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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27세의 나이로 교직에 발을 딛었다. 그리고 어느덧 30년이 지났고 32년여에 접어든다. 나의 교직생활 30여년은 ‘교육개혁’이라는 네 글자가 항상 학교현장을 짓누르는 굵직한 화두였고, 정책의제였다. 교직에 입성하던 첫 해에 나는 ‘참교육’ 깃발을 올리며 지금의 교육현실에 더 이상 순종하지 않겠다는 교사대중의 각성을 바탕으로 결성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가입으로 6개월 만에 학교를 떠나야 했다. 광주에서도 128명의 교사가 학교에서 쫒겨났다. 자의반타의반 학교에 머물렀던 상당수 교사들도 1989년은 교직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4년8개월의 해고기간을 감당하고 김영삼 정부가 1500여 해직교사에 대한 특별채용 형식의 복직조치를 발표했다. 노동조합 가입만으로 그 무슨 징계도 아닌 최악의 해고조치를 취했건만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 그들은 김대중 정부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 피해자로 공식 인정만 받았을 뿐 해고기간의 임금이나 호봉 등에 대한 그 어떤 보상조치도 보장받지 못한 채 다수는 퇴직을 하였고 남은 이들도 조만간 퇴직을 바라보는 상황이다. 그렇게 한 세대가 지났다.
그렇지만 전교조 결성과 함께 내걸었던 ‘참교육’외침은 30여년이 넘도록 교육행정과 학교현장을 교육개혁의 깃발로 내몰았다. ‘열린 교육’, ‘5.31교육개혁안’, ‘입시개혁’, ‘교육자치’, ‘교육복지’, ‘학교혁신’, ‘학생인권’, ‘마을교육공동체’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정책상품과 운동들이 쏟아졌고 스쳐갔다. 그토록 긴 세월 숱한 개혁의 슬로건이 학교를 몰아쳤는데, 그렇다면 우리 학교는 얼마나 변한 것일까? 그 긴 세월 개혁의 바람이 몰아쳤다면 학교는 상전벽해로 변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혹시나 ‘학교는 여전하다~.’는 문구와 언급이 여기저기서 반복되고 있다면 우리는 학교에 절망하든, 교육정책에 절망하든, 결국에는 우리 자신에 절망하는 가혹한 책무감과 무거운 화두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할 일이다.
사실 세상을 바꾸는 일이 어찌 쿠데타와 같이 일거에 바뀔 수 있는 일인가? 혁명이라고 이름 붙여진 역사상 굵직한 사건들도 시작된 해를 암기할지언정 모두들 수십여 년, 아니 그 이상 오래오래 진행된 일들이다. 하지만 찬란한 혁명의 세대가 보수화되는 것은 혁명의 깃발을 일신우일신하지 못하고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아까워하며 자신이 몸부림쳤던 약간의 성취를 혁명의 성공이라고 고집부리는 순간들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4.19세대가 그렇고, 혹은 386세대가 그러하며, 89년 전교조 결성 교사들 또한 결코 예외가 아닐 듯하다.
2010년 이후 민선 교육감 시대가 시작되고 세 번째 교육감이 지역교육을 총괄하는 상황에서 전국 17개 시·도의 상당수는 진보교육감들이 등극한 상황이다. 특히나 광주와 전북은 처음부터 진보교육감이 선출되어 내리 3선을 달리고 있다. 그들의 상당수는 전교조 지부장 출신들이고, 교원평가 폐지와 학교자치, 교장선출보직제와 학생인권, 교무회의 의결기구화를 거리에서 외치고 정부청사 앞에서 시위를 했던 분들 아닌가? 하지만 여전히 교원평가와 성과급제는 그들의 손에 의해 집행되고 있고, 교장자격제 폐지나 학생인권은 그것을 위한 작은 출발점에 머물고 있는 상황임이 분명하다.
작은 성취와 변화의 징후를 이루었다는 것으로 참교육운동이 무엇을 성취했다고 말하는 것은 1989년 참교육혁명의 큰 깃발을 접는 보수화의 시작일 수 있다. 교육행정 권력의 안마당에 들어서 있는 지금 자신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서는 더욱 치열하게 반성하고 엄중히 문책하는 자세가 없다면 그것은 처음 시작했던 초심에 대한 또 다른 변신이고 배신이 될 것이다.
전교조 조합원 출신들이 다수 전문직에 진출해있고, 교육감도 장기 집권의 어려운 길을 걷고 있는 현실에서 무엇보다 절실한 교육개혁은 바로 교육행정의 개혁이다. 학교의 혁신을 위해서도 교육청의 혁신을 적극 화두로 내걸고 구체적으로 행정의 변화를 입증하는 것이 교육감에게 꼭 필요한 과업이다. 학교행정의 변화를 전시하는 행정이 아니라 교육행정의 변화를 입증하는 것이 교육감의 과제이다. ‘혁신학교’가 과거 문교부의 ‘연구시범학교’같다는 지적이 행여 설득력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며, 교사의 전문성을 단지 연수시간으로 계량화하는 것 이상 그 어떤 복안도 갖고 있지 않다는 세평이 힘을 얻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도 교육개혁을 논하는 자리에선 여전히 ‘교육부 폐지’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반복된다. 그 말은 ‘교육청의 폐지’로 변주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학부모와 시민들도 교육개혁을 주장하면서 학교현장의 문제만 지적하는 피상적 언급의 수준을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교육청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교육감과 교육관료들에게 말하는 것이라면 교육행정의 변화과제가 무엇인지 지역 시민운동의 공동인식으로 확보해야 한다. 교육감에게 학교의 변화를 주문하기보다 교육행정의 변화를 주문할 수 있는 시민사회운동의 성숙이 필요하다. 교육행정이 변화하지 않고, 시민사회운동이 변화하지 않으면 진보교육감도 기존의 관료교육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하나 더 추가, 교육행정의 변화를 감시할 수 있는 언론의 귀가 없으면 언론기자들 역시 기만적인 교육개혁의 공범의 핵심자리를 꿰찰 것이다. 학교의 진정한 변화를 위하여, 내실 있는 교육개혁을 위하여, 한 세대 이전의 참교육운동은 여전히 처음의 그 열정과 더욱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교육행정을 변화시키는 싸움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