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제 강점기 시대 국민학교 3학년 8월에 해방을 맞이하고, 그 이후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를 겪었습니다. 또한 1.4후퇴 때 국민병 제 일기생으로 군대에 입대한 후 한국전쟁 휴전까지 55개월의 군대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세월이 흘러 배고픈 한 많은 보릿고개 시절, 제 나이 40대 중반이었을 때, 좌골신경통으로 삼복더위에 방안에서 누워 지내야만 했습니다. 너무너무 괴롭고 슬펐습니다.
그렇게 불구의 몸으로 지내오던 중 집사람이 같이 갈 때가 있다 하여 따라나섰는데 5~6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고 김연단부인부장은 “나는 이 불법을 믿고 자궁암을 완치했습니다. 어떠한 병인들 장애가 될 것인가?”라고 말씀해 주셨고,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입신 카드를 썼으며 바로 덕산반 좌담회가 탄생했습니다.
그 후 회진면에 무려 8개 반이 탄생했습니다. 나는 불구의 몸으로 각 좌담회 반마다 참석했습니다. 더욱이 밤길을 다니다 발등을 부딪치면 여지없이 자빠지기 일쑤였지만 일어서서 다시 걸어 좌담회를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이 고뇌의 길이 내 몸 건강을 찾기 위함이라 생각하고 악착같이 용기와 도전 정신으로 각 좌담회마다 뛰었습니다. 그 후 세월이 가고 보니 절룩거린 발걸음도 나도 모르는 순간 달라졌으며, 주위 사람들도 많이 좋아졌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바로 이 느낌이 말법의 부처이신 본존님을 만난 공덕이고, 본존님은 나를 깨우쳐주시고 용기를 심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세월은 가고 내 나이 80세에 불행하게도 청각을 잃어 타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함에 마음이 괴롭습니다.
이러한 숙업을 가졌기에 울고 슬퍼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사물로부터 멀어지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가슴 아픈 사연을 마음에 새기고 용기를 잃지 않고 좌절감에서 벗어나 오직 본존님 만을 생각하면서 좌담회나 보은어강, 행사시에도 내 자리를 꼭 지지키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말법의 부처이신 본존님을 만나 용기와 도전의 정신을 일깨워주심이 참으로 본존님을 믿는 공덕이요, 진실한 스승이라 느끼면서 진심으로 감사함을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침 4시에 꼭 잠에서 깨워주는 효자 핸드폰 신호로 늘 즐거운 마음을 갖고 약 한 시간의 아침근행을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용기와 도전의 정신을 가지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입니다만 강성한 창제로 번뇌, 업, 고의 삼도를 반드시 법신, 반야, 해탈의 삼덕으로 전환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