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가보았던 추억어린 이모님 동네 - 성주 가천 법전리(아전촌 마을)(2022. 10. 2)
아전촌(蛾田村)
가야산의 정북 방향인 아박산(蛾簿山,693m) 동편 아래 산자락으로 접어 감고 자리한 경치가 수려한 협곡 산촌마을이다. 아전촌(蛾田村)의 지명은 아박산(峨簿山:原音 나박산)의 "박”을 “밭(田)”으로 빌려 기록한 것이며, 우리말 고어에는 나박산, 나브실(벽진면 운정리)에서 나브(廣, 橫) 즉 넓고 빗(큰, 大)의 뜻이고 따라서 나박산(漢字 蛾簿은 이미 없음)은 큰산(大山)을 뜻한다. 특히 나박산정에 오르면 시계가 무한이 넓고 지리에 밝은 측면에서는 법림산(法林山)의 명기(名氣)가 들어나 나박산이라 할만한 것이다.(성주마을지 참조)
아전(蛾田)이라는 명칭은 개척 당시 산의 형상이 마치 나비가 나는 모양과 같다는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가천면 총 가구수와 인구는 1,254가구에 1,978명이다. (가천면 홈페이지 참조 )
또한 이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비탈진 마을이며, 남쪽 가야산과 형제봉의 정동맥인 법림산과 아박산 사이에 위치해 있어 동쪽으로는 아전촌 동네 가운데로 흘러내리는 개울물이 마수리를 거쳐 무흘계곡을 이루는 독특한 자연환경으로 이 마을은 오래 전부터 이 일대가 명당자리로 소문이 나 있다. 다만 경사가 심하고 교통이 불편한 것이 다소 흠이지만 또한 그것이 장점으로 통할 수도 있다.
김녕김씨(金寧金氏) 10가구 정도
아전촌 마을은 김녕 출신의 선조때 김명중이 충북 영동에서 입향했고, 후손 신평 김형오(1867)는 덕의와 산수지리에 능했다. 그때 김명중(金命仲)과 신상복(辛尙福) 두 사람에 의해 개척되었다고 전해지며 응달과 양달로 나뉜다.
(가천면 홈페이지 참조 )
가천면 명칭유래
고려시대에는 이곳에 큰 우물이 있었으므로 이물방(爾物防) 또는 나물방(奈物防)이라 부르다가 조선 후기에 가천(伽泉)으로 개칭하였으며 1895년에는 가천면(伽泉面)이라 칭하게 됨.
참고 : 奈(nai)중국어 ①참다 ②어찌 ③견디다 ④ 어떻게
자연환경
伽泉面(가천면)은 성주군의 서부에 위치하여 서남단의 가야산(伽倻山, 1,433m)을 경계로 경상남도 합천군과 거창군을 접하고 서편으로 김천시 증산면, 북은 금수면, 동쪽은 대가면, 남은 수륜면과 각각 인접한다. 동부의 남류(南流)하는 대가천변을 제외한 대부분이 산악지로 되어 있다. 교통은 면소재지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성주, 남쪽으로는 고령으로 통하는 국도와 북쪽으로는 성주댐을 거쳐 김천과 증산면(甑山面)으로 트인 도로와 연결된다. 가천면은 산악과 계곡이 수려하여 관광지로 개발할 소지를 갖고 있어 미래지향적 천부의 경승지이다. (가천면 홈페이지 참조 )
이 마을을 방문하게 된 사연
게시자 본인의 부모님께서는 12km(차로 돌아오면 17km 정도) 떨어진 대가면 금산리에서 본인을 포함한 가족들과 50여 년 동안 오손도손 재미있게 사신 후 경북 칠곡과 대구에서 한동안 지내시다가 연로하신 관계로 서울 형님댁에서 여생을 보내셨다.
본인 또한 대구에서 줄곧 생활하면서도 이곳을 항상 그리워하였다. 서울 부모님을 뵈올 때마다 이모님도 안계시고 이종사촌 누님만 혼자 살고 있는 이 동네였지만 항상 그리워하고 친척의 안부를 묻곤 하셨다. 그런데 금년 2022년 8월, 형님께서도 별세 하시기 전 투병중에도 가장 가보고싶은 곳이 이곳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형님 사진을 가지고 이곳에 들려 고(告)하고 친척도 만나 뵙고는 다시 칠곡 산소에 잠들어계시는 부모님과 형님에게 가장 즐겨 드셨던 음식을 올리면서 고(告)할 생각이다.
"부모님과 형님, 가장 보고싶어 하셨던 이곳을 생전에 제가 직접 모셔오지 못하고 이제서야 찾게 되었습니다. 못난 저를 크게 질책하소서...... 엎드린 저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달게 받을 뿐입니다......."
(관련 사진)
다시 남기고 싶은 한 마디
아전촌 이모댁은 이모부가 일찍 별세하여 항상 우리집과 가까웠고 부모님은 물론, 형님도 부친 따라 가야산을 오르내리면서 어릴 적 큰 꿈을 꾸었다. 본인도 어릴 적 이곳에서 이모님의 귀여움을 받으면서 봄날 마을 사이에 흘러내리는 맑은 개울물 소리에 밤잠을 설치고 이른 새벽 감꽃을 줍던 추억이 그립다. 형님, 누님, 본인도 이곳이 가장 보고싶어 했던 곳이다. 그래서 형님께서 별세하신 후 50여 일 지나 2022. 10. 2, 첩첩산골 아름다운 이곳에 형님 사진을 들고 달려왔다.
형님께서는 젊은 날 힘든 여건 속에서도 이모부님께 경운기도 사 드리고 처음으로 마을에 전기 설비도 주선했을 만큼 그렇게 보고 싶어 하신 아전촌 마을에 이제 홀로 계시는 이종사촌 누님을 만났다.......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