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50년 전인 구한말부터 만석꾼으로 살기 시작하여 21세기 현재까지 만석에 상응하는 재산을 유지하고 있는 집안이 여수 봉강동의 봉소당이다
영광 김씨이다 동학 혁명과 일제 강점기 여순사건 그리고 토지개혁 , 6.25라는 역사에 파란만장 즉 늪지대 절벽 호랑이를 거치고도 이 집안은 망하지 않았다.
다른 부자들은 대부분 중간에 거덜났다 .
호남 부자의 품격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는 집 안이다. 품격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부자의 품격은 무엇이란 말인가?
150년을 유지한 품격의 핵심은 바로 베풂이었다.
10여년 만에 봉소당 주손인 김재호(81) 씨를 다시 만나 보니 예전 인터뷰 때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1948년에 일어났던 여순사건의 핵심 당사자 집 안이 바로 봉소당이었던 것이다
여순사건이 반발하자 제 1순위로 당시 33세의 나이였던 이 집안 주손 김성환(1915~1976)이 여천 군청으로 잡혀갔다 군청은 말하자면 혁명 평의회 본부였다 여수에서 가장 부자 였으니까 1번 타자로 잡혀갔던 것이다
군청의 2층에 가보니까 또 다른 부자였던 김영준이 2번 타자로 잡혀 오고 있었다. 천일 고무신 사장이었다.
그런데 봉소당의 종 아들이었던 19세,태주,가 빨간 완장을 차고 2층에 올라왔다 2층에 붙잡혀온 김성환과 김영준을 감시하고 있었던 2명의 보초 병을 다른 곳으로 가라고 명령을 내리는게 아닌가
그런 다음에 태주는 벽을 보고 의자에 앉아 말없이 신문만 계속 보았다 30여 분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말 없이 신문만 보는 태주의 태도를 주시하던 김성환은 ,이거는 도망가라는 암시구나 하고 2층 창문을 통해서 군청 건물을 탈출하였다 .
옆에 있던 김영준에게 같이 도망가자고 했지만 김영준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 나는 죄 지은게 없다고 거절했다
. 도망간 김성한은 살았고 2층에 남았던 김영준은 다음 날 총살을 당하였다
김성한이 현 봉소당 주손 김재호의 부친 이다 .
종의 아들로서 빨간 완장을 차고 있었던 19세 태주는 왜 대 지주였던 김성한을 살려 줬을까 ?
오히려 보복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말이다 ''증조부때에 30여명 되는 노비들을 다 풀어주었습니다
노비문서 불태우고 ,너희들 다시는 우리 집 문 문지방을 넘어 오지 마라고 했지요.
각기 논 10마지기 밭 7 마지기도 나누어주었고 집도 지어주었습니다 이게 작용했던것같습니다.
2023 . 02 조선일보 발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