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27장·우문천도(于文天道)
①
쿠쿠쿠쿠쿵!
사방으로부터 연이어 굉음이 울렸다.
"......!"
단후린은 전신에 공력을 일으켰다. 서실 안은 이미 캄캄한 암흑으로 화했다.
'모든 것은... 계획적이었다. 놈들은 내가 이곳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가 우문천도를 만나러 온 것은 물론 좋은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우문천도가 출타 중이라는 것도 거짓일 것이다. 우문천도는 고의로 그로 하여금 천기서여에 머물게 하여 그로 하여금 서일의 뒤를 따라 이곳으로 유인케 한 것인지도 몰랐다.
'틀림없다. 교활하기 그지없는 우문천도라면 그 정도의 계략은 충분히 쓸 것이다.'
단후린은 자신이 너무나 경솔했음을 후회했다.
우문천도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것이다.
"공자......."
그의 옆에서 달콤하면서도 불안에 찬 음성이 들렸다. 그것은 양모운의 음성이었다.
"우리는... 함정에 빠진 걸까요?"
단후린은 그녀가 자신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담담히 말했다.
"아마도 그런 모양이오."
"정말 그 작자는 무서운 인물이군요. 이렇게 교묘하게 함정을 설치하다니... 한데 공자께서는 혹시 저를?"
양모운의 음성은 가볍게 떨렸다.
단후린은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았다.
"안심하십시오. 나는 소저를 의심하지 않소이다. 그것은 단지 우연에 불과한 일이오. 소저가 발견하지 못해도 결국 내가 의자의 기관장치를 발견했을 것이오."
양모운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요. 결과는 저로 인해......."
단후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양모운이 기관을 발견하였으므로 그들이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녀의 잘못은 아니었다.
"심려하지 마시오. 그보다는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가느냐가 더욱 시급한 문제요."
그때 어디선가 한 가닥 비웃음에 찬 음성이 흘러 들어왔다.
"이곳을 빠져 나간다고? 허허허, 너희들은 이 우문천도를 너무나 과소평가하고 있구나. 설사 하늘을 나는 재주가 있다해도 너희들은 결코 이곳을 빠져 나가지 못할 것이다."
"......!"
단후린은 전율을 느꼈다.
우문천도가 나타났다.
멸몽위한련을 멸망케 하고, 대각선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희대의 효웅간적이 나타난 것이다.
"우문천도! 간악한 작자! 모든 것이 너의 흉계였더냐?"
"허허허, 어린애야. 노부가 너에게 물어 볼 것이 있다."
단후린은 이가 갈렸다.
"간적! 시끄럽다. 용기가 있다면 이리 나서라!"
"허허허, 아이야. 노부는 혈기방장한 나이가 아니다. 또한 앉아서도 이길 수 있는 싸움을 공연히 어렵게 만들 노부가 아니다. 그런 충동을 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단후린은 코웃음쳤다.
"흥, 역시 겁장이였군!"
"허허허, 뭐라 해도 좋다. 하지만 노부가 너에게 궁금한 점이 있다."
단후린은 시간이 흐르자 다소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는 흥분해 보아야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이 궁금하단 말이냐?"
그는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벌기로 했다.
기회를 보아 빠져 나갈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너의 이름이 단후린이 맞느냐?"
단후린은 흠칫했다.
그는 천기서여에 온 이후로 서일이나 그 밖의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 그건 어떻게?"
우문천도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 다음 그는 또다시 물었다.
"그럼 단후황과는 어떤 관계냐?"
단후린은 가슴이 격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 분의 이름을 입에 올릴 자격이 너에게는 없다! 나는 그 분의 아들이다."
"으... 음, 역시 그랬었군. 혹시나 했는데."
우문천도는 무거운 신음을 터뜨렸다.
단후린은 부친 단후황이 과거에 우문천도와 지교를 맺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문천도, 선친을 대할 면목이 너에게 있느냐? 중원의 혼을 팔아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너같은 인간이 어찌 아버님을 거론할 자격이 있느냐?"
"......."
우문천도는 그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흘러서야 우문천도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음... 따지고 보면 너는 노부의 질자나 다름이 없다. 그만큼 너의 부친과 나는 가까운 사이였다."
"닥쳐라!"
단후린은 노성을 발했다. 너무나 뻔뻔스러운 말이었기 때문이다.
