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다리에 날린 모자
최원혜
칠월을 시작하는 “수(水曜日) 愛 수(隨筆) 글쓰기” 맛집 요리하는 날이다. 이글거리는 태양볕은 오지게도 찌는 듯한 더위다. 에어컨 냉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맛집은 마냥 이열치열이다. 부글부글 점점 더욱 끓어오른다. 회원들은 요리해 온 메뉴를 합평 받아 맛나게들 취하였다. 그사이 오탄 새 메뉴가 나왔다. 그 메뉴 이름은 “모자”이다.
사십 대 시절 혈압 낮추려고 등산에 빠져서 봉화 청량산에 갔을 때이다. 청량산은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부곡리에 위치한 산이다. 고도 869.7ⅿ 낙동 우안에 있다. 낙동정맥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여러 코스가 있는 가운데 함께 간 친구들과 하늘다리와 청량사 쪽으로 코스를 정하여 올라갔다. 그날따라 바람이 제법 부는 날이다. 나에게는 오르던 산행길이 엄청 가파르고 계단투성이 이어서 힘에 부치기도 하였다.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청량산 하늘다리가 보인다.
하늘다리는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이 다리는 지상으로부터 높이 70ⅿ, 길이 90ⅿ인 국내에서도 가장 큰 현수교량이다. 아슬아슬하게 하늘다리 건널 때이다. 흔들거리는 다리 잡고 엉거주춤하던 중 갑자기 세찬 바람 불어왔다. 그러자 홀라당 뒤 집어져 날아간 모자가 하늘다리 밑으로 나가떨어졌다. 아뿔사! 낭패이다. 내가 가장 정들었던 최애 모자이었다. 청량사 쪽으로 코스를 돌려가기에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찾으러 갈 수도 없었다.
혈압 진단받았을 때 스트레스로 낙엽 떨어지듯 머리카락이 빠져 나뒹굴 때 있다. 머리카락 빠지면 이마가 훤해지기도 한다. 여자는 대머리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일그러진다. 늘 그러한 내 모습을 가려주던 참 고마운 모자이었는데 말이다. 무척 씁쓰레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여성은 모자를 계절에 따라 바꿔 쓰기도 한다. 봄에는 날씨가 포근해지고 바람은 살짝 부는 계절이어서 가벼운 소재 스타일 강조하는 여성 모자이어야 한다. 여름에는 빛을 가려주는 통풍과 자외선 차단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 가을은 살짝 쌀쌀하고 패션에 변화를 주기 좋은 계절이라 울이나 니트 등 따뜻한 감성의 소재가 인기이다. 겨울은 보온성이 제일 중요하다. 털모자, 귀 달린 모자, 방한모자 등을 들 수 있다.
내게는 여름 모자챙이 큰 것과 짧은 것 두 개, 겨울모자 밍크 모자와 털모자, 비니모자 등 세 개, 봄·가을 모자는 벙거지모자, 일반적인 모자 두 개 등이 있다. 청량산 하늘다리에서 날려버린 모자는 일반적인 챙이 짧은 보랏빛으로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자이었다. 여행, 등산 갈 때는 모자가 꼭 필요하다. 외출할때에는 헤어 스타일이 구겨질까 보아 잘 쓰지 않는다. 여름철에는 햇빛 차단으로 양산을 모자 대용품으로 이용한다.
큰아들 유치원, 작은아들 돌 무렵이다. 아버지가 속이 불편하다며 연락이 왔다. 친정은 성주 시골 마을이라 그 시절 교통수단은 시외버스 뿐이다. 작은아들 업고, 큰아들 걸리어 가야만 하였다. 대구에서 성주 가는 길은 수성구에서 시내버스로 북부정류장까지 가야 한다. 거기서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갔다. 그때는 큰아들이 멀미하여 차에 오르면 잔다. 북부정류장에 도착하였는데 깨워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작은아이를 업은 상태라 걸리었던 큰아들은 억지로라도 잠을 깨워야 하였다. 그럭저럭 친정 마을에 도착하여 작은 뒷고개를 넘어야 했다. 잠에서 깨어난 큰아들은 외가댁이 아직 멀었느냐고 투덜거린다. 업혀있던 아들은 기저귀 한가득 무겁다. 등 뒤에서 칭얼거린다. 두 아들 칭얼거리다 보니 어느덧 친정집에 도착하였다.
