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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사라진 반지
어느 월요일 저녁, 텔레비전 뉴스를 보던 조가 황급히 나를 불렀다. 화면에는 우리가 자주 애용하던 더블린 시내의 전당포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었다. 주말에 전당포에 도둑이 들어 전당포 안의 거의 모든 물건을 털어갔다는 것이다. 일요일 아침에야 그 사실이 발견되었다. 아일랜드 경찰 당국은 누구의 소행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철저히 계획된 범죄였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조를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럼 내 반지도 사라졌다는 말이잖아. 내 아름다운 반지!"
나는 너무 속이 상했다. 조가 내 어깨를 안아 주었다.
나는 말했다.
"게다가 우리가 곤궁할 때마다 그 반지가 우리의 구세주였는데, 이제 더 이상 그럴 수도 없게 됐어. 이건 정말 불공평해."
반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자 깊은 상실감이 느껴졌다. 비록 솔직히 말해 반지가 내 손가락보다 전당포에 잡혀 있는 기간이 더 많긴 했지만, 그 반지는 나에게 너무나 큰 의미였다. 혹시 경찰이 반지를 되찾아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잠시나마 갖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일은 점점 더 불가능해 보였다.
몇 주 후, 우리는 전당포 주인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우리가 전당포 주인에게 서명해 준 영수증에는 만일의 사태가 생길 경우 그들에게 어떤 책임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었음을 알리는 통지였다. 전당포에서 우리 반지를 보관하고 있는 사이 도둑이 그것을 훔쳐 가도 전당포는 법적 책임이 전혀 없다는 얘기였다. 우리는 속이 뒤집혔다. 반지도 잃고, 그에 따른 보상도 없었다.
조는 언젠가는 내게 새로운 반지를 다시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어떤 반지도 나에게 잃어버린 반지와 똑같은 의미를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조는 나를 다시 안아 주었고 우리는 그 편지를 치워 버렸다.
며칠 후, 오두막집 현관에 앉아 있을 때였다. 미카엘 천사가 마치 집 뒤에서 걸어 나오는 것처럼 나타났다. 그는 문간에 앉아 있던 내 옆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난 지금 말할 기분이 아니야."
미카엘 천사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로나, 반지 일은 정말 유감이야.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나는 미카엘을 돌아보았다. 그에게서 나오는 광채에 나도 모르게 조금 미소를 지었다.
"미카엘, 당신이 무슨 수라도 쓸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조 역시 슬퍼하고 있어. 자신이 나를 절망 속으로 끌어내렸다고 느끼나봐. 며칠 전에는 지기가 능력이 있어서 가족을 제대로 책임졌다면 반지를 전당포에 맡기는 일 같은 건 없었을 거라고 말했어."
미카엘이 말했다.
"이것을 기억해, 로나, 잃어버린 건 단지 반지일 뿐이야. 물질에 불과해, 다만 조의 사랑을 기억해."
나는 미카엘의 말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이 맞다. 나는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나는 미카엘을 돌아보며 다시 미소 지었고 그는 바로 사라졌다. 그 뒤로는 반지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지만 평화에는 아주 관심이 많다. 1990년대 중반 무렵, 북아일랜드에서는 평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한번은 천사 미카엘과 함께 앉아 있던 어느 날, 나는 그에게 북아일랜드에 대해 물었다. 그는 곧 평화 협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다지 성공할 것 같지 않았다. 평화가 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려면 최소한 20년은 걸릴 것이다.(17세기 영국에서 온 개신교인들이 가톨릭교도들을 남쪽으로 밀어내고 북아일랜드를 차지함으로써 분쟁이 시작되어 오늘날까지도 아일랜드인들의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지켜보고 또 지켜보았다. 최근 들어서는 평화를 대하는 이전의 자세에서 물러나 눈에 띄게 마음을 열고 의견을 주고받는 사람들도 보게 되었다. 미카엘은 북아일랜드에 평화가 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단지 아일랜드나 영국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만약 IRA(아일랜드공화국군) 같은 무장 테러 단체가 정부의 일원이 될 수 있다면, 다른 나라의 테러리스트 집단들에게도 그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폭력에 의하지 않고도 평화에 이르는 길이 있다. 나는 아일랜드가 세상의 평화를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고 들어 왔다. 악마가 끊임없이 그 초석을 제거하려 하겠지만, 평화를 위한 시도 역시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아일랜드는 종교가 종교와 싸우고 신념이 신념과 싸우는 하나의 사례이다. 만약 아일랜드가 평화를 찾을 수 있다면 다른 나라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심지어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천사들은 나에게 세상의 다른 길들을 보여줘 왔다. 때로 그것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무서웠다. 내가 보게 된 몇 가지 가능한 미래들은 정말 잔인했고, 만약 그 미래들 중 하나를 통과해야 한다면 나는 살아서 그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천사들은 모든 사람들이 조화와 평화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많은 경이로운 길들도 보여주었다. 나는 미래의 세상이 경이로운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믿지만, 모든 개인이 자신의 역할을 해야만 한다.