"허허, 흥분하지 마라. 세상에는 왕왕 세인이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시끄럽다. 파렴치한 늙은이!"
우문천도의 음성이 음산하게 변했다.
"흠, 지나치게 강하면 부러진다. 왕년의 단후황도 너무 강해서 부러졌다. 한데 그의 아들도 마찬가지라니 실망이구나."
단후린은 피가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었다.
"닥쳐라, 선친을 모독하지 마라."
"후후, 린(鱗)이라고 했던가! 노부가 한 가지 제의를 하겠다."
단후린은 반박을 하려다가 문득 흠칫했다. 홀연히 부드럽기 그지없는 손이 자신의 손을 감싸쥐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어 귓속으로 감미로운 양모운의 음성이 흘러 들어왔다.
"공자, 차분하게 대처해야 해요. 음흉한 작자를 상대하는데 함께 흥분한다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에요."
단후린은 번뜩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 우선은 이 위기를 타개하는 것이 급하지 않은가?'
그는 양모운의 섬섬옥수를 힘껏 잡았다. 고맙다는 표시였다.
"아!"
양모운의 입에서 달콤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단후린은 신경을 쓰지 않고 입을 열었다.
"늙은이, 제안이란 무엇이냐?"
그러자 우문천도는 기소를 흘렸다.
"허허허, 노부의 말은 듣지 않으면서 여자 아이의 말은 잘 듣는구나. 그렇지. 그래야 현명한 것이다. 그 계집아이는 몹시 쓸만 하구나."
단후린은 모욕감을 느꼈으나 대꾸하지 않았다.
"너희 두 사람은 다만 두 가지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은 이곳에서 죽어 나가는 것과, 살아서 나가는 것이다. 어떠냐? 어떤 길을 택하겠느냐?"
단후린은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어떤 것이 죽어서 나가는 것이고, 어떤 것이 살아서 나가는 것인지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허허허, 간단한 일이다. 노부에게 굴복하면 살아서 나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은 후에 나갈 것이다."
"......!"
단후린은 침묵했다.
그의 말대로 간단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것은 죽음보다도 더한 것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한족을 팔고 천하를 기만한 자에게 굴복을 하라니, 그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단후린은 죽으면 죽었지 허락할 수 없었다.
그는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물어볼 것도 없다. 이 단후린은 너같은 위선자를 세상에서 가장 증오한다. 후후, 설사 이곳에서 뼈를 묻는다 해도 너같은 위인과 어찌 손을 잡겠느냐?"
우문천도는 문득 괴소를 흘렸다.
"허허허헛! 너는 네 아비를 꼭 닮았구나. 노부는 이미 그럴 줄 알았다. 다만 너의 자질이 아까워 한 번 물어 보았을 뿐이다."
우문천도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지극히 은근한 음성으로 다시 말했다.
"허허허, 하지만 과연 그 여자아이도 너와 같은 생각일까?"
단후린은 그 말에 가슴이 섬뜩함을 느꼈다. 어디까지나 우문천도와의 감정은 그에게 국한된 것이다. 숭명도에서 왔다는 신비여인 양모운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단후린은 신음하며 말했다.
"양소저, 그대의 선택은 그대가 하시오."
양모운은 문득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저는... 공자와 함께 하겠어요."
"......!"
단후린은 뜻밖의 말에 흠칫 했다.
"소저께서 무엇 때문에?"
양모운의 따뜻한 손이 그의 손을 잡았다.
"이미 결정한 일이에요. 그 이유는...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마음은 변함이 없을 거예요."
단후린은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다.
"소저......."
"허허허허허헛......! 이제보니 양가라는 여자아이, 너는 그 아이를 사랑하고 있구나. 하지만 바보같은 짓이다. 죽은 다음에 사랑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너는 후회할 것이다."
양모운은 야무진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이 양모운은 언제나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니까요!"
"허허허, 그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문천도의 음성에는 한 가닥 조소가 어려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기회를 더 주마. 양가 여자아이와 노부와는 아무런 원한이 없으니 노부도 너를 죽일 마음이 없다. 그래서 한 가닥 생로를 열어 주마."
"......?"
"단후린이란 아이를 죽여라. 그러면 널 나가게 해주마."
"......?"
단후린은 양모운의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후후후, 언제라도 좋다. 단후린이란 아이를 죽이면 그 순간 너를 나가게 해주겠다."
