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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꽈배기 빵 / 민주혜(봉우중학교 3학년)
오늘도 어김없이 빵집 아저씨네의 진열대 위의 빵은 갓 구워진 채로 제각각의 맛을 뽐냅니다. 아침 출근길, 허기진 배로 바삐 지나가던 사람이 투명한 유리창 너머 먹음직스런 빵을 보곤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지요. 그렇게 하루종일 빵과 함께 있으면 빵집아저씨는 행복하다고 합니다. 빵을 반죽하고 구워내고, 맛을 보는, 빵과 관련된 모든 일은 기분좋은 미소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지요.
현이는 몇년전, 이 곳 빵집 아저씨네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빵집 아저씨처럼 빵에 관련된 일들을 배우고 있지요. 처음, 현이가 이곳에서 일을 할때에는 빵집 아저씨의 태도를 매우 이상히 여겼습니다. 매일 일찍 가게에 나와 빵을 만들어가지곤 어디론가 가져가시곤 했으니까요. 더군다나 그 많은 빵을 어디엔가 놓고 와서는 빈 손으로 돌아오기 까지 했으니, 현이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어른이 된 현이는 아저씨를 이해하고 존경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빵집에 자주 들르곤 하지요. 역시 오늘도 빵집의 문을 열고 현이가 들어옵니다.
"아저씨! 저 왔어요."
"어? 현이 왔구나. 요즘에 왜 자주 안 나왔어? 내가 새로 개발한 빵 보여주려고 했는데."
"정말요? 요즘, 학교 시험 때문에 좀 바빴어요. 근데 어떤 빵인데요?"
서로의 안부는 눈짓과 미소로 대신한채 오직 빵과 관련된 대화만 하는 것도 현이와 아저씨의 오래된 습관이지요.
"응. 기존의 빵 만들기와는 달라. 어떻게 보면 빵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할머니 할 아버지들이 부드러운 걸 좋아하시거든. 그래서 과일을 연하게 갈아 봤는데. 잠깐만."
현이와 아저씨가 중요한 대화를 나눌때면 빵을 배달해달라는 전화가 갑자기 오는 것도 또 하나의 습관입니다. 그만큼 아저씨의 빵은 마을 뿐만 아니라 멀리있는 다른 지역에서도 인기가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지요. 그렇게 아저씨가 즐거워하며 전화를 받는 동안 현이는 여러 빵들을 둘러봅니다. 그리고 빵 만드는 법뿐만 아니라 빵을 만드는 아저씨의 정성도 배우겠다고 다짐하지요. 아저씨가 빵을 주문하시는 분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몰라도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으십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겼나보다 하고 생각하던 현이는 자신이 고등학생 때 이 곳에서 일하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맨 처음, 현이가 아저씨를 뵈었을 땐 말 그대로 정겨운 빵집 아저씨 같았답니다. 그런데 아까, 아저씨가 많은 빵을 배달하곤 빈 손으로 돌아왔다고 했지요? 그 점 때문에 아저씨에 대한 현이의 첫 인상이 조금 변하긴 했었지요. 현이가 묻고 또 물어도 아저씨는 어디를 다녀왔는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저씨와 오랫동안 빵을 만들면서 친분이 두터워지자 아저씨가 매일 가는 그곳에 현이도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아저씨와 처음으로 그곳에 간 날, 현이는 매우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보살펴 줄이가 없어 가게 되는 양로원이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한 가족처럼 빵을 나눠 드시는 아저씨의 모습은 그야말로 하얀 천사 같았지요. 그리고 현이는 이제까지 아저씨를 의심했던 일을 되짚으며 아저씨를 이해하고 반성했답니다. 그 날,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즐거웠다는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을때 현이는 아저씨께 여쭤보았습니다.
"아저씨, 어떻게 빵을 만드시게 되셨어요?"
"응. 그건 음.. 아까 내가 빵을 먹여 드리던 파란색 모자의 할아버지 알지? 예전에 한 번 내가 친구들이랑 양로원에 갔을 때 그 할아버지께서 빵이 드시고 싶다고 하셨거든."