모든 평범한 사람들은 평화를 원한다. 언젠가 북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이 나를 만나러 왔다. 그녀의 남편은 폭력 사태 중에 살해되었고, 테러리스트였던 큰아들은 감옥에 갇혔다. 큰아들이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안겨 준 모든 고통을 보면서 그녀는 가슴이 무너졌다. 그런데 이제 작은아들이 형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 그녀는 그 아들마저 죽음으로 내몰리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녀는 돌고 도는 이 폭력의 끝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날마다 성당에 나가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평범한 삶을 위해 기도했다. 큰아들이 어서 돌아와 그의 어린 아이에게 평범한 아버지가 되어 주고, 작은아들도 결혼해서 아이들을 갖게 되기를.
그녀는 나에게 장례식에 가는 것도 이제 신물이 났으며 더 이상은 증오를 물려주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다른 할머니들도 보았다고 했다.
그녀는 말했다.
"만약 그 할머니들이 자식들과 손자손녀들에게 증오를 불어넣는 일을 멈춘다면 정말 큰 변화가 일어날 거예요."
그녀 역시 노력하고 있었지만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연민을 느꼈다.
언젠가 말했듯, 천사들은 내게 말하기를 전쟁은 쉽다고, 평화를 만들고 지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그 무렵 나는 몇 달째 조가 몹시 걱정되었다. 그의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는 게 보였다. 몸무게가 줄고 있었고 위장 장애가 끊이지 않았다. 그의 육체가 쪼그라들고 있었다. 의사를 부르는 일이 더 잦아졌지만,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어느 날, 침대에 누워 있던 조는 통증이 극심한 나머지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다.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조는 몹시 고통스러워했고, 나는 이대로 그를 잃을까 봐 두려웠다. 곧 정신이 돌아온 조는 몸의 왼쪽 부분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말을 할 때는 발음도 불분명했다.
뇌졸중이었다!
의사들은 그를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물리치료에 집중하며 그에게 걷는 법과 말하는 법을 다시 가르쳤다. 그 후로 오랫동안 조는 한쪽 다리를 절었고, 나는 식사 때마다 그의 음식을 조각조각 잘라 주어야 했다. 왜냐하면 포크를 제대로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자 조는 다시 보통 사람처럼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목소리에서는 뇌졸중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조가 회복되어 집으로 돌아온 뒤로 우리는 이따금씩 어두운 저녁에 산책을 나가곤 했다. 조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게 창피하다고 했다. 어쩌면 사람들이 자신을 술 취한 사람으로 여길지도 모른다고, 그러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에게 말하곤 했다. 키가 큰 조에 비해 나는 키가 아주 작았지만, 산책 때마다 그의 허리를 팔로 안고 걸었다. 천사들은 나 혼자서는 조를 지탱할 수 없을까 봐 종종 나를 도와주었다. 조의 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오솔길 가장자리로 밀려나기 일쑤였고, 아마 천사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넘어졌을 것이다.
나는 신과 천사들에게 계속해서 조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토로하며 물었다.
"그는 왜 아파야만 하지? 당신들은 왜 조를 낫게 할 수 없는 거야? 삶을 좀 더 편안하게 해줄 수는 없는 거야?"
어느 날 나는 밭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아무도 내 눈물을 알아챌 수 없도록 무슨 일인가를 하는 척하면서. 그때 미카엘 천사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자두나무 잎사귀를 하나 따려고 손을 뻗다가 하마터면 그를 밟을 뻔했다. 나는 흐느끼며 말했다.
"미카엘, 조의 삶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아. 그건 너무 이르잖아. 신에게 말해 줘. 나는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조가 죽는 것을 원치 않아."
미카엘이 대답했다.
