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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아래 글은 제가 예전에 영재반 중학생들에게 교양강좌를 하기 위해 다른 분들의 여러 글들을 모아서 정리한 것으로 별로 읽기 쉬운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 참고되는 분이 계실까 하여... 혹 그림이 있는 원래버전을 보시려면 첨부한글 파일 다운해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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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함은 단순한 것의 반대이다. 그런데 복잡한 것은 무질서한 것과는 다르다. 사
실은 아주 질서 있는 것과 아주 무질서한 것의 경계에 있는 것이 복잡하다고 한다.
또 복잡한 것들은 단순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결코 단순한 것들의 성질만
으로 전체의 성질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다른 정의로는 어떤 것을 기술하
는 말이 복잡할수록 그것이 보다 복잡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서두의 말로 복
잡성을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지만 이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조금씩 복잡성에 대
해 감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과학의 가장 중요한 연구분야의 하
나가 복잡성의 과학이 될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복
잡성의 과학이 무엇인지 대략은 알아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1. 미분과 미분방정식. 선형성과 비선형성.
과학은 자연현상을 설명하려고 하고 또 그 미래를 예측하려고 한다. 어떤 양이 시
간에 따라서 변하는 것을 설명하는 학문을 동역학(dynamics)이라 한다.
여러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경우는 직선 위를 움직이는 운동이다. 이런 경우 위치
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을 기술하고 왜 변하는지 뉴턴의 운동방정식으로 설명
할 수가 있다. 이 경우 아주 짧은 시간 간격 dt 동안에 위치가 dx만큼 변했다면 이
순간의 속도는 dx를 dt로 나누면 될 것이다. 이를
v= dx/dt (1)
라 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요즘 고등학교 이과반에서 수학시간에 배우는
미적분에서의 도함수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x가 t의 함수로 주어져 있을 때
속도를 구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한편 거꾸로 v가 주어져 있을 때 x를
구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적분한다 또는 미분방정식을 푼다고 말한다. 그래서 변화
를 설명하는 동역학은 주로 미분방정식을 푸는 경우가 많다. 가장 간단한 경우로
t가 독립변수이고 x가 종속변수일 때 가장 간단한 미분방정식은 다음과 같은 꼴이
된다.
dx/dt = (x와 t의 함수) (2)
이 미분방정식은 선형일 수도 있고 비선형일 수도 있다. 우변의 함수
가 x에 대해 선형이면 선형미분방정식이 된다.
2. 혼돈(chaos)
수도꼭지를 아주 조금 열 때 나오는 물줄기는 단면이 둥글고 그 흐름이 규칙적이
다. 그런데 수도꼭지를 좀 더 열면 물줄기가 가닥을 이루며 그 모양이 불규칙적이
며 예측하기 어려운 거동(행동을 보여 준다). 앞의 규칙적인 흐름을 층류(laminar
flow)라 하고 뒤의 불규칙적인 흐름을 난류(turbulent flow)라 부른다. 이 흐름을 기
술하는 미분방정식은 비선형인데 흐름의 속도가 커지게 되면 방정식 속의 비선형항
의 역할이 커져서 난류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류는 비선형항의 역할을 보여주는 혼돈(chaos) 현상의 한 예이다. 혼돈은 혹독
한 기상 상태, 하천의 급류, 사람의 심장에서 나타나는 불규칙적인 리듬, 주식가격
의 난데없는 폭락과 같이 우리 주변에서 불시에 나타난다. 1963년 미국 기상학자인
에드워드 로렌츠(1917- )가 날씨의 변화를 설명하는 모형을 컴퓨터로 계산했을 때
처음의 조건(초기조건)이 조금만 달라도 이후의 변화가 판이하게 달라짐을 발견하
였다. 그래서 좀 익살스럽게 얘기하자면 우리나라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아서 생기
는 대기의 변화가 얼마 후 미국에 큰 폭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해서 이 초기조건
에의 민감성을 흔히 ‘나비효과’라고 부른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 무질서하기만 해
보이는 혼돈적인 거동 속에서도 계의 변수들은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의 공간 속에서
어떤 모양(pattern)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나비모양인 것이 ‘나비효과’라고 부르
는 다른 이유이다.
