가질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도 학기와 수업일수는 다르지 않으며, 주5일제 기준으로 주당 30시간 전후로 수업이 이루어진다.
종합학교에서는 필수 과목과 선택 과목을 가르치는데, 필수과목은 모국어와 문학(핀란드어 또는 스웨덴어), 또 다른 모국어(스웨덴어 또는 핀란드어), 환경, 건강, 종교 도는 윤리, 역사, 사회,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리, 체육, 음악, 예술과 공예, 가정 등이며 선택과목은 지방자치단체와 학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진로 상담도 학생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국가교육청은 국가 교육과정에 핵심적인 교육과정과 지침을 규정함으로써 여러 교과목들의 교육 목적과 주요 내용을 결정한다. 국가교육과정에는 범교과적인 주제(cross curricular theme)들이 포함되는데,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시의성 있고 중요한 이슈들이 범교과적 주제로 선정된다.
유치원 또는 종합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취학전 교육의 목적은 기초학교 입학을 위한 학습을 위한 준비도를 높이고 가정 환경 등으로 인한 아동들 간의 격차를 줄이는 것으로, 의무교육은 아니지만 2006년 현재 98% 입학하고 있다. 2007년 현재 종합학교는 3,300개가 있으며, 10명 미만의 작은 학교도 있고 900명 이상의 큰 학교도 있다. 종합학교 저학년 과정(1-6학년)에서는 주로 대부분 학급담임으로부터 교육을 받으나, 고학년 과정(7-9학년)에서는 과목별 교사가 교육을 한다. 종합학교는 1~9학년이 함께 있는 학교도 있고, 1~6학년 또는 7~9학년만 있는 학교도 있다. 종합학교 7~9학년과 고등학교 1~3학년이 한 학교에 있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일반 고등학교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데 3년제 일반 고등학교를 마치면 대학 입학 자격시험(Matriculation examination)을 거쳐 대학교에 진학하거나 직업학교 진학, 또는 취업의 길을 선택한다. 직업 고등학교의 경우 현장 실습과 연계된 2~3년의 교과과정을 이수하게 되는데 졸업 후에는 취업을 하거나 직업 전문대학 또는 일반 대학교에 진학하여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다.
직업학교의 절반은 지방자치단체가, 1/3은 중앙정부가, 나머지는 민간이 운영하나, 직업학교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의 70~100%를 중앙정부가 부담한다.
고등교육은 대학6) 과 직업 전문대학(Polytechnic)7) 으로 구분되는데 대학들은 연구와 연구에 기초한 교육을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직업 전문대학은 노동시장에 부응한 직업 교육을 제공한다. 일반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으로, 직업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폴리테크닉으로 진학하지만 통로는 서로 열려있다. 대개 3년 정도인 대학의 학사과정은 석사과정과 연계되는데, 3년간 120학점을 취득하면 학사학위를, 이어서 2~3년 동안 160~180학점을 취득하면 석사학위를 받는다. 석사 과정 이후에는 라이센스와 박사학위 과정이 있다. 직업 전문대학은 직업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학사 학위를 수여하며 수료기간은 3.5~4.5년인데, 이 과정에서 140~160학점을 취득한 후 대학으로 옮겨서 상위 학위(석사)를 취득할 수 있다.
세계는 왜 핀란드 모델에 주목 하는가
핀란드는 OECD가 시행해 온 만 15세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2000, 2003년에 이어 2006년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학업성취도를 보여주었다. 연속 세 차례에 걸쳐 세계 최고 수준의 성취도를 확인시켜주면서 핀란드의 성공적인 교육 시스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졌고, 2001년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교육자들이 핀란드 순례에 나서고 있다.