"로나, 신은 너의 말을 들을 수 있어. 너의 가슴속에 무엇이 있는지 신은 알아. 로나, 나를 봐. 내 눈을 들여다봐. 무엇이 보여?"
미카엘 천사의 눈을 들여다보지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는 듯했다. 심지어 미카엘 천사까지도, 그의 눈은 생명과 빛으로 충만한 길이 되었다. 그 길 양쪽에서 눈처럼 흰 천사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천사들과 함께 걷고 있는 청년 조가 있었다. 건강하고 강한 모습이었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자신의 가족들과도 함께 걷고 있었다. 조는 천국으로 가는 길 위에 있었다. 건강하고 행복한 그의 모습을 보며 내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동시에 나는 울부짖었다.
"미카엘! 안 돼! 이럴 순 없어! 난 조가 죽는 길 원치 않아. 그는 죽기에는 너무 젊어. 이제 겨우 사십을 넘었을 뿐인데, 이건 공정하지 않아!"
나는 자두나무 아래에서 가슴이 터지도록 울며 서 있었다. 미카엘이 나를 위로하며 깃털 달린 날개로 내 몸을 감싸 주고 두 팔로 꼭 안아 주었다. 잠시 후 미카엘은 나를 감싼 날개를 풀고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담아 주었다.
"로나, 이제 강해져야 해. 가서 너의 가족과 조를 돌보도록 해."
미카엘 천사는 내 이마를 한 번 만져 주고는 반짝 하며 사라졌다.
몇 주 후, 나는 한 친구로부터 다음 날 저녁에 어떤 가족을 만나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조금 망설였다. 조 때문이기도 했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있을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어야 하고 운동도 시켜야 하고 학교 숙제도 봐줘야 했다. 우리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일어날 모든 일들에 대한 염려로 나는 조금 꺼려졌지만 마지못해 약속을 했다.
다음 날 저녁, 놀랍게도 조가 식사를 하러 일어나더니 크리스토퍼를 데리고 친구를 만나고 오겠다고 했다. 나는 줄곧 조를 바라보았다. 그의 영혼이 계속해서 그의 육체보다 한 발자국 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너무 놀라 그에게 그냥 집에 있어도 된다고, 방문객들은 주방에서 만나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는 자기가 자리를 피해 줘야 할 것 같다면서, 크리스토퍼도 데려가니 자기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마침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오기로 한 가족이 조금 일찍 도착한 것이다. 조와 크리스토퍼는 복도에서 방문객들을 지나쳐 나갔다.
그 가족이 막 떠나려 할 때 조가 돌아왔고, 그들은 다시 복도에서 서로를 지나쳤다. 나는 현관에서 그들을 배웅하고 주방으로 돌아왔다. 조는 몹시 창백하고 약간 불안정해 보였다. 나는 곧바로 주전자를 올려놓고 차를 끓여 설탕을 네 스푼가량 넣었다. 그런 다음 조를 자리에 앉히고 즉시 그것을 마시게 했다. 곧이어 샌드위치를 만들고 조에게 차를 더 따라 주었다. 식탁 맞은편에 서서 그를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당신 정말로 괜찮아?"
조가 대답했다.
"괜찮아. 소란 피울 것 없어."
조는 샌드위치를 고작 두 입 정도밖에 먹지 못했다. 그때 주방의 공기가 갑자기 달라졌다. 잠옷을 입은 루스가 맨발로 나와 주방문을 열고 물었다.
"엄마, 숙제 때문에 그러는데 친구에게 전화해도 돼요?"
나는 루스를 바라보다 조를 바라보았고 그 다음 다시 루스를 보며 대답했다.
"그래, 하지만 짧게 해야 한다."
모든 것이 슬로모션처럼 펼쳐졌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루스가 전화기 다이얼 돌리는 소리와 "여보세요." 하고 말하는 소리뿐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그 일이 일어났다. 조가 최악의 발작을 일으켰다. 나는 아이들이 조의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언제나 최선을 다했었다. 루스는 아빠가 경련을 일으키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조와 루스를 동시에 살펴야 했다. 나는 조가 죽어가고 있음을 알았고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고요히 울부짖었다.
"천사들아, 도와줘!"
그리고 루스에게 말했다.
"얼른 가서 크리스토퍼를 불러오렴."
