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강원도 함백에 계셨다.
어떤 관사집 옆방에 세를 얻어 삼촌 두 분을 뒷바라지 하고 계셨다.
나는 여름방학에 할머니께 놀러 가게 되었는데...
밤에 삼촌과 같이 집으로 가는데 깜짝 놀랐다.
도랑 건너 풀 속에서 뭐가 반짝거리고 있다.
누가 무슨 장난치는 거야.
삼촌이 웃으며 반딧불이란다.
반딧불을 처음 봤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우리 고장에도 있는데
나는 왜 못 보았는지 모르겠다.
관사 안집의 식구들은 큰 도시에 사는가보다.
그들도 방학이 되어 내려왔는데,
여자애 둘이었다.
큰 애는 두해쯤 선배 되겠고
작은 애는 내 또래인 같았다.
좋은 곳에서 살아서 그런지 하얗지 그지...
우리 어릴 때는 촌 애들은 머 거의 꽤죄죄(이거 맞는 낱말인강?)했지
큰 애는 좀 성질이 있었고 작은 애는 착했다.
작은 애랑 어떻게 하여 바둑을 두게 되었는데,
실제는 바둑도 아니지 머
둘이랑 꼼꼼이 판을 다 매웠을 거야
이윽고...
그 애가 말했어...
너 바둑 너무 잘 둔다...
바둑계에 들어서면서 첨 듣는 칭찬이었을 거야.
거기는 그 아이에 대한 추억이 아직도 나타나는 것은
그 아이인지 바둑인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살던 읍내와는 확실히 다른 추억이 많은 곳이었지.
매미도 처음으로 잡아봤어.
우리 동네는 좀 많이 밖으로 나와야지만 그런 풍경을 볼 수 있지만,
그 동네는 문만 열면 산이고 들이었으니...
주로 산이었지...
어떤 쪽으로인가 가다가 보면...
철길인데
무지무지 높은 철길을 놓고 있었어.
완전히 공사가 다 된 것은 아니었는데
몇 층이나 되었다고... 무척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었지.
그 당시 함백선을 철암과 연결시키는 그런 공사였을 거야.
매미가 맴맴 울어
얼른 뛰어가서...
살금 살금
어림없다야 메롱
요렇게 까불면서 푸르릉~~~
그런데 매미가 울어
너무 너무 시끄럽게 울어
도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아니 두 놈이 붙어서 우네.
우리 지방사투리로 말하자면,
오부랑붙었다고 했지.
지금은 안 쓰는 용어인데 어원이 어디서 나온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긴 작대기를 가지고 가서 건드려봤지.
두 놈이 꼼짝도 못하고 꼭 붙어서 떨어지더라고
나는 이렇게 매미도 잡아봤지.
그 다음 해에 또 거기를 갔는데
이번엔 이사를 다른 곳으로 했는데.
이사한 집은 조금 나가면 물이 좀 많은 개울이 있고
개울 건너면 바로 산이었지.
할아버지는 개울 건너에 평지진 곳에다가
잔 돌들을 걷어내고 거기다가
분초를(지금 부추라고 하던가?) 심어놓으셨는데
분초에다가 콩가루를 뿌리고
밥 위에 얹어 쪄서 양념해 내놓은 반찬은 정말 꿀맛이었어.
궁금한 것이 많은 나는 산으로 올라갔는데,
풀 밑으로 개미들이 들랑날랑하잖겠어
우리 읍내에는 조그만 개미뿐이었는데,
이 개미들은 훨씬 크더라고...
이 개미보다 더 큰 개미도 있는데
이 개미들한테는 꼼짝 못하고 토끼더라고
궁금해서 풀더미를 들어 올렸지.
쉽게 들리더라고..
우아 개미들이 버글버글
놀란 그들은 우왕좌왕
알을 물고 움직이는 일꾼들...
아구구........
난 삼십육계를 놓아야 했어
계네들이 내 다리를 마구 깨물잖아
어휴 혼났어.
개울을 건너지 않고 한 쪽엔 제재소가 있었어
기억에는 오래전에 폐업한 제재소인 것 같아...
톱밥이 쌓인 곳이 있었는데,
거긴 정말로 나에겐 좋은 놀이터였어.
그 톱밥들을 파헤치면
사슴벌레가 많았는데
주워서 집에 가지고 와서 놀면
언제 시간이 가는지도 몰랐어
정말 얼마 경험하지도 않은 곳이지만
이 나이에도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은
정말 나에게는 좋은 곳이었나 봐
####04.06.08. 08:51
흑백 단편영화를 본듯한 느낌입니다.글 잘쓰시네요.
#### 04.06.08. 09:16
아.... 전 그림동화를 보는듯했습니다...
### 04.06.08. 10:29
초류향님 안녕하세요?영주시에 사시나봐요.저도 영주에 살고 있습니다.^^
#### 04.06.08. 11:41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04.06.08. 12:54
문장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촘촘히 쌓아올린 돌담처럼..차분하면서도 담백하게..동양화를 보는듯 합니다..좋은글 감사..
####/#### 04.06.08. 13:29
헉~ 바둑스토리... 예전 강철수 만화 제목인데요... 그 만화 생각나네여 ^^
*** 04.06.08. 17:11
하하.... 꼬리달아주신 분들께 감사를.... 이 야그는 아마 40년 전쯤 야그일 겁니다...
#### 04.06.09. 06:20
와 ㅋㅋ 진짜.. 그림동화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