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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주의 미학
이정환
1. 프롤로그
새로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물론 새로움이라는 것도 언젠가 퇴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공간을 초월하여 생명력을 가진 빼어난 예술 작품들의 예에서 보듯 명작은 현재성을 가진다. 시를 쓰는 사람은 누구나 그러한 불후를 꿈꾼다.
시조는 제한된 율격을 갖춘 시이지만, 가변성을 활용하여 얼마든지 변용과 변주가 가능하다. 때문에 한 작품 한 작품을 쓸 때마다 여러 가지 전개 유형을 통해 다채로움과 다양성을 구현할 수 있다. 새로운 의미 생성과 더불어 독자적 ․ 독립적 조형미학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 독보적인 작품은 태어나게 된다. 그러나 그 노력의 과정은 몹시 지난하다.
2. 창작의 실제
시조는 일정한 틀이 있는 만큼 긴장이 뒤따른다. 이 긴장의 정도가 지나치면 경직된 느낌을 안겨준다. 그러므로 3장 중 어느 한 장은 풀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맺고 풀렸다가 되감기는 이치다.
논의의 갈래로‘심미성, 자연성, 내면성, 생명성, 역사성’으로 나누어서 변주의 다양한 양상들을 살피도록 하겠다.
2.1. 심미성
심미는 아름다움을 식별하여 가늠하는 일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문학의 한 갈래로서 시는 근원적으로 심미성을 추구한다. 언어와 언어가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운율이 발생되고, 이 때 의미가 형성되면서 미적 자질을 획득한다. 언어로 이루어진 미적 성취는 정서적 반향을 일으키면서 독자의 심금을 울리게 된다.
천마총 반쯤 돌아 골목 끝집 들어서면/ 눈먼 무녀 혼자 앉아 종일토록 흔들던/ 새하얀 무명천 같은 접신 중인 방울소리
-박서희, 「목련」전문
「목련」은 기존의 모든 목련 시편들과는 전혀 다른 발상이다. 그런 점에서 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단시조로서 흠잡을 데 없는 완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세밀한 장면 설정 때문이다. 시의 화자는 ‘천마총 반쯤 돌아 골목 끝집 들어서면/ 눈먼 무녀 혼자 앉아 종일토록 흔들던’ 특이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 기억과 목련 이미지는 묘한 결합을 이루면서 ‘새하얀 무명천 같은 접신 중인 방울소리’라는 시각과 청각 이미지의 자연스러운 교직으로 참신한 한 편의 시조로 완성된 것이다. 비근한 소재를 선택하여 식상하지 않는 미적 형상화 과정을 거쳐 개성적인 작품을 만들어낸 점이 돋보인다. 사물이나 정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눈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풀벌레 울음소리 옥양목의 가위질 같다// 차가운 별빛은 물에 씻어 박은 듯// 잊고 산 세상일들이 오린 듯이 또렷하다
-서숙희, 「처서 무렵」 전문
「처서 무렵」은 감각의 섬세함과 명징한 시어의 결합을 통해 개성적인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다. ‘풀벌레 울음소리 옥양목의 가위질 같다’라고 하면서‘차가운 별빛은 물에 씻어 박은 듯’하다고 노래한다. 그리하여‘잊고 산 세상일들이 오린 듯이 또렷’한 것을 독자의 뇌리에 세밀히 각인시킨다. 처서 무렵이기 때문이다.
해파랑길 비록의 행간/ 잇대어 걷다보면// 수몰된 간절한 기억/ 처절히 거슬러온다// 잊는 건/ 무모하다고/ 공방전 치닫는 파도
-이숙경,「간절곶」전문
붉어서 다시 젖고 젖어서 다시 붉은/ 사무침으로 안긴 저물녘 접시꽃이여/ 오래 전/ 그 돌담길에/ 붉게 젖은 내가 피어
-윤경희,「그, 저물녘」전문
햇살이 어루만지자 부풀어 오르는 레일// 오후 두 시 땡그랑, 열차가 지나간 뒤// 총총히 손에 손잡고 건널목 건너는 아이들
-문수영, 「봄볕」전문
「간절곶」이라는 시조에서‘간절함’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글로 표기되어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원래 한자는 艮絶串이다. 즉 어긋나서 끊어진 육지의 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주 바다 涯月을 愛月로 느끼는 경우와 흡사하다. 시의 화자는 ‘해파랑길 비록의 행간’을‘잇대어 걷다’가 ‘수몰된 간절한 기억/ 처절히 거슬러’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이 때 ‘간절한’이라는 시어가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잊는 건/ 무모하다고/ 공방전 치닫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잊어서는 아니 됨을 절감한다. 기억 속에 깊이 묻어두고 아픈 아름다움으로 남기려는 모습이다.
「그, 저물녘」에도 아픔이 배어 있다. ‘붉어서 다시 젖고 젖어서 다시 붉은’꽃은‘사무침으로 안긴 저물녘 접시꽃’인데 곧 그것은‘오래 전/ 그 돌담길에/ 붉게 젖은 내가 피어’있었던 바로 그 꽃이라는 것이다. 때는 오래 전이고, 황혼이 내려오는 붉은 저물녘이다. 돌담길이 안겨주는 서정적 분위기와 맞물려서 다소곳이 자리 잡고 피어난 접시꽃은 곧 시의 화자의 다른 모습이기에 애틋함이 더할 수밖에 없다. 단순한 회상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근원 지향의 사유, 동일성 시학의 발현이다.