하지만 크리스토퍼는 마침 가게에 가고 없었다. 나는 루스에게 999번으로 전화해 구급차를 부르고 우리 집 주소를 알려 주라고 했다. 루스는 수화기 건너편을 향해 몹시 흥분하여 말했다. 루스가 전화를 끊자 나는 빨리 이웃집에 가서 도움을 요청하라고 일렀다. 루스는 현관 밖으로 달려 나가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여전히 맨발이었다.
나는 조 옆에 꼭 달라붙어 선 채로 기도를 했다. 나는 내 몸으로 그를 도울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었다. 그가 주방 식탁 의자에 고꾸라지듯 무너질 때는 그를 잡아주었다. 루스가 현관 밖으로 나가자마자 빛 하나가 반짝였다. 그러더니 주방 한가운데 앉아 있던 조와 나를 정육면체 모양의 거대한 얼음, 혹은 크리스털 조각처럼 보이는 것이 둘러쌌다. 정육면체는 가운데가 비어 있었고 그 안은 무척 추웠다. 내 입김이 보일 정도였지만 그래도 약간의 온기가 있었다. 조의 입에서는 입김이 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호흡이 멎고 입술이 새파래졌다. 나는 울부짖었다.
"난 아직 아무 준비가 안 됐단 말이야!"
눈처럼 흰 천사들이 정육면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나는 통곡하며 울부짖었다.
"하나님, 안 돼요! 제발 조를 데려가지 마세요. 조금만 더 이 세상에 있게 해주세요!"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조의 영혼이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미카엘 천사가 나에게 보여 주었던 그 길이 나타났다. 전에 보았던 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영혼은 빛이 났고 아름다운 천사들이 그와 함께 걷고 있었으며 멀리 길 앞쪽에서는 그의 가족들이 그를 환영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조가 가족들을 향해 걸어갈 때까지도 나는 여전히 신에게 기도하고 있었다. 제발 조가 이 세상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해달라고. 아직은 죽지 않게 해달라고. 나와 아이들은 아직 그가 필요하고.
그때 갑자기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면서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나, 이번 한 번만이야. 이번 한 번만 그를 너에게 돌려준다. 하지만 다시는 애원해서는 안 돼."
신은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요청해서는 안 되는 것을 요청했기에 그는 나를 엄격하게 대하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되어 어른에게 꾸짖음을 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은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말했고 나는 애원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이후, 신의 그 말이 내 마음속에 언제나 머물렀다. 다시는 애원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 말이.
갑자기 조가 몸을 똑바로 세우고 앉았다. 약간 벌린 그의 입을 통해 마치 생명이 다시금 그의 육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의 영혼이 다시 몸속으로 돌아올 때의 생명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나는 그제야 조가 바른 자세로 앉을 수 있도록 조의 수호천사가 돕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조가 나를 돌아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아무래도 천국으로 가는 길이었던 것 같아."
그 말과 함께 그는 기력을 잃고 말았다.
그제야 루스가 이웃 사람들과 급히 현관문을 열고 달려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크리스토퍼와 오웬 역시 대문에서 "무슨 일이야?” 하고 소리치며 달려왔다.
구급차가 도착하자 조에게 병원에 가자고 설득하는 데 조금 애를 먹었다. 그러나 결국 조는 그렇게 했고 나는 이웃과 함께 차를 타고 구급차를 뒤따라갔다. 몇 시간 뒤 의사가 나에게 와서 설명하기를 조가 매우 운이 좋았다고 했다. 조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 혼수상태였다.
"누군가 조를 보호해 주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가버렸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가 그를 보호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그의 수호천사였다. 그리고 신은 기적을 허락해 조에게 다시 생명을 주었다.
조는 병원에서 이 주를 보냈다. 나는 조에게 잠깐이나마 또 다른 시간을 허용해 준 기적에 대해 계속해서 신에게 감사드렸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우리가 함께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몇 주가 될지, 몇 달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이삼 년이 될지. 나는 부디 몇 년 이상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 때가 이른다면 다시는 신에게 조를 살려 달라고 부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는 나에게 돌아왔지만 그의 건강은 결코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서 지냈고 다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형편은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졌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도울 수 있는 일을 했다. 열세 살 때부터 아이들은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고 번 돈의 일부를 내게 주었다. 그러나 조와 나는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 아이들이 학교 공부를 계속하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단호하게 결심했다. 열다섯 살에 학업을 중단한 것이 내 삶에 큰 손실이었다고 나는 언제나 느꼈다.