단후린은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가 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그들 둘 사이에 분열을 획책하는 무서운 계략인 것이다.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양모운은 입술을 깨물며 그렇게 말했다.
"허허허헛, 과연... 노부도 네 마음이 변치 않기를 바란다. 그럼... 허허허허......."
우문천도의 비웃음 소리는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
칠흑처럼 어두운 공간에 남겨진 두 남녀는 막막한 심정이었다.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공간에서 그들은 서로의 불안과 좌절에 찬 불규칙한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②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은 쉬임없이 흘러갔다.
단후린과 양모운은 서실에 갇힌 채 한 걸음도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의 날짜가 흘러가는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암흑 속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어느덧 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것은 물론 우문천도가 남긴 한 마디의 말 때문이었다. 언제라도 양모운이 단후린을 죽인다면 그녀는 살아서 나갈 수가 있었다.
단후린은 그녀가 오랫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자 마침내 탄식하며 말했다.
"양소저, 나 때문에 이렇게 고생할 필요는 없지 않소? 지금이라도......."
양모운은 원망스러운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직도 저를 믿지 못하나요? 이 양모운은 한 번 한 말은 끝까지 책임을 져요. 설혹 이곳에서 뼈를 묻게 된다 해도 그것은 변함이 없을 거예요."
단후린은 회의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양모운은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
"아아... 당신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단 말인가요?"
"......?"
"우문천도도 알고 있는 이유를 당신이 모르다니......."
단후린은 그 말에 흠칫했다.
"소저는 정말로... 나를......."
양모운은 손을 뻗었다.
"처음부터 당신은 저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어요. 난 당신을 만나는 순간부터 이미 나 자신을 잊어 버렸어요. 제 말을 믿지 않나요?"
단후린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뜻밖이었다. 그가 양모운을 만난 것은 채 열흘도 되지 않는다.
그도 역시 그녀에게 관심을 갖기는 했어도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남과 여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려니 했었다.
그런데 양모운은 그렇지 않았다.
"전 두렵지 않아요."
단후린은 향긋한 여인의 체향이 후각을 자극하는 것을 느꼈다. 양모운이 나긋한 몸을 그에게 기대왔던 것이다.
양모운은 그의 가슴에 안기며 속삭이듯 말했다.
"이곳에는 우리 두 사람밖에 없어요. 누가 보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체면을 차릴 필요도 없어요. 절 한 번 안아 주시지 않겠어요?"
단후린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는 오직 그들 두 사람만이 있다. 보는 사람도 없고, 그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사람도 없다.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건, 어떤 대화를 주고 받건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젊은 남녀의 피는 유난히 빨리 뜨거워진다. 단후린도 그런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여인이, 그것도 아름다운 여인이 사랑을 고백하면서 안아달라는데 굳이 사양할 바보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단후린은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모운(毛雲)......."
그는 자신도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세차게 그녀를 안았다.
"아아... 상공!"
두 사람은 자신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조차 잊었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체온을 느꼈고, 다음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과 입술이 서로를 찾아 접근해 갔다.
"......!"
단후린은 향긋하고 나긋한 입술을 접촉한 순간 복수, 야망, 증오, 집념 등 이런 응어리들이 한낱 부질없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만은 오직 남자와 여자, 그리고 서로를 원하는 갈증에 찬 입술과 입술이 있을 뿐이었다.
극한 상황에 처할수록 인간은 더욱 본능에 충실한지도 모른다.
'아!'
양모운, 그녀는 그토록 원하고 원하던 순간을 맞이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와 있는지도 잊었다.
오직 단후린의 뜨거운 입김을 느끼며 온몸이 구름을 타고 떠오르는 듯한 황홀감을 만끽할 뿐이었다.
단후린은 품 안에서 여체가 뜨겁게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열기는 곧 그에게 전해졌다.
청춘이기에 그런 공감대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입술이 열리고 치아가 살며시 그 문을 연다. 단후린은 여인이 자신의 혀를 끌어들이는 것을 느꼈다. 그의 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혀와 혀가 만나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뜨거운 감정과 혼이, 그리고 타액이 오가는 가운데 두 사람은 하나가 되어 서서히 쓰러지고 있었다.
"음."
