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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7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춘천 중도(中島) 고조선유적지 學術會議 - 레고랜드
개발이냐! 고조선유적지 보존이냐!"라는 주제를 가지고 역사문연에서 발제자와 토론자
한 명씩 참여하여 토론회를 마쳤습니다. 주최는 춘천중도 고조선유적지 보존 및 개발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사)국학원이었고 후원은 이명수 새누리당국회의원/ 도종환
새정치련국회의원/ 동북아역사재단이었습니다. 2시부터 5시 넘어까지.
이날 춘천역사문화연구회에서는 발표/토론자를 비롯한 운영위원들 및 서울서 바로 오신 회장님과
따로 오신 여성회원분까지 모두 합하여 총 10명이 다녀왔습니다. 저녁 회식에까지 참석하고 8시
35분 열차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1) 준비과정
애초 참여를 놓고 지난 연말 운영위원들의 의견으로는, 주최측의 생각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북아역사문제를 생각하는 국회의원들이 관여하는 만큼 유적에 대한
논의를 키우고 확산시키는 계기는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참여하기로 결정하였고,
가장 기본적으로 춘천의 역사유적을 춘천시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간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알릴 필요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발제자로 문화재청이나 강원도
학예사 참여 이야기도 있었으니 본격 토론회라는 생각이 당연하였다.(도에서는 불참).
다만, 발표요청에서는 제목 이야기가 없었으나 초청장에서 처음 발제문의 제목을 확인
하고는, 나중에도 토론이 된 '고조선'이라는 표현이 걸려서 발표문의 제목에선 그 말을
빼고
"춘천 중도유적 발굴의 중요성 - 보존과 개발의 기로에서"
라고 정했다(이는 발제 전 사회를 맡은 분에게도 메모를 전하며 공지된 제목과 다름을
소개해달라고 말하였음). 그리고 토론자로 한 사람이 더 참여한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토론자는 오동철 사무국장이 맡았고, 무난한 발표에 토론을 통해 포인트를
주어도 좋으니 잘 되었다는 생각이었다. (부수적인 문제로는 뭐 발제문 형식에 대한
요청의 말도 없어서 그냥 파워포인트로만 발제문을 준비하였으나, 역시 그 외로 논문형식의
글을 준비했어야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국회 헌정기념관의 토론회
11시 넘어 출발하는 ITX를 타고 용산으로 가서 택시로 여의도에 당도하여 순대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헌정기념관은 몇 년 전에 문화재반환으로 들어온 오대산사고 문제를 두고 열렸던
토론회 때 와본 적이 있던 곳이었다.(사진은 오동철, 이창연, 김정기 회원님들의 도움을 받았음)
입구에서는 발표문집이 준비되어 있었고 주최측에서 재작성한 <춘천중도 고조선유적지 발굴
약식보고서>를 판매하고 있었다. 공사 중지를 청원하는 서명도 받고 있었다. 회의실에는 단상 양옆
위로 드리워진 화면에 jtbc의 보도 내용을 연이어 방영하여 시작전 미리 청중들에게 현시점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었다. 범국민운동본부의 단체들은 대부분 단군신앙과 관련된 단체들로 보였다.
김창환 변호사의 진행사회로 회의가 시작되자, 보도된 대로 처음에는 여러 인사들의 인사말이
있었다. 여당의 이명수 국회의원이 인사말을 하였으나 야당의 도종환 의원은 당도하지 않았다.
발제자로 문화재청에서도 김계식 발굴제도과장이 나왔고(발제문은 별지로 인쇄하여 배포되었음)
청중 가운데는 전날 춘천KBS의 저녁뉴스에 인터뷰로 "중도유적은 고조선 유적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발굴 담당 위원회의 심정보 위원장도 참석하였음을 보게 되자 당연히 '학술회의'란 이름에
걸맞는 토론회가 되리란 생각이들었고 발제도 알맞게 준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표 사회는 전 중앙일보기자를 지낸 박방주 가천대교수가 맡았고, 시간은 각자 25분 정도씩이었다.