오두막집의 대문이 심하게 녹이 슬어 당장 페인트칠을 해야 했다. 나는 아침에 잠깐 시간을 냈다. 날은 밝았지만 추웠다. 나는 헛간에서 낡은 페인트 붓과 반쯤 남은 검정색 페인트 통을 찾았다. 붓을 간단히 씻어서 문에 페인트칠을 시작했다. 열심히 칠을 해나가고 있는데 남자아이 하나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멈추고는 인사를 했다. 그리스토퍼와 나이가 비슷한 학교 친구 폴이었다.
나는 물었다.
"넌 왜 학교에 안 갔니?"
아이는 아파서 결석했다고 말은 하면서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내가 넓은 칼을 쥐여 주자 아이는 문에서 너덜거리는 낡은 페인트칠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에 웃고 농담
을 하고 학교 다니는 얘기와 낚시 다닌 얘기를 재잘거렸다. 얼마 후 오늘은 그 정도면 됐다 싶어서, 나는 폴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잘 가라는 인사를 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도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아이 주위로 네 명의 천사들이 있었다.
네 명의 천사들은 앞뒤 양 옆에서 폴과 함께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폴이 자전거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천사들에게 물었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야?"
폴은 절대 자전거에서 떨어질 리가 없어 보였다. 아이는 완벽하게 자전거를 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의 수호천사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필 그때 폴이 나를 보러 온 것이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사흘 정도 지나기 전까지는 그 일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다시 대문에서 페인트칠 작업을 하고 있었고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도로 쪽으로 나가 보았다. 폴이 자전거를 끌고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의 수호천사가 아이 뒤에 있었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폴은 건강하고 튼튼해 보였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빛이 빛나지 않았다. 아이 주위의 생명의 빛이 흐릿하게 보였다. 또한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내가 "폴" 하고 부르자 아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전거를 타고 내게로 달려왔다. 아이는 자전거를 바닥에 쓰러뜨려 놓고는 자신이 도울 일이 있는지 물었다.
"그럼 있지. 네가 조금 늦긴 했지만 말이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페인트 붓을 하나 더 가지러 폴을 대문에 남겨 둔 채 헛간으로 향했다. 나는 오두막 뒤편으로 걸어가면서 천사들에게 묻고 있었다.
"뭐가 잘못된 거지?"
어떤 천사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많은 천사들이 동시에 한목소리인 것처럼 말했다.
"네가 해야 할 일은 폴과 시간을 보내는 거야. 아이가 하는 말을 들어 줘."
"그건 문제없어. 폴이 쓸 수 있도록 페인트 붓을 얼른 찾으면 좋겠어."
붓을 찾은 나는 오두막을 돌아 폴에게로 갔다. 폴이 대문에서 나를 기다리며 걱정스럽게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아이는 어느새 밝게 빛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빛이 흐릿하던 아이가 무슨 이유로 이제는 그토록 밝게 빛나는지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행복해하는 것을 보자 나도 기뻤다. 우리는 함께 대문에 페인트칠을 해 나갔다. 폴은 시종일관 웃고 농담하고 떠들었다. 아이는 다음 주가 자신의 생일이라고 말했다.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되어 폴은 자전거를 타고 갔고 나는 아이가 페달을 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아이와 함께 달리는 네 명의 천사를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나는 혼자 미소를 지었다. 네 명의 천사가 입은 옷이 너무 길고 느슨해 보였다. 너무나도 우아하게 달리는 모습이 마치 공기로 가득찬 비눗방울처럼 가볍게 튕기는 것 같았다. 색깔은 물기를 머금은 호박색이었고, 물 위에 빛나는 빛처럼 부드럽게 빛이 났다. 그들을 보고 있으려니 내 눈이 매우 편안해졌다. 더 이상 폴과 천사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서 있다가 곧 대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 집 뒤꼍의 헛간으로 향했다. 나는 나의 천사들을 부르면서 폴에 대해 말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폴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다. 다음 날 나는 혼자 산책을 하러 오두막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오솔길 쪽으로 올라갔다. 나는 들판으로 이어지는 문에 멈춰 서서 나의 천사들을 불렀다. 왠지 천사들이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다가 오솔길 아래쪽으로 돌아 내려갈 때쯤 엘리야 천사가 나타나 말했다.
"어디로 가는 거야, 로나? 이리로 돌아와."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어. 당신들 대체 그동안 어디에 있었어?“
"로나, 우리는 언제나 너와 함께 이곳에 있었어.“
"엘리야 천사, 나는 폴이라는 남자아이가 걱정돼.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엘리야가 말했다.
