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내린 비 때문일까. 아침 산길은 유난히 초록내로 가득하다. 이른 아침 만나는 하늘과 땅과 초목, 맑고 밝은 마음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온통 축복이고 감격이다. 나뭇잎에 다소곳이 앉아 기다리고 있는 이슬방울이 햇살 줄을 타고 올라갈 미지의 세계를 향해 조용히 기도를 하고 있다. 발자국 소리에 놀란 산새가 급히 몸을 가누는 통에 나뭇잎도 놀라 잡았던 손을 놓아 떨어지고 만다. 얼마만인가. 이렇게 여유롭게 산길을 걷는 것이. 무엇이 그리도 바빠 이만한 여유도 가질 수 없게 했던 것일까. 그러나 정작 원인을 찾다보면 내 게으름이고 끈기 없음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일 뿐 하려고만 하면 시간은 만들 수도 있고 또 한 번으로 쉽게 중단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스스로에게 최면이라도 걸 듯 시간이 없다, 없다 하면서 그 시간 없음에 스스로 묶이고 쫓겨 아예 할 엄두도 못 내고 만다. 그런데 이렇게 오늘처럼 새벽 일찍 일어나 뒷산을 오르고 보니 그 상쾌함을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일상을 가만히 돌이켜 보면 하루하루가 다람쥐 채 바퀴 도는 것 같은 되풀이일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나도 그냥 젖어버리기 마련이고 그것은 곧 습관이 되어 굳어져 버린다. 산다는 것이 다 그러려니 여겨 버린다. 어떤 특별한 것에 목숨을 걸만큼 몰두 하지도 못 하고 그저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는 것도 내 삶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소중한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린 날 아이들과 어울려 땅따먹기를 하곤 했다. 각기 자기 발 앞 땅에 선(線) 하나씩을 긋고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이긴 사람이 그 선으로부터 자기 뼘만큼씩 부채꼴로 그려가며 영역을 확보해 가는 놀이였다. 가위 바위 보를 무엇보다 잘 해야겠지만 손가락이 긴 사람이 그만큼 더 유리한 게임이었다. 그렇다고 가위바위보에 어떤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손이 작다고 그걸 늘릴 수도 없는 일이니 자연 되는대로 해야만 할 따름이었다. 손이 작으면 작은 만큼 더 열심히 이겨서 여러 번을 그려가야 내 땅이 넓어질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확보한 땅인데 해가 지고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우린 아무 미련 없이 훌훌 털고 일어섰던 것이다. 이건 내 땅이니 내일도 내 땅이라고 확인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냥 홀홀히 일어나 흙먼지까지 털어내 버리고 언제 그런 걸 했느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가버리는 것이다. 산다고 하는 것도 사실은 이런 땅따먹기 놀이 같은 게 아니고 무엇이랴. 그냥 그렇게 일어서 버릴 수도 있는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하고 부득부득 나대신 다른 사람을 데려다 인계하고 이건 내 것이니 지켜 달라고 하거나 이걸 네가 가지라고 넘겨주곤 하는 것이다. 땅 위에 그린 선이 어찌 그의 소유를 정하는 것이 되랴. 그게 놀이면 놀이로 끝내야 마땅하련만 우리 삶에선 어떤 이유로든 점유 했었다는 것을 내세워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현대가 아니랴. 하나 없이 그대로 놔두고 일어서야 할 때가 온다는 건 생각조차 안 하려 한다. 세상 일이 다 그런 게 아닐까. 밤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우린 낮만 살 것처럼 땅 따먹기에 열을 올린다. 문득 시 한 편이 생각난다.
시를 쓸 때는/아까운 말들도/곧잘 버리면서/삶에선 작은 것도/버리지 못하는/ 나의 욕심이/부끄럽다/ 열매를 위해/꽃자리를 비우는/한 그루 나무처럼/아파도 아름답게/마음을 넓히며/열매를 맺어야 하리/ 종이에 적지 않아도/나의 삶이/내 안에서/시로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맑은 날이 온다면/나는 비로소/살아 있는 시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 이해인의 <삶과 시> 중
버린다는 것이 사실 얼마나 어려운가. 버린다는 것은 내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뤄지는 일이다. 내 것인데 그걸 어떻게 버린단 말인가. 그런데 사실은 버리는 것도 주는 것도 아닌 원래의 자리로 가져다 놓는 것이고 내가 빌려 쓴 것을 되돌려 주는 것이 아니랴. 그런데도 우린 그게 다 내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내 시간, 내 삶, 내 것, 그러나 자연 앞에 서면 내 실체를 보게 된다. 자연은 내 삶을 보게 하는 거울이다. 싹이 트고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런 후엔 잎을 떨쳐내고 겨울을 맞거나 아주 생을 마감하는 초목 앞에서 나도 그들과 결코 다름없음을 배운다.
맺힌 이슬을 조심스레 담고 있는 나뭇잎을 본다.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과 떨어지지 않게 꼭 붙들어 주고 있는 모습이 한껏 아름답다. 하지만 그런 저들이지만 어느 순간 햇살이 그들 사이로 내려서면 나뭇잎은 붙잡고 있던 손을 슬며시 놓는다. 이슬은 주저함 없이 햇살 위에 올라탄다. 그것이 그들의 삶이고 순리이고 자연의 섭리요 질서다. 사람도 이에서 더도 덜도 아니다. 그렇게 보내고 떠나가는 삶의 모습을 되풀이 하면서 말없는 가르침으로 우릴 바라본다. 아직도 모르겠느냐고. 그런데도 오늘 나는 여전히 땅따먹기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산다. 누군가 보이면 다가가 땅따먹기를 하자고 하고, 누구든 나를 바라만 봐도 금방 그의 뜻을 알아채고 그러자고 한다. 조금이라도 더 내 땅을 만들려 한다. 늘 낮만 계속될 것처럼.
나는 언제나 어린 날의 아이만큼이라도 버릴 줄도 일어설 줄도 아는 때에 이를 것인가. 벌써 저만치 내 인생의 밤이 다가와 있을 텐데.
(최원현 님의 수필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