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사람 사는 곳에서는 늘 남녀가 부딪치기 마련이다. 어디 부딪치는 것만으로 끝나겠는가? 무릇 온갖 부딪침에는, 가벼운 접촉사고도 있고 대형 참사도 있고 혹은 뺑소니 사고도 생기는 법이다. 보험으로 해결하는 사고처리도 있고, 노상에서 현금 주고 해결 보는 방법도 있다. 혹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흐지부지 뒷처리를 미루는 경우도 존재한다.
인생사 수많은 일들이 쌓여 있겠지만, 그 중의 으뜸은 남녀간에 정분나는 문제가 아니겠는가. 이 화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이재용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스캔들]은 상당히 기분 나쁜 영화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시대는 수백년전 조선 말기이지만, 정분나는 남녀들이야 시대가 어느 때든, 처음 작업 들어가는 설레임은 여전하고, 숨겨진 비장의 노하우를 이용한 고수들의 화려한 초식은 관전자들을 몰아의 경지로 몰아넣는다.
[스캔들]을 재미있게 만드는 첫번째 요소는, 고수들의 화려한 작업 방법이다. 더구나 상대가 9년동안 수절한 정절녀라면 작업의 목표는 드높아지고 치밀한 병법이 동원될 것이며, 만약 목표를 이룬다면 그 성취감은 하늘을 찌를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렬지사]의 원작은 1782년 출간된 프랑스 작가 쇼테를로 드 라쿨로의 서간체 소설 [위험한 관계]라는 것이다.
[스캔들]의 원작 소설은 이미 로제 바딤의 [위험한 관계](1959년), 스티븐 프리어즈의 [위험한 관계](1988년), 밀로스 포먼 감독의 [발몽](1989년), 로저 컴블의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1998년)으로 시대와 국적을 달리하여 영화화되었다. 이 원작소설의 그 무엇이 시대와 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 흥미를 끌어모으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빔 벤더스가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영원한 삶을 사는 천사들의 입을 통해 술회한 것처럼, 공기를 느끼고 쾌락을 맛보고 구체적으로 손끝에서 만져지는 사물들의 감촉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위대하다. 그러나 시행착오와 결점으로 가득찬 모순투성이의 삶이기도 하다. 인간의 삶을 지탱시켜 줄 수 있는 가장 큰 힘 중의 하나가, 남녀간의 사랑이다. 모든 사랑은 어떤 상태든지 유혹으로부터 시작된다.
[스캔들]을 지배하는 정서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우리들의 흥미를 자극할 남녀간의 유혹의 드라마이며, 그 팽팽한 줄다리기의 긴장감을 즐기는 선수들의 드라마이다. 난공불락의 성을, 온갖 작업을 동원하여 함락한 뒤 쓸개처럼 버리는, 거짓 사랑과 음모, 배신, 갈등의 이야기는, 조금 과장한다면 한 국가의 흥망성쇠 이야기와 견주어 결코 비중이 작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수들의 작업과정은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의 노회한 전략은 탄복할만 하다. 18세기 프랑스 원작 소설을 엄격한 유교주의가 지배한 조선시대로 옮겨 놓고 남녀상렬지사에 대해 묻는 것은 재미있는 아이디어다. 깔끔한 연출과 뛰어난 배우들의 호연이 맞물린 [스캔들]을 보는 재미를, 어찌 선수들의 작업 탐식으로만 제한할 수 있겠는가.
[스캔들]은 [조선남녀상렬지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처럼, 엄격한 유교주의로 남녀칠세부동석을 주장하던 조선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은밀한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18세기 프랑스 원작 소설이 무리없이 번안 각색된 시나리오도 훌륭하다. 후반부에 다소 늘어지는 결점은 있지만, 같은 원작을 모태로 하고 있는 다른 영화와 비교해봐도 결코 손색이 없다.
작업꾼 바람둥이 조원(배용준 분)이 구사하는 병법은 사실 새로운 것은 없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그는 가장 보편적인 유혹의 기술, 뛰어난 언변과 진심을 가장한 편지로, 첫날밤도 치르지 못한 채 남편이 죽자 9년동안 수절하고 있는 정절녀 고암 윤길진 대감 며느리 숙부인 정씨(전도연 분)의 마음을 뒤흔든다. 또 예고없이 그녀가 있는 곳으로 출몰하여 우연을 가장한 인연의 끈을 강조한다. 작전을 짜서 그녀를 곤경에 빠트린 뒤 흑기사처럼 나타나 그녀를 위험에서 구해준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없이 사용된 뻔한 수법 아니겠는가. 고수들의 병법 첫 페이지에 실려 있는 상식적 수준의 방법이지만, 그러나 조원은 노회한 표정연기와 어투로 파워 있게 상대방에 접근한다.