1980년대부터 영국과 미국을 선두로 한 많은 나라에서 교육에서의 경쟁과 효율성ㆍ표준화된 평가를 통한 학업성취도 향상 등을 내세우며 신자유주의적인 교육개혁에 몰입하고 있을 때, 핀란드 교육자들과 정치인들은 확고한 교육적 원칙과 철학에 바탕을 둔 핀란드식 교육개혁을 조용히 추진해 왔다. 핀란드는 복지적 관점과 평등주의의 원칙을 확고히 고수하면서 학급당 학생 수 축소 등 교육 여건을 크게 개선하고 교육과정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확대하며, 교사들의 교육적 전문성을 강화시키면서 학교와 교사들의 자율성을 크게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최고 수준의 학업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핀란드만의 독특한 학교교육 모형이 완성될 수 있었다.
오늘날, 핀란드의 성공한 교육개혁에 대해서 선진국을 자임하는 미국이나 영국은 물론 일본과 캐나다 등 많은 나라의 교육자와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학교교육 향상시키려면 학교와 교사들이 경쟁하도록 해야 하며, 그를 위해서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시장경쟁의 개혁 논리를 신봉해온 정치인과 경제인, 교육정책 담당자들에게 핀란드 교육은 커다란 도전이자 이색적인 자극제가 되고 있다. 핀란드는 이제, OECD 국가들과 국제 사회를 향해서 시장의 원리나 경쟁의 논리가 아닌 교육의 논리에 충실할 때에 비로소 개개인의 학업 성취도는 물론 국가적인 교육적 성취도가 크게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인이 되었다.8)
한국 사회가 핀란드 교육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개개인들의 인간적인 발달과 공동체의 통합적인 발전을 위해서 학교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국가 지도자들은 어떤 교육철학과 관점으로 국민들에게 보편적인 공교육을 제공해야 하는지, 교육 정책은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어떤 과정을 거쳐 입안되고 시행되어야 하는지, 학교와 교사들은 어떤 교육 철학과 원칙을 가지고 교육에 임해야 하는지를 핀란드 교육을 통해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교육 성공에 주목하자고 할 때 어떤 이들은, 핀란드 사회가 우리나라와는 역사나 문화, 사회적인 맥락이 전혀 다르다는 이유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성급하게 부정적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교육개혁은 그 사회가 가진 조건이나 맥락 속에서 설계되고 추진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인간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나 교육이 갖는 보편적 특성이 나라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핀란드의 교육개혁 경험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우리가 핀란드 교육에서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도, ‘모든 학생들에게 차별 없이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공교육에 대한 관점과 철학이다. 핀란드 정부와 교육자들이 견지해온 철학과 가치와 원칙은 우리나라는 물론 여러 나라의 교육자들이 주장하고 실현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다만, 다른 나라에서는 그것들이 당위적인 희망사항에 머물렀음에 반해, 핀란드에서는 실천적인 노력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창조하여 전 세계에 확인시켜주었다는 점이 큰 차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이후에 전교조를 비롯하여 많은 교육자들이 끊임없이 주장하고 요구하며 실현하고자 노력해 왔던 것이 바로 핀란드가 지금 실현하고 있는 그런 교육이었다.
다른 나라 교육과 달리 핀란드 교육만이 가진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인가? 무엇이 핀란드 교육을 그와 같은 성공으로 이끌었을까? 핀란드 교육모델의 뒤에는 어떤 교육학적 비밀이 숨겨져 있는가?
핀란드 교육의 성공을 가능케 한 것 - 교육 철학과 원칙
핀란드 학생들의 학습은 학교와 교실 안에서 끝난다고 할 만큼 핀란드에서의 교육은, 보통 사람들의 정상적인 업무 시간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통해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핀란드의 학교에서는 가정 형편이나 부모의 학력이나 직업으로 인해 학업 성취도에 차이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정규 교육과정 외에 별도의 학습을 할 필요가 없게 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학교 안에서도 휴식시간이면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을 제외하고는 모두 밖으로 나가 뛰어 놀도록 한다. 몇 주 동안에 걸쳐 보고서를 써내는 숙제를 제외하고는 숙제가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매우 짧은 시간에 해 낼 수 있는 것들이다. 학습에 들이는 시간을 비교한다면, 하루중 학습에 투여하는 시간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 핀란드 학생들이 학습하는 시간은 가장 적다. 핀란드 학생들은, 학교 공부가 끝나면 학교 내의 방과후 클럽이나 지역사회의 다양한 스포츠 클럽, 문화센터나 아트센터 등에서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고 특기를 기른다.
