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증동국여지승람 제8권 / 경기(京畿) / 이천도호부(利川都護府)
【누정】 애련정(愛蓮亭) 객관(客館) 동쪽에 있다.
○ 임원준(任元濬)이 지은 기(記)에, “이천(利川) 고을이 고구려 때에는 남천현으로 되었었는데, 뒤에 신라의 영지(領地)로 되어 남매군(南買郡)이라 이름하여 군주(軍主)를 두어 다스렸으며, 또 황무군(黃武郡)으로 고치어 주위에 있는 여러 현(縣)을 관령(管領)하였다. 왕태조(王太祖)가 남으로 정벌할 때에 대군을 거느리고 군에 이르니, 서목(徐穆)이란 이가 인도하여 남천(南川)을 무사히 건넜다. 태조가 기뻐하여 지금의 칭호를 주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서씨(徐氏)로서 현달한 관원은 모두 목(穆)의 후손이요, 이천(利川)이란 말 또한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뜻을 취한 것이다. 세종 장헌대왕(世宗莊憲大王)께서 이 고을이 경기(京畿) 여러 고을 중에서 땅이 광대하고 백성이 조밀하다 하여, 승격시켜 도호부를 만들었다. 동쪽ㆍ서쪽으로 가는 자는 반드시 말을 세우고 부로(父老)들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남천이며 누가 서목의 자손인가.’ 하고, 가끔 옛일을 슬퍼하고 감회하여 감개한 생각으로 지나간다. 객사(客舍) 남쪽에 전부터 정자가 있는데, 낮고 작으며 좁은 데다가 부사 8ㆍ9명이 바뀌도록 수리하지 않아서, 뜰이 기울어지고 기둥이 기울어 사신[王人]의 바쁜 것을 위로할 수가 없으므로, 부중(府中) 사람들이 민망하게 여기었다. 전의(全義) 이세관(李世珤)이 통훈대부(通訓大夫)로 부(府)를 다스린 지 2년 만에 정사가 공평하고 송사가 다스려져서, 백성들이 그 생업을 편안히 하였고, 마침 그 해에 크게 풍년이 들었다. 이군은 곡식을 팔고 사고 거두고 분산시키기 위해 틈을 타서 사람들을 역사시키고, 옛 제도를 인습하여 넓히고 새롭게 하니,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고 사치하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았다. 일을 마치고 그 위에서 바라보니 동남쪽에는 효양(孝養) 제봉(諸峯)이 궤와 책상 앞에 벌여 있고, 가까이는 아름다운 나무가 서로 비쳐 둘러 있다. 이군은 한가한 때에는 천천히 그 옆을 거닐다가, 그 습한 것을 보고 정자 아래에 모난 못을 파서 그 가운데에 연꽃을 심고는 정자 이름을 영의정(領議政) 고령(高靈) 신상공(申相公)에게 청하니, ‘애련(愛蓮)’이란 두 글자로 회답하였다. 이군이 그 정자의 이름을 얻은 것을 영광으로 여기어 나에게 글을 지어서 기록할 것을 부탁하였다. 옛날에 선유(先儒)가 용릉(舂陵) 주부자(周夫子 송 나라의 주돈이)의 덕을 찬양하여 말하기를, ‘풍월(風月)은 가이 없고 뜰 풀은 서로 푸르도다.’ 하였는데, 대개 그는 전해오지 아니한 도통을 이어, 사도(斯道)의 묘(妙)함을 얻어 후학(後學)을 무궁하게 열어 준 것을 말한 것이다. 주부자는 일찍이 애련설(愛蓮說)을 지어서 그 뜻을 붙였는데, 그 말에 이르기를, ‘모란[牧丹]은 꽃 중의 부귀(富貴)한 것이고, 연꽃은 꽃 중의 군자다.’ 하였다. 군자의 도(道)로써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것보다 더 큰 것이 무엇이겠는가. 몸을 닦는 요법은 경(敬)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사람을 다스리는 도는 또한 인(仁)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인하고 경하다면 닦고 다스리는 도는, 각각 사람과 자기에게 다하여서 성인(聖人)의 도를 점점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군자의 도가 이렇게 커서 한 꽃과 한 풀에 짝할 것이 아닌데, 연꽃을 일러 군자라 하였으니 그 뜻이 무엇인가. 아, 진흙 속에 있으면서 때묻지 않는 것은, 군자의 화(和)하고도 흐리지 않는 기상을 볼 수 있는 것이요, 멀리 볼 수는 있어도 친압하게 할 수 없는 것은, 군자의 덕성(德性)을 높이고 고명(高明)을 극(極)한 덕스러운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며,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은 것은 군자의 명예와 덕망과 아름다운 소문이 멀리 전파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연꽃에 이 세 가지가 있는 것을 거슬러 올라서 그 실상을 구한다면, 이른바 인(仁)을 하고 경(敬)을 하여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도도 그렇게 해서 이를 수 있으니, 연꽃의 군자는 곧 사람의 군자이니, 이군이 이 정자에 심은 것과 고령 상공이 특별히 애련(愛蓮)을 들어서 이 정자를 이름 지은 뜻이 거의 헛되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뒤에 이군을 이어서 이 고을을 다스리는 자는, 한갓 옛날 일만 관람하여 이 정자에 머물러 구경할 것이 아니라, 주자(周子)의 애련에 대한 말을 찾아보고 이군이 용심(用心)한 것을 궁구한다면, 우리 백성들이 비록 오래되더라도 오히려 그 혜택을 입을 것이요, 이 정자 또한 의탁하여 썩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 서거정의 시에, “누가 염옹(濂翁 주돈이)을 이어서 애련을 말하였는가. 정자 이름지은 것이 단연코 옛 사람의 어진 데 합한다. 그대는 응당 덕이 같아서 평생을 좋아하리라. 나도 또한 마음을 비게 하여 죽을 때까지 사랑하리라. 맺은 열매는 둥글기가 말[斗] 같다는 말을 이미 들었고, 핀 꽃은 크기가 배[船] 같음을 일찍이 보았노라. 다시 모름지기 재배하는 데 힘쓰라. 풍월(風月) 앞에 흥이 저절로 미치리라.” 하였다.