양모운은 숨막히는 신음을 발했다. 단후린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서 이번에는 목덜미로 옮겨졌다.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순간을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기다리고 원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어디까지 타오르고 있는지 얼마전까지만 해도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그에게 바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녀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항상 있을 수 있는 데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경우도 그랬다. 처음에는 결코 자신에게 그런 감정이 생기리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단후린의 존재는 그녀의 생명이 되었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그녀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그녀는 확신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아... 상공, 이 몸은 당신의 것입니다.'
단후린의 손은 대담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었다. 암흑의 차단된 공간 속에서 패배감과 좌절에 부대낀 피로감이 그의 마음을 느슨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 순간 그는 아주 예민한 악기의 현을 만지듯이 손가락 끝에서 감촉되는 양모운의 매끄럽고 내밀한 살결을 즐기고 있었다.
옷고름이 풀렸다.
궁장의는 남자가 벗기기에는 복잡했다. 그런데 그의 손이 스치는 곳마다 고름이 풀리고 옷깃이 열리고 있었다.
단후린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여인의 옷을 많이 벗겨 보지 못한 그로써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모운......."
이윽고 그의 손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아름다운 곡선을 가지고 있는 여인의 두 조각 동산을 점령했다.
칠흑의 어둠이 아쉽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단후린이라 할지라도 눈을 크게 뜨고 그 아름다움을 즐겼을 것이다.
양모운의 유방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았다. 단후린의 손 안에서 알맞게 잡혔고, 또 뭉클거렸다.
사나이의 손은 거칠었다.
특히 검을 만지고 천하를 잡으려는 손길이기에 더욱 강하고 거칠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만지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단후린의 손은 이 순간 그지없이 부드럽게 변했다. 그는 양모운의 유방을 어루만지며 소중한 보물을 만지듯이 가만히 애무하기 시작했다.
"아!"
양모운은 반듯이 드러누운 채 입술을 깨물었으나 절로 이빨 사이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단후린의 손이 타인의 손길은 물론 눈길도 타지 않았던 유방을 애무하자 그녀는 머리속이 텅 비면서 한없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손가락이 말랑거리는 유실을 발견하자 짓궂어졌다.
"사... 상공."
양모운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사나이는 장난기가 발동한 모양인지 그녀가 안타깝게 애원을 하는데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짓궂은 장난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단후린은 손가락 끝에 걸리는 오디보다도 작은 열매를 만지작거렸다. 약간 세게 쥐면 여인의 입에서는 야릇한 신음이 나왔고, 살살 어루만지듯이 하면 허리를 가볍게 비트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장난이 즐거웠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하지는 않았다. 그의 손은 싫증을 잘 내는 어린아이인 양 또 다른 미지의 탐험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미끌어질 듯이 아래로 휘어져 내리는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가만가만 더듬어 내려가던 손이 문득 패인 우물에서 멈추었다.
"음!"
양모운은 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허리를 크게 호선을 그리며 비틀었다. 그 바람에 우물에서 잠시 물러났던 손가락은 다시 집요하게 우물 속으로 스며 들었다.
여인은 서서히 오열하듯이 신음을 흘렸다.
"아... 흐으윽......."
단후린은 아주 오랫 동안 우물에서 놀다가 다시 새로운 탐험에 올랐다. 그의 손은 아래로 미끌어지다가 옷깃이 닿자 옷을 끌어 당겼다. 옷은 저항없이 허물어졌다.
그 아래로 단후린은 서슴없이 들어갔다. 이제 그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매끄럽게 경사진 아랫배를 따라 달리던 손이 언덕을 만났다.
그 언덕은 생명의 원천을 간직한 태고의 삼림 속에 싸여 있었다. 단후린의 손길은 언덕의 숲가에서 잠시 방황했다. 그것도 잠시 뿐, 용기를 얻은 듯 숲을 헤치고 마지막 탐험을 결행하는 것이었다.
"아...."
여체가 꿈틀거렸다. 깊숙한 곳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양모운은 세상에 태어난 이래 한 번도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두렵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면서 그녀는 몸을 한껏 움츠렸다.
그녀는 두 다리를 있는 힘껏 오므렸다. 그렇지만 그것은 미약한 저항이었다. 그녀의 저항은 애당초부터 적대자의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방어선이 무너지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나이의 무거운 체중이 그녀의 나신 위에 얹혀졌을 때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이 무력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모운......."
사나이의 속삭임이 귓바퀴에서 맴돌 때 양모운은 자신도 모르게 모은 힘을 풀고 있었다.