우리나라 학생들과 비교할 때 공부하는 시간이 1/4에도 못 미칠 핀란드의 학생들이 그렇게 높은 학업 성취를 보일 수 있게 된 데는 어떤 배경이 있는 것일까? 핀란드의 교육 정책과 학교의 교육활동에서 확고하게 견지되고 있는 교육학적 원리는 어떤 것일까?
핀란드 교육자들의 견해와 필자가 연구자로서 탐색한 결과를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의 세금으로 모두에게 최상의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1968년부터 지금까지 핀란드 교육이 추구해 온 핵심적인 목적은 나이나 거주지, 경제적인 형편, 성이나 모국어와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하는 것이었다. 모든 국민은 차별 없이 질 높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그런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최상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 핀란드에서 교육은, 만 6세 취학전 교육으로부터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무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의무교육 단계인 7세부터 16세에 까지의 종합학교에서는 학습에 필요한 자료, 학교 급식, 보건과 진료, 상담, 심리 서비스 등 모든 것이 무료로 제공되어야 하며, 집 가까이에 학교가 없어 5Km 이상의 거리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교통비도 제공해야 한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대학원생은 국가로부터의 학업지원금을 받으며 필요한 경우 생활비와 학자금 융자를 받아 독립적으로 생활하면서 학교에 다닐 수 있다.9)
핀란드에서 교육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의 부담으로 구매해야 할 상품이 아니라, 핀란드 국민이라면 누구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제공받고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다. 교육은 건전한 핀란드 시민을 육성하는 일이자, 핀란드 경제를 발전시킬 노동력을 기르는 길이며, 핀란드의 사회와 문화,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관점이 바탕이 되어 있다.
2) 모든 교육은 통합교육(inclusive education)의 원칙에 따라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핀란드에서는 학습 속도가 느린 학생은 물론 특수교육이 요구되는 장애를 가진 학생까지도 같은 학습 집단 안에 통합시킨 상태에서 교육을 해야 한다는 매우 확고한 교육 철학과 교육학적 원칙을 가지고 있다. 학습이 부진한 학생을 위해서는 특수 교육적 관점에서 일시적으로 특별한 학습 기회를 주거나 보충 지도를 하는 일은 있지만, 학습 속도에 따라 수준을 나누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지방자치단체나 학교 또는 교사가 어떤 이유로든 학생들에게 차별적인 학습이 조장되도록 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학교나 교사들은 교육의 과정에서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소외되거나 배제됨이 없도록 해야 한다. 모든 학생들은 통합적인 학습 환경 속에서, 개개인이 가진 학습 요구에 맞게 개별화된(individualized)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배려해야 한다.
통합교육을 중시하는 배경에는, 학생들의 공동체 안에서 느끼는 인격적 자존감과 학습을 위한 흥미와 동기, 앞서는 학생과 뒤지는 학생간의 인격적 교류가 교수나 학습의 효율성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확고한 교육학적인 관점이 있다. 핀란드 정부가 1972년부터 종합학교(comprehensive) 제도를 본격적으로 확대하고, 1980년대 중반부터 능력에 따른 교육(이른바 수준별 교육)을 폐지한 것도 이런 통합교육의 원칙에 대한 충실하기 위한 것이었다.
3) 교사의 지성적 책무성을 신뢰하고, 교육 전문가로서의 자율권을 존중해야 한다.
