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를 생각케 하는 옛것들

옛날 마산 시립도서관, 추산동 소재 (국궁터 옆) 1970년대에 용마산에 새 도서관 지은후 철거됨

마산에서 진해로 넘어가는 봉암동 다리 인근 바다 꼬시락 회 식당 모습

1960년대 초 마산 중앙동 대한통운 부두 창고 앞 도로 비포장 도로였고 저 아이들이 지금 60대 초, 중반 되었을것 같음

그 때는 왜 그리 몸에 종기나는 아이들이 많았는지.... 그 가운데 붙이는 拔根膏(발근고/노f랑색 약)을 검은 고약 가운데 이겨 붙이고 뜨거운 성냥불로 녹여서 붙이면 뜨금하다 시원해지는 기분이 났었는데.... 이명래 고약이나 조고약이 더 유명했던 것 같음. 거울이 있는 경대에 이렇게 생긴 영양크림 한개쯤은 있었던 듯. 그 냄새가 요즘의 영양크림이라는 것과 냄새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던데..
30도 짜리 처음 나온 진로 소주 이 소주병들이 이때부터 참기름 병으로도 대용되기 시작했던 것 같음 조미료 경쟁 시절 참 빗. 할머니들이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머리뒤로 비녀들을 많이 꼽았을 때라 어느 집이나 다 있었던 것인데 요즘은 보기 힘들다. 동백기름에 참빗으로 단정하게 빗으시던 어머님의 모습 떠오르십니까?
지금은 볼 수 없는 삼발이 자동차. 연탄공장차나, 소형 이삿짐 배달차로 기억된다. 문구점에서 팔던 스티커. 우표를 모은다고 우채국에 가서 시리즈나 명판(우표 한 질에 구석모퉁이에 제조국인 한국조폐공사라고 인쇄된 부분의 4장)이나 문방구에서 돈 주고 사는 이름모를 외국우표묶음들을 종이판에서 뜯어서 파는 것들을 많히 사는 것이 유행이었던 시절 참 유치한 광고 문구인데 그땐 몰랐었다 구슬치기 역시 그 땐 다마 따먹기란 말을 더 많이 했었다.
이 가방은 양쪽에 책을 넣게 돼 있고 가운데도 끼워 쓸 수 있게 만든 학생용 가방인데 가방 모퉁이엔 항상 도시락에서 흘러나온 김치국물이나 이런 것들이 묻어있었던 것 같다. 교과서 한 두권 쯤은 역시 반찬 국물이 묻어 있었다. 모자는 신입생일 때엔 보이는 것처럼 순수한 처음 그대로의 모양이겠지만 학년이 높아질수록 멋을 부리느라 모표는 보이지도 않게 납작하게 눌러 쓰고 역시 챙은 각지게 오므려 폼 잡는 아이들이 많았던 시절
황금색 은박지로 쌓여있던 다이알 비누. 세수할 땐 다이알 비누를 아끼느라 은박지를 절반만 벗겨 비벼서 쓰곤 했다.
활명수가 먼저 나온 후 나중에 까스활명수가 나온 것 같은데 ?
이 때엔 또 판콜A인가, S인가를 감기약으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 T.V는 앞에 문이 여닫이로 돼 있었다. 어떤 친구집엔 미제 RCA TV도 있었다.
소풍갈 때 필수품이다. 김밥에 찐 계란에 ... 물파스가 벌래 물린데 바르란 말은 없지요? 아마도 시대가 지나면서 중간에 생긴 것으로 기억된다. 그땐 1등이 오백만원 어쩌구 했던 것 같던대.. 이것도 이것이지만 카라멜 제품도 많이 나왔던 것 갔습니다. 서울 용두동에 동아제약 박카스공장이 있던 것이 생각나내요. 삼천리표하니 자전거도 생각나지요. 요즘 자전거보다 더 잘 만들었던 것 같은데 요즘 것은 영 그때 삼천리 자전거보단 디자인이나 여러 면이 뒤떨어지는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아출판사에서 나온 동아 전과도 생각난다.
이 설탕 선물 깡통이 어느 집이나 하나 둘은 있었다. 마지막엔 꼭 집안의 바느질 통이나 약통 같은 걸로 사용했다. 이 제품은 지금보면 성공한 제품이다. 조미료 시장이 무시 못하는 시장인데 국민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큰것 같다는 생각. 70년대인가? 휴대용 미니 라디오에 밤에 음악방송인 "황인용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나 "차인태의 별이 빛나는 밤에"(약칭 별밤)를 귀에 하얀 이어폰을 끼고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것 많이 먹었죠~ 입으로 불어서 뿌리는 모기약이다. 건강상 아주 좋지않았던 제품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보잘 것 없이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이 지금의 우리 산업의 기초동력이 된 것이다. 이 유엔 성량은 요즘으로 치면 포장지 절약으로 대용량의 벌크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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