「봄볕」은 동시조에 가깝다. 따사로운 눈길로 정경을 소담스런 언어로 직조하고 있다. ‘햇살이 어루만지자 부풀어 오르는 레일’이라는 대목에서‘어루만짐’이 친밀감을 더한다. 때는 ‘오후 두 시’, ‘땡그랑, 열차가 지나간 뒤’에 화면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봄 햇살이 넉넉히 어루만져준 귀한 생명들이다. 앙증맞은 그들은 ‘총총히 손에 손잡고 건널목’을 건넌다. 이때 햇살은 한 번 더 아이들의 등이며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을 것이다.
누구나 무섬에 와선 물 위를 걷는다 // 종소리 날개 위로 금빛 노을이 질 때// 물에도 뼈가 있을까, 외나무다리 저 그늘// 누구나 무섬에서는 은빛으로 물든다// 두 눈이 부시도록 소리 없이 빛나는// 그 여자, 눈물 속의 길을 두근두근 걷는다
-김미정, 「무섬의 여자」전문
「무섬의 여자」는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눈에 선연한 이미지가 마음을 맑게 어루만진다. 시의 표현 그대로‘누구나 무섬에 와선 물 위’를 걸을 수밖에 없다. 때는‘종소리 날개 위로 금빛 노을이 질’무렵이다. 그 순간, 시의 화자는 묘한 장면을 목도한다. 즉‘물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외나무다리 저 그늘’이 바로 물의 뼈이기에.
발견의 눈, 모티브의 중요성을 환기하게 한다. 그리고 ‘누구나 무섬에서는 은빛으로 물’들어서‘두 눈이 부시도록 소리 없이 빛나는’존재가 되어 마침내 한 여자는 ‘눈물 속의 길’을 혼자 ‘두근두근 걷’게 된다.
물 위를 걷고 있는 한 여자의 길은 곧‘눈물 속의 길’이라고 해석함으로써 이 시편은 깊어지고 있다. 그 점을 눈여겨볼 일이다.
2.1.2. 자연성
시는 자연을 떠나서 노래될 수가 없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동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은 자연의 비의나 변화를 바라보면서 노래하기를 즐긴다. 자연을 빗대어 삶속의 온갖 희로애락을 육화하는 일에 몰두한다.
확 덮쳐/ 사정없이/ 달려들면/ 어쩌자고!// 나는 다시 흰 번득임에/ 온몸이 파먹힌다// 쩍-벌린/ 붉은 것 아래/ 가랑이를 오므리고// 화들짝/ 살아나는/ 관계라니!/ 어랴! 햐,// 부딪혀 젖은 탓도/ 칭얼대는 바람 탓도// 저 물이/ 본의 아니게/ 오므린 나를 삼킨다
-조명선, 「파도」전문
「파도」는 에로틱하다. 이 시인은 이러한 시각으로 적잖은 시편을 발표한 바 있는데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구축하는 작업이 되겠다. 다만 어떻게 시적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관건이다. 시조의 다채로움에 이러한 시도는 순기능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확 덮쳐/ 사정없이/ 달려들면/ 어쩌자고!’라는 첫머리부터 저돌적이다. ‘나는 다시 흰 번득임에/ 온몸이 파먹힌다’라는 진술도 실감실정이다. ‘쩍-벌린/ 붉은 것 아래/ 가랑이를 오므리고’라는 적나라한 표현은 정면으로 직시하기에는 낯이 곧 붉어질 일이다. 그 관계는 ‘화들짝/ 살아나는/ 관계’다. 하여‘어랴! 햐,’라는 탄식 비슷한 소리가 저절로 입 밖으로 터뜨려졌을 것이다. 결구‘저 물이/ 본의 아니게/ 오므린 나를 삼킨다’도 끝까지 에로틱한 정황을 견지하는 마무리다.
바위도 겨울나무도/ 버릴 것 다 버리고// 산도 허공도/ 비울 것 다 비우니// 벼랑 물/ 눈귀 닫고서/ 흰 뼈로 일어섰다// 입 다문 연산 빙폭/ 사리로 굳어져서// 말들의 고갱이가/ 무지개로 떠오른다// 말없이/ 말을 건네는/ 저 눈부신 적멸의 꽃
-김우연, 「연산 빙폭」전문
「연산 빙폭」은 서경시이면서 그 속에는 메시지가 내재되어 있다. ‘바위도 겨울나무도/ 버릴 것 다 버리고// 산도 허공도/ 비울 것 다 비’운 상태이므로 ‘벼랑 물/ 눈귀 닫고서/ 흰 뼈로 일어’서 있는 것이다. ‘입 다문 연산 빙폭/ 사리로 굳어져서// 말들의 고갱이가/ 무지개로 떠오’르는 것을 바라본다. 이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한겨울에 빙폭 앞에 선 화자는‘말없이 말을 건네는/ 저 눈부신 적멸의 꽃’과 만났다. 그 일은 그에게는 하나의 새로운 자각을 안겨준 계기가 된 셈이다.