"로나, 너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폴과 함께 있어 주는 일이야."
"엘리야, 나는 그 아이가 걱정스러워. 그런데 왜 이렇게 두렵지? 폴은 너무나 아름다운 아이야."
"로나, 어떤 경우에 천사들은 가능하면 어느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미래를 바꾸려고 시도할 수 있어. 바로 그것이 우리가 이 아이를 위해 하고 있는 일이야.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역할을 하라고 속삭이고 있는 거고, 하지만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극소수야. 어쩌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어. 너는 이 순간 폴의 생명줄이야. 너는 그 아이가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해. 너는 늘 우리의 말을 듣지, 로나, 이제 돌아가서 대문에 페인트칠하는 일을 마저 하도록 해. 우리가 폴을 너한테 보낼 테니 이야기하고 웃고 즐겁게 보내."
나는 애원했다.
"엘리야, 나한테 더 많은 것을 말해 줄 수는 없어?"
"안 돼, 로나. 너 혼자서는 그 아이의 미래를 바꿀 수 없어.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가능해."
언제나 지금이 그 때였다. 나는 그런 경우를 많이 본다. 일련의 작은 사건들이 모여 큰일을 이룰 수 있다. 당신이 누군가를 향해 미소 짓거나 누군가에게 칭찬을 해주는 것과 같은 작은 일을 하도록 천사들이 당신을 자극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비록 당시에는 아무리 하찮고 시소해 보여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겉으로 보기에 하찮은 일들이 더 큰 계획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대문에 칠을 하러 나갈 때마다 폴이 도착하곤 했다. 시간이 언제든, 아침이든 늦은 오후든 저녁이든 늘 도와주러 나타났다. 폴은 자신의 생일에 크리스토퍼와 함께 낚시를 하러 가도 되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폴이 그래준다면 크리스토퍼도 무척 행복할 것이며 폴의 생일 다음 날인 일요일이 좋겠다고 말했다. 토요일에는 크리스토퍼가 석탄 집하장과 말 보관소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폴은 자신의 가족들 모두와 함께 갈 것이라고 했다. 아이는 무척 신이 나 있었다. 크리스토퍼와 함께 갈 수 있게 허락해 주어서 고맙다고 아이는 말했고, 나는 아이에게 크리스토퍼를 잘 부탁한다고, 조심해서 안전하게 집에 돌아오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월요일에 내가 요리를 할 수 있게 물고기를 많이 잡아오면 좋겠다고도 했다. 폴은 웃으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날 크리스토퍼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폴의 생일 초대에 대해 말해 주었다. 크리스토퍼는 기뻐하면서 벌써부터 기대에 차 낚시 도구를 미리 꺼내 놓았다. 며칠 뒤 페인트칠을 마저 하러 대문에 나가 있는데 폴이 도착했다. 어느새 생일이 이삼 일 앞으로 다가와 폴은 무척 흥분해 있었다. 우리는 함께 페인트칠을 했고 폴은 기분이 좋아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폴이 자전거를 타고 도로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천사들은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아이에게 아주 가까이 있었고, 아이를 보호하며 언제든 잡아 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폴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하루 이틀 뒤에 크리스토퍼가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주방으로 왔다. 아이는 몹시 속상해했고, 아이가 어떤 말을 하기도 전에 나는 폴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 폴이 오늘 아침에 죽었다.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폴의 생일날 낚시를 가기로 했었는데, 우리 폴의 집으로 가 봐요, 엄마."
나는 너무 놀라 망연자실했다. 너무나 부당한 일이었다. 나는 크리스토퍼를 위로하며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폴의 부모님이 조금 시간을 가진 뒤에 들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저녁, 크리스토퍼와 나는 폴의 집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차를 마신 뒤 폴의 아버지는 크리스토퍼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작별 인사를 하고 집까지 걸어왔다.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크리스토퍼가 말했다.
"엄마, 폴이 그곳에 없는 게 너무 이상하게 느껴져. 집이 너무도 텅 비어 보였어. 언제나 폴이 그리울 거야."