3. 질서와 무질서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질서가 있다 없다는 표현을 가끔 사용한다. 이를테면 군인
들이 줄을 맞추어 그리고 발을 맞추어 행진하는 것은 질서가 있다고 말하고 이에
비해서 등산할 때 아무렇게나 걷는 것은 보다 무질서하다고 이야기한다.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이나 정보이론에서 말하는 질서와 무질서의 개념은 이를 포
함하는 것인데 이를테면 동전 1000개가 모두 같은 면이 위를 향하고 있다면 질서가
있다고 하고 아무런 규칙 없이 마구잡이로 다른 면이 위를 향하고 있다면 보다 무
질서하다고 말한다.
과학에서 무질서의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이 엔트로피(entropy)이다. 엔트로피는
계가 처한 상황에서 가질 수 있는 배열의 수를 O 라 하면 여러분이 고등학교에서
배우게 될 로그 함수를 잘 모르겠지만 log O 에 비례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예를
들면 주사위를 한 개 던질 때 가능한 배열의 수는 6가지이고 두 개 던질 때는 36가
지인 것은 여러분들도 다 알 것이다.) 물리학이나 정보이론에서 엔트로피의 음의 값
을 정보(information)이라고 정의한다. 동전을 두 개 던질 때의 경우의 수보다 주사
위를 두 개 던질 때가 엔트로피가 크고 정보는 작다. 즉 우리는 그 결과에 대해 예
측할 때, 맞을 확률이 적은 것이다.
물질이 열을 흡수하면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분자들은 보다 활발하게 운동한다.
모두 정지해 있는 것은 질서가 있는 것이고 운동이 보다 활발할수록 보다 무질서하
며 엔트로피가 높으므로 열의 흡수하면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구성원이 많아지면 보다 무질서할 것이다. 그래서 입자 수가 증가해도 엔트로피
는 증가한다.
엔트로피와 관련해서 자연계에는 유명한 열역학 제2법칙이란 것이 있는데 이는 고립
계의 엔트로피는 변함 없거나 증가하지, 결코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이 온도가 낮
은 데서 높은데로 흐르거나, 물질이 농도가 낮은 데서 높은 데로 확산되는 일이 없
는 것은 그 과정이 엔트로피를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심할 것은 열이 온도
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를 때 높은 곳의 엔트로피는 당연히 줄어든다. 증가하
는 것은 전체 계의 엔트로피이며 이 경우 온도가 낮은 곳의 엔트로피의 증가량이
크기가 높은 곳의 감소량보다 크다.
그런데 생명현상은 완전히 물질이 마구잡이로 분포되어 있지 않아서 질서가 있다.
이는 생명체가 고립계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생명체는 물질과 에너지를 들이고
낼 수 있는 열린 계이다.
4. 혼돈 주변의 복잡성
그런데 비선형인 동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계에는 혼돈 대신에 질서를 형성하
는 복잡성(complexity)의 세계가 존재한다. 이 때의 복잡성은 단순한 질서와 완전한
혼돈 사이에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인간의 뇌나 생태계 같은 자연현상과 주식시장이
나 세계경제 같은 사회현상은 결코 완전히 고정된 침체상태나 완전히 무질서한 혼
돈상태에 빠지지 않고 혼돈과 질서가 균형을 이루는 경계면에서 항상 새로운 질서
를 형성한다.
복잡성에 도전하여 학문적 성과를 거둔 대표적 인물은 벨기에의 화학자인 일리야
프리고진(1917- )이다. 그는 1977년 열린 계를 기술할 수 있는 비평형 열역학의 비
선형 과정에 대한 연구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열역학에서 비평형 상태의 계는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에너지의 양에 따라 평형에 가깝거나 또는 평형에서 먼 상태
가 된다. 계에 작용하는 열역학적 힘이 선형적이면 평형에 가까운 상태가 되고, 비
선형적이면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가 된다.