섬은 아주 조용히, 길 하나를 낳았네/ 육지서 따라온 시간 잠시 멈춰 두라며/ 새우란 금빛 향기가 계집처럼 반기네// 섬은 아주 가파른, 길 하나를 닦았네/ 손금보다 짜디짜도 투정 말고 걸으라며/ 파도살 목쉰 호령이 귓밥을 깨우네// 섬은 아주 먼, 길 하나를 열었네/ 아무나 밟지 않아 뒷모습이 더욱 푸른/ 통치마 추슬러 놓고 고름 슬몃 풀어두네
-정경화, 「낭길」전문
「낭길」은 ‘네’라는 각운을 각 수마다 초장과 종장에 두 번 배치하여 여섯 번을 되풀이함으로써 이 시편을 견인하는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섬은 아주 조용히, 길 하나를 낳았네’에서 보듯 그 호젓한 길은 ‘육지서 따라온 시간 잠시 멈춰 두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 곳은‘새우란 금빛 향기가 계집처럼 반기’는 길이다. 기품 있는 난초가 다정한 계집처럼 반긴다는 대목에서 정감이 넘친다. 또한‘섬은 아주 가파른, 길 하나를 닦’아 놓고‘손금보다 짜디짜도 투정 말고 걸으라’고 하면서‘파도살 목쉰 호령이 귓밥을 깨우’고 있음을 환기하고 있다. 이어서 노래한다. ‘섬은 아주 먼, 길 하나를 열었’다고, ‘아무나 밟지 않아 뒷모습이 더욱 푸른’그 길은‘통치마 추슬러 놓고 고름 슬몃 풀어’둠으로써 슬그머니 유혹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대목에서 첫 수 종장에‘계집’이라는 시어를 삽입한 것의 의도가 밝혀진다.
앞서 살핀「파도」가 보여준 에로틱한 정황을 더욱 능청스럽게 형상화한 점에서「낭길」이 구현한 세계는 개성적이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서러웠던 붉은 꽃/ 물 흐르듯 흐르는 초조한 달거리에/ 여러 겹 꽃잎을 열어 그늘로 내려섰다// 어쩌면/ 담벼락에 기댄 중심을 놓칠까/ 내려선 그늘만큼 마음도 붉어져/ 은하가 닫히는 사이 왈칵 울음 쏟는다
-조금숙, 「능소화」전문
「능소화」는 개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여름철에 피는 ‘능소화’는 많은 시인들이 다룬 바 있는 비근한 소재인데‘엄마 없는/ 하늘 아래 서러웠던 붉은 꽃’이라는 장면 설정 후에 ‘물 흐르듯 흐르는 초조한 달거리에/ 여러 겹 꽃잎을 열어 그늘로 내려섰다’라는 여성성의 이미지를 제시하여 생명의 신비를 환기시킨다. 이어서‘어쩌면/ 담벼락에 기댄 중심을 놓칠까/ 내려선 그늘만큼 마음도 붉어져’라는 밀도 높은 형상화 과정을 보이면서 결구 ‘은하가 닫히는 사이 왈칵 울음 쏟는다’로 맺는다. 능소화의 삶 혹은 한 여인의 인생을 축약해서 보여주고 있어 이채롭다.
바람 든 유월 숲에서 가는귀가 열린다/ 구름처럼 부푸는 나무의 말에 솔깃해져// 음색이 푸른 입술에/ 내 귓바퀴 걸린다// 나뭇잎의 허밍은 오래 들어도 신선하다/ 발라드풍의 선율이 공명으로 울리는 숲// 잎맥에 적힌 가사도/ 되풀이해서 읽는다
-백점례, 「나무의 말」전문
「나무의 말」은 참신하다. 시적 대상을 향한 화자의 감각의 촉수가 남다르다. 때는‘바람 든 유월 숲’인데 ‘가는귀가 열’리게 하는 곳이다. ‘구름처럼 부푸는 나무의 말에 솔깃해’졌기에‘음색이 푸른 입술에/ 내 귓바퀴 걸’릴 만도 할 것이다. 그리고 ‘나뭇잎의 허밍’을 오랫동안 듣는다. ‘오래 들어도 신선하’기 때문이다. ‘발라드풍의 선율이 공명으로 울리는 숲’이어서 그렇다. 그래서 시의 화자는‘잎맥에 적힌 가사도/ 되풀이해서 읽’게 된다. 말하지 않는 나무로부터 들려오는 내밀한 말을 듣는 동안 심신의 안정과 치유를 얻게 된다면 그것은 곧 생태적 삶, 생명시학적 삶을 사는 길이다. 시적인 삶과 생태적인 삶은 말만 다를 뿐 뜻은 같다.
「나무의 말」은 그와 같은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2.1.3. 내면성
주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자각하고, 인간 실존의 구조와 문제성을 밝히려는 철학을 흔히 실존 철학이라고 한다. 즉 현실적 존재로서의 본래적 자기 곧 주체적 존재로서의 실존의식을 탐구하는 일이다.
고뇌하면서 성찰에 힘쓰는 내면성이 엿보이는 몇 편의 작품을 보겠다.