폴의 아름다운 천사 네 명이 낚싯대와 낚시 가방을 폴의 자전거 뒷좌석에 묶고서 그를 곧장 천국으로 데려갔다는 것을 나는 안다. 폴이 천국에서 낚시를 실컷 즐기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폴이 죽은 지 여섯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조는 매우 드물게도 침대에서 나올 만큼 몸 상태가 좋았다. 이제 열여섯 살이 된 크리스토퍼와 조는 더블린 중심가의 한 술집으로 조의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리스토퍼는 술집이 어두웠고 사람들과 소음으로 가득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술집의 분위기는 점자 거칠어져 갔고 크리스토퍼는 아빠 곁을 지키며 가까이 서 있었다. 조는 친구를 만나 크리스토퍼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을 헤치면서 문 쪽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누가 누군가를 밀었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크리스토퍼는 겁이 났다고 했다. 남자들 몇 명이 세 사람을 따라 거리로 나와 싸울 상대를 찾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손에 깨진 병을 들고 있었다. 조는 그들에게 싸우려는 게 아니라고, 단지 친구를 만나러왔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계속 걸어갔다. 그때 갑자기 남자들이 조와 일행을 밀쳐 대기 시작했다. 크리스토퍼는 정말 겁이 났다고 한다. 그 순간 크리스토퍼는 갑자기 폴의 현존을 강하게 느꼈다.
크리스토퍼는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내가 확신하는데, 폴이 그곳에 있었어. 정말로 폴이 그곳에 있는 것 같았어. 지금 엄마와 나처럼 말이야. 폴이 그 남자들을 뒤로 밀어뜨리고 우리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어, 폴이 나와 아빠를 보호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술집에서 나온 그 남자들을 보면서 나는 살면서 그만큼 겁이 난 적이 없었지만, 폴의 존재가 느껴졌을 때 우리는 이제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그리스토퍼에게 폴의 보호가 필요할 때면 폴이 항상 곁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그 후 수년 동안 나는 여러 번 폴이 생각났다. 특히 나를 위해 크리스토퍼를 보호해 준 것에 대해 그에게 감사한다. 크리스토퍼를 안전하게 지켜주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준 그에게 감사한다.
날마다 장을 보고 돌아오면 나는 조에게 차 한 잔을 끓여 주고는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날, 조는 나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조의 수호천사가 그의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침대에도 많은 천사들이 조를 향해 자리를 잡고 앉아 조가 하려는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는 말했다.
"로나, 당신은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는데, 오늘 당신이 외출한 사이에 한 여자아이가, 그러니까 내 말은, 어느 여자아이의 영혼이 폴짝폴짝 뛰며 방 안으로 들어왔어. 네 살쯤 돼 보였고, 길고 밝은 갈색 머리가 찰랑거렸어. 마치 진흙 속에서 놀다 온 것처럼 지저분하고 손에 찰흙을 들고 있었어. 아이가 지금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아빠, 나랑 함께 놀아요.' 하고 말했어. 그런 다음 아이는 몸을 돌려 방 밖으로 폴짝거리며 뛰어나갔어."
나는 너무 기쁘면서 한편으론 놀라웠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우리는 아이를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또 다른 아이를 원했었다. 어느새 루스는 열세 살이었고, 새로 아이를 갖는 것은 조가 건강해지는 것과 함께 내가 기대하는 마지막 소원이었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나는 신과 나의 천사들에게 감사드렸다.
조는 이제까지 영혼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자신 역시 단순한 육체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신과 천사들이 그에게 더 많은 것을 보게 허락한 것 같았다.
조가 어린 여자아이의 영혼을 본 것이 우리가 곧 새로운 딸을 갖게 된다는 의미라는 걸 나는 조에게 곧바로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이 아름다운 어린 영혼을 보고 느낀 기쁨을 누리도록 두었다.
"왜 아이가 나를 아빠라고 불렀을까?"
조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심지어 나는 아직 임신 전이었는데도, 이 어린 영혼이 보였다. 아이는 조가 묘사한 모습 그대로였다. 한 번은 차를 끓여 조에게 가져다주기 위해 쟁반에 받쳐 주방을 막 나설 때였다. 그 어린 소녀가 작은 방 문에서 폴짝거리며 뛰어나왔다. 아이는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고, 이내 사라졌다.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조가 가장 처음 한 말이 그 여자아이가 다시 와서 그를 아빠라 부르며 자기와 놀아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조에게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말했다. 신이 우리에게 또 다른 딸아이를 보내주고 있다고, 하지만 조는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아이 아빠가 되려면 신이 내 안으로 엄청난 생명력을 쏟아부어야 할 거야. 그건 정말 기적이 필요한 일이야!"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임신한 것을 알았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서 있을 때였다. 천사들이 황금빛과 함께 내 주위에 나타났다. 그때 나는 내 뱃속에서 나선형으로 돌고 있는 생명 에너지를 보았다. 에메랄드빛 파랑, 에메랄드빛 초록, 에메랄드빛 빨강, 에메랄드빛 보리 등 모든 색들로 빛나고 있었다. 그 소용돌이가 열리면서 나는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그곳에서 마치 한 점 먼지만 한 작은 아기를 볼 수 있었다. 그 광경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 대한 벅찬 감정과 사랑으로 나를 채웠다.