문화재청의 간단한 발표에는 여기저기서 핀잔 투의 언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행정적인 문제로
설명하는 발표가 이미 '고조선'을 마음에 새겨둔 청중들의 마음에 전혀 흡족하지 않은 듯 보였다.
jtbc의 보도 내용중 고인돌과 수위의 문제를 해명하기도 하였다.
이어서 전에도 역문 토론회에 참석하셨던 이형구 교수님의 발표가 이어졌다.
이교수님은 글에서 이번 발표가 역사문연에서의 토론 이후 "고조선상(古朝鮮相)을 구명하려고 밤낮
없이 노력한 첫 성과"라고 하였다. 발표에서는 그간의 훼손된 조처들과 고인돌을 '잡석'으로 취급한
사태를 지켜보며 노구에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며 비장한 표정을 보이셨다.
발굴단체들이 문화재청에 제출한 <약식보고서>를 보고 쓴 발제문이어서 전보다 깊은 이해를 가능케
하였다. 발제의 요지는 주거유적의 규모가 초대형, 대형, 중형, 소형으로 나뉜 것, 공방을 갖춘
주거지가 확인 된 것, '상당한 수준의 위계질서'가 확인되는 지석묘, 수장급 인물의 존재를 상정케
하는 청동단검/동부/옥부/옥착 등 상징적 의례기(儀禮器) 유물들로 볼 때 "중도유적은 고조선시대의
정치 중심지로 추정된다. 이 사회는 군장사회를 넘어 국가 단계의 정치중심체가 존재했을 개연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적석식 지석묘에서 나타나는 위계성은 그 사회가 '계층화'되었음을
확인해주고, 또 355기나 되는 '저장용 수혈'은 당시 사회에 "엄청난 잉여농산물이 엄청난 창고에
저장"됐음을 말해준다고 하였다. 또 기존에 시베리아 유래로 본 적석식 지석묘를 이번 유물을 통해
그것이 발해연안 "대릉하 유역의 홍산문화 적석총"과 같은 계통의 것이라는 주장을 거듭 밝혔다.
그래서 결국 "중도유적이 고고학상으로는 청동기시대로 편년되나 역사적 편년으로는 고조선시대
이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는 고조선의 또 하나의 실체일 수 있다"는 말이다.
단상에서는 보여주는 화면이 보이지 않았고 노트북을 옮길 수가 없어서 발제자가 단상에서 발표할
수도 없었다. 다른 발제자의 글을 미리 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중도유적에 대한 학술적 발표는
이교수의 이 발표가 유일하였다.
이어서 본인의 발표가 이어졌다. 발표문집에도 파워포인트 페이지를 그대로 인쇄한 것이 실렸지만
단 아래로 내려가 발표대 자리를 옮겨서 화면을 돌아보며 포인터를 사용해 발표하였다.
풀뿌리시민모임인 춘천역사문화연구회를 대표하여 발표하지만 고고학의 전문적인 내용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관심을 대변하는 활동보고서인 셈이며, 또한 중도유적과 레고랜드 문제에 대한 일관된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님도 서두에 미리 밝혀두었다.
먼저 춘천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를 하였다. 그간 역사문연에서의 관심과 논의 내용들을 담아서
보여줌으로써 청중들의 사전 이해를 돕고 발표 단체인 춘천역사문화연구회가 그간 춘천이라는
지역사회에서 어떤 관심을 가지고 그 지역의 역사문화에 대하여 무슨 활동을 해왔는지를 보여
주고자 하였다. 그러면서 고대사 분야인 맥국 문제가 현안의 관심으로 떠올라 있음과 수차례의
답사를 거쳐 돌아본 고인돌 유적의 방치 상태를 통해 춘천지역에서의 고대사 유적발굴이나 연구가
답답한 상태에 있음을 확인케 하였다.