여름날 줄지어 선 나뭇잎 푸른 소리//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만난 적 있다// 세상의 흔한 말보다 진한 느낌 전한다// 길에 나서면 순간 만나는 말의 범람// 항시 혼란스러움에 앞서 알아차리는// 몸으로 전해지는 말 그 순수함 익힌다
-조영일, 「체감」전문
「체감」은 시종일관 잔잔한 어조로 삶의 풍경을 노래한다. ‘여름날 줄지어 선 나뭇잎 푸른 소리’의 메시지는 잘 못 알아듣지만 만난 적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세상의 흔한 말보다 진한 느낌’을 전해준다. ‘길에 나서면 순간 만나는 말의 범람’을 화자는 너무나도 많이 마주친 바 있다. 그래서 ‘항시 혼란스러움에 앞서 알아차리는/ 몸으로 전해지는 말 그 순수함’을 몸으로 익히는 일을 한다. 꾸밈없는 자연으로부터 받은 기운으로 자신의 순수성을 지키고자하는 잔잔하지만 뜨거운 열망을 이 시편에서 읽는다.
빈한으로 살아왔다/ 짓밟힌 질경이처럼// 험한 풍랑 눈귀 막고/ 숨죽이며 견뎌왔다// 새 시대/ 는개 걷히는 날/ 꽃향기 나를 깨운다// 물풀이 되감기듯/ 허리 못 편 이 고뇌// 살을 에는 동지섣달/ 목숨 지켜 걸어 왔다// 뒤틀린/ 덩굴을 풀 듯/ 훌훌 털고 가고 싶다
-장식환, 「굴레를 벗고」전문
「굴레를 벗고」는 화자의 인생론이다. ‘빈한으로 살아왔다/ 짓밟힌 질경이처럼’이라는 도발적인 첫걸음과‘험한 풍랑 눈귀 막고/ 숨죽이며 견뎌왔다’는 어떤 결의와 같은 진술에서 신산한 삶을 얼마나 치열하게 헤쳐 왔는지 잘 헤아려진다. 그런 와중에서 그는 ‘는개 걷히는 날/ 꽃향기’가 나를 깨움으로써 그 역경을 이겨낸 것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의 고뇌는 ‘물풀이 되감기듯/ 허리’못 폈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살을 에는 동지섣달/ 목숨 지켜 걸어 왔’기에 ‘뒤틀린/ 덩굴을 풀 듯/ 훌훌 털고 가고 싶’은 마음뿐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삶은 간단치가 않고 지고지난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때로 꽃향기가 흐른다. 그 향기로 말미암아 무거운 굴레를 벗을 수 있었던 것이다.
허옇게 풀려나는 시간의 실타래 보며 되감을 수 없다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아쉬워 떠나지 못해 거울 앞을 서성인다// 어디 그뿐이랴 깊어진 강줄기 보라 꺾인 자리마다 설움도 따라 깊어 출렁인 그 흔적들이 주름으로 남았다// 보고 다시 보며 거슬러 올라가면 환히 밝아오는 한 시대가 보인다 애틋한 마음 한 구석 거기 잠시 앉혀본다
-송진환, 「거울 앞에서」전문
「거울 앞에서」는 자신의 내면 들여다보기다. ‘허옇게 풀려나는 시간의 실타래 보며 되감을 수 없다는 걸 번연히 알’고 있으면서도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모습을 진솔하게 보인다. 그래서 ‘아쉬워 떠나지 못해 거울 앞을 서성’이고 있는 것이다. 거울이 어떤 해결책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거울 속에 비친 자아를 면밀히 직시함으로써 길을 열어갈 수 있는 묘안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경이 반영되어 있다. 다음으로‘ 어디 그뿐이랴 깊어진 강줄기 보라 꺾인 자리마다 설움도 따라 깊어 출렁인 그 흔적들이 주름으로 남’아 있는 것을 여실히 보게 된다. 별다른 해결책은 없다는 것을 셋째 수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즉‘보고 다시 보며 거슬러 올라가면 환히 밝아오는 한 시대가 보’이는데, 어쩔 수 없이‘애틋한 마음 한 구석 거기 잠시 앉혀’보는 것으로 끝맺는다.
너 아니면 내 어찌 순간인들 버텼을까// 빗대어 아스라한 고공에서조차, 너는// 껴안고 한 몸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때리고 밀쳐 넣어 결국엔 혼절컨대// 맞닿은 촉감으로 소생하는 기운 앞에// 너끈히 상량 고목도 미쁜 눈물 흘렸다
-김병락,「대못」전문
「대못」은 사유의 깊이가 느껴진다. 아울러 견고한 의지와 더불어 치열한 도전정신이 잘 육화 되어 있다. ‘너 아니면 내 어찌 순간인들 버텼을까’라는 의미심장한 첫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빗대어 아스라한 고공에서조차, 너는// 껴안고 한 몸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라는 주저함 없는 결단의 순간을 본다. 그것은 ‘때리고 밀쳐 넣어 결국엔 혼절’하고 말지만, ‘맞닿은 촉감으로 소생하는 기운 앞에’서 다시금‘너끈히 상량 고목도 미쁜 눈물 흘’리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삶의 진정성이 잘 우러러나는 시편이다.
홀로만의 내적 성찰은 다시 길을 열고 나아가는데 넉넉한 추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1.4. 생명성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미물이라는 말을 함부로 써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와 개의 생명의 경중을 함부로 말할 수 없노라고 고려 시대 시인 이규보가‘蝨犬說’을 통해 일찍이 말한 바 있다.