[스캔들]은 캐릭터의 드라마이다. 냉혈호색한 조원은 과거에 급제했지만 초야에 묻혀 시화를 즐기며 살아가는 풍류남아다. 그는 결코 여자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바람둥이로 입신하는데 필요한 필수 조건, 능력은 있되 한 여자에 정착하지 않는 부평초같은 기질을 가진 남자다. 조원이 무너뜨리려고 하는 정절녀 숙부인 정씨는 나라에서 열녀문까지 하사받은 정절녀이고, 낮에는 환자들을 위해 자원봉사하며 밤에는 천주교 집회에 나가 신앙을 쌓는 모범적 캐릭터이다. 이질적인 대립항이 마련되었으면 그들간의 화학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그 중간에 있는 존재가 요부 조씨부인(이미숙 분)이다. 그녀는 조원과 숙부인 정씨의 게임에 내기를 걸고 수시로 중간점검하면서 질투와 갈등요소를 삽입하여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만약 조원이 숙부인 정씨를 함락하면, 조원이 [늘 바랬던 것, 하지만 가질 수 없었던 그것]을 상으로 주겠다고 제의한다. 그것이란 조씨부인 자신의 육체다. 겉으로는 사대부 집안의 화려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부인이지만 안으로는 옆집 좌의정 막내아들을 유혹하여 농염한 정사를 벌이고, 남편이 소실로 들여놓는 소옥을 조원이 함락하게 하여 아이를 갖게 함으로써 남편에게 배신감을 안겨주려는 치밀한 전략을 수립하는 책략가이기도 하다.
조씨부인은, 복수는 상대가 모르게 이루어져야 쾌감이 극대화된다면서 소실을 들이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을 제 3자인 조원의 손(아니 다른 부분)을 빌어 되갚는다. 또 조원이 숙부인 정씨를 정말 사랑하게 되자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을 책략을 꾸민다. 이렇게 조씨부인의 존재는 [스캔들]의 방향타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이다.
[스캔들]은 전체적으로 조선조 유교사회, 나아가 현재의 우리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깔려 있다. 그것은 이중성이다. 성에 대한 이중적 잣대, 삶에 대한 가식적 태도의 이중성이야말로 [스캔들]이 깨부수려고 노력하는 최고의 전복적 가치다.
사대부집 안방마님 조씨부인의 이중성은, 옆집 숫총각을 유혹하여 질펀하게 정사를 벌이면서도 자신을 진정으로 사모했던 조원에게는 절대 몸을 허락하지 않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 소실로 들어오는 [청초하고 때묻지 않은, 막 피어난 꽃봉우리같은] 소옥은, 사실상 품행이 몹시 방탕한 여자로서 이 남자 저 남자 가리지 않고 쾌락에 탐닉한다. 그녀의 방중술을 지도하는 조원의 말대로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 섹스의 모범생이다.
후반부에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너무 작위적으로 결말을 끌고 갔기 때문이다. 뛰어난 무공까지 겸비한 조원이 질투심에 사로잡힌 숙부인의 시동생으로부터 등 뒤에서 칼을 맞는 설정도 납득이 가지 않고, 비극적 상황에 처한 두 남녀의 운명이나 결국 회람된 풍기문란 화집으로 망명길을 재촉하는 조씨부인의 결말 모두 급하게 이루어져 있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끝 부분을 닫았다면 훨씬 짜임새 있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스캔들]은 작업과정의 긴장감 있는 공수대결도 흥미를 끌지만 그것이 의도하고 있는 바, 겉치레에 치우친 이중적 의식을 확 벗겨버리는 전복적 가치의 추구가, 진정한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적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장치, 섹스 코드가 지나치게 전면으로 드러나 있기는 하지만. 특히 [정사]에 이어 이재용 감독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아트디렉터 정구호의 손길에 의해 마무리 된 의상, 소품, 화면의 칼라 감각은 음탕하고 질펀해서 자칫 농염하고 파렴치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매우 세련된 스타일로 포장하는데 성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