중도유적에 대해서는 문화재청의 발표를 기준으로 그간 레고랜드 사업추진의 진행과정과 더불어
아무런 학술적 후속조처 없이 레고랜드사업 위주로만 진행되는 가운데, 역사문연이 발굴된 유적
유물의 중요성에 대해 처음으로 토론회를 개최함으로써 역사유산을 대하는 원칙론적 입장과 행동을 대변하였다는 사실을 알렸다. 중도 일대는 이미 중앙 학계에서도 오래 전부터 그 중요성이 인지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계속해서 지자체 수준의 관광레저산업에 떠밀려가는 발굴로만
그치는 안타까움을 보였다. 그래서 고조선/맥국이라는 상고사의 오랜 미해결 과제를 풀어나갈
단서를 보여준다고 보이는 중도유적도 우선 철저한 발굴작업과 전문적 학술토의를 충분히 거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간 역사유적에 대한 원칙론적인 주장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문화재청도
발굴비용을 대는 사업주체 주장만 들을 것이 아니라 이런 시민들의 요청에 대해서도 촉박한 일정에
쫓기듯 임하지 말고 그 전문적인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시나 도의 문화재 행정에서
대해서는 그간 레고랜드 사업의 추진이 시작되는 국면에서 중도유적의 이러한 중요성이 얼마나
미리부터 고려되고 충분한 전제 위에서 논의가 진행되도록 하였는지 되묻고 싶다. 언론분야도
부동산투기의 짙은 의혹속에 추진돼온 복마전 같은 내막을 시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도록 정보의
공개에 노력하여야 할 것이고 여러 면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소결론으로 아래의 두 가지를 제시하였다.
"역사유산은 당대인의 경제적 척도만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
문화재청은 철저하고도 전문적인 책임을 다해야 하며 관련 학계에서도 충분한 학술토의를 공개적
로 개최하여 시민들의 이해를 돕기를 기대한다."
참고로, 인터넷 매체를 포함한 7일자의 보도내용 가운데 본인의 발표를 소개한 점은 고맙게 생각
하지만 잘못 전달한 점이 있어서 밝히고 싶다. CNB뉴스의 유경석 기자는 다른 보도보다 발표자들의
내용을 비교적 상세히 전했지만, 본인이 춘천문화원에서 있었던 박성수 교수의 말을 인용한 것을
마치 발표자의 견해인 것처럼 적는 잘못을 보였다. 발표자는 맥국문제가 고조선 문제와 이어지는
문제이고 춘천에서 근래에 그런 논의가 있었다는 점을 인용해 소개한 것이었고, 또 문헌사학자의
그런 주장이 고고학적인 내용은 아니었다고 주석을 붙여 정확히 말해두었던 것이다. 이런 점은
자칫 춘천역사문연에 중도유적을 곧바로 고조선유적이라고 보는 견해가 존재한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에 여기에 명기하여 바로잡는 바이다.
다음으로 우실하 한국항공대교수의 발제가 있었다.
우교수는 강원대에도 다년간 출강한 학자로 특히 중국 현대 고고학의 커다란 성과인 홍산문화
발굴을 국내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해온 학자다.
최근의 답사 사진을 통해 중국 당국이나 지방정부가 홍산문화 유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여실
하게, 이를테면 다년간에 걸친 발굴과 연구를 비롯해서 발굴유물인 '옥저룡' 문양을 도시의 상징물
로까지 활용하는 사례 등등의 여러 방면에 걸쳐 소개하면서 중도유적이 그 자체로 좋은 역사교육의
장이라고 하였다. 더구나 레고랜드가 아니라 역사문화공원으로 '고조선랜드'를 만들 자리라고
하였다.
단상에서 본 청중석의 모습을 한 컷 담았다.
다음은 10분의 휴식시간을 거쳐 최정필 세종대교수의 사회로 토론이 계속되었다.
주제발표자와 함께 이기환 경향신문 논설위원, 서동철 서울신문 논설위원, 오동철 역사문연 사무
국장님까지 모두 7명이 단상에 늘여 앉았다.
토론자의 발표에도 발제에 대한 질의보다는 견해 표명이 주를 이루었다. 토론사회가 토론발표마다
발제자에게 마이크를 돌려 보충답변을 듣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중도유적의 중요성이 애초부터 거론되었음에도 사적 지정 논의를 놓쳐 이후
논의를 키웠다고 지적하였고, 자기가 태어났던 경복궁 서쪽의 서촌(西村) 예를 들면서 춘천시도 고대
유적들의 발굴을 이어서 장차 상징물 등으로까지 활용하는 지혜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였다.