프리고진은 열역학적으로 평형에서 먼 상태에 있는 계에서 질서가 갑자기 자연발
생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의 기초가 되는 것은 비선형성이라는 결론을 얻고 "요동을
통한 질서(order through fluctuation)"라고 명명된 이론을 발표했다. 비평형 상태
의 계는 불안정하므로 끊임없이 요동한다. 작은 요동은 비선형과정에 의해 거대한
요동으로 증폭된다.
요동이 증폭되는 것은 바로되먹임(positive feedback)의 결과이다. 바로되먹임이란
어떤 원인의 결과인 어떤 양의 증가가 다시 새로운 원인이 되어 어떤 양을 커지게
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라고 일단 대략 알아두자. 증폭된 요동이 격심해지면
종래의 구조는 파괴되지만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과정을 통해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질서가 자발적으로 출현한다. 프리고진은 이와 같이 미시적 요동이 평형에
서 먼 계에서는 새로운 거시적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을 발견하고, 요동을 통한 질
서이론을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비평형 상태에 있는 계에서 비선형 과정에 의해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구조를 무산구조(dissipative structure)라고 명명했다.
무산구조는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 명칭이다. 무산과 구조는 양립될 수 없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생물이나 사회처럼 열린 계는 생존을 위해 밖으로부터 에너지
를 받아들이고 엔트로피를 생산하여 주위환경으로 무산시킨다. 요컨대 열린 계는
에너지를 소모(무산)하여 자기의 질서(구조)를 지킨다. 엔트로피가 단순히 무질서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비평형 조건에서는 엔트로피 그 자체가 질서의 씨앗이
된다는 의미이다.
프리고진이 무산구조를 보여주기 위해 제시하는 자기조직화의 사례는 유체역학,
아메바의 활동, 무기화학 작용, 그리고 생물학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생명의 본질을 무산구조로 설명함에 따라 찬반논쟁이 일어났으며 프리고진은
일개 과학자가 아니라 사상가로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가 펴낸 "혼돈으로부
터의 질서"(1984)와 "확실성의 종말"(1996)에는 결정론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우연을 근거로 하는 확률론적 입장에서 자연을 이해하는 패러다임이 제시되
어 있다. 프리고진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 우리는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더 이
상 과학이 확실성을 의미할 필요도 없고, 확률이 무지를 뜻하지도 않는 새로운 합
리주의가 출현하고 있다."
5. 복잡성의 과학
사람의 뇌나 증권거래소처럼 복잡성을 지닌 계의 행동은 인간의 능력으로 파악이
불가능한 수많은 변수에 의해 결정된다. 컴퓨터가 등장할 때까지 비선형계의 연구
가 지지부진했던 이유이다. 컴퓨터를 사용하여 복잡성을 지닌 계로부터 골라낸 수
천가지의 변수로부터 과학자들은 하나의 획기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단순한 구성요
소가 수많은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복잡성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
이다. 복잡성은 단순성이 그 기초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뇌는 수백억 개의 신
경세포가 연결되어 있고 증권거래소는 수많은 투자자들로 들끓고 있다. 이러한 복
잡한 계는 환경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구성요소를 재조직하면서 능동
적으로 적응한다. 따라서 복잡적응계(complex adaptive system)라 일컫는다.
복잡적응계는 자기조직화 능력을 갖고 있으므로 단순한 구성요소가 상호간에 끊
임없는 적응과 경쟁을 통해 보다 높은 수준의 복잡한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 예컨
대 단백질 분자는 생명체를, 기업이나 소비자는 국가 경제를 형성한다.
여기서 반드시 유의해야 할 대목은 구성요소가 개별적으로 갖지 못한 특성이나
행동을 복잡적응계가 보여준다는 것이다. 가령 단백질은 살아 있지 않지만 그들의
집합체인 생물은 살아 있다. 질서와 혼돈 사이에 완벽한 평형이 이루어지는 영역에
서 생명의 복잡성이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혼돈과 질서를 분리시키는 극도
로 얇은 경계선을 "혼돈의 가장자리"(edge of chaos)라고 한다. 요컨대 생명은 혼
돈의 가장자리에서 출현하는 것이다. 생명은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한 쪽으로는 너
무 많은 질서, 다른 한 쪽으로는 너무 많은 혼돈 속으로 언제든지 빠져들 위험을
간직한 채 나름의 항상성을 지키려는 유기체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구성요소를 함께 모아놓은 전체 구조에서 솟아나는 새로운 행동을 창
발적(emergent)행동이라 한다. 창발성은 복잡성 과학의 기본 주제이다.
