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바위 전설이 전하는 신왕리
조선시대 때 김산군 남천면(南川面)에 속했던 이 마을은 1914년 이웃한 신계, 송정과 합해 김천군 조마면으로 개편되면서 신계(新溪)의 신(新)자와 수왕(水旺)의 왕(旺)자를 써서 신왕동(新旺洞)이라 했고 1962년 박리, 수왕, 용암 세 마을을 신왕1동으로 분동했다.
성주방면 997번 지방도변에 자리한 박리마을은 현재는 진주강씨 집성촌이지만 원래 김해김씨 일가들이 정착해 살면서 일대 들판이 넓고 살기 좋아 넓을박(博)자를 써서 박리(博里)라고 했다고 한다.
박리 안쪽마을인 수왕은 물왕실로도 불리는데 조선 순조 때 의성김씨 김처율(金處律)이 성주 벽진에서 이주해 살면서 물이 흔해야 후손들이 번창한다는 염원을 담아 물수(水)자에 성할왕(旺)자를 써서 수왕(水旺)이라 했다.
박리로부터 하천을 넘어 매봉산 아래에 자리 잡은 용암마을은 하빈이씨 집성촌으로 마을 앞 대방천에 용의 머리를 닮은 용바위로 불리는 큰 바위가 있어 용용(龍)자에 바위암(岩)자를 써서 용암(龍岩), 용바우라 했다.
풍수지리로 볼 때 용암마을 뒷산이 용의 몸통이며 이 바위가 용의 머리에 해당해 신성시했는데 이 같은 믿음은 현재도 지켜져 수년 전 하천변에 도로포장을 하면서 용의 몸과 머리를 단절시키면 안 된다고 목에 해당하는 지점을 포장하지 않고 남겨두기까지 했다.
1962년 신왕2동으로 분동된 송정, 신계 두 마을은 신왕2동에 속한다.
감천면 용호리와 조마면의 경계에 자리 잡은 신계마을은 1600년대 말 밀양박씨가 이주해 마을을 형성한 것으로 전해지며 원래 부유한 양반들이 주로 살았는데 풍수적으로 볼 때 마을의 기운이 너무 강해 인근에 살던 하층민인 백정들을 의도적으로 살게 해 지기(地氣)를 눌렀다고 전한다.
이후 1936년 병자년 수해 때 마을 앞 대방천이 범람해 마을이 매몰된 후 물길이 변해 하천이 새로 생겼다고 새신(新)자에 하천계(溪)자를 써서 신계(新溪) 또는 하신계(下新溪)라 했다.
신계 안쪽의 송정마을은 칠곡에서 진주강씨 강상식(姜尙植)이 입향한 이래 대대로 진주강씨 집성촌을 이뤘는데 마을입구에 큰 소나무가 있어 소나무송(松)자에 정자정(亭)자를 써서 송정(松亭)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