이에 대해 이형구 교수는 고고학계에서 고조선 규정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해명하면서 학자들이
더 나서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유적에서 보이는 국가사회적 성격 문제 및 계급의 발생
문제를 언급하였다. 좀 더 검토를 거쳐야 하겠으나 이형구 교수의 발표 가운데 주목해서 들은 것은, 중도에 집단유적이 남은 이유를 보충해서 설명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해수면이 높아져 한강 하류는
잠긴 상태였고 춘천의 중도지역이 한반도 중부의 중심부가 될 만큼 대단위의 인원이 거주한 장소
였다는 것이고, 해수면이 낮아지는 철기시대가 되면 좀 더 하류인 가평 지역에서 유적이 많이 나오고
이어서 한강 하류인 서울에 한성백제라는 초기 국가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중도유적이 곧 고조선 유적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 당시에는 다른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 많은 인구가 밀집하여 살았던 정치체의 중심지였음을 나타내는 유물로 보는 데 대해서는
반대가 있을 수 없다고 보인다. 그것을 무슨 유적이라 부르든 일단 당시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괄목할 대규모의 유적이라는 확인이 되는 것인데, 이교수는 고조선의 실체일 가능성에 역점을
둔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그래서 중도유적의 중요성을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서동철 논설위원은 개념규정과 명칭 문제를 거론하였다. 중도가 나중에 댐과 함께 생긴 명칭이므로
'원춘천유적', '옛 춘천유적' 등의 말을 들었다. 천 개가 넘는 집자리유적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중인 폼페이전에서 볼 수 있듯 세계적으로 유명한 폼페이유적에 못지 않은 유적이라고 하였고,
춘천만이 아니라 전국민의 유적이라 여겨야 한다고 하였다. 아울러 역사자원도 관광자원인 것이고,
그런 유적이 발굴된 것은 춘천시민의 축복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한 본인의 보충 설명에서는 중도유적의 중요성에 비해 문화재청이 시급한 일정에 쫓기듯
대응한 것은 아닌지, 그런 '구제발굴'의 과정에서 불충분함은 재조정돼야 하지 않는지를 청중석
앞자리에 앉아 있는 심정보 발굴심의위원장에게 되물어보고 싶다고 하였다. 아울러 의암댐의
수위를 둘러싼 문제제기에도 춘천에서 의암댐은 해체가 거론되기도 했음을 지적하면서 보다 더
철저한 조처가 필요해 보인다는 말을 하였다.
이어서 오동철 사무국장님의 토론발표가 이어졌다. 단상에서 선뜻 내려가 화면을 보며 설명하는
가운데, 오국장은 문제의 핵심적인 현안 몇 가지를 요약해서 보여주었다. jtbc보도에 이은 이전
결정 근거에 대한 반박으로서 문화재청에 대하여 의암댐 수위문제를 재반박하며 설명하였고, 화천
용암리나 거례리의 청동기유적 발굴 및 전면보존 결정이라는 사례를 들면서 그에 비해 훨씬 더
중요성이 높은 중도유적은 왜 이전결정을 내렸는지, 또 보존가치가 높은 발굴에 사업중단의 조처를
내린 사례가 과연 있기나 했었는지를 따져 질문하였다. 이어서 레고랜드사업에서 기대되는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도 그것을 왜 '사기'라고 하는지를 수익구조에 대한 설명으로, 또 사업내용에 포함된
땅투기의 문제를 요약해서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어진 문화재청 김과장님의 답변에는 청중석 여기저기서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고음으로
발언을 부정하는 말들이 터져나왔다.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에 문제를 확인하여 조처하겠
다고 분명히 청중에게 약속하며 말을 마쳤다. 미흡한 점이 있었음을 인정한 셈이었다.
