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인터넷뉴스】이영주 기자 = 새 봄을 맞아 오산문인협회 회원들이 문인의 향기를 찾아 기지개를 폈다.
한국문인협회 오산시지부에 따르면 오산문학의 시원(詩源)이 되는 문인을 찾아 작품을 연구하고 널리 알려 오산문학의 정체성을 찾는 데 목적을 두고 정기적인 답사를 계획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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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산문인협회 회원들이 이규황 시인의 묘소로 문학기행을 떠났다. |
마침내 지난 4월28일 이규황 시인 묘소와 박승극 문화평론가 생가를 찾았다.
회원들은 먼저 화성시 양감면 정문리 이규황 시인의 묘소로 출발했다.
오산에서 발안 방향으로 길을 나서면 이규황 시인의 고향인 내천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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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인협회 회원들은 오산 문인의 향내를 찾아 문학답사를 시행했다고 밝혔다. |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잊히지만 이규황은 치열한 시대정신을 갖고 온 몸으로 시를 쓴 시인이자 참교육에 앞장 선 교육자로서 우리들 가슴 속 깊이 뜨거운 피로 흐르고 있다’는 시비의 내용이 봄바람에 살랑이며 햇살을 받고 있었다.
이규황 시인은 1961년 경기도 평택시 서탄면 내천리 전형적인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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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같은 문학기행은 윤민희 지부장(왼쪽 세 번째)이 취임 시 공약했던 사항이다. |
학창시절 그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평소 책을 많이 보는 편이었으며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숭전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그후 가정형편으로 휴학을 하고 학비 마련을 위해 고향마을 농공단지 작은 공장에 취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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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들이 이규황 시인의 묘소 앞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
대학시절 1985년 ‘한반도의 젊은 시인들’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대전과 천안에서 학원 강사 생활을 하면서 1987년 ‘삶의 문학’ 동인으로 문단활동을 한다.
이어 1990년 ‘더 큰 사랑으로 굽이치며’ 공동시집을 발간한다.
1991년 오산으로 이사를 하면서 오산과 인연을 맺었고 현재는 유가족인 부인과 두 자녀가 오산에 살고 있다.
1991년 모교인 오산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부임하면서 문학의 불모지인 오산지역의 문예운동에 남다른 정열을 쏟는다.
1992년 2월 경기민족문학 제1호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다’를 발간하며 이후 5호 ‘경기민족문학’을 1994년까지 발간했다.
1994년 이후 전교조 오산ㆍ화성지회 사무국장과 전교조 오산ㆍ화성지회 7-8대 지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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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들은 이어 문학평론가 박승극의 생가를 답사했다. |
문인협회 회원들은 이어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사회주의 청년 운동가이며 소설가, 문학평론가로 알려진 박승극의 고향 정문리 생가를 찾아 발걸음을 돌렸다.
박승극의 삶과 문학적 의의를 살펴보고 이규황 시인과의 만남을 정의하며 회원들은 문학기행을 마쳤다.
첫댓글 우리들의 활동 모습이 자주 소개되어 좋아요.
잘 정리가 되어 읽기도 편합니다.
이영주기자님이 독자들의 취향에 맞게 간략하게 정리를 잘 해 주셨습니다.
문학기행을 쓰시고 사진을 찍은 진길장 감사님과 이영주 기자님
두 분의 수고에 감사합니다.
우!~~~ 기분 존거..
축하 축하,,,
오산 문인협회 승승장구 하는 모습 너무 좋습니다,
오산을 사랑하고
인연을 맺으며
오산을 노래하고
오산에 살다가 우리보다 앞서간 분들을 찾아
그들의 삶을 되짚어 보고
작품을 평가 기록해보는 과정은
소중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지속적인 활동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