○ 풍월정(風月亭) 시에, “새 못을 파고 또 연꽃을 심었으니, 풍류(風流)로운 주인의 어진 것이 사랑스럽네. 맑은 향기가 솔솔 퍼지니 뉘 능히 감상할까. 짙게 고운 것이 한들한들하니 내가 홀로 사랑하네. 푸른 산과 붉은 단장은 밤 달을 맞이하고, 푸른 물결과 맑은 물결에는 그림 배를 띄우네. 이 사이에서 술을 대하니 흥을 일으킬 만하고, 시를 읊어 기쁨에 미치고자 하네.” 하였다. 『신증』 조위(曹偉)의 시에, “정자를 짓고 못을 파고 붉은 연꽃을 심으니, 사람들이 당시의 태수(太守)의 어짊을 이르리라. 국색(國色 경국지색(傾國之色))이 사람을 움직이려 스스로 아양부리는 것 같고, 새벽 단장이 물에 비치니 유독 사랑스럽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염계(濂溪)의 말을 이으려 하고, 꿈에 들어오는 것은 자주 태을선(太乙船)을 찾네. 푸른 통(筒)을 기울여 실컷 마시니, 술 가운데 미친 사람이라 부르게 하려 하노라.” 하였다.
樓亭
愛蓮亭。在客館東。○任元濬記:“利之爲邑,在高句麗爲南川縣。後爲新羅所幷,號南買郡,置軍主以治。又改黃武郡,領環邑諸縣。王太祖之南征也,帥大軍行至郡。有徐穆者導之,利涉南川,太祖喜之,賜今號。入我朝,徐姓達官皆穆之苗裔。而利川之云亦取利涉大川之義也。世宗莊憲大王以郡於畿輔諸邑,地大民稠,陞爲都護府。東西行者,必立馬訊諸父老,孰是南川,孰是徐穆之子孫。往往弔古,興懷感慨而後過之。客舍之南,舊有亭,卑小狹隘。更八九守而不爲之修葺,階欹而柱偃,無以慰夫王人之鞅掌,府人憫焉。全義李君世珤以通訓大夫,爲府之二年,政平訟理,民安其業。適其歲禾大熟,李君乘其糶糴斂散,而役其人,因其舊制,闢而新之,不崇不卑,不侈不儉。事旣畢,席其上而望焉,則東南間所謂孝養諸峯,列於几案之前,近之佳樹映帶。李君暇日徐步其側,相其沮洳,爲鑿方沼於亭下,種蓮其中,請名於領議政高靈申相公,乃以愛蓮二字復之。李君榮其亭之有是名,囑余作文以記。昔者先儒讚舂陵周夫子之德曰:‘風月無邊,庭草交翠。’ 蓋言其得斯道之妙,有以續不傳之緖,而開後學於無窮也。夫子嘗作愛蓮之說,以寓其志。其言曰:‘牧丹,花之富貴者也;蓮,花之君子者也。’ 君子之道,孰有大於修己治人者乎?修己之要,莫大於敬;治人之道,又莫大於仁。仁且敬則修之治之,蓋各盡於人己,而聖人之道漸可學矣。然則君子之道,若是其大,而匪夫一花一卉之可配,而謂蓮爲君子,其意何哉?嗚呼!泥而不滓,可見君子和而不流之氣象;可遠觀而不可褻,可見君子尊德性、極高明之德容;香遠益淸,可見君子譽望、令聞之遠播。由蓮之有是三者,而溯洄之以求其實,則向所謂爲仁爲敬修己治人之道,亦可馴致。蓮之君子卽人之君子,而李君之所以種於亭,高靈相公所以特揭愛蓮以名斯亭之義,庶不虛矣。儻後之繼李君而爲郡者,不徒觀古昔之事而留賞於斯亭,以尋夫周子愛蓮之說,究李君之用意,吾民雖至久遠,猶蒙其庥也,而斯亭者亦托以不朽乎。” ○徐居正詩:“誰續濂翁說愛蓮?名亭端合古人賢。君應似德平生好,我亦虛心抵死憐。結子已聞圓似斗,開花曾見大於船。更須勤著裁培力,風月前頭興自顚。” ○風月亭詩:“鑿得新塘又種蓮,風流可愛主人賢。淸馨冉冉誰能賞?濃艶娟娟我獨憐。翠蓋紅粧邀夜月,碧波淸浪泛瑤船。此間對酒堪乘興,唯得吟哦喜欲顚。” 〔新增〕 曺偉詩:“開亭鑿沼種紅蓮,人道當時太守賢。國色動人如自媚,晨粧照水絶堪憐。關情擬續濂溪說,入夢頻尋太乙船。折得碧筒仍痛飮,從敎喚作酒中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