이어서 몇몇 청중들에게도 질문 기회가 주어졌는데, 역사유적에 대해서 유럽에서는 관심도가 매우
높은데 우리 문화재청의 매뉴얼은 무엇인가 하는 등등의 말도 있었으나, 여기서부터는 대부분
문화재청을 질타하는 말들의 과격한 주장으로 무슨 말인지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사회가 잠시 정리를 하고 드디어 문화재청의 심정보 심의위원장에게 마이크가 주어졌다. 중국
사례의 소개를 잘 보았다며 본인이 꼬집어 질문했던 '고조선' 규정 문제를 다시 거론하며 이번
발굴은 다른 유적들에서도 유사한 유물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등의 말을 하기 시작하였으나,
도대체가 진행을 못하게끔 청중의 고성이 터져나왔고 결국 진행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사회자의
진행 통제가 부진하자 한 여성회원이 단상 아래로 나와 마이크를 잡고 그간에 진행된 단체들의
규합과 감사청구 결정 등을 지나가듯 언급하면서, 명칭은 '중도문명'이라 할 수도 있겠단 말과 함께, 또 이번 발굴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 자체가 '가장 큰 횡재'라며 운동본부의 주장도 무조건 개발
반대가 아니라 조정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자는 이야기라고 장내의 주장을
대변하는 듯한 말을 하였다.
토론회는 예정보다 약간 지체하여 마무리되었다.
심정보 위원장의 발언을 더 듣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어둠이 내린 국회를 나와 회식자리가 마련되었다는 안내를 따라 음식점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하며 관계인사들과 인사를 나누었으나, 춘천 일행은 더 늦기 전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였다.
3) 뒤에 드는 생각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오면서 토론의 난맥상이 거듭 마음에 걸렸다. 심정보 위원장의 답변은 청중석
에서 들려오는 괴성과 막말에 섞여 오랜 시간 버티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다.
사실 그 자리에서 심위원장의 보존책 허가의 답변을 자세히 들었어야 옳았다. 문화재청에서 오늘
만큼의 참여 성의를 보인 것이 어쩌면 앞으로는 힘들어질 수도 있겠단 말도 나왔었다. 학술토론이
더 진척되는 자리가 못 되었던 점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여기서 토론 자리를 그나마 내용성 있게 채워준 것은 오동철 사무국장의 토론 진행과 그 내용
이었다. 이미 jtbc 보도에서도 소개가 되었지만, 문화재청 보도자료에서 드러난 이전 근거에 대한
문제제기가 주효하였고, 아울러 그간 나돌던 레고랜드사업의 논리와 자료들을 문건으로 정리하여 첨부하며 간략히 그 황당한 구조를 설명했다. 그리고 춘천 사람으로서 개발의 중요성을 외면할 수만은 없는 현실성과 그에 따른 고심도 적절히 피력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점을 떠올리면서 드는 생각이지만, 앞으로 이런 유적을 지금과 같은 진행처럼 개발
논리로 귀결되도록 방치한다면 중도유적만이 아니라 춘천의 맥국 문제까지도 지금보다 더 난맥상을
보일 수밖에 없으리라 여겨진다는 점이다. 발표에서도 샘밭 일대에 방치된 고인돌 이야기를 하고
사진도 역문답사에서 찍은 것을 여럿 보여줬듯이, 청동기시대 이후로 이어지는 맥국문제도 영영
제대로 손을 댈 계기를 찾지 못하리라는 암울함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토론회에 참가함으로써 춘천시민들도 레고랜드사업에 열광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기회가 되었고, 또 답답한 학계나 문화재청에 대해서도
원칙론적인 문제제기가 충분히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되었다는 판단이다.
아울러 이번 사안에 대해 역사문연은 계속해서 지혜를 모아 지속적인 문화재 지킴이의 역할을
해나갈 것임을 밝혀두며, 또 장차 회원님들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토론회
참관기를 대략이나마 정리하여 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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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쩜 이렇게 글을 잘쓰셨을까요(?)그날 국회에 서있었던 학술회의를 다시보는듯 그때 그 그림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지네요.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실하 교수님이 발표하신 주제인 '홍산문화 유적 발굴과 보존'내용을 들으면서 중국이 얼마나 자기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민족인지 새삼 다시 깨닫게 하는 자리였습니다. 고고학하는 사람들과 문화재 담당 공무원들이 꼼꼼이 읽어보고 참고해야 할 자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