울 오매 뼈가 다 녹은 청도 장날 난전에서// 목이 타는 나무처럼 흙비 흠뻑 맞다가/ 설움을 붉게 우려낸 장국밥을 먹는다// 5원짜리 부추 몇 단 3원에도 팔지 못하고/ 윤사월 뙤약볕에 부추보다 늘 쳐져도/ 하교 길 기다렸다가 둘이서 함께 먹던……// 내 미처 그때는 셈하지 못하였지만/ 한 그릇에 부추가 열 단, 당신은 차마 못 먹고/ 때늦은 점심을 핑계로 울며 먹던 그 장국밥
-민병도, 「장국밥」전문
「장국밥」은 진한 향수를 자아내는 시편이다. 물론 오늘날 젊은이들은 헤아리지 못할 정경이지만, 한 세대 전의 우리 어머니들은 각자 처한 환경은 다를지라도 이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 시의 들머리부터 마음을 짠하게 한다. ‘울 오매 뼈가 다 녹은 청도 장날 난전’이다. 뼈가 다 녹도록 궁핍한 삶, 신산의 생이었던 것이다. 그런 날‘목이 타는 나무처럼 흙비 흠뻑 맞다가/ 설움을 붉게 우려낸 장국밥을 먹’었던 것이다. ‘설움을 붉게 우려낸 장국밥’은 눈물 없이 먹을 수 없었으리라. ‘5원짜리 부추 몇 단 3원에도 팔지 못하고/ 윤사월 뙤약볕에 부추보다 늘 쳐져도/ 하교 길 기다렸다가 둘이서 함께 먹던’그 장국밥에서 피어오르던 김이 지금도 눈에 선연한 느낌이다. 그리고는‘내 미처 그때는 셈하지 못하였지만/ 한 그릇에 부추가 열 단, 당신은 차마 못 먹’은 것을 뚜렷이 떠올린다.
‘때늦은 점심을 핑계로 울며 먹던 그 장국밥’의 시절은 분명히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이 혼돈의 시대에 또 어느 후미진 삶의 한 현장에서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돌보다 더 단단한 깊음을 곧장 뚫고 한 차례 굴절도 없이 먼 우주 가로질러 사람들 가슴 가슴에 와 닿는 빛이 있다// 눈썹 밑 두 눈으론 감지할 수 없는 빛, 바위나 흙벽으로도 가로막지 못하는 빛, 마음눈 밝은 자들이 무릎 꿇고 받는 빛// 백에 아흔아홉이 감지조차 못 해도 햇빛과 달빛이 아닌, 별빛은 더욱 아닌, 잘 부신 질그릇마다 찰랑찰랑 담기는 빛// 자그마치 3조 광년 천억 은하 건너와서 굳이 잠긴 빗장을 따 마음 문 열어젖히고 미망의 어둔 골짝들 비추는 빛이 있다
-조동화, 「빛」전문
「빛」은 이채로운 작품이다. 스케일이 그야말로 우주적이다. 생명의 근원을 추적하고 탐구하고 있다. ‘돌보다 더 단단한 깊음을 곧장 뚫고 한 차례 굴절도 없이 먼 우주 가로질러 사람들 가슴 가슴에 와 닿는 빛’이 있음을 진술한다. 무엇을 말하고자 함일까. 그 빛은‘ 눈썹 밑 두 눈으론 감지할 수 없는 빛, 바위나 흙벽으로도 가로막지 못하는 빛’이어서‘ 마음눈 밝은 자들이 무릎 꿇고 받는 빛’이라는 것이다. 즉 영성이 살아 있고, 겸손한 자가 받을 수 있는 은총과도 같은 것이다. ‘백에 아흔아홉이 감지조차 못 해도 햇빛과 달빛이 아닌, 별빛은 더욱 아닌’그 빛은‘잘 부신 질그릇마다 찰랑찰랑 담기는 빛’이라고 한다. 그것은‘자그마치 3조 광년 천억 은하 건너와서 굳이 잠긴 빗장을 따 마음 문 열어젖히고 미망의 어둔 골짝들 비추는 빛’이다.
「빛」은 이처럼 생명의 연원을 궁구하고 있고, 눈물로 사모하는 이에게 내려오는 빛임을 힘주어 노래한다. 각 수마다 숨 가쁘게 읽히도록 한 줄로 표기한 점이 흡사 빛이 쏟아져 내리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진다.
가끔, 소는 목을 돌려/ 제 꼬리에 입 맞춘다// 꼬리 또한 마침맞게/ 입을 슬쩍 쓸어준다// 너 있어/ 내가 산다며/ 서로에게 경배하듯
-신필영, 「소」전문
평소 소와 가까이 하고 사는 이들에게 이러한 장면은 일상이다. 그러기에 그냥 지나치고 말뿐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는 법이다. 일반인들은 생태적으로 그런 것을 두고 그렇게 의미 있게 생각하지 않지만 시인의 날카로운 눈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소의 입과 꼬리와의 만남은 물론 소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끔, 소는 목을 돌려/ 제 꼬리에 입’을 맞추고, ‘꼬리 또한 마침맞게/ 입을 슬쩍 쓸어’주는 것은 참으로 절묘한 상응이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시어는‘마침맞게’라는 말이다. 이 시편의 핵심어다. 더도 덜도 말고‘마침맞게’꼬리가 입을 쓸어줌으로써 서로에게의 경배는 완성된다.