복잡성 과학을 모든 과학자가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복잡성이라는 말
자체를 부정하면서 모든 현상을 아우르는 자기 조직화 이론을 찾는 일은 끝내 도로
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복잡성 과학의 장래가 반드시 낙관적인 것만은 아
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연을 해석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세기 동안 서양과학은 환원주의에 의존했다. 환원주의라 하면 커다란
계를 간단한 구성요소로 나누어 이해하면 그것들을 조합하여 전체를 이해할 수 있
다는 생각이다. 결정론적인 선형계는 그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복잡적응계와 같은
비선형계는 전체가 그 부분들을 합쳐놓은 것 이상의 집단적인 특성을 보이므로 분
석적인 틀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대부분의 자연 및 사회현상은 성질상 종합
적이고 전체론적이다. 따라서 복잡성 과학의 등장으로 사물을 하나의 통합된 전체
로 이해하는 전체론(holism)이 부상하게 되었다. 이는 동양에서 자연을 이해하던 방
식으로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접점이 복잡성의 과학이 될
는지도 모른다.
첫댓글 복잡성의 과학은 시스템이론과 연기법 등과 연관성이 있는 것 같은데...재밌습니다. 이런 시각은 첨 보는데도 관심이 갑니다. 고맙습니다. ()
이 글은 한달쯤 전인가 지대방에 올라왔던 글에 제가 꼬리글 하나 썼었는데 거기 대한 AS 차원이랍니다. 근데 복잡계란 건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많은 거거든요... 그래서...
일운님 좋으글 감사드립니다. 마치 천부경을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해놓은 듯 합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천부경에서 설파한 "혼돈"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무질서과 질서의 경계 즉 그 혼돈의 공간이 생명의 기원임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일시무일시와 일종무일종의 의미를 그와 같이 해석하여 관심있게 본 기억이 납니다. 많은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비록 길을 걷는 나그네라 할지라도 아무런 이유없이 길을 걷지 않습니다. 자신이 만든 그져 그럴듯한 수긍할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자신의 길을 걷지 않겠어요?
관심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 (그런데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혼돈은 일상 단어로서의 혼돈, 동양사상에서의 무극 등과 약간 다른 점은 있다네요. 자연과학에서의 혼돈은 이해할 수 있는 현상으로 되어버렸습니다. 즉 그 혼돈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읽는 것보다, 복잡한 것에 대해 간단한 강의를 듣고 싶네요. 한 번 짬 내주실수 있으실라나? ^^* ()
스님, 감사합니다. 좀 弄閑期 비슷해지면 언제나^^ ()()().
수학은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입니다. 그런데 이 (입시위주의)수학은 도통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전에도 복잡계에 대해 (just)쬐끔 들은 풍월은 있었고,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대략이나마 접하면서, 문득 <바둑>이 떠오릅니다. 바둑을 배울때는 9줄바둑판으로부터 배우다가 19줄바둑판에서 바둑을 두는데, 이 복잡성이란 것이 무한줄바둑판에서 <바둑>을 두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둑>은 씨줄과 날줄 등 (단순하게)획정된 규칙[정석, 포석, 행마, 룰과 같은 질서]이 있으면서도 착점에 따라 무한한 경우의 수로 (복잡하게)천변만화하는 것이 마치