오므려졌던 다리가 벌려지고, 옴츠렸던 허리가 자신도 모르게 뒤로 오히려 한껏 휘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 그랬더냐 싶게도 그녀의 손은 사나이의 목을 힘껏 껴안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그녀는 자신의 은밀한 문을 비집고 어떤 무서운 힘이 한껏 깊숙이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아!"
③
쾅-!
멀리, 아득한 곳으로부터 폭음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부터였다.
처음에는 아주 먼곳으로부터 들렸다. 차츰 시간이 흐를수록 그 폭음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단후린은 가슴이 뛰었다.
"모운, 어쩌면 우리는 밖으로 나가게 될지도 모르오."
그의 말에 양모운은 그의 얼굴을 부드러운 손으로 어루만지며 말했다.
"저는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좋아요."
"모운?"
단후린은 흠칫했다.
"전 이대로도 좋은 걸요. 당신의 품에 안겨 있으면 아무 곳이라도 좋아요. 설사 그곳이 지옥이라 해도 말이에요."
"모운?"
단후린은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닿았다.
그런데 그는 양모운의 뺨이 젖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니... 울고 있소?"
"네. 아니......."
양모운은 자신조차 자신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단후린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모운, 왜 우는 것이오? 어디 아프기라도 한 것이오?"
"아니에요. 제가 우는 것은 너무......."
"너무?"
"기뻐서예요."
단후린은 멍해졌다.
"기뻐서 울다니?"
그는 곧 깨달았다.
"아, 나가게 된 것이 기뻐서 우는구려."
폭음이 들린 지 꽤 오래 되었다.
폭음 소리가 가까워진다는 것은 누군가 기관을 파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생환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단후린은 당연히 그녀가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 그러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요. 그래서 울어요......."
이윽고 양모운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더니 아예 마음 놓고 펑펑 우는 것이었다.
"바보같은 모운, 그만 하시오."
단후린은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것은 아주 부드러운 머리칼이었다.
"......!"
머리칼을 쓰다듬던 단후린의 손이 멈추었다.
그의 피는 싸늘하게 식었다. 단후린은 벼락이 자신의 머리를 강타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럴 수가!'
쿵-!
이번에는 아주 가까운 곳으로부터 폭음이 들렸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있는 서실까지도 진동을 일으켰다.
"아, 대체 누굴까요? 누가 우리들을 구하러 온 걸까요?"
단후린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도 못했다.
마음 속의 충격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다.
"린."
"음?"
단후린은 흠칫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어떤 생각을 하길래 제 말을 들은 척도 않나요?"
"무... 무슨 말을 했소?"
단후린은 더듬거리며 물었다. 양모운은 기이하다는 듯이 말했다.
"폭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요. 대체 누가 오고 있는지 짐작가는 것이 없나요?"
"글쎄......."
그는 입을 다물었다.
양모운은 의아했다. 단후린은 갑자기 딴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녀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견디기 어려운 것은 바로 양모운이었다.
"상공......."
"......."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건가요?"
"......."
"제가 무얼... 잘못 하기라도 했나요?"
단후린은 탄식했다.
"이곳에서 당신은 나와 함께 줄곧 같이 있었는데 무엇을 잘못했겠소? 난 단지... 어떤 생각이 나서 그것을 잠시 떠올렸을 뿐이오."
꽝-!
이번에는 더욱 가까운 곳에서 지축을 울리는 폭음이 터졌다. 두 남녀는 머리 위로 돌먼지가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단후린은 벌떡 일어섰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바로 이 방 밖에 와 있소."
"아!"
양모운은 탄성을 발했다. 그러나 그녀의 음성에는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단후린은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안으며 물었다.
"왜, 기쁘지 않소? 우리는 밖으로 나갈 희망이 좀더 많아졌소."
"기... 기뻐요. 왜 기쁘지 않겠어요."
단후린은 그녀가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느낌 때문에 의혹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콰꽝- 후두두두둑-!
이번에는 귀청을 찢을 듯한 폭음과 함께 천정에서 돌더미가 떨어져 내렸다.
단후린은 양모운을 안고 신형을 이리저리 날려 피했다.
비록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었으나 바위를 피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는 천정 위쪽으로부터 누군가의 외침을 들었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그는 희열을 금치 못했다.
"찬특치!"
꽈르르릉! 콰쾅-!
