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도 그 입맛에 맞는 재롱에 밤이 어떻게 간 줄 모르도록 한다. 아이는 주는 사랑만큼 환하
게 자랄 게 아닌가,
이튿날 남제주의 송악산 항구에서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를 찾는다. 일정을 느긋하게 잡
지 못하는 기사의 마음 때문이랄까 아니면 우리네가 여기저기 구경꺼리를 펼치길 좋아서
일까 송악산의 산보길을 버리고 배에 오른다.
수평선으로 납작하게 엎드린 가파도를 지나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를 찾는 사람들이 마라도 곳곳에 빼곡하다. 한국인은 반만년 동안 겪은 전쟁의 상흔이 알게 모르게 가슴에 응어리로 엉켜 정착생활의 한풀이로 땅에 집착하는 공통 점이 있지 않을까. 가파도는 바다에 잠긴듯 보일듯 말듯한 자세로 스쳐 지난다.
마라도 항구는 만원이다. 내리는 사람, 배에 오르는 사람이 좁은 승선로를 가득 메운다. 태
평양의 거대한 바다를 여는곳이면서 남반구나 동남아를 거쳐 세상으로 나아가는 전초기지
이자 이정표가 되는 마라도는 이미 명소다. 거친 파도와 바람으로 다져진 섬 곳곳이 단단한
암석으로 뭉쳐져 영원히 최남단 국토점을 지켜 줄 마라도는 어쩌면 우리에게 또하나의 세
상을 선보이는 셈이다. 젊은이들에게 마라도는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줄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최남단 표석 앞 주막에서 막걸리 한잔과 잡어 회 두접시
영토의 끝점을 찍고 섬 서해안을 돌아 간다. 짜장면 간판이 이채롭지만 때를 맞추지 않아
마라도 짜장면은 맛보지 못한다.
한바퀴 휘 돌아 다시 선착장으로 오는 데는 오랜 시간을 요하지 않는다. 작은 섬 하나가
바로 거대한 바다를 거느리는 근거가 되니 중요한 요충이 아닌가. 그래서 작은 섬이라도 분
쟁의 시발이 되어 사람들의 감정의 무게를 더해 주는 게고.
어려운 시절 버려진 소수의 한국인들이 모진 자연과 함께 척박한 삶을 이어 온 마라도는 이
제 거대한 관광객 무리들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이어간다. 거친 바람에 나무도 자랄
수 없고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땅에서 가난한 삶을 살았을 선인들과는 달리 붕어빵이 불티나
게 팔리고 막걸리에 횟집. 그리고 자장면과 민박집, 순환 전기차가 달리는 마라도 공원이
된 게다. 짧은 시간 한바퀴 걸어본 마라도는 여객선 뒤 허연 물보라 너머로 멀어진다.
뭍과 같은 제주 남해안 횟집앞 바닷가에 아이를 데리고 간다. 먼 바다 너머까지 벋어 갈 미래의 아이는 바다의 유연함과 너른 포용력을 닮았으면 한다.아이는 출렁이는 바닷물을 보
고 멀리 대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앞에 환한 웃음으로 화답한다.
온통 유리로 만드는 세상에 간다. 꽃도, 새도 물고기에 일상의 생홀 용품에 이르기까지 다
양한 유리제품은 휘황찬란한 빛을 내쏟는다. 자연에서 뽑은 유리도 변신을 거듭하여, 천연
다이어몬드보다 더 요염하고 화려하다. 비바람에도 계절에도 늘 변함없을 화려한 유리 꽃
밭의 여러가지 꽃들은 유리인 것을 잊게할 만큼 사실적이고 섬세하다. 장인의 놀라운 솜씨
가 꽃밭에 나비가 날아들게 한다.
언젠가 사돈네가 제주도에 왔다가 사 두었다는 귤밭에 간다. 귤이 드문드문 몇개 보이는데
관리자가 자신의 귤밭으로 안내한다. 풍성하게 영근 귤을 처음으로 따 본다. 열매가 익기까
지의 노고는 덮어두고 수확의 기쁨만 만끽하려니 그동안 땀흘린이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다.
쉽게 손에 넣는 것 같아도 노란 귤 한알이 되기까지 정성이 눈에 선하다. 그 정성이 가지마
다 주렁주렁 풍성한 열매로 남아 탐스럽고, 흐뭇함을 안겨 주기에 그동안 흘린 땀과, 노고
는 보상을 받는 게 아니랴.
타임머신을 탄다.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가난한60년대로 되돌아 간다. 푸시킨의 시문처럼
누구나 느끼는 것은 '지나간 것은 아름다운 것'으로 승화되어 그때의 고통과 눈물보다는 아
련한 추억으로 되돌아 가고도 싶은 회한이 남는다. 가난으로 배불리 먹지 않았어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옛날은 사람들의냄새가 풍긴다. 관람하는 동안 잔눈발이 날려 전시장 바깥
을 참 조용하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든다. 동심을 일으키는 교실, 담뱃가게 미장원 사진관
등의 낯설지 않는 소도시 풍경과 허름한 집안의 대가족들 모두가 그 시대의 사람들로 되돌
아 간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게 모두 역사로 쌓이기에 지금도 우리는 역사의 주인공으로의
배역을 충실하게 감당하면서도 역사를 느끼는 현장에서 과거로 생각을 돌리고 있다.
화풍이 시원하여 그림인지 현실 상태인지를 착각하게 하는 묘한 그림들이다. 그림과 관람
자가 또 하나의 그림을 창조할 수 있도록 살아 움직이는 듯한 묘사가 놀랍다. 여기저기 함
께 서서 그림 속으로 들어가 고정된 초상화가 되는 재미를 주어 시간의 흐름을 잠시 정지한
다. 그림은 특이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어지간히 걷고 시장기가 돌자 말고기 식당으로 간다. 교통 수단으로서의 말만 생각하다가
육류용 제주 말농장 얘기는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가축이란 테두리에 드는 것이지만, 말
고기를 처음 대하니 별로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처음이라서 먹어봐야 한다는 권고에 한점
먹어보니 익숙하지 않는 맛이어서인지 썩 내키지는 않기에 돼지고기 조금에 만족한다.
제주의 기획 관광코스가 엄청나게 늘어서 위대한 자연관광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곳곳이
개인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관광코스가 무척 다양하고, 복잡하다. 세계 자연유산
으로서의 도약을 꿈꾸는 데 걸맞는 자연과의 조화가 아쉽지 않으랴.
아기가 좋아하는 테디 곰 전시장에 간다. 역시 아이는 제 수준에 맞는 인형의 무리에 섞여
연신 함성이다. 감탄을 잘 하고 감성이 풍부해져서 늘 풍요로움을 느끼면서 어려움을 이겨
나가는 삶이면 아름답지 않을까. 동심은 그래서 모든 사람을 감동의 세계에 쉽게 몰입시키
는 게다.
허브 농장의 찜질방이나, 성인을 위한 전시장, 유리 세상 어느 곳에나 빙빙 돌다보면 기획 전시장은 그게 그런 게 되고 만다. 제주가 관광으로 우뚝 서려면,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는 개발의 적정선이 지켜져야 할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