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의 신앙대상은 초창기에는 사리舍利를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목탑으로 전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초기불교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탑은 부처님의 생전 유물과 더불어 사리를 보관한 무덤으로, 숭배의 대상이었다. 인도어로 스투파stupa(영어로 파고다pagoda). 석가의 유골을 넣은 탑을 말한다. 우상이 아닌 절대자가 남긴 유물을 통해 심리적 위안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앙대상이 점차 탑 중심에서 지금의 불상 중심으로 옮겨지면서 우상 형태를 띤다. 특히 탑 중심의 초기불교는 절대적 숭배대상인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한 보궁寶宮을 잇달아 개창한다. 이른바 적멸보궁이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소장처에 예배를 올리는 장소를 말한다. 원래 붓다가 <화엄경>을 설한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의 적멸도량을 뜻하는 전각이다. 이곳에 불사리를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계시면서 적멸의 낙을 누리는 곳을 상징한다. 따라서 진신인 사리를 모신 불전에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불사리가 곧 법신불로서, 석가모니 진신이 상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신 적멸보궁 바깥쪽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戒壇을 만들기도 한다.
한국불교에 불사리를 통한 보궁신앙을 확립한 인물이 통일 신라 직전 자장慈藏이다. 자장은 중국, 당시 당나라 유학을 통해 가져온 진신사리를 한국의 오대 사찰에 봉안한 것으로 전한다. 이른바 현재까지 전하는 5대 적멸보궁이다. 하지만 적멸보궁의 진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고, 규명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 이유가 몇 가지 된다. 우선, 적멸보궁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와 종교적 신앙영역으로 나눌 수 있지만 실제로는 신앙의 대상으로만 강조되는 경향이 매우 크다. 종교적 신앙대상은 학문적 연구로 접근하기에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논리적 설명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적멸보궁에 대한 접근은 종교의 가장 큰 특성인 무조건 믿어야 할 대상으로만 설명할 뿐이다.
또한 자장이란 인물에 대한 기록의 정확성 여부다. 옛 문헌마다 자장에 대한 생몰연도, 유학시기, 불사리 봉안장소 등에 대한 기록이 모두 다르다. 어느 문헌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따라서 적멸보궁에 대한 기록조차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전하는 적멸보궁에 대한 기록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한국 최초의 역사서 <삼국사기>권5 신라본기 권5에 ‘자장법사가 불법을 배우러 (636년) 당나라에 들어갔다’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에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감응하고, 종남산 운제사에서 3년 동안 수도한 뒤 643년(선덕왕 12) 대장경과 번幡·당幢 등을 가지고 귀국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권3 탑상 제4조에는 ‘자장은 오대산에서 받은 사리 백립百粒을 황룡사 9층 목탑의 기둥 속과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 그리고 태화사 탑에 나누어 봉안했다’고 나온다.
<삼국유사>권4 의해 자장정률조에는 자장의 자취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만년에 명주溟州 수다사水多寺를 창건하고 살았다. 꿈에 이상한 스님이 “태백산 갈반지葛蟠地에서 만나자”고 했다. 자장은 태백산에서 큰 구렁이가 나무 아래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이곳이 갈반지”라 말하고, 정암사를 창건한 뒤 문수대성이 내려올 것을 기다렸다.’
이 외에 <오대산사적기>나 개별 사찰의 사적기를 통해 적멸보궁에 대한 기록을 엿볼 수 있다. 이를 근거로 한국의 대표적인 5대 적멸보궁을 꼽는다. ▲영축산 통도사 적멸보궁 ▲오대산 상원사 중대 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 적멸보궁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른바 한국의 5대 적멸보궁이다. 음력 사월 초파일이나 불교 행사가 있을 때는 많은 불제자들이 찾아 기도한다. 이 적멸보궁들은 또한 영험한 기도처로 알려져 일반인들까지 많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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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