굉음과 함께 천정이 와르르 무너지며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④
"대형!"
"주공!"
폭풍전사(暴風戰士), 그들이 온 것이었다.
구리빛으로 번뜩이는 그들의 얼굴에는 지금 격동이 물결치고 있었다. 단후린은 가슴이 뭉클하고 감개가 무량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들이 자신이 있는 곳을 알고 찾아왔는지가 궁금했다.
그 의문은 곧 풀렸다.
단후린의 앞에는 혈구대사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헤벌쭉 웃고 있었다. 승포는 갈기갈기 찢겨지고 얼굴에는 뽀얗게 먼지가 앉아 있었으나 그는 지금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헤헤헷, 이 보살님께서 처음으로 사나이다운 사나이를 만났어!"
그는 감동 어린 음성으로 말했다. 그의 옆에는 준미한 관옥 같은 용모의 서생이 서 있었다.
아름답게 빛나는 금빛 머리칼에 푸른 눈을 한 아라사였다. 그녀의 눈에는 뿌연 안개가 차오르고 있었다.
혈구대사는 단후린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공자, 그 동안 이 보살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시오? 빌어먹을... 공자가 사라진 후 이 보살은 그 쥐새끼같은 서일이란 놈을 족쳤지만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소. 놈이 혀를 물고 죽어 버린 것이오. 그때 마침......."
혈구대사는 말을 끊으며 미서생, 아라사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이곳으로 오는 동안 남긴 기호를 보고 이 계집애같이 생긴 친구가 이곳으로 도착했소."
단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라사에게 폭풍전사를 만나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자신의 행방을 알리는 기호를 정해 가는 곳마다 새겨 놓기로 했던 것이다.
그것은 실로 하늘의 뜻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넓은 중원천하에 그가 남긴 기호를 발견하기란 그다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단후린은 아라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수고했다, 아라사."
"주인님."
말끝을 흐리며 아라사는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단후린을 만난 기쁨과 동시에 마음 속에 감추고 있던 서러움이 북받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만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혈구대사는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흘흘, 거 정말 계집애 같은 놈이군. 사내놈이 우라지게 눈물도 많군!"
단후린은 빙긋 웃었다.
혈구대사는 아직도 아라사를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후린은 온통 눈물로 얼룩진 아라사의 얼굴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아라사, 네가 이곳 비밀통로를 발견했느냐?"
아라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후린의 눈에 연민이 스쳤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정말 고생이 많았겠구나."
지극히 평범한 위로의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말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느낌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
아라사는 그만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녀는 단후린을 찾기 위해 식음을 전폐한 채 이곳 천기서여의 풀뿌리 하나, 돌조각 하나까지 모두 들춰본 것이었다.
만일 단후린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결코 찾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천기서여의 대청.
비밀통로에서 빠져나온 일행이 빙 둘러앉아 그간의 경과를 얘기하고 있었다.
단후린은 자신이 이미 십 일 이상을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혈구대사에게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혈구, 그 동안 이곳에 온 자는 없었소?"
혈구대사는 고개를 저었다.
"없었소이다."
단후린은 의혹을 느꼈다.
'우문천도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우리가 그 속에서 죽을 줄 알고 아주 가버렸단 말인가?'
우연히 단후린의 시선이 양모운에게 멎었다.
양모운은 시녀에게서 무슨 말인가를 귓속말로 듣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점점 어둡게 가라앉고 있었다.
단후린은 의아했다.
'저 시녀가 무슨 말을 했기에 모운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것일까?'
그는 모운과의 일이 떠올랐다. 공연히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 찬특치가 다가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작달만한 체구에 위엄이 깃든 눈동자,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대형,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정말 꿈만 같습니다."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그의 목소리는 감격으로 떨리고 있었다.
단후린은 그의 손을 힘있게 쥐며 말했다.
"나 역시 그렇소, 찬특치."
단후린은 날아오를 듯 뿌듯한 마음으로 백 인의 사나이들을 둘러보았다.
대습철마림의 용사들, 그들의 강건한 육체는 보기만 해도 믿음직스러웠으며 눈은 활화산처럼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돌아갈 곳이 없는 마지막 철골흑묘족이다.
단후린은 결심했다.
'그대들은 결국 나로 인해 고향을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 단후린 반드시 그대들에게 보답을 하리라.'
