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법등사설오스님TV(YouTube) 작성자 : 변함없는 즐거움
작은 선으로 오래되지 않은 처음 마음을 낸 것은 바로 선업이 아주 미약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업에 대소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악업에도 대소가 있습니다. 또한 오래된 악업도 있습니다. 또한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악업도 있습니다. 작은 악업도 이와 같습니다. 아직 증상하는 수준이 되지 못합니다.
큰 선업과 큰 악업은 자신이 분명하게 모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점찰선악업보경>의 윤상이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 윤상을 어떻게 만드는가 하면 정중앙에 한 면은 굵고 길게 그립니다. 굵다는 것은 중한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길이는 윤상의 끝부분까지 길게 그립니다. 넓적한 부분의 끝부분까지 그립니다.
두 번째 것은 가늘고 짧게 그립니다. 이것은 선업이 크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선업이 크지 않고 아주 작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 것은 윤상의 한 줄을 좀 거칠고 굵게 파냅니다. 크고 깊고 오래됨을 표시합니다. 그것은 거칠고 오래된 것입니다. 하는 길고 하나는 짧고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게 그립니다. 선업은 붉은색이고 악업은 검은색입니다.
여러분이 윤상의 실물을 보면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한 개의 윤상이 네 개의 면이 있습니다. 두 면은 붉은색으로 합니다. 또 다른 두 면은 검은색으로 합니다. 하나는 길고 검은색 하나는 짧고 검은색,그 붉은색을 새길 때는 너무 깊지 않게 파냅니다. 파지 말고 그리기만 하면 됩니다. 검은색은 깊게 파서 새깁니다. 이렇게 4면을 만듭니다.
그래서 이 법은 널리 전하기가 어렵습니다. 보편적으로 널리 전할 수가 없습니다. 경전에서 설한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점찰 윤상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길고 짧음과 사각형인지 원형인지 도대체 크기는 얼마나 해야 하는지, 그것을 손에 들고 던져서 구르도록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길고 크게 붉은색으로 그린 것은 선업을 쌓은지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선업이 아주 맹렬해서 이것을 증상(增上)이라고 합니다. 짧은 것은 선업을 쌓은지 얼마되지 않아서 가늘고 작습니다. 선업을 지은 것이 아주 미약하고 방금 선업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악업도 마찬가지 입니다. 악업을 쌓은지 오래된 것은 길고 깊게 검은색으로 표시합니다. 그러나 (악업을) 고치지 않으면 짧은 검은색이 긴 것으로 변합니다. 가벼운 것이 무거운 것으로 변합니다. 윤상은 나타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관상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손해와 감소됨은 흑업(黑業)입니다. 증장함은 선업(善業)입니다.
선업에 대해서는 마음이 맹렬하고 악한 일에 대해서는 매우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선근이 매우 두텁다는 것입니다. 지장보살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만약에 첫 번째 윤상을 점찰하면 자신의 삼업이 선한지 악한지 중한지 가벼운지를 알고자 한다면, 여러분들은 이 선업이 가벼운지 중한지, 작은지를 알지 못합니다. 쌓은 업이 오래됐는지 최근에 지은 것인지 강한지 약한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때에 두 번째 윤상을 점찰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윤상을 점찰하는 것은 첫 번째 윤상에 나타난 업을 한꺼번에 던져보는 것이 아닙니다. 첫 번째는 신구의 삼업의 10개의 윤상을 한 번에 같이 던져 봅니다. 던지고 나서 기록을 합니다. 신(身)업에 속한 것은 신업의 윤상만 던집니다. 구업에 속한 것은 구업의 윤상만 던지고 의업에 속한 것은 의업의 윤상만 던집니다. 세 가지 윤상을 한꺼번에 던지면 안됩니다. 한 면에 빨간 것은 선업을 주로 한 것이고 한 면에 검은 것은 악업을 주로 한 것입니다. 만약에 선업이 중하면 나타나는 것이 길고 거친 선으로 나타납니다. 선업이 짧은 것은 짧고 가는 선으로 나타납니다. 모두 다 붉은색입니다. 악업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악업이 중하면 검고 길게 나타납니다. 악업이 가벼우면 짧고 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따로 따로 점찰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 세 개의 윤상만 점찰하는 것입니다. 글자는 없습니다. 신구의만 쓰여져 있는 3개의 윤상입니다. 그 하나마다 그 위에 검은색이 중하게 표시가 되어 있고 하나는 검은색이 가벼운 것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는 그 위에 붉은색이 중하게 표시가 되어 있고 하나는 붉은색이 가벼운 것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4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아래에 身口意(신구의)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구업은 口(구)라고 쓰여있고 신업은 身(신)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의업은 意(의)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몸에 해당하면 身(신)으로 점찰하고, 구업을 볼때는 口(구)가 쓰여진 것으로 점찰하고, 의업을 볼때는 意(의)가 쓰여진 것으로 점찰합니다. 삼업을 나누어서 따로 따로 점찰합니다.