"그게 다에요?"
"그럼, 할아버지께서 빵이 드시고 싶다는데 그럼 어쩌겠니?"
단지, 파란 모자의 할아버지를 위해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아저씨의 대답은 참 이상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던 간에 봉사를 하며 기쁨을 누린다면 이유는 중요치 않다고 여긴 현이는 그 이후로 이유에 대해 묻지 않았습니다.
아저씨께서 새로 개발한 빵을 보여주시겠다던 그날 밤, 성탄절인 그 날은 흰눈이 펑펑 내려 세상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창밖은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한 길 위를 연인들이 서로 기댄채 걸어가거나, 산타복장을 한 채 시간에 쫓기듯 걸어가는 사람들까지, 참 다양한 모습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늦은 시각까지 바쁜 아저씨를 도와 현이는 갓 구워낸 달콤한 초콜릿 빵을 봉지에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문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훌쩍거리는 소리로 봐선 누군가 밖에서 울고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현이가 사알짝 문을 열자 울고 있던 아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가 놀래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같이 놀란 현이는 예닐곱 정도로 보이는 그 남자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넌 누구니? 어휴, 너 때문에 너무 놀랬잖니?"
"아니요, 저는..."
"근데 왜 여기에 있는 거니? 집에 안 가니?"
"으아앙~!"
갑자기 아이가 우는 바람에 당황한 현이는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마침 현이를 찾던 아저씨는 급히 나와 무슨일인지 현이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니 문밖에 웬 애가 울고 있길래, 달래주려다 도리어 더 울게 만들었어요."
아저씨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빵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얘야, 너는 무슨 빵을 좋아하니? 초콜릿 빵? 피자 빵? 도넛은?"
"꽤배기 빵이요. 아저씨"
"응 그렇구나. 여기있다. 이 빵 먹으렴. 아주 맛있단다."
아저씨는 아이가 좋아한다는 꽤배기 빵을 주며 아이를 달랬습니다. 그리고 차근차근히 아이의 이름과 어머니의 이름, 그리고 집을 물어 보았지요. 그러고 보니 아이는 오후에 엄마와 놀러 나왔다가 엄마를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아저씨는 경찰서로 연락해 아이가 엄마와 무사히 만나는 것 까지 본 후에 다시 빵 집으로 돌아왔지요. 집에 갈 시간임에도 걱정이 되어 기다리던 현이에게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저번에 나보고 왜 빵 집을 하게 되었느냐고 물었지?"
"네. 아저씨."
"그 땐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아이의 엄마를 찾아주고 오니 말하고 싶어졌어. 내가 어렸을 때도 아까 그 아이처럼 꽤배기 빵을 좋아했지. 내 어머니가 그 빵을 자주 사 주셨거든. 근데 어머니께서는 홀로 나와 형제들을 키우셨기 때문에 그 빵을 사먹는 것도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어. 길거리에서 파는 단팥빵이랑, 곰보빵같이 아주 싼 빵이었는데도 말이야. 형들이 모두 학교에 가면 어머니는 그제서야 개어놓은 이불속에서 다 비틀어진 꽈배기 빵을 내게 주셨지.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지금 내가 만드는 빵들은 그에 비하면 정말 아무 맛도 없는 빵이야. 내가 좋아하던 꽈배기 빵..."
어느새 아저씨의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바닥으로 떨어진 눈물이 고일때마다 현이의 마음도 뭔지 모를 뜨거운 것으로 고여갔지요. 그리고 아저씨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빵이 먹고 싶어도 내 맘대로 먹지 못하는 그런 생활이 지겹고 비참했어. 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으니 나를 세상에 내 놓으신 어머니도 미웠고. 근데 그런 방황이 있었지만 내가 다시 일어선 건, 어머니의 임종을 지킬때 어머니께서 내게 하신 말씀 때문이야. 그때도 꽈배기 빵을 내게 주시며 내 손을 꼭 잡아 주셨지. 그리고 꽈배기 빵은 꼬여있지만 그래서 더 맛있고 재미있다고 하셨어. 먹다보면 풀리게 되는 거고 그렇게 맛있게 먹으면 배가 부르고 또 먹고 싶다는 거였지. 살아가는 것도 다 그런 것이라며 희망을 갖고 노력하면서 다른사람을 도와가며 살아가라고 하셨어. 그게 꽈배기 빵 같은 인생이라고 말이야."