단후린은 폭풍전사대를 향해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여러분은 중원에 들어오자마자 너무나 큰 소동을 일으켰다. 가는 곳마다 그대들의 말이 나오지 않은 곳이 없으니 말이다."
단후린의 말에 주위는 숙연한 분위기가 되었다. 조용한 침묵 속에서 전사들의 얼굴은 점점 묘하게 일그러져 갔다.
털썩, 털썩!
그들은 무릎을 꿇으며 동시에 외쳤다.
"주... 주공, 우리들이 잘못했습니다!"
전사들의 안색은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중원에 들어서면서 가는 곳마다 풍파를 일으켰다. 고향을 잃은 울분과 오랫동안 오랑캐라고 멸시받았던 한이 격발되어 사정없이 흑도인들과 흑은 지방의 패주들과 싸움을 벌인 것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들의 주공인 단후린 또한 중원인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 이유 때문에 단후린이 화가 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하하하! 정말 그대들은 너무했다. 그대들에게 패한 자들은 폭풍전사라는 말만 들어도 벌벌 떨고 있다. 핫핫핫,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나는 그대들이 이렇게까지 강해졌을 줄은 몰랐다."
"오오!"
"주공!"
폭풍전사는 모두 한 마디씩 탄성을 질렀다.
단후린이 크게 꾸짖는 줄만 알았는데 이외로 칭찬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와아!"
"와아아아아!"
폭풍전사의 함성이 천궁산을 떠나갈 듯 울렸다. 벅차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그들의 함성은 그칠 줄 몰랐다.
이윽고, 단후린은 손을 흔들어 그들을 제지한 후 엄숙하게 말했다.
"하나 이제부터 그대들은 중원무림의 골칫덩이가 아니라 협골전사(俠骨戰士)로서 이름을 떨쳐야 한다. 철곡흑묘족이 위대한 부족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중원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중원의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단후린의 말은 자자구구 전사들의 마음에 선명하게 각인되고 있었다.
"그대들은 새로운 고향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고향은 중원이다. 이 대중원에 그대들의 영원한 고향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동안 익힌 위대한 용자의 힘과 기예를 중원을 위해 정의롭게 써야 하는 것이다."
단후린은 잠시 장내를 둘러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알다시피 중원은 초원족의 침략으로 강토가 유린되었다. 따지고 보면 그대들도 원의 피해자나 다름이 없다. 중원과 힘을 합쳐 이 땅의 몽고족을 몰아낸 다음 그대들은 진정한 중원의 주인으로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폭풍전사, 그들의 가슴이 마구 요동친다. 그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야망이며, 삶의 목표, 희망이 될 것이었다.
그들은 이제까지 고향이 사라졌다는 상실감으로 인해 좌절하고 상처받았던 고독한 영혼들이다. 이제 그들은 뚜렷한 목표를 찾았다. 동시에 그것은 채찍이 되고 지표가 되었다.
"와아아아아아!"
전사들은 봇물터지듯 터져나오는 희열에 몸을 떨며 함성을 질렀다.
찬특치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함성을 발하는 폭풍전사 모두의 눈에서도 두 줄기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혈구대사는 몸을 돌렸다.
"빌어먹을, 아미아미타타불이다."
비록 장난스러운 불호였으나 그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인정이라고는 느껴보지 못한 일대괴승의 가슴도 단후린의 불 같은 의지와 폭풍전사의 함성에 봄눈녹듯 녹아 버린 것이다.
⑤
여인에게는 여인만의 직감이라는 것이 있다.
양모운 역시 그러했다. 그녀는 아라사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이미 그녀가 남장을 했지만 여인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뭐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단후린을 대하는 아라사의 태도나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다.
양모운은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결코!'
양모운의 눈이 신비하게 반짝였다.
알 수 없는 여인의 마음처럼 밤은 자꾸만 깊어가고 있었다.
폭풍전사대는 천기서여의 주변을 경계했다.
언제 우문천도의 수하들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가운데 건물에 있는 작은 방안에 환하게 밝혀져 있는 촛불을 바라보며 단후린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폭풍전사와 더불어 앞으로 해야할 일을 조용히 정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중원에 나온 지도 어언 일 년이 넘고 이 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아직도 자신은 부친의 유언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초조했다.
그러나 폭풍전사를 만난 순간 가슴 속에서 불꽃처럼 강렬한 용기가 다시 솟아남을 느꼈다.
