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2020년 1월 9일 MBC라디오 서경석 양희은의 여성시대에서 방송된 필자 사연 글입니다.
국어사전에서
짝사랑의 뜻을 찾아보면 ‘한쪽만
상대편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상대방은
전혀 사랑하지 않는데 한쪽만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게 바로 짝사랑이다.
상대방은
알아주지 않는 짝사랑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지구촌의
모든 사람은 짝사랑에 대한 기억이나 경험 한두 가지쯤은 지니고 있지 않나 싶다.
특히
남성들은 거의가 짝사랑에 대한 기억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짝사랑에 대한 뚜렷한 추억을 지니고 있다.
외롭고
서글픈 짝사랑은 지금은 흘러간 과거의 추억이지만 그 당시에는 심각한 일이었다.
짝사랑은
죄는 아니지만 당사자에게는 극심한 열병을 앓는 것과 같은 일이므로 결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나의 첫
번째 짝사랑은 중학생 때이다.
그 당시엔
텔레비전에서 ‘날으는
원더우먼’이란 미국
드라마가 꽤 유행했었다.
매 회마다
소재를 바꿔 드라마 형식으로 방송하는 내용인데 힘이 센 원더우먼이 악당들을 혼내주는 그런 전형적인 권선징악 형 드라마였다.
젊고 예쁜
한 여성이 평소엔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빙빙 돌아서 원더우먼으로 변해 괴력을 발휘하며 악당들을 물리치고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원더우먼은
얼굴이 예쁘고 몸매도 날씬해 모든 남성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거기다가
힘이 세 악당까지 물리치니 전국적으로 원더우먼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나는
원더우먼을 너무도 좋아하고 사랑해 잠을 자며 꿈까지 꾸었고 나중에 크면 반드시 원더우먼 같은 여성과 결혼하겠다는 마음까지
먹었다.
중학생이지만
이미 사춘기였고 이성에 대해 눈을 뜬 시기여서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그런 시기에 원더우먼은 내게 영원한 연인이나
마찬가지였다.
텔레비전에서
원더우먼을 방송하면 만사 제쳐놓고 봐야만 직성이 풀렸다.
본방송은
물론이고 재방송도 여러 차례 보며 원더우먼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을 키웠다.
두 번째
짝사랑은 고등학교 때에 영어선생이었다.
그 당시에
영어선생은 나이가 20대
중반이었는데 외모가 출중할뿐더러 영어까지 잘해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모든 남학생이 다 그 영어선생을 좋아했다.
영어선생은
말도 부드럽고 성격마저 다정다감해서 우리 고교생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는
영어선생이 좋아서 영어 과목을 열심히 공부했으나 중학생 때부터 워낙 기초가 빈약해 성적이 생각만큼 오르지는 않았다.
시험을 쳐서
나중에 성적표를 받으면 ‘수우미양가’
가운데 우
아니면 미 정도였다.
그래도
영어선생에게 잘 보이려고 영어를 열정적으로 공부했다.
단어를
검사하는 쪽지시험에서는 만점을 받아 영어선생에게 칭찬을 듣곤 했다.
영어선생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나는
이다음에 영어선생 같은 여인을 만나 결혼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지니곤 했다.
세 번째
짝사랑은 대학 2학년 때의
같은 국어국문학과 여학생이었다.
그 여학생은
공부도 잘하고 외모도 빼어났다.
그렇지만 난
가난했고 공부도 보통이어서 감히 말도 걸어보지 못했다.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짝사랑했다.
그녀는
내게는 관심도 없고 공부에만 매진했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병역의 의무를 다한다고 휴학하고는 군대에 들어가며 그녀에 대한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그녀에게 말
한 마디 전화 한 통 해보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쉽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미인을 얻는다고 했는데 나는 성격 탓에 용기는커녕 나 자신을 자책하고 세상을 비관하는 못난 사람일 뿐이었다.
지금도 그런
못난 성격은 고쳐지지 않았다.
네 번째
짝사랑은 군대를 전역하고 자동차학원 실기강사로 근무할 때 만난 여성 수강생이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운전을 배우려고 내가 다니는 자동차학원에 왔었다.
20대 후반인
나는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아주 열정적으로 운전을 가르쳤다.
나와 그녀는
운전을 가르치고 배우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바깥에서 몇 번의 데이트도 했다.
나이도 두
살 차이여서 잘하면 결혼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달가량
난 그녀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내게
운전을 잘 배워 운전면허증을 땄다.
그러고는
차츰 마음이 바뀌더니 이별을 고하고 말았다.
내가 적극
다가가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녀의 직업은 인기 절정의 교사이고 난 기껏 장래가 불투명한 자동차학원 강사여서 연인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부족했다.
짧게 끝난
짝사랑이지만 난 그래도 행복했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두었다.
그러다가
결혼 적령기가 되어 사귀는 여성은 없고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여러 차례 맞선을 보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
아내는 사실
처음엔 그다지 매력이 풍기지는 않았지만 석 달가량 사귀다가 결혼하여 가정을 꾸려 지내보니 매력이 넘치는 여인이었다.
강원도
영월이 고향인 아내는 건강이 좋을뿐더러 성격이 부드럽고 생활력이 강했으며 애교도 잘 떨었다.
내겐
천군만마 같은 귀한 존재였다.
그야말로
나와는 천생연분에 찰떡궁합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상전으로 모시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산다.
나는 다른
복은 없어도 아내 복은 있어서 행복한 생활을 누린다.
아내의
내조는 내게 많은 힘과 위안을 주기에 지금도 아내가 있는 집에 오면 마음이 편안하고 세상살이에 대한 원망이나 비탄은 춘삼월 봄눈처럼
사라진다.
인간은
추억의 동물이듯 누구에게나 짝사랑에 대한 추억은 있을 것이다.
나의
짝사랑에 대한 추억은 네 가지이지만 결코 나쁘진 않다.
흘러간 과거
일이지만 심심찮게 과거를 돌아보는 촉매제로 작용해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비록
이뤄지지 않은 짝사랑이지만 과거를 되새기는 추억이기에 아름답고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매개체이기에 오래도록 정신의 자양분으로 남겨두고
싶다.
첫댓글 축하합니다..4번만에..성공하셨네요...과거는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