오늘날 핀란드 교육성공의 핵심 요인은 유능하고 열정적인 교사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교사는 핀란드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 중의 하나이다. 교사들의 양식과 전문성을 신뢰하고, 교육자로서의 자존감과 전문적 자율성을 존중해 주며, 창의적인 교육활동을 하도록 격려하고, 더 좋은 교육을 위해 필요한 교육 여건을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핀란드 교원정책이 핵심이다.
핀란드에서는 학교교육과 교과목별 교육 목표와 원칙은 정부가 정하지만,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교재를 선택하고 교수 방법을 결정할 책임과 권리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아래 학교와 교사들이 갖는다. 정부는 교육과정 운영을 창조적이고 유연하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국가 수준의 어떠한 획일적인 표준도 강요하지 않는다.10)
어떤 참고 자료를 활용해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는 전적으로 교사들의 권한이며, 교사는 교육과정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다양한 창조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
핀란드의 교사들은 5~6년에 걸친 교사 양성 교육을 통해 석사 이상의 학위를 얻은 사람들이다. 핀란드의 교사들은 법률가나 의사에 못지않은 사회적 대우를 받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교수와 비슷한 수준의 사회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타율적인 장학 감사가 아닌 자율과 자치를 위한 시스템이 학교와 교사의 책임을 담보한다.
핀란드의 교육 행정과 학교 운영, 교실 수업을 관통하며 작동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민주적인 소통과 자율과 자치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부에서 단위 학교에 이르기까지 어떤 강압적인 지시나 명령 체계가 아니라, 국가적으로 합의된 교육 목표와 교육 과정을 실현시키기 위한 긴밀한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자율과 자치의 민주적인 원리가 작동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핀란드에도 오랜 동안 교육부와 교육청이 지침을 제시하고 학교에서 제대로 이행되는지를 확인하고 독려하는 관료주의적인 장학 감사 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에 교육청에 의한 장학 감사(inspection) 제도를 폐지하여,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과 책무성에 기초한 학교 운영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다.
장학 감사가 폐지되고 교사들의 자율성이 크게 확대되면서 교사들은 학생들의 효과적인 학습을 가능하게 하고 학업 성취를 높이기 위한 대안적이고 창조적인 교수 전략과 교수법, 교육학적인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파시 살베리(Pasi Sahlberg)의 표현대로 강요된 책무성이 아니라 지성적 책무성(intelligent responsibility)이 효과를 발휘하게 된 것이다.
장학감사가 폐지되면서 새로 도입된 시스템은 ‘학교 자율평가 제도(self evaluation plan)’이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에스뽀 시 기초학교의 경우에는 3년에 한 번씩 학교 스스로 작성한 ‘학교 자율 평가서’(15~20쪽)를 지방자치단체 교육국에 제출하고 피드백을 받아 필요한 경우 학교 구성원들이 발전계획을 만들어 제출하고 실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학교 자율 평가 제도’는 일종의 설문조사 방식을 포함한 학교운영 평가, 교육 과정 평가, 교원 평가, 학교장 리더십 평가가 통합된 시스템으로, 에스뽀 시의 경우 △학교와 가정의 의사소통은 활발한가, △학부모ㆍ학생ㆍ교사의 학교운영과 교육활동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학생과 교사의 협력은 어떠한가, △교육과정 운영은 잘 되고 있는가, △우리가 좀 더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학교장의 리더십은 어떠한가? 등의 항목으로 자율적인 평가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학교 자율평가를 통한 자치 시스템은 학교장과 교사들의 창의성과 책무성을 크게 높여주었고, 학교와 교육시스템 전체의 질 높은 성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5)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학습할 수 있도록 학급 편성을 해야 한다.
핀란드 교육자들은 비슷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따로 나누어 가르칠 때(homogeneous group) 학습 효과가 높을 것이라는 교육학적 가정을 인정하지 않으며,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을 때(mixed-ability group) 더 좋은 학습 효과를 거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핀란드 내부에서도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섞여 있을 때 성취도가 더 높다는 연구가 있었다. 핀란드 교육자들은 PISA 연구 결과가 자신들의 교육학적 확신을 국제적으로 확인시켜주었다고 믿는다.