현이와 아저씨는 진열대 위에 즐비하게 놓인 빵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무 맛도 안나는 아무 것도 아닌 빵들이이었지요. 그렇게 눈물로 지난 세월을 되짚으시던 아저씨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현이야. 아까 내가 새로 만든 빵 보여준다고 했지? 그거 맛 볼래? 어쩌면 꽈배기 빵만큼은 아닐지라도 맛은 있을지도 몰라."
아저씨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미소를 본 현이는 역시 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네, 아저씨! 저에겐 아저씨가 만드신 빵이 최고인걸요.!!"
<우수>
감옥이란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내 꿈 / 김휘은(방이중학교 3학년)
난 초등학교 5학년이 되고부터 계속 가지고 있던 꿈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랑 다르게 생긴 사람과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 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던 건지 내가 내 친구들이랑 평소에 하는 말이랑 다른 말을 유창하게 내 뱉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던 건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5학년이 되고 나서 동시통역사가 되고 싶어 했다. 동시통역사가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영어시간에 영어선생님이 영어로 꿈이 뭐냐고 물어보시면 어쩔 수 없이 동시통역사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l want to be a doctor."라고 대답했던 나였다. 그 만큼 영어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그때부터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 엄마 아빠한테 커서 동시통역사가 될 거라고 영어 전문 학원을 보내달라고 때를 썼다. 처음에 엄마 아빠는 저러다가 또 다시 다른 꿈을 갖게 되겠지 라고 생각하셨고 엄마 아빠는 나를 학원에 보내주지 않으셨다. 다른 방법 없이 나는 혼자서 집에 있던 테이프도 들어보고 단어도 혼자 외워 보았다. 그 모습을 보신 엄마와 아빠는 내가 정말 동시통역사로 꿈을 정했다고 생각하셨고 영어전문 학원에 보내셨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오랜 시간 동안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거나 오래 공부를 하지 않고 있을 때면 “넌 영어를 열심히 해야 되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된단다. 안 그러면 동시통역사라는 꿈을 이룰 수 없을 거야”라고 다그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내가 영어를 잘 한다고 생각했고 노력만 하면 동시통역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충고해주시는 아빠 엄마가 너무 감사했고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조금은 큰 규모의 영어 시험을 보게 되었다. 난 내가 동시통역사가 되기로 결심한 후에 열심히 공부를 했으니 당연히 내가 상을 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그 시험에서 나는 200점 만점에 72점이라는 점수를 얻었다. 우리가 평소에 보는 100점이 만점인 시험이라고 생각하면 36점을 받은 셈이다. 동시통역사가 되고 싶었던 나인데 내 생각만큼 나는 영어를 잘 하는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에게 있어서 영어공부는 더 이상 내가 하고 싶어서 기쁜 마음으로 하는 즐거운 일이 아니라 아빠 엄마가 계속 내가 영어학원에 가서 열심히 영어를 하기를 원하고 계시니까 또 내가 열심히 해서 동시통역사가 되기를 원하고 계시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영어공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빠가 나에게 하는 “동시통역사가 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라는 말은 나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고 ‘동시통역사’ 라는 꿈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언제부턴가는 동시통역사가 interpreter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영어도 못하는데 동시통역사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예전처럼 단어를 몰라서 다른 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다른 꿈을 이야기 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정말로 소질이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지만 엄마 아빠는 내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만 바라셨고 그 기대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렸다. 