일운님의 이 글에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혼돈, 질서와 무질서, 복잡성을 모호하지만 정연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이 공부도 <바둑>에 비유하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몸의 규칙성이 맘[생각]의 천변만화[의지]에 따라 몸(의 규칙성)이 재규정되기도하고, 그로써 맘이 안정되기도 하니 말입니다. 어쨌든 (단순한 것들의 반복이라는)복잡성을 잘 연구함으로써 (비록 환원주의적인 관점이겠지만 저는 반야[포대, 용광로]를 진공의 허브로 여기므로 모든 과정과 결과를 이 곳으로 향하게 하여) 몸과 맘(의 단순함과 복잡함)을 쥐락펴락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수행[삶]이어야 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
바둑판의 사각의 틀[우주, 공]은 정해져 있지만 안으로 무한의 줄로 확장되는 바둑판이라면 혼돈 주변의 복잡성이 아니라 오히려 단순한 틀[몸] 안에서의 혼돈과 그 주변의 복잡성[맘, 생각]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복잡함을 담고 있는)단순한 틀과 틀의 관계는 <과학>에서 일컫는 우주[공]라는 틀 안에서 혼돈, 질서와 무질서, 복잡성을 이루며, 최초의 한 정점으로부터 '팽창[빅뱅]'하고 있는 지금이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지요? 결국 우주라는 틀도 한 점입니다.(ㅎㅎㅎ 무기에 빠지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억지로 설명을 하려니 이렇게 말이 걷도는 것 같아서리... ^^*) 에고, 걍 밥 잘묵고 똥 잘 싸는기 젤입니다. ^^* ()
스스로 / 한 생각이 불쑥 / 망상이 뭉게뭉게 / 스스로 / 포대를 펼치니 / 홀연하다 ()
스님, 전체는 단순한 부분들의 합 그 이상이라는 정도입니다. 단순한 것들이 모이면 예측하지 못한 성질이 나타날수도 있는 걸 잘 설명할 수 있다... 요즘 복잡성 과학은 갈수록 발전하고 있지만 불자들에게 주는 의미는 불교 또는 동양의 전체론적인 전일적인 관점이 힘을 쓰는 때가 이미 와 있다는 정도로, 동양의 지성이나 현인들은 잘 알던 사실이라고 봅니다. 저도 이 분야 아주 전문가는 아니고 그저 소개하는 정도입니다. ()()()
일운님, 자상하신 말씀 감사합니다./"전체는 단순한 부분들의 합 그 이상이라는" 것은 결국 전체[(여러모양이 혼재 된)복합(?)프랙탈?]라는 것이 되는 것 아닌가요? 물론 그 이상의 것에 의미의 촛점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이뭣고?>이지 않겠습니까? 전 이 <이뭣고?>의 결과(인 반야[포대, 용광로])를 환원주의적인 바탕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여, 저는 이 과학이라는 선지식의 흔적들이 가리키는 것은 그야말로 현상학적인 것들로써의 단순한 부분들이기도 하고, 그 낱낱의 것들 하나하나는 이미 전체인 것이고, 이것들의 합이 전체이기도 하고, 그 이상이기도 하겠지요. ^^* 중언부언했습니다. ()
일운님, 이 부문에 대해서는 제가 예전에 장회익 교수의 저서인 <삶과 온생명>을 보면서 느꼈던 것이 있었기에 괜한 척을 하며 공부를 해보려고 부러 중언부언하는 것입니다. 하니, 혹여라도 제 견해에 부적절한 부분이라고 여겨지는 곳이 있다면 가차없이 지적하여 주시기바랍니다. 즐겁게 공부하겠습니다. () / 첨언; 일운님, "단순한 것들이 모이면 예측하지 못한 성실이 나타날수도 있"는 것이라면, "그 이상"의 것은 어떤 성질[물질]을 갖는 것으로 귀결될 것인데, 제 소견으로는 (원심력의)통계물리학과 (구심력의)입자물리학과의 상호연관성이 있다고 보여지는데 이에 관한 연구가 되고 있는지요? ㅎㅎ 몰라서 여쭙습니다. ^^*
복잡계가 통계물리학적으로 단지 어떤 현상의 시스템(의 법칙, 이론)에 대한 설명을 위한 것인가요? 혹, 실생활에 적용할만한 곳이 있다면? 어쨌든 제 소견으로 과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삶을 이해하게 하여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것[현상]을 포착하(려 하)고 그것을 (습업으로 구축된)학문[과학]적 논리로 설명하(며 습업의 유통을 확대 재생산시키)는 구속의 측면도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다 세상살이의 각각의 부문들이죠. ㅎㅎㅎ 좌우당간에 복잡한 게 무척 궁금하네요... 바쁘신데도 자상하게 일일이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잘은 모르지만 스님 말씀에 대해서 하나씩... 프랙탈 구조란 것은 아슬아슬한 계에 나타납니다.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저절로 아슬아슬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모든 크기(규모)에 걸쳐서 연관을 가지게 되고 시간적 공간적으로 일종의 프랙탈 구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조건이 맞으면, 말씀하신대로,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상호작용에 의해서 그런 희한한 일들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것은 그 복잡함이 때로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이미 놀라운 것이 아니란 점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스님 말씀대로일 수가 있다고 봅니다. ()()()