핀란드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동일한 학습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면서 같은 속도로 학습해야 한다는 산업사회의 공장식 교육학적 가정을 부정한다. 따라서, 모든 학생들이 동시에 교사의 강의를 들으면서 똑같은 내용을 같은 속도로 학습할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문제를 풀거나 글을 쓸 때에도, 더 빨리 해 내는 학생이든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학생이든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해내면 동일하게 능력을 인정해 준다.
그 대신 핀란드의 교육은, 모든 학생은 가정 환경이나 이전 경험의 차이에 따라서 학습의 속도가 다를 수 있고, 같은 나이의 학생들일지라도 관심과 흥미를 느끼는 분야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핀란드에서는 그 대신 학생들 개개인이 가진 개별적인 특성이나 조건, 학습 욕구에 맞추어진 개별화 학습(individualized learning - 개인 맞춤형 학습)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며, 학생-교사-학부모 대화를 통해서 ‘개인별 학습 계획’(individeual learning plan)을 세워 개인별 필요에 맞춘 학습이 활성화되도록 제도화하고 있다.11)
6) 학습이 부진한 학생은 그 원인을 찾아내어 조기에 특수교육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핀란드의 학교를 방문해서 교사들에게 학습 속도가 빠르고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어떤 배려를 하는지 물으면 잘 하는 학생들이 더 잘하게 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은 하지 않으며, 교육과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뒤떨어지는 학생이 있으면 그 원인을 파악하고 특수교육적 지원을 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과 1.5배 이상의 예산을 들인다고 한다. 또, 특별한 장애를 가진 학생만이 아니라 학습이 부진한 정상 학생들에게도 특수교육적 관점에서 접근한다고 한다.
핀란드에서도 이해력이 높고 학습 속도가 빠른 학생들이 그런 특성을 살려 더 많은 것을 학습할 수 있도록 지도 조언을 해 주지만 그것은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당연한 교육활동의 하나일 뿐 이른바 영재성을 길러주기 위한 별도의 조치나 지원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고등학교 단계에서는 특정 교과목에서 눈에 띄게 뛰어난 성취를 보이는 학생을 대학과 연결시켜 별도의 학습기회를 갖게 하기도 하고, 2년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도 있게 하고 있지만 그다지 권장하지는 않는다. 학생들에게는 교과목 학습 이외에도 정신적 신체적 성숙과 사회적 발달을 위해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많으며, 학업 성취가 빠르다고 그 많은 일들을 소홀히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핀란드 교육자들은, 심각한 장애를 가진 경우가 아닌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육과정 목표를 정상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학습이 부진한 학생에게는, 가정에서 부모의 관심과 격려가 부족했거나, 학습에 필요한 기본 개념에 대한 이해나 준비가 부족하거나, 학습하고자 하는 동기를 갖지 못했거나, 공부하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거나, 친구나 선생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거나 학급 규모가 너무 커서 교사의 배려가 부족하거나 , 어떤 이유가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학교와 교사의 역할은 정상적인 학습을 방해하는 그런 요인을 찾아내어 없애주고, 학생이 학습 동기를 갖고 스스로 공부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7) 교육적인 관점과 철학을 바탕으로 범정파적 협력 속에 일관성 있는 교육정책을 펼쳤다.