그는 지금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대계를 세워야 할지 부심하고 있었다. 단후린은 그 동안의 강호 경험을 토대로 천하정세를 분석했다.
당금무림의 판도는 크게 나누면 삼정(三鼎)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금사맹(金獅盟).
혈부문(血府門).
구파일방(九派一 ).
이 중에서 금사맹과 혈부문의 세력이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파일방을 포함시킨 것은 비록 봉문상태라고 해도 수백 년간 무림의 대들보 역할을 해왔으므로 잠재력은 무궁하기 때문이었다.
단후린은 소림의 대륜선사와 묵약이 있었다.
그것은 천하대세에 관한 것이었으며 현재 비밀리에 힘을 모으고 있는 어떤 단체에 관한 것이었다.
단후린의 눈은 강한 의지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는 침착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 푸른 이리의 후예들... 너희들이 초원으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았다."
단후린은 벌떡 일어서 방을 서성였다.
그는 왠지 마음이 착잡했다. 그의 머릿 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마음 속의 의혹을 지울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우문천도, 대체 그 자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인가? 모맹극과 손을 잡고 멸몽위한련을 붕괴시킨 장본인이면서도 아직 그 자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짚이는 것이 없다니.......'
우문천도는 어쩌면 가장 무서운 효웅일지도 몰랐다.
석등 뒤에 아라사가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는 별들은 점점 흐려져 가고 있었다.
석등 뒤에 있는 아라사를 지켜보던 단후린은 흠칫했다. 아라사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단후린은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라사, 무엇이 그다지도 괴로운가?"
아라사의 섬세한 교구가 휘청하는 듯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급히 소매로 얼굴의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주인님."
단후린은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안으며 말했다.
"아라사,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
"......."
"나는 너를 한 번도 하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아라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뽀얀 안개가 깔려 있었다.
아름다운 푸른 눈은 밤이어서인지 검게 보인다. 그것은 슬픈 눈이다. 그 눈 속에 별이 비친다.
"전... 저는......."
아라사는 떨리는 음성으로 무엇인가를 말하려 했으나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단후린은 아라사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신비로운 미소를 떠올렸다.
"알고 있다, 아라사. 너의 마음을."
"아...."
동시에, 아라사는 단후린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그녀의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내렸다. 넓디넓은 단후린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그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아라사에게는 숙명적인 비극이 있었으니,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라사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전... 저는 결코 주인님과 어울릴 수 없는 더렵혀진 몸인 걸요.'
그때 단후린의 부드러운 음성이 그의 귓속에 스며들어왔다.
"아라사,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너를 이해한다. 네가 처해졌던 환경은 결코 너의 뜻이 아니었다는 것을. 너는 이제 새로 태어난 몸이다. 과거는 무의미한 것, 너는 나에게 언제나 순결한 여자다."
이미 아라사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단후린은 침착하게 말했다.
"저...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몇번이라도 다짐을 받고 싶은 듯 아라사는 애처롭게 말했다.
단후린은 눈물이 고여 있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자 가슴이 뭉클했다.
'너는 아름다울 뿐아니라 그 누구보다 영혼이 맑다. 아라사, 너를 버리지 않겠다. 그것은 단후린의 약속이다.'
이런 생각이 마음 속에서 떠올랐으나 단후린은 말하지 않았다. 다만 부드럽게 그녀의 뺨에 젖어 있는 눈물을 닦아 주며 말했다.
"물론이다, 아라사. 너는 나에게 있어 언제나 깨끗한 여자다."
"아!"
아라사는 바르르! 떨며 단후린의 품에 안겼다.
단후린은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보며 더욱 힘차게 끌어안았다.
유성 하나가 꼬리를 끌며 떨어져 내린다.
한 그루의 꽃나무 뒤, 그곳에서 한 여인이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시원스러운 봉황눈에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 얼굴을 반쯤 면사로 가린 여인이었다. 그녀는 바로 양모운이었다.
지금 그녀의 손톱은 나무에 박혀 있었다. 그녀는 미처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입술을 피가 나도록 꼬옥 깨물고 있었으며 눈은 강한 불신의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그녀는 단후린과 아라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안돼, 그렇게는... 그 누구도 나에게서 저 분을 빼앗아가지 못해!'
그녀의 섬섬옥수가 나무 속으로 깊숙이 박히고 있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