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니람 저드슨(1788-1850)
<< 버마의 사도이자, 미국 해외 선교사들 중의 최초선교사>>

1.출생: 1788년 미국 메사추세츠 주에서 출생
2.어린시절과 학창시절
①아버지는 회중교회의 목사요 어머니는 단정한 신앙심 깊은 여인
②그는 총명하여 3살 때 읽기를 배웠고, 히브리어, 헬라어를 유창하게 읽었음.
③16세때 당시 신학사상이 건전하고 복음적인 브라운대학에 전학
-그러나 그 대학에서 논쟁을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기독교 교리를 배척하는 사람이 되었음. 위선자가 되어 뉴욕극단에 빠져들어 쾌락을 쫓는 배우가 됨.
3.회심(回心)
①세속적인 생활에 젖어 지내다가 어느날 밤 여관에서 죽어가는 옛 논쟁 좋아하는 친구의 모습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음. 자신의 미래의 죽음을 생각
②그해 12월 어느날 그는 회심하고 예수의 큰 사랑을 경험
③부친의 권유로 안도바 신학교에 입학
4.선교사로서의 소명
①안도바 신학교 시절 「동방의 별」이라는 설교집과 「아바왕국으로 간 사절단」을 읽고, 그는 그의 일생을 선교사로 헌신.
②2년이 지난 2월 아름다운 앤하 셀던과 결혼한지 12일만에 뉴욕에서 인도 캘커타를 향해 출항하여 6월에 도착
5.버마 선교사의 길
①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인도에서의 그의 선교사역을 금지하자 아내의 권유로 버마로 선교지를 결정
②1813년 7월 저드슨은 버마 랭구운에 도착. 제일 먼저 버마어를 습득하고 이후에는 능숙한 학자가 됨.
③버마는 선교와 종교의 자유가 금지되어 있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궁핍 그리고 좌절에 부딪혔고 그들의 생명의 등불인 아이가 병들어 죽었고, 사랑하는 아내도 열병과 이질로 먼저 보냈음.
-저드슨의 아내는 선교활동으로 투옥중인 남편에게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러나 이 고통을 참을 수 없게 되는 것이 두려워요.”라는 편지를 남기고 38세로 뉴잉글랜드 농가에서 결혼한지 14년만에 죽었음.
④저드슨은 6년간의 고생과 분투 끝에 ‘몽 나우’라는 사람을 예수 영접하게 함. 그후 다른 사람들도 예수의 품으로 돌아옴. 그는 감격과 기쁨의 노래를 부름
⑤버마의 성경번역(전체): 1840년 10월 23년만에 성경번역 완성
6.별세:1849년 어느날 감기에 걸려 폐렴과 이질로 고생하다가 주님의 품안에 안김.
◉그의 묘비 글
-“아도니람 저드슨 목사. 1788년 8월 9일 탄생, 1850년 4월 12일 세상을 떠남. 멜든은 그가 태어난 곳이며 그의 유해는 바다에 묻혔다. 그의 영원한 기념은 개종한 버마 사람들과 버마 성경이다. 그의 기록은 하늘에 있다.”
<<아도니람 저드슨의 어록>>
1.선교사가 된 동기 일화
-한 사람이 저드슨에게 선교사가 된 동기를 물었다.
“당신은 왜 선교사가 되었습니까?”
-> “저는 거기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드슨은 이렇게 대답한 후 한참 있다가 다시 말했다.
“선교사가 되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2.기도에 관한 저드슨의 명언
-“진심으로 기도하면, 어느 때 어떻게 해서든지 어떤 형태로든 응답이 온다.”
-‘기도하는 일에 결연하라. 지속적인 기도를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각오하라. 세월은 짧다. 그러므로 사업이나 동료들이 당신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함을 명심하도록 하라’
3.버마에 한 알의 밀알이 된 저드슨
-버마에서 50년이라는 긴 세월을 선교하며 보냈던 저드슨이 보스톤으로 돌아옴. 1만여 명의 군중들이 저드슨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몰려왔다.
-그는 엄청난 고난으로 말미암아 허약해져서 혼자 힘으로 연단에 오를 수도 없었고, 서 있을 기력이 없어 의자에 앉지 않으면 안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은 볼 수 있었어도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연설 중 청중들이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고, 그날 21명의 청년들이 앞으로 나와, “버마로 가겠다. 저드슨을 대신하여 우리가 전도하자!”라고 외치며 선교에 헌신했다.」
4.죽음 앞에서 남긴 말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버어본 섬을 여행하던 중에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주위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학교 문을 나서는 아이처럼 기쁘게 가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너무도 강함을 느끼고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