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서하고 축복하라(1) ○○
어느 나라의 한 종이 그 나라의 임금에게 빚을 졌는데 빚진 금액이 일만 달란트이다.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이며,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 1 데나리온이므로 일만 달란트란 금액은 6,000만 데나리온이다.
한 사람이 일년에 300일을 일한다고 가정할 때, 이 종은 20만 년 동안 일해서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모아서 갚아야 할 엄청난 빚을 그 나라의 임금에게 진 것이다. 그 당시의 제도로는 빚을 갚지 못하면 자신의 전 재산은 물론 자신과 가족을 노예로 팔아서 빚을 갚아야 했다.
당시 특등 노예의 값이 1달란트라고 하며 보통은 십분지 일 달란트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종이 자기의 빚 일만 달란트를 갚기 위해 전 재산은 물론 자신과 가족을 노예로 팔아서 마련할 수 있는 돈이 기껏해야 1-2달란트에 불과했다. 당시 유대 지방의 일년 세금 수입 800달란트인 것과 비교해 볼 때 일만 달란트는 한 개인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의 빚이다.
그런데 일만 달란트를 빚진 종이 바로 우리들이고 빚을 받을 임금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 죄 값이 상징적으로 일만 달란트, 6,000만 데나리온이라는 뜻이다.
-죄와 빚
성경에서 죄는 종종 빚에 비유된다. 우리들이 잘 아는 주기도문의 "우리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의 원문은 "우리들의 빚을 탕감하여 주시옵고"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요19:30)라고 하신 말씀은 '빚을 다 갚았다'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일만 달란트의 빚을 갚지 못해 전 재산을 다 팔고 또한 자신을 노예로 팔아야 하는 이 종이 너무나 불쌍했다.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이 종의 모든 빚을 공짜로 탕감해 주셨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 값을 탕감해주신 이유는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니다. 우리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도 아니고 무엇을 잘 하기 때문도 아니다. 우리가 일만 달란트나 되는 죄 값을 갚지 못해 유황불이 훨훨 타오른 지옥 불 못에 빠져 세세토록 고통을 당하는 것이 너무나 불쌍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빚을 공짜로 탕감해 주신 것이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내 대신에 모든 죄 값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돌아가신 것이다.
- 무자비한 종
문제는 그 이후부터이다. 일만 달란트나 되는 엄청난 빚을 탕감 받은 이 종이 자기에게 빚진 형제에게 어떠한 태도로 대했는가?
일만 달란트, 6,000만 데나리온이나 되는 엄청난 빚을 탕감 받은 종이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자에게 취한 행동이 가관이다.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빚진 동료가 사정하는데도 불구하고 용서하기는커녕 빚을 갚으라고 윽박지르며 멱살을 쥐고 끌고 가서 빚을 갚을 때까지 감옥에 처넣어 버렸다(마 18:27-30).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무자비한 종을 체포하여 감옥에 넣어 옥졸들에게 붙이셨다.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4-35).
'옥졸들에게 붙이셨다'는 말은 옥졸들의 처분에 맡기셨다는 말이다. 인권이 발달한 미국이나 한국의 교도소에서도 때로 간수들은 죄수를 심하게 다룬다. 하물며 인권 의식이 거의 전무한 당시의 옥졸들이 무자비한 종을 얼마나 가혹하게 다루었는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핵심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그렇게 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도 자기에게 죄 지은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크나 큰 고통을 당한다는 말이다.
일만 달란트, 6,000만 데나리온이나 되는 엄청난 빚을 공짜로 탕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00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윽박지르며 용서하지 않는 이 종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입술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고 하면서도 행동은 전혀 다르게 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으로부터 일만 달란트, 6,000만 데니리온이나 되는 빚을 탕감 받았으면서도 나에게 100 데나리온 빚진 나의 남편, 나의 아내, 부모 형제 및 동료의 조그만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여 불화가 생기고 티격태격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누가 나를 괴롭히면 동네방네 다니면서 저 사람이 나를 찔렀다고 소문 낸다. 나의 신세를 망친 사람을 원망하고 평생을 저주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고슴도치같이 서로가 서로를 찌르는 죄인이다. 알게 찌르고 모르게 찌른다. 문제는 내가 남을 찌른 것은 금방 잊어버리지만 남이 나를 찌른 것은 쉽게 잊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앙심을 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복한다.