이렇듯 단시조「소」는 너와 나 사이의 상생관계를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시조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그렇다. 삶은 이런 것이구나!’하고 다시 한 번 자신의 삶의 방향을 가다듬게 만든다.
턱턱 갈라터진 소나무 껍질 같은/ 옆집 할아버지 온몸에 저승꽃이 폈다/ 그 누가 뿌린 씨앗인가 비로소 만개했다// 내 때수건이 팔순의 이 꽃잎들을 어루만지다/ 굽은 등 능선에 오면 육신은 서정소설/ 단청을 다 벗겨버린 비바람이 묻어난다// 이제 자네 등도 한번 내 봐 하실 때는/ 썩 친하진 않아도 그 쩌릿한 한 마디에/ 불현듯 몸과 몸 사이 환한 등이 켜진다
-채천수, 「목욕탕에서」전문
「목욕탕에서」는‘턱턱 갈라터진 소나무 껍질 같은/ 옆집 할아버지 온몸에 저승꽃이 폈다’고 목욕탕에서 우연히 마주친 장면을 제시한다. 그것을 두고 ‘그 누가 뿌린 씨앗인가 비로소 만개했다’라고 살핀다. 그리고 ‘내 때수건이 팔순의 이 꽃잎들을 어루만지다’가 마침내‘굽은 등 능선에 오면 육신은 서정소설’이라는 빼어난 비유를 통해 팔십 평생을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에 뜨거운 의미 부여를 한다. 그 정황은 시의 화자의 적실한 표현대로‘단청을 다 벗겨버린 비바람이 묻어’날만한 몸이다. ‘저승꽃’에서‘단청’을 떠올린 것은 화자의 기지의 산물이다. 비유의 묘를 잘 체득한 시품이다. 다음으로 할아버지가 젊은이의 등을 찾는다. ‘썩 친하진 않아도 그 쩌릿한 한 마디’로 말미암아‘불현듯 몸과 몸 사이 환한 등이 켜’지는 이채로운 경험을 한다.
「목욕탕에서」는 비근한 소재에서 인생의 참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나이 쉰다섯에 과수가 된 하동댁이 남편을 산에 묻고 땅을 치며 돌아오니 여든 둘 시어머니가 문에 섰다 하시는 말
-이종문, 「밥도」전문
「밥도」는 기가 막히는 시편이다. ‘나이 쉰다섯’이면 요즘은 아직 젊다. 그런데 그 하동댁이 어느 날‘과수’가 된 것이다. ‘남편을 산에 묻고 땅을 치며 돌아’왔는데, 문 앞에 서 있던‘여든 둘 시어머니’가‘하시는 말’이 실로 기가 막히게 한다. 물론 온전한 정신이 아니므로 얼마든지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며느리로서는 결코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남편을 땅에 묻고 땅을 치며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억장이 무너지는 말을 들었으니, 슬픔은 갑절로 더하였을 것이다. ‘밥도’라는 경상도 사투리 말이 이 때는 사람의 심장을 도려낼 듯 했을 범하다.
시의 화자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한 편의 단시조로 순식간에 꿰었다.
욕심도 토해내고/ 꿈마다 사뤄 가며// 끝없이/ 피워 물더니/ 이렇게 끝내다니// 저문 삶/ 거기서 거긴데/ 사그라진/ 점/ 하나
-신후식, 「문상」전문
「문상」에서 말할 수 없는 허무와 슬픔을 느낀다. ‘욕심도 토해내고/ 꿈마다 사뤄 가며’살아온 세월이었다. 그리고 ‘끝없이/ 피워 물’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끝내다니’라고 시의 화자는 홀로 탄식한다. 삶은 저물게 되면 ‘거기서 거기’인데도 ‘사그라진/ 점/
하나’를 못내 떨치지 못한다. 생로병사라는 자연의 이치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생이다. 그렇지만 그로 말미암아 더욱 뜨겁게 쟁투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스스로를 달래며/ 어둠과 몸을 섞는 쥐똥나무 사이로/ 하나 둘 도리질하며 불 밝히는 가로등
-이솔희, 「밤길」전문
칼퇴근 정규직이 총총히 떠난 자리/ 후줄근히 버리고 간 종이컵만 같은 것이/ 반쯤은 구겨진 채로 중천에 떠 있다
-윤채영, 「낮달」중에서
「밤길」은 귀갓길에서 본 정경이다. 하루 일을 마감하고 돌아오는 길에‘좋은 게 좋은 것이라 스스로를 달래’다가 보니 ‘어둠과 몸을 섞는 쥐똥나무 사이로/ 하나 둘 도리질하며 불 밝히는 가로등’이 화자의 눈길을 끈다. 이 때 ‘싫다거나 아니라는 뜻으로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행동’이 도리질인데 무언가 삶에 대해 불만스러운 것이 표출된 정황이다. 복잡 미묘한 인생을 떠올리게 한다.
흔한 시적 소재인「낮달」은‘칼퇴근 정규직이 총총히 떠난 자리/에서 달이 떠 있는데 그것은 흡사‘후줄근히 버리고 간 종이컵만 같은 것’이다, 그래서‘반쯤은 구겨진 채로 중천에 떠 있’다고 노래하고 있다.
「밤길」과「낮달」은 주제가 서로 상통한다. 이 시대의 소시민들의 모습이 잘 투영되어 있다.