게다가 그러던 도중 나는 중학교에 들어갔고 점수로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나오는 내 영어실력 때문에 내가 소질이 없다는 걸 더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흥미는 잃은 기간도 한참이나 되었고 영어는 원래 소질이 없었던 것 같았다. 나는 기회만 있다면 엄마 아빠에게 내가 영어에 소질이 없는 것 같고 흥미도 잃어버렸으니 다른 소질을 찾고 싶다고 말해보고 싶었지만 아빠 엄마는 내가 아직도 확고한 동시통역사의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럴수록 나는 혼자 나의 정체성을 의심하며 우는 날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그렇게 되고 싶어 했던 동시통역사인데 시험 한번 망쳤다고 그렇게 쉽게 꿈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 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이 어렸을 때 가지고 있던 꿈을 계속 가꾸어서 커서 이루어 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게 어렸을 때 훌륭하고 멋있어 보이는 대통령, 의사, 변호사, 검사라 같은 꿈을 가지지만 커가면서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되고 자신의 능력에 맞는 평범한 직업을 찾게 된다. 그리고 능력을 개발해서 그 꿈을 성취해 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다. 아직 나는 나이도 어렸고 얼마든지 능력을 개발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난 내 능력을 만들 수 있는 벽을 뛰어 넘지 못했고 결국 동시통역사라는 꿈을 포기하고 나에게 기대를 거는 부모님을 부담스러워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때만큼은 나에게 있어서 동시통역사 라는 꿈을 가졌다는 것은 날 가두고 있는 형체 없는 감옥에 불과했다. 그렇게 동시통역사도 영어도 너무 싫어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텔레비전에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나오면 나도 저렇게 해내고 싶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기뻐졌고 저 자리에 저 사람 대신 내가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내가 그냥 영어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 한 탓에 그런다고 생각했지 내가 아직 내 꿈을 포기 하지 않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던 찰나에 나는 컴퓨터를 켰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그냥 별 생각 없이 나도 모르게 이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그 순간 난 내가 정말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영어공부에 소질이 없다는 생각에 바로 좌절해 버리고 부모님의 기대를 부담스러워 하는 그 모습이 내가 원하던 것이었을까? 혹시 다른 모습은 원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른 모습이었던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원하던 모습이 쉽게 포기해서 우울해 하고 있는 내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포기 하지 않고 꿈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내가 진짜 원하던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다시 영어 공부에 열심히 임했고 더 이상 동시통역사라는 꿈을 가진 것은 나에게 있어서 감옥이 아니라 어려운 일도 포기 하지 않고 시도를 할 수 있게 만든 계기였다. 난 그래서 그 해 72점을 받았던 영어시험을 다시 접수했고 나는 그 시험에서 동상을 받았다. 비록 모두가 알아주는 1등은 아니었지만 난 내 꿈을 위해 한 걸음 더 다가갔고 노력하는 방법을 배웠고 지금까지 날 가두고 있던 것이 내 꿈이 아니라 어려움에 부딪히자 포기하려고만 했던 ‘부끄러운 나’라는 감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이제 그 감옥을 뛰어 넘었고 이젠 내 꿈을 위해서 노력할 것이고 더 큰 나로 성장할 것이다.
<우수>
아빠와 바다 / 김수연(남원중학교 3학년)
차가운 바닷바람이 머리카락 속속을 누비고 다닌다. 이놈의 소금냄새 언제까지 맡으며 살까. 16년을 비릿한 바다냄새만 맡고 살았는데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거 보면 나는 꽤나 바다를 싫어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고기 잡으러 다니던 아빠를 기다리며 바다에서 한참이나 깔깔거리며 뒹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고기 잡으러 다니는 아빠의 모습이 싫어지면서 부터는 바다까지 싫어지게 만든다. 넘실넘실 물 맑고 공기 좋은 푸른 바다가 있는 동네. 서울사람들이 들으면, 아이고 그런데 살아서 좋겠다. 나도 회사 다 때려치우고 거기나 내려가서 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겠지만 나에게는 그 사람들이 되레 배부른 소리하고 앉아있단 생각이 든다. 막상 와서 살아봐라. 비릿한 생선내가 주름 잡힌 양복에 밸까봐 오자마자 도망갈걸. 흥. 끼룩끼룩 갈매기야 너는 울어라. 나는 만날 역겨운 생선냄새 배서 집에 돌아오는 울 아빠도 싫고, 땀에 절고 얼큰한 술에 절어 나한테 쥐어주는 천 원짜리 지폐도 싫다. 싫은 것보다 솔직히 쪽팔리다.