장회익 교수님은 제게 작지않은 영향을 주신 분입니다. 대학때 그분의 이끎에 의해 이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한참 그 공부를 안했습니다만... / 아무튼 통계물리학 자체가 미시적인 구성원의 상호작용들과 그들이 거시적으로 만들어내는 성질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려는 학문입니다. / 생명체의 경우 입자물리까지는 필요없고 원자분자 물리학정도면 충분합니다. ()()()
복잡계이론은 일단은 복잡한 현상을 이해해 보려는 시도의 차원입니다. 물론 경제문제 (금융시장) 등에 응용되어서 수학, 물리학 출신자들의 밥벌이 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복잡계는 그 자체가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한 편이고 전체적인 패턴을 이해하는 것이 최선일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쩔수 없이 해야 되는 경우엔 예측의 정확성을 높여주는 것은 틀림없을 겁니다. / 그리고. 학문에는 말씀하신대로의 속성이 있다고 봅니다만 결국 그건 학문하는 사람의 문제라 봅니다. 사람이 학문을 굴리느냐, 학문이 사람을 굴리느냐의 문제 아닐까요? 스님,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위 꼬리글까지 쓰고 보니 소감, 참 말은 잘한다! ㅎㅎ 아무튼 제가 쓴 글들은 제 소견일 뿐이고 또 그나마 완전하지 못한 것으로, 적절히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저...이룬님^^* 諸 所見이 素見이(었)기를...ㅎㅎ () / 그저 고~오맙고, 감사합니다. ()
예, 스님, 쬐금 이룬 게 있네요... 제 주제파악^^ ()()()
두분께...저는 단순한것 좋아 합니당..()()()
학문 용어론, 연꽃 한 송이도 복잡계임을 피할수 없답니당~ 헤헤... ()
일상 용어론, 연꽃 한 송이도 바나마님을 위해서 있답니당~ 헤헤... ()
인문,사회,자연 등 제 과학의 학문마다 각각의 부문이 나뉘고, 그 부문은 다시 각각의 부분으로 또 나뉘지만 모두는 삶의 바탕[(統一)場]에 있습니다./방에서 창 밖으로 보이는 달을 보는 것과 마당에서 보는 달과 대문열고 나와서 골목에서 보는 달과 동네에서 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보는 달과 이 고을을 떠나 다른 저 고을에서 보는 달은 모든 한 달입니다. 다만, 감흥이 다를 뿐입니다./뷰포지션[관점]에 따라 뷰포인트[관점]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할 수 있습니다. 만, 모든 관점은 삶을 향한 학익진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학익진은 무한한 관점 낱낱이 펼치는 원심력의 분산[복잡]이기도 하고, 구심력의 집중[단순]이기도 합니다. ()
學問을 한다는 것은 博學과 深問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學問하는 자는 (大道)無門을 드나드는 專門家가 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스스로 (學問家가 아니라)學者연하는(이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들이 특정 부문과 부분에 한해서만의 닫힌 전문가로 안주하면서 그것으로 입신양명의 삶을 누리고자 한다면 이는 지극히 우려할 일이라 할 것입니다./굳이 레비스트로스를 빌지 않더라도 (최초의?)한 집안에서 차차로 저금나면서부터 직계와 방계의 계보를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이 바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경계 안에서만 안주하는 닫힌 학자보다는 경계를 넘나드는 열린 학문가가 되어 한바탕 삶을 누비시기를 기원합니다. ()
저도 지식인에 속하는지는 모릅니다만 스님 말씀하신 뜻 외에도 우리나라 지식인이 제대로 역할을 해 왔는지에 대해선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있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