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깨어 있는 꿈은 분명 역설적, 시적인 문장이다. 왜냐하면 논리적인 문장이 아니므로, 그러나 그 의미는 충분히 전달된다. 그것이 역설의 매력인거 같다.
각설하고, 미리 깨어 있다는 것 자체가 겨울의 통로로 들어가는 첫번째 단계가 아닌가 싶다.
깨어 있다는 것은 다시 꿈 꿀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또 다시 각설하고
꿈속의 꿈속의 꿈... ... 을 꾸어본적이 있는가?
그래서 깨었다고 생각하는 자는 지난꿈을 생각하며 웃고
다시 꿀 꿈을 꾸며 웃고, 결국 끊임없는 흐름이 아닌가 싶다.
물론 겨울이라는 단어를 보는 관점을 달리한 까닭이다.
마지막이라는 관점 보다는 흐름중의 일부로 받아들일때,
즉 겨울이니까 추운것은 당연하고, 또 그래야 겨울이지.. .. . .
무슨 오류같은데!
추위를 추위로 즐겁게 받아들일수 있는 것은 추위로 말미암아 오게될 따뜻함이 아닌가 싶다.
생의 논리로 볼때... ... .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꿈 이야기를 할까 한다.
나는 어릴적에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이 나오는 꿈을 무지하게 많이 꾸었다. 국민학교 고학년 정도까지
엄청 무서웠는데, 많이 반복되다 보니까
꿈속에서 의식적으로 이건 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턴 귀신에게 막 쫓기다가도 무협영화의 주인공처럼 변신할수 있었는데, 마치 천녀유혼처럼
한동안 그러더니 귀신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꿈속에서 잠든 경우도 있고, 그 꿈속에서 잠들면서
꿈을 꾼 경험도 있고... ... .
하여튼 지금은 확실히 꿈꾸고 있는 상태가 아닌거 같다.
그러나 꿈꾸지 않는다는 확실한 근거는 없다.
그래서 장자의 호접몽이 아직까지도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잊혀져가는 옛 추억처럼... ... .
하여튼 우리가 그 겨울의 통로를 지나간다면 우리는
천녀유혼에서 귀신과 싸우는 신출귀몰의 도사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희극과 비극은 별로 다른 것이 없는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