지붕과 지붕 사이 나무가 자라나고/ 삶을 재단하는 까치집 걸려 있다/ 조용히 허물어지는 기억들의 저 밀착// 한번쯤, 살고 싶은/ 옛날의/ 또 다른 날/ 누군가 이마 위에 한 손을 얹어 놓고/ 조각난 순간순간을 이엉처럼 엮는다
-정화섭, 「술정리 초가」전문
처마 밑 쪼그려 앉은 할머니의 가을 하늘// 잘 손질 된 배춧잎에 하루해가 놀다 가고// 빈집엔// 행인도 없이/ 별빛들만 수런댄다
-김용주, 「가을 정경」전문
두 편 모두 눈에 붙잡힌 정경을 노래하고 있다. ‘지붕과 지붕 사이 나무가 자라나고 삶을 재단하는 까치집 걸려 있‘는데 그것을 두고 화자는 ’조용히 허물어지는/ 기억들의 저 밀착‘이라고 본다. 참신한 대목이다. 그곳은‘한번쯤, 살고 싶은/ 옛날의/ 또 다른 날’에 ‘누군가 이마 위에 한 손을 얹어 놓고/ 조각난 순간순간을 이엉처럼 엮’고 싶은 마음이 들게한다. 「술정리 초가」는 그런 회고적 정취를 감칠 맛나게 그리고 있다.
「가을 정경」은 ‘처마 밑 쪼그려 앉은 할머니의 가을 하늘’이라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그 하늘 아래 ‘잘 손질 된 배춧잎에 하루해가 놀다 가’는데, ‘빈집엔// 행인도 없이// 별빛들만 수런’대고 있다. 삶의 아픔이 곡진하게 내포된 아름다운 단시조다.
새해 아침 양말들이 해맞이를 하고 있네/ 베란다 빨래걸이에 오순도순 걸터앉아/ 동녘의 햇귀를 당기며 언 발을 호호 불며// 다랑논 오르막길에 늘 처진 할아버지와/ 갓 걸음마 앙증맞은 꼬꼬마 손주들도/ 척척척 발을 맞추며 벅찬 꿈을 다지네// 기가 죽은 외짝들도 덥석덥석 새 짝을 맞아/ 색 달라도 도란도란, 엇난 무늬도 끄덕끄덕……/ 짝짝이 저 미쁜 결의, 슬픔마저 부시네
-최화수, 「어떤 해맞이」전문
「어떤 해맞이」는 동화적이고, 실감실정이다. 시의 화자의 눈높이 그리고 삶에 대한 성찰의 깊이에 기인한 것이다. ‘새해 아침 양말들이 해맞이를 하고 있네/ 베란다 빨래걸이에 오순도순 걸터앉아/ 동녘의 햇귀를 당기며 언 발을 호호 불며’라는 첫 수가 정감이 넘친다. 살갑고도 세밀하면서 그지없이 정겨운 표현 때문이다. 이제 장면을 달리하여‘다랑논 오르막길에 늘 처진 할아버지와/ 갓 걸음마 앙증맞은 꼬꼬마 손주들’을 등장시켜서 ‘척척척 발을 맞추며 벅찬 꿈을 다지’게 한다고 노래함으로써 실감실정은 극치에 이른다. ‘기가 죽은 외짝들도 덥석덥석 새 짝을 맞아/ 색 달라도 도란도란, 엇난 무늬도 끄덕끄덕’이라면서 소외되지 않게 하는 구도를 보여준다. 그래서 ‘짝짝이 저 미쁜 결의, 슬픔마저 부시네’라고 끝으로 노래할만 하지 않는가.
2.1.5. 역사성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몇 작품을 보겠다. 역사라는 것은 인류 사회의 발전과 관련된 의미 있는 과거 사실들에 대한 인식, 어떤 일이나 현상, 사물이 진행되거나 존재해 온 과정이나 추이, 자연 현상이 변하여 온 자취 등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시대의 흐름을 직시하고 그것을 시로 용해한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역사성을 말한다.
무슨 업연이기/ 먼 남의 골육전을// 생때같은 목숨값에/ 아아 던져진 삼불 군표여// 그래도 조국의 하늘이 고와/ 그 못 감고 갔을 눈
-이호우, 「삼불야」전문
이호우의 시조 세계를 ‘살구꽃 서정과 깃발의 힘’이라고 다른 지면에서 오래 전 규정한 적이 있다. 이호우 만큼 치열하게 서정적인 세계와 시대적인 상황 인식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시조로 쓴 이가 있을까. 그 양 날개에 균형과 조화를 부여하여 때로는 시대의 불행을 시화하고, 삶의 근원적인 향수를 자극하는 농밀한 서정의 세계를 직조하여 작품의 현재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오래도록 전범으로 삼을 시조를 남긴 것이다.
「삼불야」는 1966년 1월 12일 중앙일보 월남 현지 보도로 쓴 작품이다. 전투에 뛰어들어 한 병사가 사흘 만에 전사하자 부대 재무관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병사의 유해 위에 3불을 올려놓고 눈물을 뿌렸다고 한다. 사흘 복무한 것에 대한 목숨 값이었다. 그것을 알게 된 시인이 이렇듯 천추에 남을 시조를 썼다. 역사와 현실에 대한 철두철미한 인식의 산물이다.