그때는 초여름이다. 아버지가 밀짚모자 쓰고 벼 논에 물 대고 다녀온 것이다. 그 시절 아버지는 평상시에는 중절모자 쓸 때가 있다. 아버지의 냄새가 배인 모자를 가끔 더러워지면 세탁하였다. 조무사로 일해보아 아버지의 건강이 짐작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아버지의 얼굴빛이 황색으로 심상치 않은 것 같았다. 설사증도 동반하여 입이 소태같이 쓰다고 하였다. 병원 모시고 갔더니 진단 결과 간암 말기이다.
요즘처럼 건강검진의 시스템이 없을 때이다. 아버지는 치료 시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그때는 하늘이 캄캄하였으며 무너져 내리듯 슬픔이 밀려왔다. 아버지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음을 알고 있다. 오 남매 중 나만 결혼시켜서 동생들 보면 한숨이 나온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동네 집안 오빠가 경북대학병원 교수이다. 그 오빠가 “맛 나는 것, 잡숫고 싶어 하는 것, 다 해드려라.” 한다. 그 말을 엿들은 아버지는"암"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밀짚모자를 볼 때면 떠오른다. 그때는 아버지가 죽음에 대해 준비하는 듯하여 무척 가슴 아팠다. 동생들이 중, 고등학생이어서 어리다고 아버지가 손수 당신의 석관까지 준비하여 두고 가신 것이다. 아버지의 인생을 마무리 하던 모습이 보였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가신 지도 벌써 어느덧 삼십팔 년이 되었다.
대학원 공부하던 시절이다. 심리과목에서 강의받은 “웰다잉” 이란 용어가 생각이 난다."존엄사"라고 한다. 잘 죽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역발상을 통해 나타난 새로운 흐름이다. 죽는다는 것은 내 의지대로 될 수 없지만 인간으로 존엄성과 가치, 품위를 지키며 삶을 마무리할 준비는 하여야 할 것이다. 삶의 마지막까지 사람답게 살다 가고 싶다고 한다. 죽음이란 모두에게 언젠가는 찾아온다. 아버지 밀짚모자는 이별의 그리움으로 남긴다. 청량산 하늘다리 밑에 날려 보냈던 내 최애 모자는 그때 그 추억을 남기듯이 말이다.
며칠 전 집안 결혼식 있어서 입고 갈 옷과 남편의 와이셔츠를 사려고 수성동아백화점에 다녀왔다. 글제로 모자를 생각하여서인지 모자가게만 눈에 띄는듯하였다. 청량산에서 잃어버린 모자보다 더욱 예쁜 것들이 많았다. 잃어버렸지만 정들었던 모자를 추억에서 지울 수 없어서 가지고 있던 다른 모자를 쓰기로 하였다. 유심히 살펴보니 모자는 모두 각양각 색이다. 화려한 모자, 수수한 모자, 노년이 쓸모자, 젊은 층이쓸 모자는 나이에 맞게 계절에 따라 쓰도록 만들어지는 듯하다.
속담에“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했듯, 모자가 비뚤어졌다는 것은 외형보다 말(내면, 태도)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모자처럼 외형을 치장하는 것보다 본질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모자는 그냥 쓰는 모자라고 생각할 뿐이다. 생각해 보면 모자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 보호, 기억, 추억, 세월, 삶의 무게 등 더욱더 많은 것을 덤으로 주기도 한다. 지금의 모자는 알록달록 패션에 멋지고 값비싼 모자들이다. 여성들에게는 아름다움을 남성들에게는 멋진 모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모자의 변천 세월은 유유히 흐른다. 구름에 달 가듯이 흐르는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다. (20250707.)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