“엄마. 나 운동화 사게 돈 좀 줘.”
“내가 돈이 어딨나. 너 운동화 산지 얼마 안됐잖아.”
“나도 메이커운동화 사줘! 맨날 구질구질 이게 뭐야”
“메이커? 니 지금 메이커라켔나. 니 아부지 고생하는 거 안보이나? 매일 고기 잡으러 댕기느라 바닷바람 소금바람에 운동화가 팍팍 삭아도 그거 지금 몇 년째 신고 있다아이가! 잔말 말고 핵교나 가라!”
“맨날 아빠. 아빠. 아빠! 나도 좋은 부모 만나서 평생 메이커 운동화만 신고 그랬으면 좋겠다! 엄마는 내 맘도 모르고..”
“아이, 저 가시나가! 뭐라카노!”
문을 쾅 닫고 나오니 역시나 후회스러움과 미안함이 물 밀려오듯이 느껴진다. 오늘 하루 또 안절부절 하게 생겼다. 아빠 엄마랑 싸우고 학교에 오면 내가 잘못한 게 없더라도 하루 종일 눈물이 울컥울컥한 게 영 찝찝하다. 그래. 나도 안다. 아빠는 밤 낮 구분 없이 고기 잡느라 어깨가 축 처진 것도 알고, 엄마도 하루 종일 조그만 품삯에 남에 집에서 일 해주느라 손 마디마디가 다 부르튼 것도 나도 다 안다. 알면서도 자꾸 무슨 물산 사장이 아빠라는 미숙이도 부럽고, 뺀질뺀질 광나는 메이커 운동화 신고 와서 자랑하는 경연이도 부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영미야! 영미야! 학교 같이 가자!”
터벅터벅 학교에 가는데 멀리서 같은 반 지영이가 가방을 부여잡고 달려온다. 촐랑촐랑 꼴뚜기가 따로 없다.
“가시나, 뭐가 그리 급하나. 천천히 오지.”
“헥.헥.헥. 후우. 잠깐 심호흡 좀 하고.”
“왜, 뭐 특종이라도 있나.”
“응! 오늘 자율시간에 학교 앞 바다로 쓰레기 주우러 간데. 어제 종찬이가 교무실 칠판에 적혀 있는 거 봤다더라.”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새벽 일찍 고기 잡으러 나간 아빠라도 만나면 창피해서 어쩔까. 조금 전만 해도 아빠 엄마한테 미안함을 느꼈는데 그 미안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런 걱정이나 하게하고. 진짜 미워 죽겠다! 얄궂은 바람이 내 맘도 모르고 바다냄새를 폴폴 풍기며 앞머리를 쓸고 가니 짜증이 배가 됐다.
“에이씨. 에이씨.”
“영미 니 갑자기 왜 그라노?”
“아이다. 근데 갑자기 쓰레기를 왜 줍는데! 우리학교도 지대로 간수 못하면서.”
“그라게 말이다. 뭐 시에서 높으신 분들이 여기 와서 일 보신 덴다. 근데 동네가 더러우면 동티날까봐 괜히 우리 시키는 거지.”
“일은 무신. 또 가시내들 끼고 술 먹고 그라겠지.”
수업시간에 열심히 설명하는 선생님의 말씀도 하나도 들리지 않고 귓가에서 윙윙 머물렀다. 당장 학교를 뛰쳐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천 번도 만 번도 더 들었다.
“자, 자 다들 조용히들 하고 오늘 자율시간에 앞바다로 쓰레기 주우러 가는 거 알제? 까불지들 말고 한조에 쓰레기봉투 하나씩 가지고 줄맞춰서 가그래이.”
“네에!”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하느님 아버지 부처님 알라신이시여. 제발 울 아빠 안 만나게 해주세요. 진짜 그렇게만 해주시면 나 착한 일만 하고 살게요. 애들 앞에서 아빠 만나면 무슨 창피예요. 제발 소원 들어주세요.