- 미움의 대가
많은 사람들은 누가 나를 괴롭히고 해코지를 하면 그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대방을 미워하면 할수록 내 자신을 괴롭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증오심이 지나치면 혈압이 오르고 맥박이 뛴다. 오래 되면 화병이 나서 몸져눕기도 한다. 신체적인 병의 70%는 마음에서 오는 병이며 분노에서 오는 병들이 대부분이다. 어느 사람은 '세월이 약이다.
잊어 버리라'고 한다. 그러나 간단한 것은 쉽게 잊어버릴 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심령 깊숙이 박혀있는 증오심은 세월이 간다고 잊혀지지 않는다.
잊혀진 것 같지만 깊숙이 박혀 있다가 짜증나는 일이나 언짢은 일이 생기면 온갖 형태의 추한 몰골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상대방의 사소한 잘못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극도의 자기보호 본능 때문에 정상적인 부부 관계나 인간 관계를 가지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다. 이것들이 바로 형제를 용서하지 못한 무자비한 종이 옥졸들에게 붙여져서 당하는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힘입은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나를 해코지한 형제 자매를 용서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지은 죄값은 아무리 크더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100 데나리온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수님을 대신 희생시키신 값은 6,000만 데나리온이다. 여러분은 어떤 빚을 갚겠는가? 100 데나리온인가, 6,000만 데나리온인가?
○ 용서하고 축복하라
영업직에 종사하는 A 자매. 동료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오는 시기와 견제, 까다롭고 거친 고객으로 인해 일과 후 몸은 파김치가 되고 마음은 아픔과 상처로 울적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용서와 축복'을 체험한 그녀는 이제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가해자를 무조건 용서하고 축복한 후, 먼저 인사를 하고 호의를 베푼다. 자신도 변하고 동료도 변하고 고객도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마음도 편하고 동료와의 관계도 개선되고 실적도 좋아졌다.
매일 긴장과 집중이 요구되는 일터에서 B 형제는 동료와의 알력, 상사와의 부딪침, 업무의 중압감으로 인한 내면의 분노와 스트레스로 하루하루를 지옥 같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용서와 축복'을 실천한 그는 이제 완전히 달라졌다. 가해자라고 생각하면 무조건 용서하고 축복한다. 자신이 변하니 업무의 중압감도 경감되고 동료도 변하고 상사도 어려운 사적 문제를 상의할 정도에 이르렀다.
35년간 남편과 불화와 반목 관계에 있다가 겨우 두 달간의 기도를 통해 화목하게 된 A의 경우를 살펴보자.
A가 결혼한 순간부터 남편은 자기에게 ‘집안의 가장은 남편이다, 여자는 남편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 남편의 말은 법이다’ 라고 윽박지르면서, 아내가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 일언지하에 무시하면서 온갖 욕설을 퍼붓는 사람이었다. 이런 삶이 무려 35년간이나 지속되었다.
그러나 A는 단 두 달의 '용서와 축복'을 통해 남편과 화목하게 되는 극적 반전을 이루었다.
A씨는 먼저, 남편을 용서하고 축복하는 기도를 했다. 용서하고 축복하는 기도를 하는 동안 신기하게도 자신의 얼어 붙은 마음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남편을 위해 용서하고 축복하는 기도를 계속하자 남편에 대한 미움이 가시고 애틋한 사랑이 생기고 남편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그날 밤에 바로 고속 버스를 타고 남편을 만나러 갔다.