10가지 업의 첫 번째 윤상을 점찰할 때에는 신업이 모두 선업이어서 붉은색 색인데 두 번째 윤상이 신업이 악업으로 나오면 맞지 않습니다. 마음이 지심이 안되고 정성스럽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지심이 안되고 정성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아무렇게나 던져본 것입니다. 맞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처음부터 다시 절하고 다시 점찰해야 합니다. 어떤 불자들은 첫 번째 윤상을 점찰했을 때 상응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점찰을 하는데 그러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다시 참법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점찰 행법의 의식에 맞추어서 처음부터 다시 절하고 새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다 끝나고 난 다음에, 참법 기도를 마치고 나서 다시 던져 보아야 합니다.
제가 보니까 많은 불자들이 첫 번째 윤상은 다 영험하지 않습니다. 안 맞으면 또 다시 던져 보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립니다.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기도를 하고 완전히 새롭게 던져 보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오늘 점찰을 해서 상응이 안되면, 그 다음날 다시 절을 해야 합니다. 혹은 다시 두 번째 윤상을 가지고 절을 합니다.
나는 불자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처음 그 윤상을 배울 때에 아침 일찍 새벽에 먼저 절을 하고 점찰을 해보라고 합니다. 점찰을 하고 나서 상응이 안되고 지심(至心)이 안되면 낮에 지장보살 명호를 모시고 염불을 하는데 일만 번을 해도 좋고 이만 번을 해도 좋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에 다시 절을 하고 다시 참회하고 던져봅니다. 어떤 때는 하루에 5번 할 때도 있고 4번 할 때도 있습니다. 바로 첫 번째는 점찰윤상을 쓰고 두 번째 세 번째는 안써도 됩니다. 써도 상응이 안됩니다. 하루 동안 절을 하고 나서 그 다음날 새벽에 먼저 점찰을 합니다. 점찰을 하고 나서 다시 참회기도를 합니다.
첫 번째 윤상에서 몸에 선업이 나왔는데, 두 번째 윤상에서 몸의 악업으로 나오면, 그것을 상응하지 않았다고 하는 겁니다. 상응하지 않는 이유는 적합하지 않다는 겁니다. 왜 적합하지 않다고 하는가 하면 내용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지성심이 안된 것입니다. 경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지장보살께서 견정신 보살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지정심이 아닙니다. 정성스러우면 영험합니다. 정성스럽지 않으면 영험하지 않습니다.
만약 첫 번째 윤상에서 불살생의 업이 나왔는데, 두 번째 윤상에서 살생의 업이 나왔다면, 두 번째 던졌는데도 또 살생의 업이 나왔다면, 상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첫 번째 윤상에서 도둑질의 업이 나왔는데, 두 번째 윤상에서 도둑질의 업이 없다면, 역시 상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용이 맞지 않는 것은 모두 상응하지 않은 것입니다. 상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질문의 내용과 답이 다른 것입니다.
이것을 상응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럼 오늘은 다시 던져서는 안 됩니다. 다시 참회기도를 해야 됩니다. 오늘 기도를 3번, 5번 했더라도 다시 던져서는 안됩니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서 다시 던져보아야 합니다. 던져보고 나서 기도를 합니다.
자신이 불법을 알고부터는 살생을 좋아하지 않아서 전 살생을 하지 않고 벌레를 보아도 전혀 그들을 해치지 않아서 살생의 죄를 짓지 않았는데, 그런데 던져 본 윤상에서 살생의 업이 매우 중하다고 하거나 살생의 업이 나오면 이것은 절대로 상응하지 않은 것입니다. 마음으로 점검을 해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 윤상에서 몸의 큰 악업이 나왔다면 그것을 상응하지 않았다고 하는 겁니다. (살생의 업이) 없는데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이것을 상응하지 않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은 때에는 바로 윤상을 던졌을 때에 사실과 맞지 않는 겁니다. 마음속에 전혀 살생의 생각조차 없는데 윤상을 던져서 살생의 업이 나왔다면 이것이 어찌 맞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상응하지 않았다고 하는 겁니다. 이것을 '허망(虛妄)'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검증할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상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살생의 업을 좋아하지 않는데 윤상에서 살생의 업이 나왔다면 상응하지 않는 겁니다. 윤상이 상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참회기도를 하고 다시 참회하고 다시 던져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윤상을 쓸 때에 특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하루 이틀 해보고 상응이 안 된다고 퇴굴심을 내서는 안됩니다. 퇴굴심이 나서 쓰지 않습니다. 하루 이틀, 7일 2*7일에도 상응이 안됩니다. 날마다 기도를 하고 날마다 절을 하면 7일 동안 기도를 해도 윤상이 완전히 상응이 안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아직 섭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지극해지지 않아서 보살께서 나투시지 않는 것입니다. 보살께서 나투시거나 나투시지 않는 것은 우리가 지장보살상을 직접 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윤상이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은 겁니다. 상응하지 않으면 보살이 나투시지 않은 것이고 상응하면 보살이 나투신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50h3QQ2MRI&list=PL5MPltq86t10Hv7-_IggRNjTlFkp0uH8o&index=27 설오스님 한국어통역 https://www.youtube.com/watch?v=YDNDXu2CL9s&list=PL5MPltq86t11mMX67mzXILujzccPO6sKj&index=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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