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48 ( 군산 은파호수공원 –해망굴 –이성당 -힐스톤온천리조트)
폭설과 한파주의보가 연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금요일부터 주춤한 틈을 타서 이번 주는 군산 은파호수공원으로 떠나기로 한다. 낮의 길이가 짧은 탓에 아침 일찍 출발하고자 하였지만 현관문을 열어보니 세상은 온통 하얗다. 눈이 많이 내려서가 아니라 겨울 안개인 모양이다. 차라리 눈이 쌓였다면 큰 도로 눈은 녹을 법도 하건만 아마도 이 같은 안개는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할 오늘의 목적지를 찾아 나서기에는 최악의 날씨이다. 특히 군산 가는 길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가다가 못 가면 돌아올지라도 출발을 강행한다. 시간은 현재 시간에 멈추어있지 않으며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것은 세상 살아가는 이치이다. 서둘러 출발하여 서영암IC를 들어 선 지점부터 날씨는 환히 밝아지고 있었다. 사는 것이 마치 날씨 변화처럼 맑았다가 흐렸다가 또는 비가 내리다가 눈이 내리다가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가진 모든 이는 살아내는 것이며 사는 일이 이런 맛 아니겠던가? 음식 또한 먹어본 음식이라야 맛이 있고 없음을 느낀다. 낯설은 지역의 아름다운 매력이거나 관광지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느 지역이거나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한 곳을 다녀오고 나면 딱히 더 이상 갈 곳도 없을뿐더러 삭막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렇게 낯선 곳으로의 처음 방문은 계획적이었거나 우연이었거나 사실은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 번 반복하여 찾아갈수록 그 지역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역사까지 살펴볼 수 있는 관광지를 알아가게 된다. 군산도 그랬다.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의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심지였기에 일본식 가옥과 공공기관이 많이 남아 있어서 한국 근대사의 흔적으로 간직한 역사적인 배경을 품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관광지로는 근대 문화유산 거리와 선유도 또는 경암동 철길 마을을 다녀오면 군산의 특별한 여행은 끝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가볼만한 곳이 정말 많은 곳이 군산이다. 그래서 이번에 한 번 더 군산을 더듬어 떠나기로 한다. 군산의 은파호수공원은 이름이 참 예쁘다. 7,8년 전 여행을 시작할 때 이름이 예뻐서 선택하여 다녀왔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때도 한겨울이었다는 기억 뿐 어렴풋이 떠오르는 풍경을 다시 한 번 느껴보기로 한다. 은파호수공원까지 180여km를 달리는 주일의 서해안고속도로는 비교적 한산하고 평화로웠다. 목포 톨게이트를 지나면서부터는 햇빛도 쨍하여 도로위의 여행 느낌은 최상이었다. 이렇게 맑은 날씨와 도로의 자동차가 한산하면 기분도 업 되는가 하면 동행하는 남편과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깊어지고 많아진다. 미루어보아 가족과 운명적인 삶의 동행 안에서 여행으로 하여금 함께 나서는 동행의 의미는 참으로 특별하고 소중하다. 이는 억지로 소통하기 위하여 애쓰는 과정 없이도 쉽게 가슴을 열어 소소하게 꺼내 놓아도 크게 와 닿는 여행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군산 초입에 들어섰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지역을 거슬러 올라올수록 눈이 많이 내렸다는 것을 실감했으나 막상 은파호수공원에 도착해보니 발목을 차고 넘치는 눈이 그대로 남아 있고 물결이 반짝이는 모습이 아름다워 지어진 은파호수공원의 눈 덮인 겨울은 물빛보다 수려하고 낭만스럽다. 호수의 전체 둘레가 약 9km인데 우리는 호수중간을 가로지르는 물빛다리를 중심으로 하여 호수의 반을 트레킹하기로 하였다. 5km이상 눈 쌓인 데크길과 오솔길을 우리는 각자의 추억을 중얼거리며 걷는다. 누구나 눈을 보면 동심으로 돌아가는가 보다. 먼저 지나는 사람들이 곳곳에 눈사람을 만들어 데크 위에 세워 두었고 우리는 수고로움 없이 재미를 만끽한다. 카메라 거치대를 세워 두고 서로 달려와 포즈를 잡는 일도 여행을 하면서 만끽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게 지루하지 않게 원점회기하면서도 둘 중 누구도 걷기를 멈추고 그만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만큼 은파겨울호수는 장엄함으로 멋진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매 순간 같은 일상의 테두리 안에 모든 것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것이 부부인 것 같지만 함께 살면서 아팠으나 잊혀진 이야기거나 맺혀 있으나 말하지 않았던 사연 하나 쯤 어찌 없겠던가? 오늘 같은 겨울 호수를 걸으면서 들여다볼 수 없으나 훤히 알 수 있는 서로의 마음에 이런저런 물꼬를 터줄 것 같은 기분이다.조선조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고산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에도 표시되어 있는 역사 깊은 이곳 은파호수공원의 이 아름다움은 군산의 대표적인 관광지임에 틀림이 없다. 특히 오늘은 일 년이 지나도 볼 수 있을까 말까하는 설경위에 호수위를 가로지르는 전통 정자와 어우러진 풍경은 참으로 환상적이다. 특히 고 노무현대통령의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노란의자의 추모공간이 이색적이었으며 요즘처럼 나라가 어수선하니 더욱 더 특별하게 와 닿는다. 우리는 눈 쌓인 호수의 트레킹과 그 안에서의 사진놀이에 흠씬 젖어 놀다 호수주변에 있는 군산 맛 집 거리를 찾아 점심을 즐기고 해망굴로 여행지를 옮겼다. 해망굴은 군산시의 월명산 자락 북쪽 끝에 자리한 해망령을 관통하는 터널로서 수산물의 중심지인 해망동과 군산 시내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란다. 한국전쟁 중에는 군산에 진주한 인민군 지휘소가 이곳에 자리하여 매일 같이 연합군과 공군기들의 기관총 폭격을 받아 총알 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가서 보니 입구에는 자동차의 출입을 막아 놓고 보행자만 통과가 가능하도록 해 두었다. 한국전쟁 중에는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북한군 지휘본부가 터널 안에 지루하게 되어 연합군의 공격을 받았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굴곡진 역사의 부침을 온몸으로 겪어냈던 유적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어떠한 볼거리거나 넓은 범위가 아니라 단순한 듯 의미가 있는 터널 하나를 바라보는 것으로 여행의 의미를 더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한편 바로 위로 올라서면 도심 속의 자연공원인 월명공원이 있었으나 너무 많이 걸었던 탓에 오늘의 걷는 여행은 여기까지 마무리하기로 한다. 그리고 군산이라면 유명한 이성당 빵집까지 들러 몸으로 감성으로 배부른 하루를 온천수로 유명한 군산 힐스톤온천리조트에서 이번 여행의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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