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에 도전한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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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23일 / 삼일예배 / 사무엘상 17장 1-52절
▶ 가나안 전쟁의 이중성
1.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나타날 역사 끝의 사건을 향한 발전
2. 하나님의 백성 지상 삶에서의 영적인 삶의 교훈
이 블레셋은 믿는 이들에게는 내 몸에 남아 있는 죄성과 비슷합니다. 평생 정복 못하는, 평생 뽑지 못하는 죄성하고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해지면 반드시 고개를 들고 일어나 죄를 짓게 하기 위하여 쳐들어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강해지면 가만히 있고 종살이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윗이 상대한 이 골리앗도 우리가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에는 매일 상대하는 마귀요, 우리 몸을 통해서 나타나는 마귀의 유혹이요, 내 마음에 남아있는 육신의 정욕이요, 이런 것과 연관을 시킬 수 있습니다.
가드사람 골리앗은 이렇습니다. 키가 2미터 93cm 갑옷 무게가 57kg, 창날의 무개가 6.8kg 그런데 다윗은 외형을 볼 때 너무 대조적입니다. 나이도 어리고, 키가 작고, 얼굴이 붉고, 용모가 아름답습니다.
외모는 초라한데 하나님이 아름답게 쓰시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모세가 바로를 대결할 때에 모세는 늙은 80세였으며 바로는 세상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었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골리앗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예수님과 헤롯왕 그리고 바울과 로마의 황제도 비교가 됩니다. 모세, 다윗, 바울은 모두 달걀로 바위를 치기였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런 방법을 사용하실까요? / 외적인 배경이나 가진 것이 특출한 사람일수록 그 만큼 하나님을 덜 의지합니다. 그렇지만 전혀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은, 90%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보다는 100%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100%를 원합니다. 이 사람들이 다윗이요, 요셉이요, 모세입니다. 90%만 해도 되지 않느냐? 고 반문하겠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100%입니다. 내 것을 100% 제거해 버리고 남는 것이 0%일 때에 그를 들어 크게 사용하십니다.
▶ 지금도 변함없는 방법입니다. 나에게 있는 잘난 것, 과거의 경험, 많은 소유 등은 백해무익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다윗과 같은 위치에 있으려면 100%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 100%이기 때문에 100%를 원하십니다. 내가 믿는 구석이 있으면 믿는 구석이 있는 만큼 덜 기도할 것이요 내가 믿는 구석이 없는 만큼 하나님을 붙드는 강도가 다를 것입니다.
▣ 다윗은 옷을 입는 것이 좋고 불편해도 칼을 차고 가는 것이 좋고 머리에는 그래도 투구를 써야지 살아남을 것 같은데 사람들 보기에 최소한의 필요조건까지도 제거해 버렸습니다. 만약에 이렇게 해가지고 무장을 해서 나갔다고 할 때에는 ‘다윗이 갑옷을 입고 나갔기에 저 정도로 살아남았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근거가 그 만큼 적어진다는 말입니다.
갑옷도 벗기도 놋 투구도 벗기고 다 벗겼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실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하시지만 한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가장 작은 것이지만 가장 정성스럽게 준비되는 것 하나를 요구하십니다. 아벨의 예물이 그러했습니다.
다윗의 물맷돌은 다윗이 10년이 넘도록 매일 매일 자기 손에서 숙달했던 가장 중요한 무기였습니다. 작은 돌맹이 하나입니다. 양을 치면서 늘 손에서 애용했습니다. 다윗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지만 사실 골리앗의 창과 검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윗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쓰시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매 돌을 줍는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쓰임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평소에 갈고 닦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일이 중요합니다. 평소에 갈고 닦으면 언젠가는 주님이 쓰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쓰임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평소에 잘해야 합니다. 신앙의 기본이 될 것입니다.
또한 나에게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그것을 내 놓게 하심으로 그것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만일 오늘 우리 앞에 이런 큰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이 지금 당장 나에게 요구하실 것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지금 손에 들려 있는 그것을 하나님은 사용하시기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소년으로부터 오병이어를 받으신 것입니다. 진흙과 같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일군이 된다는 것은 영광중에 영광일 것입니다.
▶ 비록 은 그릇이 아닐지라도 깨끗하게 예비하여 놓은 그릇이라면 그것이 흙으로 만든 것이나, 나무로 만든 것이라 할지라도 상관없이 주인의 손에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난 보잘 것이 없고 내놓을만한 것이 없어도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임을 받는다고 할 때 얼마나 그것이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이것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너무 화려한 것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다윗이 주고받은 말을 들 그의 위대한 신앙고백이 적어도 4가지 이상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①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칼과 창에 있지 않다. ② 전쟁은 무기 가지고 하는 전쟁이 아니다. 그 말이 뒤에 나옵니다. ②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다윗의 전쟁론입니다.
♣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를 상대한다.
♣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신다.
♣ 하나님께서 너를 반드시 내 손에 붙인다.
♣ 전쟁의 성패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이 영적인 생활에 적용한다면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것을 상대한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다. 반드시 나는 이긴다.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 빈틈없이 중무장한 골리앗이 왜 죽었습니까? 사람 보기에는 완벽한 무장을 했지만 하나님 보기에는 빈 구멍투성이고, 헛점이 많은 인간일 뿐입니다. 이런 사람이 큰 소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골리앗의 개념과 동일시됨으로 골리앗을 물리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벌벌 떤 것입니다. 믿음 없는 눈으로 신자가 세상을 볼 때 세상은 천하무적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싸우는 상대 세력인 사탄은 아무리 보아도 우리의 맞상대는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다윗은 이 성령의 능력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능력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비의 양떼를 칠 때부터 그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삶에 적용하는 생활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다윗의 용기있는 태도는 충동적으로 일어나거나 즉흥적으로 일어난 흥분이 아닙니다. 지난날 주님과 함께 살아오면서 평범하게 반복되는 목동의 일을 하면서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대처한 수많은 체험들을 통해서 얻은 확신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천하무적으로 보았던 골리앗 앞에 자신 있게 섰던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갈 때 그가 가졌던 긍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26절 / 이 할례없는 불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할례와 무할례에 무슨 차이가 있나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생명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요 인생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 다윗은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45절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갔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아닌 만군의 하나님, 군인처럼 싸우시는 무장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갔습니다.
매끄러운 물맷돌 5개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전쟁에 나갈 때 갖추어야할 것을 다 차리고 나간 것이 아니라 양을 칠 때 쓰던 물건 있는 그대로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갔기에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