핀란드 교육이 오늘날과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된 데는 여야 정당을 떠난 범 정파적인 합의와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교육 체제로의 개혁이 본격화되었던 7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핀란드 교육정책의 특징은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정책이 요동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핀란드 교육개혁 정책의 산 증인이자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온 사람은 1972년부터 1991년까지 핀란드 국가 교육청장을 맡았던 에르끼 아호(Erkki Aho)이다. 전직 교사이며 대학에서 교육심리학을 연구하기도 했던 에르끼 아호는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을 20년 동안 교육청장으로 있으면서 정치인과 교육자들을 설득하여 핀란드 교육의 오늘이 있게 한 핵심적인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에르끼 아호와 핀란드 교육자들은 교육이 지향할 가치와 철학과 원칙에 대한 일관된 입장과 비전을 견지하면서 종합학교 제도 도입, 교육과정 개혁, 고등학교 개혁, 교사교육의 혁신 등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였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경제학자들과 정치인들이 나서서 효율성과 경쟁 만능의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있을 때 핀란드의 교육자들은 복지국가적인 교육개혁에 대한 신념과 원칙을 지키면서 정치인들과 협력하여 지금의 핀란드 교육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에르끼 아호를 비롯한 핀란드 교육정책 담당자들은, 정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사 한 사람이 보살필 수 있는 학생 수가 적정선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육학적 원칙으로 정치권을 설득하여 교사와 학생들에게 최적의 교수-학습 여건을 마련하는 데 투자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핀란드 정부는 80년대부터 학급 규모를 축소하여 2002년 기준으로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초등학교(1~6학년) 15.5명, 중학교(7~9학년)는 10.6명, 고등학교는 16명 규모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2002년에 우리나라는 교사 1인당 초등 31.4명, 중학교 20.7명, 고등학교는 16.5명이었다)
핀란드 교육이 한국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
핀란드 교육을 살피다 보면, 핀란드가 지금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을 상대로 하나의 거대한 교육학적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니 반신자유주의니 하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훌쩍 뛰어넘어선 교육제도, 인간교육의 철학과 공동체적 상생의 원리,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의에 충실하면서 개인의 학습 선택권을 충실히 보장하고 기업의 요구나 국가 경쟁력의 향상에도 크게 기여하는 21세기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은 어떤 것인지를 실천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실험 말이다.
핀란드의 교육개혁 사례는 무엇보다도, 교육자들의 올바른 교육적인 관점과 철학이 합리적인 정치와 만날 때 교육개혁은 성공할 수 있으며, 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방향과 원칙에 대해 교육계와 정치인과 시민사회 단체가 함께 하는 범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야 말로 성공적인 교육개혁의 필요조건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런 맥락에서, 핀란드 교육개혁 모델의 성공 요인을 살피면서 한국의 정치인과 교육행정가와 교육자들이 꼭 되새겨 보아야 할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1) 미래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능력은 창조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역량’이다. 정부나 교육감들은 탐욕과 이기심과 무한경쟁을 조장하는 시장 논리를 폐기하고, 철저한 교육의 논리, 소통과 협력의 논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철학과 원칙을 회복하지 않는 한 교육의 미래는 없다.
2) 대통령과 교육부, 시도 교육감,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모두에게 차별 없이 최상의 교육을 제공하도록 한 헌법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 교사 1인당 적정한 학생 수를 유지하고 무상교육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예산을 확보할 책임을 다해야 한다.
3) 정부는 지금까지 교사들을 폄하하고 적대시해 왔던 부정적인 교원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그 대신, 모든 교사들이 교육자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교육적인 권위와 사명감을 가지고 창조적인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4) 탐욕과 부정과 황금만능주의를 조장하는 사회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지나친 임금 격차의 해소, 부정과 부패의 척결, 비정규직의 축소, 전근대적 학벌주의 철폐, 점수 만에 의한 능력 평가의 철폐 등은 교육개혁의 전제이자 필요조건이다.
5) 우수한 학생들만 모아 교육시키는 것은 인격 형성에도 실질적인 학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양한 특성과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질 때 자발적이고 자연스런 학습이 활발해질 수 있다. 학생들 스스로 공부할 과제와 속도를 선택하여 자발적으로 학습하게 하라.