묶었다 풀어 논 야생강아지마냥 공부 안 해서 좋다고 팔짝팔짝 바닷가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부럽게 바라보다 괜히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져서 열심히 쓰레기 줍는 척을 했다.
“느그들 핵교에서 수업 안 듣고 여기 와서 모하노!”
“시에서 높으신 분들이 여기로 일하러온다 해가지고 자율시간에 선생님이 쓰레기 줍으라 해서 왔십니더.”
“흥. 높으신 분들은 무신 높은 분들! 세상에서 제일 낮은 분들이 그 분들이다! 망할 놈의 자식들..”
바닷가 귀퉁이 가겟집에서 어부들과 관광객들을 상대로 막걸리도 팔고 해물파전도 파는 욕쟁이 할매가 앞치마에 손을 슥슥 문지르며 말을 걸었다. 할매의 아들은 서울 가서 정치를 한다고 하는데 몇 년째 소식이 없다고 한다. 할매는 아들을 많이 그리워하면서도 겉으로는 그놈의 무정한 자식 뭐 예쁘다고 보고 싶냐고 퉁명스런 말을 던지고는 하는데, 내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들 얘기만 나오면 매정한 할매의 눈에도 짭짤한 눈물이 번쩍번쩍 하니까 말이다.
“영미야! 저기 느그 아부지 아이가?”
놀라서 홱 돌아보니 남색 기다란 앞치마에 너덜너덜한 고무장화를 신고 토시 낀 손으로 나에게 손을 흔드는 아빠가 보였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가 아빠 안 만나게 해달라고 그렇게 빌었건만.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라 잡고 있던 쓰레기봉투를 훽 던지고는 바닷가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아이들은 놀라서 쳐다보고 아빠는 뒤에서 계속 나를 불렀다.
“영미야! 영미야! 니 어디가노! 영미야!”
한참을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다보니 날이 벌써 어둑어둑 해졌다. 도둑질을 한 것처럼 뜨끔거리던 마음도 진정되고 줄줄 흐르던 눈물도 말라버리고 나니 나는 참 나쁜 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아빠가 부끄러워도 그렇지 내가 그렇게 도망가면 홀로 남은 아빠 심정이 어땠을까. 너무 울어서 따끔거리던 눈에서 또 한바탕 눈물을 뽑아내고 집으로 가는 골목길을 힘없이 걸어가다 보니 누군가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빠였다.
“영미야. 어디 갔다 이제오노. 밥은 묵었나.”
“묵었다. 아빠는 왜 추운데 나와서 기다리나. 가만있으면 어련히 들어갈까.”
“우리 딸 아빠랑 오랜만에 데이트나 한번 할까?”
아빠와 나란히 바닷가 둑에 앉았다. 아빠의 부르터서 하얗게 일어난 손등과 반질반질 닳아서 문드러진 까만 손톱을 보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영미야. 니 요즘 힘들제? 쪼매만 참아라. 아빠가 고기 많이 잡아서 메이커 신발도 사주고 예쁜 옷도 많이 사줄게. 지금은 힘들어도 쪼매만 참아라.”
“됐다. 나 그런 거 없어도 된다. 아빠 운동화나 사 신어라. 밑창이 이게 뭐꼬.”
“하하하. 우리 딸 다 컸네. 아빠 걱정도 다 해주고.”
“아빠. 저기 포장마차에서 우리 오뎅 사먹자. 오늘은 내가 쏠게.”
“와 진짜가? 오늘 아빠가 호강하네! 허허허”
몇 년간 소식 없던 아들의 차인지 번쩍번쩍 빛나는 검은색차가 욕쟁이할매네 가게 앞을 든든히 지키고 있었고 일찍 자는 할매 방에도 보통날과는 다르게 환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하늘과 색이 똑같은 검푸른 바다에 역시 별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반짝이는 오징엇배들의 불빛이 아빠의 수염 난 까칠한 얼굴만큼이나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