들짐승/ 울부짖음도/ 달빛으로 쏟아진다// 사람의/ 발자욱은/ 찍힌 적 없는 벌판// 바람도 아득한 밤도/ 한데 엉켜 뒹군다
-노중석, 「광야」전문
「광야」는 상징성이 강한 작품이다. 광야라는 곳은‘들짐승/ 울부짖음도/ 달빛으로 쏟아’지는 곳이다. ‘달빛과 들짐승 울부짖음’의 결합은 몹시 이질적이다. 비동일성의 시학의 한 실례가 되겠다. 그곳은 ‘사람의/ 발자욱은/ 찍힌 적 없는 벌판’이다. 사람의 자취가 닿지 않는 곳이라면 인간의 역사가 아직 범접하지 못한 곳이다. 그리하여 그곳에는‘바람도/ 아득한 밤도/ 한데 엉켜 뒹’구는 태고와 비슷한 정적이 흐르고 있다. 역사 이전의 원시적 광야를 제시함으로써 광야의 순결성이 침탈되어서는 아니 됨을 힘주어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광야는 시적 화자가‘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하는 내밀한 자존의 한 영역’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물음표는 사람의 귀, 귀를 많이 닮아 있다/ 물어 놓고 들으려면 귀 있어야 된다는 듯/ 보이지 않는 쪽으로/ 그 언제나 열려 있다// 물음표는 낚시 바늘, 낚시 바늘 그것 같다/ 세상 바다 떠다니는 수도 없는 의문들/ 그 대답 물고 오려고/ 갈고리가 된 것이다// 물음표는 그렇다 문명의 근원이다/ 낱낱의 물음표를 하나하나 풀어낸/ 인간의 역사는 본디/ 물음표의 내력이다
-문무학,「문장부호 시로 읽기1」전문
「문장부호 시로 읽기1」은 이 시인이 한동안 집중적으로 작업한 일련의 시편들의 결집체인『낱말』속의 한 편이다. 집요하리만치 언어의 내포와 상징성을 탐구 ․ 천착하여 괄목할 만한 미학적 성과를 보인 점은 연구 대상이다.
먼저‘물음표는 사람의 귀, 귀를 많이 닮아 있다’고 진술한다. ‘물어 놓고 들으려면 귀 있어야 된다는 듯’이 ‘보이지 않는 쪽으로/ 그 언제나 열려 있’는 귀 혹은 물음표를 직시한다. 그것은 또한 ‘낚시 바늘’로 보인다. ‘세상 바다 떠다니는 수도 없는 의문들’에 대한‘대답 물고 오려고/ 갈고리가 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비약하기를‘물음표는 그렇다 문명의 근원’이라고 단정한다. ‘낱낱의 물음표를 하나하나 풀어낸/ 인간의 역사는 본디/ 물음표의 내력이’라는 것이다. ‘문장부호 시로 읽기’가 종국에는 인간의 역사에까지 이른다. 의미의 확산이다. 이러한 메타적 접근 방식은 새롭다.
시각이 열려서 전복적인 발상에 이른다면 시조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문장부호 시로 읽기1」이 잘 보여주고 있다.
국보급 목조건물이 화재로 소실됐다/ 누군가 안타까움에 의문을 제기했다/ "도대체, 6백 년이나 묵은 집도 불타는가?”/ 마침 그 자리에 나온 전문가가 말했다/ "물론이다, 다만 좀 더 오래 탈 뿐이다/ 앞으로 6백년은 좋이 연기가 날 것이다”/ 선조의 얼이 배인 자랑스러운 문화재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후손들의 가슴에선/ 정말로 매캐한 연기가 오래오래 솟아났다
-박방희,「시옷 씨 이야기ㆍ13」전문
「시옷 씨 이야기ㆍ13」은 특이한 소재다. 부제로‘오래된 집은 오래 탄다’에서 보듯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국보급 목조건물이 화재로 소실’되어서 ‘누군가 안타까움에 의문을 제기했’는데 "도대체, 6백 년이나 묵은 집도 불타는가?"라는 의구심이었다. ‘마침 그 자리에 나온 전문가가 말했’는데 "물론이다, 다만 좀 더 오래 탈 뿐이다‘라면서 넌지시 비아냥대듯이“앞으로 6백년은 좋이 연기가 날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선조의 얼이 배인 자랑스러운 문화재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후손들의 가슴’속에서 비롯된‘정말로 매캐한 연기가 오래오래 솟아’나고 있음을 시의 화자는 힘주어 말하면서 절대로 불타지 않아야 할 국보가 의외의 사고로 말미암아 전소된 아픔을 세 수의 시조로 승화시켜 보여주고 있다.
예사로운 작품이 아니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 남다르다.
Ⅲ. 에필로그
시조는 정형시인 까닭에 자칫하면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갇혀 있는 형식이 아니라 갖춘 시 형식’이라는 어느 시인의 견해처럼 시인에 따라 구속이라는 굴레에 매이지 않고 얼마든지 새로운 시조를 쓸 수 있다. 그러므로 시각을 달리 가지고, 바둑의 포석처럼 단시조 안에서 여러 가지 다채로운 전개 유형을 원용하여 독창적인 시조 세계를 축조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시조만큼 변주가 가능한 정형시가 어디 있을까. 변용과 변주를 적극 모색하고 활용하여 그 어떠한 주제의 노래도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시조는 시의 한 갈래로서 그 효용성과 가치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폭넓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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