6)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교육학적 이론과 교수법을 요구한다. 교사들은 시대 흐름에 맞게 새로운 교육학적 이론과 실천을 위한 연구와 실천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한다. 정부와 시도교육청은 교사들의 전문성 증진을 위한 노력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7) 창의적인 교육활동을 위해서 자율화와 다양화는 매우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자율화와 다양화는 확고한 민주화 위에서 가능해진다. 자율화와 다양화는 획일적인 교과서 제도의 유연화, 국가 교육과정의 간소화, 일제고사와 같은 획일적인 평가의 폐지, 객관식 선다형 평가의 폐지, 교사별 평가의 강화를 통해 가능해진다.
8) 교육은 더 이상 교사들만을 다그쳐서 정상화되거나 교사들만의 힘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교육을 되살리려면 이 땅의 학부모, 학생은 물론 사회단체, 정치인, 기업인, 문화예술인, 언론인 등 모두의 지혜와 역량을 모으고 교육의 미래를 위한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9) 교사들과 교육학자들은 교육계는 물론 사회 각 부문과 여야 정치권에 제안할 설득력 있는 교육개혁정책과 실행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경제 논리나 정치 논리를 넘어서 인간 존중과 교육적 배려에서 출발하면서도 시대적 사회적인 요구와 필요를 담아야 한다.
10) 우리 교육은 몇 가지 정책 수단을 통해 2~3년 만에 정상화될 수 없다. 10년 20년을 내다보는 미래지향적 안목을 가지고 한국 교육을 어떻게 발전시켜 가야 할지에 대한 비전을 함께 만들고 그것을 실현시킬 일련의 정책 프로그램이 개발될 때 성공적인 교육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
희망의 미래를 위한 대화와 협력을 기대하며 …
핀란드 의회의 상임위원회중 하나인 미래위원회(위원장 마르야 요한나 티우라, Marja Johanna Tiura)에 따르면, 4년 임기의 핀란드 정부는 임기 중 적어도 1회 이상, 15년 후의 국가발전 방향과 트렌드를 예측한 국가미래보고서에 중장기 국정과제와 해결 방안을 담아 국회와 국민에게 보고해야 하며, 의회는 이를 검토하고 평가하여 좀 더 다듬어진 최종 보고서를 완성하도록 한다고 한다.
핀란드가 도입한 미래위원회와 국가미래보고서 제도처럼, 얽히고설킨 우리 교육문제도 눈앞의 현안에 대한 찬반 논란이나 온갖 이해관계들을 뛰어넘어, 10년이나 15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좀 더 ‘큰 논의’를 해 볼 수는 없을까?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 허심탄회하게 둘러 앉아 각자의 요구와 저마다의 처방전을 털어놓고 조건 없이 얘기를 시작해볼 수는 없을까?
교사들과 교육전문가들이 교육개혁의 원칙과 방향에 대한 초안을 잡고,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은 교육단체나 시민사회 단체들과 조율하고 의견을 반영하여 1차로 보완하고, 교과부 등 정부 당국자들이나 시도 교육감과 교육위원들, 시장 도지사와 시도의원들과 협의하여 가다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여야 정치인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조율하여 마침내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교육에 대한 큰 협약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대립’과 ‘비난’과 ‘갈등’의 소모적인 역사를 청산하고 ‘대화’와 ‘소통’과 ‘협력’의 미학이 우리 교육의 희망찬 미래를 여는 데 힘을 발휘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핀란드 교육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관건은 바로 핀란드 교육이 가야 할 큰 개혁의 방향과 원칙에 대해 핀란드 교육자들과 핀란드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크게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이라던 에르끼 아호. 핀란드에도 교육개혁에 대한 견해 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이 있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커다란 공감과 합의를 만들어낸 것이 성공적인 개혁의 열쇠였다고 강조하던 에르끼 아호의 체험담처럼, 우리나라의 교육문제들도, 갖가지 이해관계와 입장 차이를 뛰어넘는 허심탄회한 대화와 통 큰 합의를 위한 노력을 시작할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될 것이라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