남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남편에 대한 미움은 가셨지만 아직도 자기 마음 깊숙한 곳에 분노가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남편을 미워한 죄를 더욱 강하게 회개하고 마음 속 깊이 남아있는 분노조차 심각하게 회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희한한 깨달음이 왔다. 자기가 마음속으로 남편을 수없이 살인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런 깨달음이 오자 남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생겨서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이제 내가 변하고 있다’고 했더니 ‘그래, 우리 집에는 당신만 변하면 된다’고 남편이 대답하더란다. 기가 찼지만 참고 계속 용서하고 축복했다.
특히 남편의 죄와 잘못을 대신 회개하는 기도를 집중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식사를 하면서 의견 충돌이 있었는데 생전 처음으로 남편이 자기에게 ‘그래 당신 말도 맞다’는 말을 하더란다. 아내는 너무나 감격하여 ‘당신 말도 맞소’라고 맞장구를 쳤다고 한다.
더군다나 A씨는 그 동안 심장이 좋지 않아서 무척이나 힘들었는데 용서를 제대로 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나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사이가 좋지 않던 부자지간도 관계가 회복되어 이제는 심령천국과 가정천국을 누린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경우 어떻게 기도를 할까? ‘주님, 우리 남편 변화시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기도로 기도의 대상자가 변화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 사람의 잘못을 대신 회개하는 기도를 하고 나 또한 그에게 잘못이 있다는 사실을 회개하면 쉽게 상대방이 변한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N은 하나님을 잘 믿겠다는 다짐을 받고 남편과 결혼했지만 남편은 20년이 지나도록 교회에 출석하기는커녕 신앙의 핍박자가 되었다.
철야예배 갔다 오면 욕설과 폭력을 휘두르고, 기독교 방송을 듣고 있으면 라디오를 집어 던지고, 성경책을 불에 태우거나 찢어버리기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N은 작정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 등 해보지 않은 방법이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방법을 오래 동안 모두 동원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용서와 축복'을 작정하고 한달 정도했더니 신기하게 남편이 변하기 시작했다. N을 대하는 말씨나 행동이 변하고 심지어는 기독교 TV를 같이 보기도 하여 요즈음에는 사는 재미를 누린다고 한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아내를 찾는 전화를 집으로 하면 남편은 퉁명스럽게 받았다.
“몰라요, 그 여자 집에 없어요.”
그런데 얼마 후 친지들이“그 집에 무슨 기적이 일어났느냐?”고 묻더란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남편의 전화 받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우리 전도사님은 지금 교육 받으러 갔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전에는 걸핏하면 사소한 일에도 시비를 걸던 남편이 대신 회개기도를 하고 난 후에는 말할 수 없이 나긋나긋해졌고, 자기가 하는 일을 불평 없이 잘 도와주고, 어느 날은 늦게 귀가했더니 결혼 후 처음으로 이부자리까지 깔아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N은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야, 살다 보니 이런 때도 있구나. 내가 지금 천국에 사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구나”라면서 좋아한다.
N은 또한 산후 조리를 잘못하여 생리 때나 추울 때면 어깨나 허리가 시리고 고통이 심하여 한약을 수없이 먹어보았지만 치유되지 않았다. 그런데 새마음 용서기도를 하는 중에 거짓말처럼 나았다고 한다.
어느 목사에게 속을 썩이는 성도들이 많았다. 목사는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도대체 신앙 생활을 하겠다는 것인지 안 하겠다는 것인지, 하려면 제대로 하고 안 하려면 안 하든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 . .. .”
그런데 희한하게도 목사가 판단하고 정죄하거나 수군거리고 비방하는 성도들은 한두 명씩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이 목사는 처음에는 하나님이 속 썩이는 성도를 하나하나 정리해 주시는 줄 알고 기뻐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아야 할 성도마저 교회를 옮기자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사랑으로 감싸면서 그들의 죄 짐을 대신 지지 못하고 그들에 대해 판단하고 정죄한 죄를 깨닫게 하셨다.
이후 목사는 성도들의 잘못이나 신앙적 연약함이 보이면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대신회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첫째 성도들에 대해 판단하고 정죄하는 생각과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하니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보배처럼 귀하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