루스와는 열두 살이나 차이가 나는 아이였고, 다시 임신을 했다는 생각에 익숙해지는 데도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엄마가 아기를 갖는 데 필요한 것들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천사들은 나를 돕기 위해 할 일이 많았다. 사람들의 귀에다 수없이 속삭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딸 메건이 태어날 무렵에는 필요한 모든 것들이 갖추어졌다. 천사들과 천사들의 말을 들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드렸다.
때로는 천사들이 매우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해 크리스마스 무렵 우리는 또다시 돈이 바닥났다. 크리스마스를 불과 며칠 앞둔 어느 날, 주방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크리스토퍼가 누군지 보러 나갔다가 한 낯선 남자와 함께 엄청나게 커다란 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크리스토퍼는 자기가 다니는 학교의 톰 신부님이라고 그 남자를 우리에게 소개했다. 톰 신부가 말했다.
"이렇게 불쑥 찾아온 게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가정 과목을 듣는 학생들이 만든 크리스마스 음식을 메이누스의 한 가정에 전달하자는 결론이 내려졌고, 저는 이 가정이 가장 적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크리스마스이브에 칠면조와 햄을 가지고 다시 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떤 학생도 그 음식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니까요. 제가 혼자 온 이유가 그것입니다. 크리스토퍼가 나를 도와 상자를 안으로 옮겨 주겠거니 하고 생각했었지요."
나는 톰 신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안으로 초대해 차를 대접했다. 차가 끓는 사이 톰 신부와 조와 아이들은 상자에서 음식을 꺼내기 시작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음식이 들어 있었다. 여러 가지인 데다 양도 많았고 모두가 직접 만든 것이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차를 따르면서 신과 천사들에게 감사드렸다. 톰 신부에게 차 한 잔을 건네고 사과 파이를 자르면서 나는 슬쩍 아이들을 쳐다보였다. 아이들의 눈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톰 신부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신부님은 어떻게 아셨나요?"
톰 신부는 단지 형편이 어렵다고만 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도 그 이상은 자세히 알지 못했다. 나는 식탁 건너편의 조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조는 톰 신부에게 자신의 병세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는 말했다.
"천사들의 말을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우리 집에 이러한 풍요로움을 안겨 준 가정 과목 학생들에게도 우리를 대신해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며칠 뒤 크리스마스이브에 톰 신부는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큰 칠면조와 가장 훌륭한 햄을 들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다음 날인 크리스마스에 조는 벽난로 앞에 앉아 나를 바라보며 자신이 나와 아이들을 위해 제대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부끄럽다고 말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여러 해 동안 아픈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야. 아프니까 당연히 일을 할 수 없는 거잖아. 그러니 그렇게 말하지 마."
나는 조를 위로하려고 애를 썼다.
조가 그런 말을 한 건 처음이 아니었다. 병을 앓는 사람들은 자주 그런 말을 한다. 아픈 것이 전혀 그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족들에게 짐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해 부끄럽게 여긴다.
때로 조와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누곤 했다.
"오늘 왜 그렇게 화를 내?"
"당신이나 아이들에게 화가 난 게 아니야. 나 자신이 병들어 있고 당신과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다는 게 화가 나.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그해의 크리스마스 날, 나는 벽난로 앞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조를 안심시켰다.
"몸이 조금이라도 가볍게 느껴지는 날이면 당신은 거의 쓰러질 때까지 밭일을 하고, 할 수 있을 때는 주방 청소도 하잖아. 시장에서 돌아왔을 때 그런 당신을 보게 되는 날이면 정말 기분이 좋아. 당신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어. 당신의 아이들과 나는 당신을 아주 많이 사랑해."
첫댓글 "이것을 기억해, 로나, 잃어버린 건 단지 반지일 뿐이야. 물질에 불과해, 다만 조의 사랑을 기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